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e struck a jackpot after a marriage RAW novel - Chapter 76
076 이 악랄한 부부사기단!
후우-
의자에 몸을 파묻은 니시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의자가 아니라 집안의 욕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옆자리에 앉아있던 상사가 그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 냈다. 니시오는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대답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응?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상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니시오는 여행 기간 동안 김하늘 커플을 따라다니며 접대하기로 했었으니까.
그런데 하루도 아니고 고작 반나절 만에 돌아왔으니, 그로서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사의 시선을 모를 리 없는 니시오. 그는 무언가 회상하듯 멍한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만치 않은 상대였어요.] [누가? 김하늘 작가?]온몸에 힘이 빠진 니시오는 간신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몇 년을 그와 함께했음에도 이런 모습을 처음 보는 상사였다.
[천하의 니시오를 이렇게 만들다니. 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설명하자면 깁니다.] [말해봐.]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는 걸 완곡히 돌려 표현했으나, 호기심이 동한 상사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에 한숨을 삼킨 니시오는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직후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기며 천천히 입을 여는 그.
[그러니까···.]김하늘 커플을 픽업해서 호텔로 데려다주는 길. 본래 니시오는 여행 기간 동안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접대하려고 했다.
무릇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기분이 좋은 만큼 여유로워지기 마련이니까.
일단 김하늘의 마음을 열고, 천천히 계약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으나.
– 그나저나 일은 잘 되십니까?
당연하다는 듯 본론을 찌르고 들어오는 김하늘. 이전에 봤을 때도 느낀 거지만 역시 호락호락한 상대는 아니었다.
허나 이쪽도 베테랑.
이에 대한 대비도 되어있었다.
– 시트 뒤쪽 주머니를 확인해주시겠습니까?
미리 준비해둔 자료를 보여주며 백미러를 통해 조심스럽게 김하늘의 반응을 살피는 니시오.
비록 계획이 조금 틀어지기는 했으나, 이쪽은 언제든지 계약을 진행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해둔 상태였다.
‘우리보다 좋은 조건은 없어.’
빵빵한 자원을 바탕으로 일본의 어느 출판사보다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으며, 지난 작품을 통해 증명까지 끝마친 상태.
김하늘이 제안을 거부할 확률은 눈곱만큼도 없다. 이를 증명하듯 김하늘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원하시는 겁니까?
지금이 바로 승부처다.
오랜 편집자 생활로 다져진 니시오의 직감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길게 재는 것보다 한 방에 털어놓는 것이 옳다고.
– 전부입니다. 저희는 를 비롯한 작가님의 글 일체를 원하고 있습니다.
니시오의 판단은 정확했다.
순간 김하늘이 눈썹이 움찔했으니까.
비록 그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으나, 줄곧 김하늘의 표정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니시오는 그가 당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패를 내보이는 것은 그리 좋은 거래 방식이 아니었으나, 니시오에게는 그만한 자신이 있었다.
‘이미 균형의 추는 기울었어.’
물론 자세한 계약은 대한 미디어를 통해야겠지만, 이 자리에서 구두로라도 정리를 해놓으면 나중에 딴말하기는 어려울 터.
이대로라면 김하늘의 다른 작품도 무난히 계약을 따낼 수 있으리라. 남은 건 그 비율을 조정하는 일뿐이었다.
– 이제 비율을 정해 볼까요?
–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겠네요.
– 일단 저희가 생각하는 건···. 예?
지금 설마 거절한 건가?
계약 조건을 설명하려던 니시오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김하늘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밀당을 하려는 건가?’
그런 의문을 품은 채로 김하늘의 표정을 살폈으나, 그의 차분한 눈빛을 보는 순간 니시오는 깨닫고야 말았다.
‘···진심이로군.’
이 바닥에 일한 지 벌써 수십 년, 상대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충 보인다.
김하늘은 지금 밀당 같은 걸 하려는 게 아니다. 정말로 거래할 생각이 없는 거다.
니시오는 침음을 삼켰다. 애써 핸들을 붙잡으며 김하늘이 계약을 거절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린다.
– 저희의 일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까?
– 그럴 리가요. 충분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 그럼 어째서···?
– 약간 오해가 있네요. 제가 힘들겠다고 한 건 를 말씀드린 겁니다. 그건 온전한 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으니까요.
씨익-
입꼬리를 끌어 올린 김하늘이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지금껏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강바다가 있었다.
– 그 말씀은···.
김하늘을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니시오의 눈.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자 강바다는 제 남편과 똑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를 본 순간 니시오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고양이 앞에 선 쥐라도 된 것처럼.
–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이후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그녀는 놀라울 정도로 거래에 능숙했으니까.
제 작품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니시오가 제안할 수 있는 한계치가 어디인지도 꿰뚫어 본 듯했다.
게다가 중간중간 들어오는 김하늘의 정확한 어시스트. 덕분에 니시오는 모든 밑천을 탈탈 털어내야만 했다.
[그런 경험은 맹세코 처음이었습니다. 대낮에 속옷까지 발가벗겨져서 알몸으로 오사카 시내를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고요!] [알겠으니까. 일단 진정해.] [이 악랄한 부부사기단!] [······.]울분을 토해내는 니시오.
본래 회사가 기대했던 비율보다 한참 밑진 장사라 그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저런 모습을 보면 없는 잔소리도 쏙 들어갔다.
‘뭐, 일단 손해는 아니니까.’
김하늘의 작품은 일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벌써 애니메이션과 굿즈 제작을 찔러보는 회사도 있을 정도.
비율이 좀 줄어들기는 했어도 결코 회사가 손해 보는 구조는 아니었다.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니시오가 아니었다면 크게 당했을지도.’
니시오는 누가 뭐라 해도 유능한 사원. 그렇기에 중요한 거래를 전담하며 비율까지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 거다.
만약 그가 아닌 다른 직원이었다면, 이 거래 자체가 어그러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상사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니시오, 김하늘 작가님이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옆에서 잘 케어해. 필요한 게 있으면 회사 차원에서 지원해줄 테니까.] [꼭 제가 해야 합니까?] [네가 담당자잖아.] “칙쇼오오오-!”···유능한 부하 직원이 망가진 건 상당한 타격이지만, 이쪽은 시간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지.
생각을 마친 상사는 슬그머니 니시오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 * *
“저보고 놀러 가자더니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일 얘기부터 하고. 정말 이러기에요?”
“아하하···. 미안해요.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계속 신경 쓰는 것보다는 바로 끝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다 끝난 거죠?”
“네. 이제 정말 끝.”
후후후-
확답을 받은 강바다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침대에 드러누웠다. 진정한 여행이 시작됐다는 사실이 무척 기쁜 모양.
나는 슬쩍 그 옆에 같이 누우며 기지개를 켰다. 고급 매트리스의 부드러운 촉감이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이게 얼마만의 휴식인지.’
예나는 아직 법적인 문제가 해결이 안 돼서 같이 오지 못했다.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결과적으로 온전한 휴식을 취하게 됐다.
아무래도 예나와 함께 있으면 신경 쓸 부분이 많으니까. 즐겁기는 해도 피로도가 크게 올라가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단둘이 데이트하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렇죠.”
강바다의 생각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되돌아보면 계약 결혼이 성사된 이후로도 단둘이서 보낸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그마저도 계약의 형태에 묶여있을 때뿐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진정한 데이트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럼 우리 이제 뭐 해요?”
스윽-
강바다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 역시 몸을 돌려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빛. 그를 보며 가볍게 웃음을 삼킨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줬다.
강바다 역시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 채 가만히 얼굴을 기대왔다. 그 모습이 뭔가 강아지처럼 귀여워서 한참을 쓰다듬었다.
“계속 이러고 있어도 나쁘지 않을지도?”
“안 돼요!”
강바다가 눈에 힘을 빡 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녀는 내 손을 잡아서 떼어놓더니 단호한 어투로 선언했다.
“기껏 시간 내서 일본까지 왔는데 숙소에서 모든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구요.”
“따로 뭐 하고 싶은 거 있어요?”
“으음···.”
강바다가 고민하듯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그녀의 성격상 특산물이나 맛집 등 이것저것 많이 알아봤을 거다.
단순히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 어려운 거겠지. 이대로 내버려 두면 한참 걸릴 테니, 남편으로서 조금 도와주자.
“일단 배부터 채울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지금 먹고 싶은 음식 3개만 말해보세요.”
“텐동, 차슈라멘, 도톤보리 대게!”
해외여행이라 그런가, 전체적인 텐션이 상당히 높은 강바다. 그녀의 입에서 다양한 메뉴들이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모르긴 몰라도 강바다가 준비한 메뉴만 리스트로 뽑아도 30가지는 넘어가지 않을까.
“그럼 일단 도톤보리 대게를 먹어볼까요? 글리코맨도 실제로 보고 싶고.”
“글리코맨이라면 그 전광판 말씀하시는 거죠? 체육복 입은 남자가 만세하면서 달리는.”
“네, 맞아요.”
오사카 도톤보리의 상징이라고도 잘 알려진 네온사인이다. 사진으로는 많이 봤는데 실제 모습은 또 어떨지 궁금했다.
“좋아요! 지금 바로 출발하죠!”
“아, 지금은 무리예요.”
“엥?”
의욕적으로 몸을 일으키던 강바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난기가 돋은 나는 침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손을 휘적거렸다.
“잠깐 충전 좀 해야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평상시에는 며칠 밤을 지새워도 생생하면서!”
“아직 시차 적응이···.”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요!”
옆으로 다가온 강바다가 내 어깨를 잡아당겼다. 최근 같이 운동하면서 근력이 좀 붙긴 했으나, 내 몸을 일으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끄으응-! 정말 이럴 거예요!?”
“마법의 키스라면 충전될지도.”
“누가 넘어갈 줄 알고?”
짝-!
강바다가 전력으로 등짝을 내리쳤다. 아찔한 통증에 반사적으로 상체가 들렸고, 강바다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내 목에 백초크를 걸었다.
“이래도 안 일어나요?”
“갈게요, 가요!”
“안 믿어요. 빨리 일어나요.”
탭탭탭-!
나는 항복한다는 의미로 재빠르게 강바다의 팔을 두드렸다. 호신술 좀 알려 달라기에 몇 개 가르쳐줬더니 그걸 이렇게 써먹네.
이쯤이면 됐다고 생각했는지 강바다가 손을 느슨하게 풀었다. 빈틈을 노리고 있던 나는 곧바로 몸을 돌려 강바다를 침대 위로 쓰러트렸다.
“항복한다면서요!”
“1라운드는 바다 씨 승리. 지금부터는 2라운드입니다.”
“무슨 그런 억지가···! 히익!?”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자 부르르 몸을 떠는 강바다. 그녀가 살벌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봤다.
이후로도 우리는 한참을 티격태격하며 침대 위를 뒹굴었고, 결국 한 시간이 흐른 후에야 겨우 도톤보리에 도착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