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67
067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으···.’
머리가 깨질 것 같다.
단순 숙취로 인한 두통은 물론이고,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알코올로 굳어버린 뇌를 억지로 회전시키며 과부하가 걸렸다.
어째서 내가 강바다의 침실에 누워있는가. 그것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강태양의 지시로 누군가 나를 여기로 배달한 거다.
‘왜?’
이 부분이 가장 골치 아팠다.
강태양이 우리 집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비밀번호가 문제였다면 호텔이든 어디든 던져놓으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강바다에게 나를 던져놓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건 순전히 나를 엿 먹이려는 용도 밖에···.
“괜찮아요? 머리 아프죠? 무슨 일로 술을 이렇게까지 먹었어요? 대체 누구랑 마셨길래···.”
연신 나를 걱정하는 강바다.
혹 열이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이마를 가져다 대기까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엿 멕이려는 의도는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그대로 누워있어요. 꿀물 타올게요.”
“괜찮···.”
강바다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려서 방을 빠져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가벼운 웃음을 흘렸다.
‘근데 누구랑 마셨는지는 왜 묻는 거지?’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은 고강철이었을 텐데. 이전에도 두 사람은 아는 눈치였으니, 내가 강태양과 술을 마셨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에이, 설마···.’
순간 머릿속으로 불안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웹소설 작가답게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랐고, 곧장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휴대폰은 어디 있지!?’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으나 휴대폰은 보이질 않았다. 속으로 욕지기가 치밀었다.
여기까지 내가 걸어왔을 리는 없으니, 휴대폰에 카드 결제내역이든 뭐든 흔적이 남아있을 텐데. 이래서야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 끼야옹
낯선 울음소리에 등에서 소름이 쫙 돋았다. 그러고 보니 강바다는 집에서 애완동물을 키우고 있었다. 분명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였던가.
내 기억력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듯, 침대 밑에서 웬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얘가 봄이었나?’
흰색 바탕에 얼굴이나 발끝, 꼬리 같은 모서리만 새까만 털로 뒤덮인 특이한 비주얼. 무엇보다 사파이어를 박은 듯 선명한 푸른 눈이 특징인 ‘샴 고양이’다.
– 끼야옹?
특이한 생김새처럼 보통 고양이와는 울음소리부터 달랐다. 호기심이 많은 품종답게 나를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
비주얼도 예쁘장하고, 애교 많은 늦둥이 막내 같은 성격이라 인기가 상당히 많은 놈인데.
“···훠이, 저리 가렴.”
문제는 내가 고양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네로한테 당해 나무에서 떨어진 이후부터 줄곧 고양이는 멀리해왔는데.
– 끼옹?
이 빌어먹을 고양이는 딱 봐도 사랑을 너무 많이 받고 자랐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나 두려움이 전혀 없는 상태.
누군가 자신을 미워하거나, 멀리한다는 감정 자체가 낯선 ‘슈퍼 인싸 고양이’라는 거다. 나하고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성이다.
“오, 오지 말라니까!?”
– 끼오옹?
경고가 무색하게도 봄이는 내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가뿐하게 뛰어올랐다. 그러더니 나를 향해 슬금슬금 다가오는 녀석.
평소였다면 그대로 몸을 일으켜 거리를 뒀겠지만, 혈관에 피 대신 알코올이 흐르는 상태라 도무지 몸이 말을 듣질 않았다.
“제, 제발 그만···.”
할짝-
내가 꼼짝도 못 하는 사이, 기어코 가슴팍 위까지 기어오른 녀석이 혀를 날름거렸다. 축축한 느낌이 얼굴을 간지럽힌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이 느낌. 아까 내 얼굴에 침을 바르던 놈이 이 녀석인 모양이다.
“봄아!”
– 끼옹!
드디어 구세주가 나타났다.
내 상황을 확인한 강바다는 다소 높은 톤으로 봄이를 불렀고, 깜짝 놀란 녀석이 얼른 방을 빠져나갔다.
“···덕분에 살았어요.”
“네?”
강바다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차마 고양이가 무섭다고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잠깐 일어날 수 있겠어요?”
“···끄으응.”
힘겹게 상체를 들어 올리자, 강바다가 내 등을 받쳐줬다. 덕분에 간신히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댈 수 있었다.
“여기 꿀물이에요.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요.”
“아, 감사합···.”
“······.”
꿀물을 받으려고 손을 들어 올리려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확 올라왔다. 어질어질한 느낌에 저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안 되겠다. 제가 먹여줄게요.”
“아니요. 이제 괜찮···.”
“잔말 말고 가만히 있어요.”
후우- 후우-
강바다는 스푼으로 꿀물을 뜬 다음, 직접 입김을 불어 그것을 식혀줬다.
“아- 하세요.”
아-
나는 군말 없이 입을 벌려 아기새처럼 꿀물을 받아먹었다. 어찌나 꿀을 많이 넣었는지, 도를 지나친 달달함이 발끝까지 퍼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누군가에게 간호받는 느낌 자체가 생소했으나, 그 대상이 강바다가 되자 뭔가 기분이 좋았다. 진짜 부부 같다고나 할까.
‘···행복하면 됐지.’
그렇게 모든 꿀물이 위장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강바다의 정성스러운 간호 덕분인지, 나는 점차 두통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고마워요. 바다 씨.”
“그럼 이제 말해봐요.”
“네? 뭐를···.”
차갑다 못해 서늘하게까지 느껴지는 강바다의 말투에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더니, 그녀가 뭔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예요? 새벽에 갑자기 하늘 씨가 찾아와서 얼마나 놀란 줄 알아요?”
“···제가요?”
송구하게도 저는 전혀 기억이 없는데 말입니다.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마셔본 것은 김하늘 탄신일 이후 처음인지라.
기억을 떠올리려고 하자 다시금 머리가 아파왔다. 허나 누군가 뇌 속에 먹물이라도 뿌려놓은 것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두뇌를 굴리자, 드문드문 기억의 조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 도련님, 도착했습니다.
– 우리 집 비밀번호는 어떻게···.
– 숙취해소제를 사놨으니 편히 쉬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스윽-
고강철이 등을 돌려 우리 집 현관문을 나서는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이게 꿈이 아니라면, 강태양의 배달은 제대로 이뤄진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아마도.
‘···제 발로 온 거구나.’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때부터 영화를 보는 것마냥 하나씩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 바다 씨 보고 싶다아···.
그대로 잠들어버렸으면 좋으련만. 쓸데없이 내성이 높은 이놈의 몸뚱이는 그만큼 고량주를 처마시고도 정신이 남아있었다.
결국 만취한 나는 그대로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걸어나왔고, 곧장 택시를 잡아 강바다의 집까지 달려왔던 것.
– 바다 씨~
– 하늘 씨!? 이 시간에 웬일···. 우읍!? 술 냄새가 무슨! 대체 술을 얼마나 드신 거예요!?
– 사랑하는 만큼!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차라리 기억나지 말지.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차라리 다시 취해서 잠들고 싶었다.
“괜찮아요? 얼굴이 새빨간데!?”
“아뇨, 아직 취기가···.”
스르륵-
나는 젤리처럼 몸을 흐느적거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동시에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정확히는 그러려고 했다.
“기상.”
스윽-
유격 조교를 떠올리게 할 만큼 서늘한 말투에 저절로 몸이 멈췄다. 지은 죄가 있는 만큼, 그녀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혹시 제가 바다 씨한테 뭐 실수한 건 없죠?”
이미 여기 드러누워 있는 것 자체가 실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그 이상의 실수다. 혹 술에 취한 내가 짐승이 되었을까 봐.
분위기만 보면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다만. 강바다의 집에 들어온 이후는 정말 뭔 수를 써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요?”
“쪼금?”
“어디까지?”
“···초인종을 누른 것까지요.”
차마 그다음 장면까지 기억난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그럴 바엔 차라리 알코올에 코를 처박고 죽어버릴 거다.
강바다는 정말이냐는 듯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알고 싶어요?”
“···네, 니요.”
요상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흑역사는 이대로 덮어두는 게 좋다는 이성적인 판단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는 본능적인 호기심이 맞부딪친 탓이다.
강바다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자신의 휴대폰을 가져와서 웬 동영상 하나를 재생했다.
내용을 확인한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안에는 두 마리의 짐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 끼야오오옹!
– 으르르르.
바닥에 드러누운 채 서로를 보며 울부짖는 두 마리의 짐승. 하나는 오늘 아침에 봤던 ‘봄’이였고. 다른 하나는 만취해서 개가 된 ‘김하늘’이다.
대치가 이어지던 중, 봄이가 먼저 경계를 풀었다. 녀석은 조심스럽게 김하늘에게 다가가 머리를 비볐다.
김하늘은 가만히 녀석을 바라보다가, 귀엽다는 듯 품에 끌어안으며 함께 바닥을 뒹굴었다.
“흐흐흐. 너 오빠랑 같이 살래?”
– 끼야옹.
죽이 아주 척척 맞는 두 짐승.
배경 음악으로 강바다의 끅끅대는 웃음소리가 담겨있지 않았다면, 나름대로 훈훈한 영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푸하하하하-!”
동영상을 보면서 다시금 폭소를 터트리는 강바다. 반면 나는 트라우마와 종족의 벽마저 뛰어넘은 두 짐승의 우정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어쩐지 봄이가 너무 친근하게 군다 싶더라니. 함께 뜻을 나눈 의형제라서 그랬던 거구만.
“······.”
휙-
상심하는 척 방심을 유도하며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으나, 예상했다는 듯 재빠르게 회피하는 강바다.
“지워주세요.”
“싫은데요?”
“그건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존재요. 엄청난 재앙을 가지고 올 것이란 말이외다!”
“클라우드 백업도 해뒀으니 허튼 생각 마시게.”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리 극악무도한 짓을!?”
내 절절한 외침에도 강바다는 씨알도 안 먹힌다는 듯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동안 강바다를 몇 번 데려다주기는 했으나, 정작 집 안까지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런 식으로 흑역사를 쌓게 될 줄이야.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바다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까먹은 건 아닐 테고, 그냥 모르는 척해주는 듯했다.
‘생각보다 별일 없던 모양이긴 한데.’
결혼식까지 기다려주겠다고 말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헌데 술에 취해서 선을 넘어갔다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내가 지금 걸치고 있는 옷도, 어제 입은 와이셔츠 전부 그대로. 딱히 의심 가는 흔적은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만 더 확인하자.
“그다음에는 뭐 없었죠?”
움찔-
순간 움찔하는 강바다. 직후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으나, 내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 있었어요?”
“아뇨!? 아무것도! 좀 괜찮아지면 밖으로 나와요. 제가 콩나물국 끓여놨어요.”
“갑자기 왜 말을 돌리고···.”
팟-
순간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듯 번뜩이는 기억. 봄이와 한바탕 바닥을 구른 이후, 강바다가 나를 침실로 끌고 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여차저차 어떻게든 침실까지 들어온 두 사람. 나를 침대에 눕힌 강바다가 진땀을 빼며 나가려는데, 누군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 에휴, 잠깐 있어 봐요. 물 좀 가져다줄···. 으앗!?
나는 강바다를 침대로 끌어당긴 후, 그녀를 곰 인형처럼 끌어안았다. 그대로 이어지는 주접.
– 하늘 씨, 정신 차리고 이것 좀 풀어봐요. 뽀뽀 좀 그만···. 아잇!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강바다를 안은 채로 잠들어버린 모양.
강바다는 내 생각을 읽은 듯 침묵을 삼켰고, 덕분에 분위기는 급속도로 어색해졌다. 이럴 때 해결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다 씨.”
“괜히 그윽하게 부르지 마세요.”
“저 아직 술이 덜 깬 것 같아요.”
“그게 무슨···!?”
나는 기억 속의 모습처럼 강바다를 침대로 끌어당겼고, 이후 무차별 뽀뽀세례를 퍼부었다.
말로는 질색했으나 그녀의 입가에도 점차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니, 썩 기분 나쁘지는 않은 듯했다.
꿈이라고 해도 믿지 못할 만큼.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
“기왕 이렇게 된 거 오늘부터 합칠까요?”
“그러시든가요.”
“꽤나 순순히 받아들이시네요.”
“···저도 딱히 싫은 건 아니니까. 어차피 남는 방도 많고.”
강바다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내가 만든 볶음밥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허나 귓불이 새빨개진 것을 보니 역시 부끄러운 모양이다.
“근데 정말 괜찮겠어요?”
“뭐가요?”
스윽-
강바다는 대답 대신 물끄러미 이쪽을 쳐다봤다. 이에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애를 썼으나···.
– 에옹?
– 끼야옹!
– 냐아아-
– 키이이이.
움찔-!
각양각색으로 울음소리에 저도 모르게 굳어버리는 몸. 내 뒤쪽에는 네 마리의 알록달록한 고양이들이 앉아있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계절의 시련인가?’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그 이름부터 찬란한 네 마리의 고양이가 열렬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