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05
105. 생각지도 못한 수(數)다.2015.11.04.
대전엔 모인 자들은 모두 열 명이 넘었다.
팽가운과 팽월이 가장 앞쪽에.
둘째 줄에는 팽오운이 앉아 있었고 셋째 줄에는 장로들과 당주들이 자리에 착석해 있었다.
“다 모였으니 제 의견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모두가 보이는 자리로 걸어 나간 팽인호는 팽가운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우선 상황이 이리 된 것,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팽가가 장씨세가와 함께 운수산에 가는 것으로요.”
그 말에 곳곳에서 웅성대기 시작했다.
노골적으로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들, 그리고 적개심을 가지고 노려보는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팽인호는 사람들의 웅성임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린 후 말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오래전부터 장씨세가는 본가와 드물지 않게 관계를 맺었던 곳입니다. 가주의 선친 때는 서로 왕래도 잦았다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그는 좌중을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근래 들어 장씨세가는 석가장과의 싸움으로 인해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본가 또한 그에 신경 쓰지 못했었지요. 하여 이번 연회에 그들을 불렀습니다. 여기까진 다 아실 겁니다.”
팽인호의 말에 몇몇의 노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헌데 갑자기 석가장 잔존 세력들이 쳐들어왔고 예상치 못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본가도 피해가 있었지요. 허나, 본가는 그들의 피해를 생각해 오히려 그들을 감싸 안으려 했습니다.”
조금 어수선했던 시선이 팽인호에게 모아졌다.
다들 한 달 전에 있던 그 일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헌데 그들은 어찌했습니까? 사과하기는커녕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저희에게 책임을 전가해 왔습니다. 더구나 모두가 보는 명문대파와 명문세가 앞에서 적의를 띠며 노골적으로 말이지요. 그뿐입니까.”
감정이 격해진 듯 팽인호의 얼굴이 붉어졌다.
“개방에 이상한 얘길 퍼트려 방주까지 포섭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팽가의 입장은 이상하게 변했고, 베풀었던 호의는 결국 칼날이 되어 우리의 목 앞까지 왔습니다.”
팽인호는 두 손을 불끈 쥐며 말했다.
“팽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측은한 마음에서 베푼 호의를 외면하고 오히려 책임 전가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무가도 아닌, 문가도 아닌 상계의 집안인 장씨세가 따위가! 장씨세가 따위가! 명문세가인 우리 팽가를 핍박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때였다.
“가만히 있을 수 없소이다!”
“당장 그들을 쳐 죽여야 합니다!”
도처에서 분노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장로와 당주 뿐 아니라 대전 문을 지키고 있던 장정들의 눈빛 역시 날카로웠다.
오직 한 사람만을 제외하고.
‘생각지도 못한 수(數)다.’
팽가운은 표정을 감추기 위해 고개를 내리고 있었지만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에는 분명 팽인호의 책임이 있었다.
안 받아도 될 의심을 받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팽가의 명예를 위축시켰다.
그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분명 강한 질책을 받아야 할 사안이었다.
때문에 이곳에서 그 점을 분명히 하려고 생각했었다.
헌데, 그는 보기 좋게 빠져나왔다.
뿐만 아니라 모두를 이끄는 가장 높은 위치로 올라서기까지 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가주?”
좌중의 분위기가 잠잠해질 때쯤 팽인호는 팽가운을 향해 말을 붙였다.
점철된 분노를 자극해 자신에게 대답을 강요하는 것이다.
그의 빼어난 정치 수완과 상황 판단이 팽가운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일부만 동의하오.”
장로들과 당주들의 의아한 시선이 팽가운에게 향했다.
팽인호 역시 비슷한 눈빛을 띠었다.
“장씨세가가 말한 대로 운수산에 뭔가 있다면…….”
터억.
팽가운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땐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소?”
“소가주…… 그 말씀은…….”
“압니다. 내 말은 그럴 리 없기를 바란다는 말이오.”
팽가운을 묘한 어감을 남기고 대전을 걸어 나갔다.
옆에 있던 팽월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고 팽인호도 미묘한 시선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어린 맹수라.’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팽오운.
그는 팽가운이 지나가는 와중에도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단지 이전보다 더욱 깊어진 눈빛을 띨 뿐이었다.
*
장씨세가 외원 밖에 자리 잡은 창고.
그곳에서 소위건은 늠름한 자세로 눈앞의 사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야 다 모였군.”
그의 앞에 서 있는 세 명의 사내.
얼굴 곳곳에 칼자국이 나 있는,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자들이었다.
“소 형, 거 몸이 왜 그렇소?”
보통 사람보다 입술이 두꺼운 사내가 입을 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내들이 보기에도 다리 한쪽이 없는 소위건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보였다.
“천하의 소 형도 털릴 때가 있는 거지.”
곱슬곱슬한 머리에 사슴처럼 목이 긴 사내가 말을 받았다.
소위건은 속에서 퍼지는 화를 참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따라올 거야, 말 거야?”
그러자 마지막 남은, 두 사내보다 키 작은 사내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 들어봐야지요. 예전의 소위건 님이 아닐 텐데.”
“뭐?”
순간 소위건의 표정이 변했다.
툭 툭.
한 발로 뛰며 그에게 다가선 소위건에게서 안광이 새어 나왔다.
흠칫!
장난스럽게 말을 주고받던 사내들 얼굴에 공포심이 어렸다.
강렬한 살기가 그들을 짓눌러버린 것이다.
동시에 느꼈다.
한 발로도 자신들 따위는 한 번에 짓눌려버릴 수 있다고.
“죄송합니다.”
사내 셋은 급히 꼬리를 말며 고개를 숙였다.
“흐음.”
소위건은 살기를 거두었다.
지금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다. 이들을 구슬려 자신의 의도대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너희들을 부를 때 이미 언급했지만 나에게 갚을 빚들, 이번 일을 끝내면 청산해주겠어. 거기다.”
소위건은 사내 셋을 한 명씩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한밑천 두둑이 챙겨준다. 여기는 하북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이니까 이번 일만 잘 넘기면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을 거다. 다들 알겠나?”
그 말에 사내들은 서로 눈을 맞췄다.
돈 얘기에 미소가 지어진 것이다.
“소 형, 사람 죽이는 거야 우리 전문이 아니겠소. 걱정 마시오!”
“웬만한 고수들이야, 우리 상대가 되겠소?”
“돈만 많이 준다면…….”
사내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말을 내뱉었다.
돈 준다는 말에, 없었던 의협심까지 생기는 그들이 아닌가.
소위건은 말했다.
“딱히 너희들이 할 일은 없다. 그냥 한 사내에게 정보를 전해주기만 하면 되니까.”
“소식을요?”
“그래.”
소위건은 말을 이었다.
“장씨세가에 광휘라는 자가 있다. 칼 밥 좀 먹어본 나도 감당하기 힘든 싸움 귀신이야. 너희들 셋은 그 주위를 돌면서 팽가의 움직임이나 그 외에 관여하는 세력을 발견할 경우 즉각 정보를 물어다 주어라.”
소위건의 말에 세 명의 사내들은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광휘가 누구요?”
“거참. 듣지 못했소? 소 형을 발라버린 분.”
“아하, 그분이구려. 팽가도 홀로 쳐들어가 박살 냈다지?”
“그냥 확 다 죽여버릴까?”
소위건이 쌍심지를 켜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들은 급히 입을 닫았다.
“아무튼 그리 알고 움직여라. 너희들은 오직 광 호위란 분께 모든 정보를 넘기기만 하면 된다. 알겠어?”
“옙.”
또다시 불호령이 떨어질세라 그들은 동시에 대답했다.
스으윽.
소위건은 세 사내에게 그림 한 장씩 내밀었다.
언제 그렸는지 그곳엔 광휘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이렇게 생기신 분이다. 잘 봐 놓거라.”
“예, 예.”
사내 셋은 그렇게 그림을 받아 들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소위건 한숨을 내쉬었다.
‘팽가, 개방과 장씨세가에만 신경이 온통 쏠려 있는 너희들이 잊고 있는 게 있다. 바로 이들, 사파의 잡졸들.’
빠득.
소위건은 이를 갈며 생각했다.
반드시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고.
‘큰 방죽도 개미구멍 때문에 무너지는 법이지.’
그리고 다짐했다.
장차 이들이 음모의 변수가 될 것이라고.
없다면 자신이 그 틈을 만들 것이라고 말이다.
*
“저, 정말 이번엔 확실한 겁니까?”
“확신을 주십시오, 어르신.”
밀실 안, 벽에 기댄 채 누워 있던 곡전풍과 황진수가 다급히 말했다.
두려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몇 번을 말해야 하나? 이거 먹으면 후유증이 싹 가신다니까?”
쿡쿡쿡쿡.
노천이 말했다.
겁에 질린 그들과 달리 너무나 느긋한 동작으로 절굿공이를 찍어대고 있었다.
“믿어도 되는 겁니까?”
“이번엔 확실하지요?”
곡전풍과 황진수는 이미 한 번 된통 당한 기억 때문인지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한 사람은 두 손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고 한 사람은 두 다리의 움직임이 멎었다.
며칠 밤을 자고 나서도 그대로였다.
하니, 어떤 약을 먹어서든 그 증상을 없애고 싶은 두 사내였다.
“나만 믿으라니까. 자네들은 곧 옆에 있는 이놈처럼 고수가 될 게야.”
어느새 충실한 조수가 된 능자진을 바라본 노천은 어느 순간 절굿공이를 멈췄다.
“자, 됐다. 이제 넣자꾸나. 탕약은?”
“여기 있습니다.”
능자진은 바닥에 잠시 내려놓았던 탕약 두 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털털털.
노천은 빠른 동작으로 절구에 있던 약재를 탕에 떨어뜨렸다.
그 순간.
부글부글.
탕약 안에서 약재가 끓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던 곡전풍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어르신, 방금 그거…….”
“방금 뭐?”
노천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약, 약, 약재가 끓잖습니까. 분명히 약재를 넣자마자 끓었습니다.”
“끓었습니다. 분명히 끓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황진수도 다급히 거들었다.
“그게 왜?”
노천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그들 앞으로 탕약을 가져갔다.
“사양치 말고 쭈욱 들이켜거라.”
곡전풍과 황진수는 사색이 된 얼굴로 말했다.
“살려주십쇼, 어르신. 살고 싶습니다!”
“저는 그냥 이대로 살아가겠습니다. 두 팔이 병신이라지만 다리라도 성한 게 어딥니까. 전국 어디로도 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적극 변명에 나섰지만 그뿐이었다.
어찌 된 것이 도망칠 기력마저도 없었던 것이다.
끼이익.
그러던 그때였다.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밀실에 들어왔다.
“광 호위…….”
능자진이 먼저 발견하고 광휘를 불렀다.
광휘는 그의 앞에 서더니 말했다.
“오늘 갑니다, 어르신.”
“그날이…… 오늘이었나?”
탕약을 바닥에 놓은 노천이 셈을 세며 중얼거렸다.
광휘가 말했다.
“제가 올 때까지 장씨세가를 지켜주십시오.”
“걱정 말게. 우린 한배를 탄 몸 아닌가.”
광휘는 예를 표한 뒤 능자진 쪽을 바라봤다.
“부탁하오.”
“예, 대협.”
능자진 역시 예를 표했다.
인사를 마친 광휘가 등을 돌렸다.
“광 호위! 살려주시오!”
“살고 싶소이다, 광 호위!”
그때 곡전풍과 황진수가 경기를 일으키듯 광휘를 불렀다.
광휘가 다시 뒤돌자, 순간 얼굴이 벌게진 노천이 다급히 말했다.
“신경 쓰지 말게. 아무것도 아니네.”
능자진도 손사래 치며 거들었다.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수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광휘는 한동안 곡전풍과 황진수를 응시했다. 그런 다음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 어르신은, 믿을 만한 분이오.”
곡전풍과 황진수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돌팔이요. 이 영감은 완전 돌팔이요!”
“가면을 쓴 게요. 저 영감의 가면을 벗기면 정체가 드러날 게요!”
쾅.
하지만 광휘는 그 말을 채 듣지 않고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자, 들자.”
초조한 표정을 짓던 노천은 급히 뒤돌더니 탕약을 집어 들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에는 환희만이 가득했다.
“으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
잠시 뒤, 장씨세가의 지하 밀실에는 비명 소리가 한동안 떠나질 않았다.
*
“하아. 하아.”
묵객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 않아 멈췄다.
창가 쪽, 벽에 기댄 채 팔짱을 낀 담명을 발견한 것이다.
“언제 왔느냐?”
“방금 왔습니다.”
“그러냐?”
묵객은 허락 없이 자신의 방에 들어온 담명을 보고서도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내 한쪽 구석으로 다시 걸어간 묵객은 수납장 위에 있는 뭔가를 집어 들었다.
수련 때문에 이곳에 잠시 풀어놓았던 검(劍)이었다.
“지금까지 수련을 하신 겁니까?”
그 모습을 보던 담명이 물었다.
“알면서 왜 물어?”
“정말 낯설어서 말입니다. 근래 들어 계속 수련만 하시는 사부님의 모습은 처음 봅니다.”
“장씨세가 명운이 걸린 일 아니냐. 당연히 몸을 가볍게 해놓아야지. 그런데…….”
말을 하던 묵객은 뭔가 생각이 난 듯 담명을 보며 말했다.
“너도 가야지”
“예? 제가요?”
“당연한 게 아니냐. 사부가 전쟁터에 나가는데 제자 놈이 몸을 사리겠다고?”
“아, 그게 아니라…….”
담명이 더듬더듬 말을 흐렸다.
그사이 뒤돌아 선 묵객은 다시금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사부, 만약에 말입니다.”
담명이 조심히 말을 붙였다.
“만약에 뭐?”
“만약에 장씨세가의 말이 거짓으로 판명난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무슨 뜻이냐?”
묵객이 동작을 멈추고 뒤돌아봤다.
질문의 의미가 가볍지 않은 것을 느낀 것이다.
“장씨세가는 이번 운수산 동행에서 팽가가 찾으려 한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큰 위기를 맞이할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부님은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다시 뒤돌아선 묵객의 표정은 진지해 보였다.
미간이 주름이 생길 정도로 담명의 얘길 신중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당연히 장씨세가를 도와야지.”
“거짓을 퍼트려 팽가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그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는데도 말입니까?”
“그래도 도와야지.”
“사부님, 다름 아닌 팽가입니다. 팽가는 중원 오대세가이며 명문 중의 명문…….”
“담명아.”
묵객은 부드럽게 담명을 불렀다.
그러고는 그를 향해 한 발짝 다가서며 말을 이었다.
“협(俠)은 말이다. 바른 것이고 지향해야 하는 것이지만, 항상 옳은 것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
“협의 진정한 의미는 약한 자들을 돕는 것이다.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해도, 그것으로 피해를 받는다고 해도 말이지. 팽가에 비해 장씨세가는 지킬 힘이 없는 약자다. 그러니 도와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야.”
“그러다 팽가에 명분이 주어진다면 사부께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강호에 이름을 떨친 칠객이라는 명성도……”
“명성, 명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묵객은 담명의 말을 잘랐다.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고 신중한 목소리였다.
“협이니라. 협이 가장 앞이다. 이해하겠느냐?”
“……예.”
“미리 나가 있으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객은 짐을 챙겨 나갔다.
대화를 나누다 화가 조금 났는지 걸음걸이가 빠르고 둔탁했다.
“협의라…….”
담명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뭔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강호의 동도들이 협의(俠意)라고 부르는 것은 협, 그 자체만으로도 뜻이 있다는 말이 아닌가.
“참 모자라고 바보스럽게 보이는 잔데…….”
고개를 든 담명이 말했다.
묵객을 향해 처음으로 반말을 한 것이다.
허나, 눈빛은 그 말투와 달랐다.
그 어떤 때보다도 존경의 시선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가끔씩 이렇게 멋지기도 하단 말이지.”
*
출발할 시간이 다가오자 광휘는 명호를 부른 후 이전에 데리고 왔던 나한승들과 함께 가주를 지킬 것을 명했다.
만약에 대비한 판단을 한 것이다.
그 뒤 곧장 장련의 처소로 향했다.
휘이이잉.
광휘가 장련의 처소 앞에 도착했을 때 묵객은 보이지 않았다.
선뜻 장련을 부르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이길 몇 번.
용기를 내어 문 앞에 다가서자 갑자기 문이 열렸다.
장련이 걸어 나온 것이다.
“오셨네요?”
광휘가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아침에 오신다고 하셔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광휘는 어제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 말이 있었소?”
“아, 그랬죠…….”
장련은 위축된 사람처럼 목소리가 작아졌다.
잠시 침묵하던 그녀가 말했다.
“잠시 제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
“아니요.”
광휘는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살필 곳이 많소. 그러니 지금 말해주시오.”
“죄송해요.”
장련은 고개를 숙였다.
어제도 그렇고 광휘의 모습에서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든 것이다.
장련은 다시 침묵했다.
망설이는 모습에 광휘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결국 참지 못한 광휘가 입을 열려고 할 때였다.
“꽤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해서 말인데…… 제게 솔직히 말해줬으면 해요.”
장련이 고개를 들었다.
불안과 걱정이 어린 눈길이 광휘를 향하고 있었다.
“혹시 절 좋아한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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