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118
118. 맞아. 너를 노린 거다.2015.12.18.
“대체 저놈들은 언제 지치는 거야!”
빠르게 따라가던 사우흔은 결국 화를 내버렸다.
몇 번을 접근했음에도 대원들의 피해만 늘어나고 있었다.
호위무사란 놈도 기가 차는데 묵객도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내 돌아가면 문주께 이 정보를 흘렸던 놈들부터 죽이자고 건의를 할 것이야!”
그의 외침에 눈치를 보던 조장 중 한 명이 다가와 말했다.
“대장……, 대원들이.”
“아니, 아직이다. 더 기다려야 해!”
흑마대 사우흔은 동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서도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었다.
수하들을 희생해서라도 이들을 확실히 잡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직 시간은 있어. 대원들은 언제든 충원할 수 있다.’
흑마대의 구성은 일흔둘.
지금까지 죽어나간 자들은 대략 마흔여 명.
많은 숫자가 죽었지만 사우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흑마대를 이끌고 있는 자들은, 부대장을 포함한 여덟 명의 조장이었다.
이들은 최고의 정예 요원이었다.
이들이 살아 있다면 언제든 흑마대는 다시금 전력을 갖츨 수 있었다.
‘저들이 가장 힘들어할 때, 그때 공격해야 한다.’
그는 그때가 승부처라 여기고 있었다.
*
“여기예요.”
묵객이 빽빽한 교목들이 있는 곳으로 진입하자 장련이 말했다.
“일단 좀 풀어줘요.”
묵객이 조금 완만하게 접어드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자 그녀는 재차 말을 이었다.
“아직은 안 되오.”
“이대로 움직이면 대협께서 불편해요, 제가 아니라.”
그 말에 묵객은 잠시 고민하다 옷깃을 찢었다.
확실히 지금 이 상황에선 재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앙상한 가지가 숱하게 펼쳐져 있는 주위는 조용했다.
전략을 짜는 것인지 흑마대는 보이지 않았다.
스윽스윽.
혼자의 몸이 된 묵객은 갑자기 주위를 배회하듯 움직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손아귀에 몇 가지를 들고 나왔다.
지푸라기로 보이는 풀과 단단한 돌이었다.
가가가각. 가가가각.
묵객은 곧장 몸을 웅크려 마른 풀에 단월도를 내리 그었다.
칼날이 상할 법한데도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수차례 그어댔다.
화르르륵.
강한 쇠의 마찰 때문인지 어느 순간 지푸라기가 타며 불씨가 손쉽게 만들어졌다.
처억.
지푸라기를 더 얹어 불길이 치솟을 때쯤 그는 애병인 단월도를 그 위에 가져다 댔다.
“뭐하시는 건가요?”
“곧 아시게 될 게요.”
묵객은 단월도의 한쪽 면을 집중적으로 달구었다.
그의 진지한 표정에 장련은 이유를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사실,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대협, 버티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이곳에 당도하기 전, 광휘가 둘을 향해 그 말을 남기고 간 것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 중간에 내가 잠시 사라지면 잠시만 버텨 보시오.
– 어떻게든, 무슨 수를 써서든!
“아마 승부를 보려는 걸 게요.”
묵객은 살짝 턱을 쓸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광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도 약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이토록 무리를 지은 자들을 상대로 빠르게 승부를 보는 방법은 하나요. 위험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약점, 그것이 바로…….”
묵객은 장련이 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속삭였다.
“적의 수장이요.”
“아!”
장련은 짤막히 신음을 내뱉었다.
“어떻게 될진 모르오. 광 호위도 제법 지쳤고 나도…… 그렇소.”
묵객은 솔직히 속내를 터놓았다.
손을 뻗을 힘이나 있을까 싶은 몸 상태였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한 것이다.
“저는 하나도 겁 안 나요. 당연히 이길 거니까.”
“소저…….”
“살아도 함께이고 죽어도 함께이잖아요. 무사님도, 대협도요.”
장련이 밝게 웃으며 말하자 묵객은 슬쩍 미소를 내비쳤다.
죽는다는 말에도 이토록 태연하게 웃는 그녀를 보니, 문득 자신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스스스슥.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사방에서 적들의 모습이 비치기 시작했다.
대략 이십여 명.
추적해 오던 흑마대 대원 대부분이 이곳으로 온 듯 보였다.
“아쉽지만 이쯤 해야겠군.”
묵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빠르게 윗옷을 벗어 던졌다.
“아!”
장련은 짤막히 신음을 터트렸다.
몸에 난 엄청난 상처 자국들.
그중에는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큰 상처도 있었다.
대강 짐작은 했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녀였다.
“음.”
묵객은 이내 자신의 병기를 부상당한 자리로 가져다 댔다.
“대협? 대협!”
치이이이!
“으윽. 으으으윽.”
불에 달아오른 단월도가 살을 태우며 기분 나쁜 냄새와 연기를 뿜어댔다.
“대협…… 대협…….”
장련은 온몸을 떨며 묵객을 향해 울먹였다.
그가 왜 그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싸매고 덮는 정도로는 출혈이 멎지 않으니 아예 불에 달군 칼날로 지져 피를 멎게 하는 것이다.
치이이이.
상처가 시뻘겋게 익어가며 피는 멎었다. 그러나 그 대신 살이 익으며 끔찍한 고통이 찾아들었다.
‘뭐, 이것도 나쁘지는 않군.’
묵객은 고통 속에서도 웃었다.
진저리 칠 만한 고통 때문에 흐려졌던 정신이 맑아졌으니까.
“크으으으. 으으윽.”
흑의인들이 점점 다가오는 순간에도 묵객은 멈추지 않았다.
어깨, 허리, 그리고 허벅지 부근에도 망설임 없이 도(刀)를 가져다 댔다.
처억.
그리고 예리한 눈빛을 띤 흑의인들이 삼 장 내로 접근할 때쯤.
“하아 하아.”
묵객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제야 단월도를 제대로 잡았다.
탓. 타앗.
흑의인 두 명이 달려들자 그들에 맞서 묵객이 움직였다.
챙!
왼쪽의 도를 막고.
챙!
오른쪽의 검을 순차적으로 막은 뒤.
패액!
다시 왼쪽 사내의 목을 베고.
쇄액!
자세를 낮춰 우측 사내의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스윽.
목을 내밀고 있는 상대의 턱을 베어 올렸다.
풀썩. 풀썩.
도법의 정석을 보는 것처럼 완벽한 움직임에 두 사내는 동시에 뒤로 쓰러졌다.
처억.
주위를 에워싸며 접근하던 흑의인들의 걸음이 멎었다.
곧 쓰러질 것 같던 묵객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장련 소저…… 하아 하아.”
숨을 힘겹게 토해내는 묵객의 안색은 거의 샛노래져 있었다.
고통 때문인지, 흘린 피 때문인지, 밝던 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광 호위가 올 때까지 한번 버텨 봅시다.”
하지만 그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거리는 장련을 향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해서 모두 함께 살아납시다. 꼭 그럽시다.”
*
“그를 놓쳤습니다.”
나무가 밀집된 겨울 숲으로 들어가던 사우흔이 보고를 받고 멈칫했다.
“놓치다니. 분명 그들을 쫓고 있었던 게 아니더냐!”
“그랬습니다. 헌데, 묵객에게 신경을 쏟는 사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그 말에 사우흔은 미간을 찡그렸다.
그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 의문이 든 것이다.
분명 호위무사라 하였으니 장씨세가 여식을 호위하는 것이 당연할 터.
그런데 곧 쓰러질 것만 같은 호위 대상을 버리고 움직인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묵객과 세가의 여식은 대원들이 죽일 것이다. 너희들은 샅샅이 뒤져 그의 위치를 확보해라!”
“옙!”
여덟 명의 조장은 곧장 부복하며 삽시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사우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꿍꿍이라도 생각해 낸 것인가.
“혼자 살기 위해 도망친 건 아니겠지. 아니면 혹시…….”
퍼뜩!
사우흔은 문득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들은 분명히 상대를 궁지로 밀어붙였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향해 달려든다고 하지 않던가!
“맞아. 너를 노린 거다.”
그때였다.
저 너머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어떻게…….”
광휘를 본 그의 표정은 삽시간에 굳었다.
언제 다가왔는지 오 장 너머에 있는 나무 위에서 광휘가 가지를 밟은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조금 전 조장들이 앞, 뒤, 좌, 우로 달려 나갔다.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그들의 눈을 피해 이곳에 와 있던 것이다.
물론 자신까지 속인 채.
‘여기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는 목청껏 소리쳤다.
“흑마대 조장! 모두 이곳에 오거라!”
그 뒤, 곧바로 자신의 몸 일곱 군데 사혈을 눌렀다.
회승강교혈법(會承强交血法).
귀문 고유의 비전으로,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원기(原氣)까지 끌어내어 증폭시키는 수법이다.
일순간 생사현관을 타동할 수 있다는 회승강교혈법.
허나, 혈관을 강제로 여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내공이 역류하게 돼 죽음에 이르는 비전이었다.
그럼에도 사우흔은 망설이지 않았다.
적은 자신보다 몇 배는 강하다.
개죽음을 당할 바에야 이 방법이라도 쓸 생각이었다.
지이이잉.
그는 곧 모든 내력을 끌어올려 검신 끝에 담았다.
공기가 일렁거리며 검신 끝에서 두 자 정도의 사이한 기(氣)가 새어나왔다.
“죽기로 각오한 건가? 뭐 어쨌든 상관없다.”
광휘는 주위를 슬쩍 바라보았다.
사우흔의 고함 소리를 들었는지 멀리서 흑마대 일원으로 보이는 여덟 명이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금방 끝날 테니까.”
툭.
나뭇가지를 튕기며 사뿐히 땅을 밟고 내려오던 순간이었다.
사우흔을 향해 섬전 같은 속도로 즉각 달려들었다.
“환영기검(換影氣劍)!”
사우흔이 익힌 귀영혈류검법(鬼影血流劍法)의 절초.
그는 망설임도 없이 최강의 초식을 뽑아냈다.
처억.
파도처럼 거센 기운이 몰아치자 광휘는 구마도를 급히 들어 앞을 막았다.
기이이잉!
가공할 만한 힘이 손아귀에 느껴지자마자 광휘는 구마도를 비틀었다.
“사량발천근? 무당의 무공을 어떻게!”
사우흔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인지라 말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검기를 뿌려댔다.
대개 환영기검의 초식은 몇 개의 검풍(劍風)과 하나의 검기가 섞여 있었지만 그는 잠력까지 끌어낸 상태.
공력의 모든 것이 검기였던 것이다.
쩌엉! 쩌엉! 쩌엉!
가공할 만한 위력에 이를 흘려보내던 광휘의 구마도에도 흠집이 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광휘는 그와의 거리를 더욱 좁혔다.
“허억 허억!”
그리고 사우흔이 숨을 연거푸 쏟아내며 잠시 머뭇거리는 그때.
상대의 틈을 발견한 광휘가 크게 도약하며 지척까지 달려들었다.
‘걸려들었다, 이놈!’
힘든 표정을 짓던 사우흔은 곧바로 눈을 치켜뜨며 검기를 발출했다.
그 나름대로 상대의 방심을 이용한 함정을 판 것이다.
헌데, 광휘는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았다.
한줄기 스쳐가는 당황스런 사우흔의 표정.
얼음조각처럼 냉정하고 시린 광휘의 표정이 그와 서로 교차되었다.
콱!
사우흔의 검이 광휘의 가슴속 늑골을 관통했다.
그런데 찔린 광휘는 무덤덤했고, 오히려 사우흔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 이런 미친…….”
쿨럭! 쿨럭!
늑골을 관통당한 것은 광휘인데, 거꾸로 사우흔이 피 섞인 기침을 내뱉었다.
함정을 파고 적을 끌어들였다. 그런데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던 상대는 함정인 줄 뻔히 알면서도 제 발로 달려들어 자신의 요혈을 부순 것이다.
“왜…… 왜 이렇게까지 무식한 방법을…….”
“간단해.”
패애애액.
광휘는 오른손에 쥔 괴구검을 움직여, 답변을 요구하는 사우흔의 목을 그어버렸다.
툭.
맥없이 떨어지는 그의 머리를 보고는 뒤늦게 대답했다.
“시간이 없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