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06
106. 버틸 것이다.2015.11.06.
하북(河北)은 이름 그대로 황하(黄河)의 북쪽이란 말이다.
큰 산이 없는 평야 지역이지만 대체적으로 지대가 높아 고원(高原)이라 불리는 곳이 많다.
성도에서 백오십 리 떨어진 운수산은 고원 사이에 우뚝 솟은 산이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유명한 창암산(蒼巖山)과 비슷한 곳에 위치하지만, 사실 이곳에서 떨어져 나온 분지 중 하나였다.
닷새를 거쳐 내달린 마차가 운수산 산문까지 삼십 리를 남겨두고 멈춰 섰다.
말이 지쳐 있기도 했고, 경사도 심했기 때문이다.
하여 장씨세가 일행들은 모두 내려 도보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반 각 정도 흘렀을 시각.
“련이야.”
앞장서며 걷던 장련 옆으로 장웅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오라버니.”
“무슨 일이 있느냐?”
“예?”
“너무 땅만 보며 걸어서 말이다.”
“제가…… 그랬나요?”
장련은 멋쩍게 웃으며 장웅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별일 아니에요.”
그녀의 대답과 달리 장웅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장씨세가에서 오는 닷새 동안 장련의 안색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차에서 내린 지금도 땅만 쳐다보며 걷고 있지 않은가.
“너무 걱정 말거라. 우리 뒤에는 개방이 버티고 있지 않느냐. 우리 쪽의 뛰어난 무사도 대부분 대동하기도 했고…… 아무리 팽가가 무모하다 해도 이런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요. 전 걱정하지 않아요.”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 장련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본가를 대표하는 사십 명의 무사들.
또한, 그들과 함께 걷고 있는 개방의 뛰어난 고수들을 합하면 무려 오십 명이 넘었다.
거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주는 개방의 인원들까지 합하면 정말 많은 개방의 사람들이 장씨세가를 돕고 있었다.
‘피이…….’
하지만 장련은 이내 시무룩해졌다.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건 조금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드문드문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심하게 걷는 한 사내, 바로 광휘였다.
“혹시 절 좋아한 적 있나요?”
출발하기 전 부끄러움을 참으며 물었던 질문.
헌데 그는 이상한 답변만을 내놓았다.
“이제 알겠소. 소저 때문이었구려.”
그리고 이어진 무미건조한 말투와 싸늘한 표정.
그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대체 뭐였지, 그건?’
무슨 뜻으로 그런 대답을 한 건지 몇 번을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 알 수 있는 건, 그 이후로 광휘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전, 마치 두 사람이 처음 얼굴을 대했을 때처럼 싸늘하고 어색한 모습이었다.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을까…….’
“소저, 무슨 일 있소?”
복잡한 얼굴로 광휘를 응시하고 있자니, 문득 묵객이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그는 경직된 세가 사람들과 달리 미소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별일 아니에요.”
“힘들면 언제든 말하시오. 내가 소저 한 명 정도는 어떻게든 힘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도록 방법을 마련해 두었소.”
묵객이 팔뚝을 내보이며 과한 몸짓을 보였다.
“네. 그럴게요.”
하지만 장련은 어색하게 미소를 보이고는 좀 더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이거 참…….”
묵객은 떨떠름한 얼굴을 한 채 걷어 올린 팔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보통은 무슨 말인지 물어보거나, 아니면 픽 하고 웃거나 하는 게 장련의 성격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뭔가 무기력해 보였다.
‘저 녀석 때문인가…….’
묵객은 아까 장련이 보던 광휘를 향해 시선을 쏘아 보냈다.
‘교활해. 중요한 시점마다 쏙쏙 빼먹지 않나. 저놈 정말 선수가 분명해.’
묵객 역시 그간 장씨세가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 왔다.
하지만 결정적인, 언제나 결정적인 장면에서는 광휘가 공을 독차지했다.
‘하긴 간계에 빠진 내 탓일 수도 있으니…….’
묵객은 최근 팽가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리고는 한숨을 쉬었다.
어쩌다 팽월이란 여인과 함께 있었던 것이, 그래서 장씨세가가 당하는 와중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거기서부터 장련 소저의 마음이 자신에게 오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묵객은 확신하고 있었다.
‘이번엔 다를 거다. 이번만큼은 확실히 기회를 살려야 해.’
그는 꾹 주먹을 움켜쥐며 장련의 뒤를 따랐다.
고맙게도, 장원태가 그를 장련의 호위로 붙여준 이상.
분명히 함께할 시간이.
그녀에게 인상적으로 비칠 수 있는 시간이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그간 광휘가 그래 왔듯이.
*
‘또 보고 있군.’
광휘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모른 척 받아넘기고 있던 와중에도 장련이, 묵객이 자신에게 시선을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건, 겨우 가라앉으려는 마음에 작은 물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장련 소저…… 였다.’
이제야 모든 게 납득이 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발작과 환청이 멈춘 이유.
그리고 오랫동안 사라졌던 감정이 생겨난 이유.
그것은 바로 목숨을 끊기로 마음을 먹었던 창고 안에서 조우했던 그녀 때문이었다.
– 죽으면 안 돼요, 무사님.
그날, 그녀가 눈물 어린 눈으로 부탁하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는 이상하게도 환청과 환각에 더는 시달리지 않았다.
‘하필 왜 지금에서야…….’
광휘는 탄식했다.
그것이 왜 지금에서야, 왜 이런 상황에서 다른 형태로 변질되어 나타난단 말인가.
늘 벗어나고 싶었고, 떨쳐버리고 싶었던 부작용인데 말이다.
‘집중해야 한다. 내가 무너져선 안 돼.’
광휘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었다.
싸움은 지금부터였다.
머지않아 곧 팽가의 고수들.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조력자들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예전의 감각을 느끼기 위해 지금이라도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걸 다 잃는다 하더라도…….’
바사삭! 바삭!
광휘는 발을 거칠게 비벼대며 위로 올랐다.
어느 때보다 진지해진 그는 다시 한 번 속으로 다짐했다.
‘이들을 반드시 지켜낼 것이다.’
*
산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울퉁불퉁하게 치솟은 바위를 밟고 선 능시걸이 오십 장이나 떨어진 산문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이곳에 오른 그는 한 시진 동안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맹호단(猛虎團)까지 데리고 오다니…… 곧장 전쟁이라도 벌일 기세 같습니다.”
터억.
그의 옆으로 후개 백효가 나란히 서며 말을 붙였다.
산문 주위로 서 있는 수십여 명의 무인들.
결국, 팽가는 최고의 부대를 데리고 온 것이다.
“만약에 대비해 입단속까지 하려는 모양이지.”
능시걸은 입꼬리를 들며 말했다.
장난스런 말투였지만 비웃음이 가득했다.
“헌데, 장씨세가는?”
능시걸이 백효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그래?”
능시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눈에 띄는 팽가의 인물들을 찬찬히 훑기 시작했다.
대공자 팽가운과 소공녀인 팽월.
장로 팽인호와 팽가의 일인자인 팽오운.
맹호단을 제외하고선 친인척과 방계 쪽 사내들은 총 네 명이었다.
그렇게 능시걸이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뒤돌아설 때였다.
“방주님! 방주님!”
이결 제자로 보이는 사내 한 명이 갑작스레 헐레벌떡 뛰어오며 그의 앞에 부복했다.
“무슨 일인가?”
“큰일 났습니다!”
“빨리 얘기해 보거라.”
능시걸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치자 이결 제자는 땅에 머리를 조아렸다.
“놓쳤습니다.”
“뭐?”
“감시를 위해 파견되었던 개방 문도들에게서 연락이 오질 않습니다.”
“……!”
능시걸의 미간이 꿈틀댔다.
동시에 입술도 질끈 깨물었다.
갑자기 인상이 구겨진 모습을 보던 백효는 곧장 물었다.
“방주, 무슨 말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사파 놈들이 움직였다는 소리다.”
“사파 놈들이라면…….”
“흑마대(黑魔隊)와 밀영대(蜜影隊)”
“……!”
백효는 눈을 부릅떴다.
흑마대와 밀영대는 귀문과 적사문의 전투부대.
사파 최고의 부대라는 그들을 이곳에 투입한 것이다.
“운수산으로 향하는 정보를 듣고 삼결 제자와 이결 제자 이십 명을 붙여 놓았다. 허나, 소식이 끊겼다는 건 예상보다 많은 숫자가 움직였다는 것을 뜻하겠지. 그리고…….”
능시걸은 인상을 쓴 얼굴로 재차 말을 이었다.
“혹여나 싶어 불명귀와 야월객 쪽에도 붙여 놓았다.”
“허면 방주님…… 설마.”
“그래. 그들도 움직였다고 봐야겠지.”
백효가 눈을 부릅떴다.
흑마대와 밀영대의 머리.
그것은 바로 각 문파 최고의 고수라는 불명귀와 야월객을 가리키는 것이다.
‘폭굉이라는 것이 이 정도였나…….’
사파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이미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많은 정예 인원이 움직일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팽가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파 최고의 고수들을 전선에 투입할 정도로.
“방주, 아무래도 이번 일은 물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백효는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능시걸이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그는 재차 말을 이었다.
“어떻게 결탁했는지, 어떤 식으로 팽가와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짐이 좋지 않습니다. 혹여나 흑마대와 밀영대가 개입한다면 이건 어찌해 볼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안 돼.”
능시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돌아서면 장씨세가는 더욱 고립되게 된다.”
“이대로 진행하는 것이야 말로 장씨세가가 칼날에 쓸려 나가는 겁니다. 준비가 너무 부족합니다.”
능시걸이 입을 닫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허나, 이 정적은 그들의 어깨를 짓눌러버릴 만큼 무거웠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의 기로에 선 것이다.
“십오조(十五組) 전원을 이곳으로 불러들여라.”
“……!”
“……!”
십오조.
한 조가 열 명으로 이루어진, 백오십 명의 개방 최정예 부대.
능시걸이 칼을 빼든 것이다.
허나, 백효는 망설임도 없이 곧장 반박했다.
“압니다, 방주. 지금 물러섰다간 명분마저 완전히 잃어버린다는 것을. 허나,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인근에 있는 십오조 인원을 불러들인다 해도, 아무리 빨라도 사흘은 넘게 걸립니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그뿐만이 아닙니다. 설령, 그들이 모두 이곳에 온다고 한들 승패를 점칠 수 없을 만큼 저들은 강합니다.”
“그때까지는 버텨줄 것이다.”
“누가 말입니까? 설마…….”
능시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방주, 오해하지 말고 들으십시오. 불명귀와 야월객, 그들 대부분은 백대고수에 준하는 자들입니다. 실제로 그중에서 백대고수라 불리는 자들도 다섯 명이나 됩니다. 광휘란 자가 아무리 대단한 고수라 해도…….”
“버틸 것이다. 버텨줄 것이야.”
능시걸은 백효를 바라봤다.
그와 달리 능시걸의 시선에는 어떠한 불안감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더 큰 전장에서도 살아남았던 자니까.”
*
장씨세가 일행들은 산문에 도착했을 때 멈칫하는 기색을 보였다.
두꺼운 가죽으로 온몸을 두른 수십 명의 장정들을 목격한 것이다.
“아…….”
“겁먹지 마시오. 내가 있소.”
장련이 겁을 먹은 듯하자 묵객이 옆으로 바짝 붙었다.
미소는 어느덧 지워져 있었다.
팽가의 고수들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그때 오십여 명의 일행들 사이로 장웅이 걸어 나가며 읍을 해보였다.
“오셨습니까.”
“멀리서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팽가운이 대표로 나서 예를 갖췄다.
장웅이 말했다.
“오해를 풀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것인데 상황이 이리 커지게 되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니오. 본가에도 미흡한 점이 없었던 건 아니었던 바. 팽가도 한 점의 의구심도 없이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오.”
예를 갖추는 말이었지만 장웅은 대공자의 말속에 약간의 냉랭함이 스며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로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뒤, 팽가운은 장련을 향해 가볍게 목례했다.
‘이것 참 복잡한 기분이군.’
원치 않은 싸움에 자신이 가담한 것도 그렇고, 장련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 역시 그랬다.
반면 팽월 또한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녀의 시선은 줄곧 장련에게 향해 있었는데, 이는 사실 그녀에게 바짝 붙은 묵객 때문이었다.
씨익.
“아…….”
거기다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묵객이 미소를 보였다.
헌데, 그 모습은 단순히 반가워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오느라 고생 많으셨소. 장씨세가의 영걸을 뵈오.”
장웅의 시선이 팽인호와 마주치자 그가 담담히 미소 지으며 장읍을 했다.
“아, 예…….”
한껏 예의를 갖춘 인사였지만 장웅은 불편했다. 상대가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팽인호가 말했다.
“자,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운수산에 그 무언가가 있다고 했으니 우리에게 곧바로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공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도 알려주시오.”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소.”
그때 장웅이 아닌 의외의 인물이 나서며 팽 장로의 말을 받았다.
좌중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그간 침묵을 지키고 있던 광휘였다.
“당신들이 갖고 싶어 했던 것은 장씨세가의 사당 뒤에 있으니까. 안 그렇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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