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233
233. 잘 해결되었소.2017.01.25.
언제부터였는지 모른다.
제조 과정에 대해 아직까지도 자세히 밝혀진 것이 없었다.
초기에 만들어진 폭굉은 벽력탄보다 조금 작았고 폭발력도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것은 완전히 달라졌다.
부피가 상당히 줄었고 폭발력도 기존의 것보다 세 배는 강했다.
그 당시의 폭굉은 위험한,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위험한 물건’ 정도로만 취급받았다.
그리고 몇 년 후, 은자림은 괴물을 만들어낸다.
암염이라는 재료를 이용하여 초소형 폭탄을 제조해 낸 것이다.
주먹만 한 철구, 머리에 뚫린 구멍 위로 심지가 튀어나온 이 폭굉은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자랑했다.
바로 그것이 지금 팽인호가 바닥에 떨어뜨린 폭굉이었다.
‘최후의 폭굉은 아냐.’
팽인호의 폭굉을 본 광휘는 한편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후의 폭굉은 백중건의 죽음 전과 후로 나뉜다.
그 전까지는 심지 있는 폭굉 역시 두려워했지만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폭굉에 나름 익숙해지기도 했고 대응법 역시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았으니까.
하지만 백중건이 당할 때 나타났던 최후의 폭굉은 상상 이상의 충격과 공포를 가져왔다.
보통 심지에 불을 붙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 심지 없는 폭굉은 작은 충격만으로도 폭발했다.
하여 대비라는 걸 하는 게 불가능했다.
“크흐음.”
“으음…….”
팽인호를 바라보던 무사들은 다들 신음했다.
그의 품속에서 나온 폭굉을 보고 그가 한 말이, 보다 더 섬뜩하게 다가온 것이다.
대규모로 싸우는 와중에 저 물건을 하나라도 썼다면?
아마 여기 있는 무사들 대부분이 날아갈 정도의, 극도로 심한 피해가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은자림과 손을 잡지 않았으니 떳떳하단 말인가!”
진일강은 호통하듯 그를 꾸짖었다.
어떻게 보더라도 팽인호의 행동은 변명,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는 괜히 팽가에 면죄부가 생기는 것을 지극히 경계했다.
“그런 건 바라지도 않소. 우린 명가의 방식으로 책임을 질 것이오.”
“당신들의 방식?”
팽인호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얼마 남지 않은 맹의 무사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맹주가 위험하오.”
“……?”
맹의 무사들이 불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팽인호는 개의치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맹주를 보필해야 될 총관은 조정에 줄을 대기 시작했소. 그 줄은 곧 은자림과 이어주는 줄이고 자신의 입지 또한 공고히 하는 줄이지. 맹주가 부재중인 지금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맹 내 세력을 넓히려고 할 게요.”
이후, 팽인호는 다시 진일강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차화산(次化山)에 은자림의 폭탄을 제조하는 은거지가 있소. 운수산을 얻으려 한 것은 폭굉의 재료도 있지만 그보다 은거지를 가려줄 방패막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소.”
차화산은 운수산과 그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다. 운수산보다 지형이 낮아 뒤쪽에 위치해 다른 방향으로는 볼 수 있었다.
운수산이 적당히 시야를 가려주고 소리도 함께 막아주는 천연의 요새 역할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이 제각기 말의 의미를 생각하는 사이 팽인호가 이번엔 광휘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은자림은 그동안 와신상담해왔소. 오왕 중 한 명인 영민왕과 손을 잡았고 그와 관련된 조정의 고위 관직 인사들은 수십 명이 넘어가오. 당상관이 핵심 인물이며 그 외에도 더 있을 것이오. 하니, 은자림을 상대하기 위해선 만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오.”
가려진 은자림의 존재, 맹의 상황, 조정의 상황까지 나오자 각 가문마다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그사이 팽인호는 팽가 무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할 것이 남았다.
가장 중요한 일이.
스르륵.
팽인호는 허리춤에 있는 도를 꺼냈다. 그리고 높이 올려 팽가 무사들이 보는 가운데 소리쳤다.
“본가의 무사들은 들으라! 팽가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중원을 대표하는 무가였으나 제대로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무능함과 잘못한 선택은 결국 패착으로 이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울부짖음과도 같았다.
좌중을 숙연하게 만들 정도의 비통함.
지난 세월의 서글픔이 짙게 배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죽여 본가를 위험에 빠트리며 최악의 상황으로 만든 바. 하여 우리의 피로써 땅에 떨어진 명가의 기상을 바로 세우려 한다.”
“기상?”
묵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명가라는 얘기에 풀이 죽은 듯 고개를 떨구던 팽가의 무사들의 눈빛이 변한 것이다.
차랑!
도를 높게 치켜든 팽인호가 재차 소리쳤다.
“팽가의 부흥을 원하는 자는 모두 내 말에 응하라! 팽가의 부흥을! 명예로운 죽음을!”
파파팟.
순간 팽가 무사들이 갑자기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열다섯은 마치 훈련된 진영처럼 삼 열 횡대로 삽시간에 선 채 가슴을 폈다.
“팽가의 부흥을!”
“명예로운 죽음을!”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그리고 가장 선두에 선 1열 종대의 무사들이 도를 뽑아들며 두 손으로 도자루를 마주 잡았다.
“사숙, 저들이 뭐 하는 거지요?”
묵객은 문자운 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갑자기 도를 꺼내드는 것도 그랬지만 더 의아한 것은 도자루를 잡고 있는 파지법.
두 손으로 도파(刀把-도자루)를 잡고는 머리 위로 올리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날의 방향이 하늘이 아니라 가슴 쪽으로 향해 있었던 것이다.
“모르겠다. 왜 저러는지…….”
“그럼 스님들은…….”
이번엔 묵객이 나한승을 바라보자 그들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역시나 모르는 듯했다.
한쪽에 다가온 서혜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녀도 모르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이제 남은 건 진일강뿐이었다.
“사부님…….”
묵객이 그를 바라봤을 때 진일강은 매우 불편한 표정이었다.
자신이 불러도 뭐라고 반응조차 하지 않는, 굉장히 불쾌한 얼굴이었다.
“사부…….”
묵객이 한 번 더 그를 부르려 할 때였다.
진일강이 나직이, 하지만 모두가 들을 정도로 또렷하게 대답했다.
“자결하려는 거다.”
*
푹! 푹! 푹! 푹! 푹!
팽가 무인 다섯의 도가 제각기 그들의 가슴을 파고들자.
“……!”
맹의 무사들.
장씨세가 무인들.
해남파 무사들까지 모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그들이 정신을 차릴 새 없이 팽가 무사들의 의식은 이어지고 있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두 번째 열의 다섯이 도를 꺼내들기 시작했고.
처억. 처억. 처억. 처억. 처억.
제각각 도파를 두 손으로 받쳐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린 뒤.
칼날을 가슴 쪽으로 향하게 자세를 잡은 뒤에야 동작을 멈춘 것이다.
“팽가의 부흥을!”
“명예로운 죽음을!”
푹! 푹! 푹! 푹! 푹!
그 움직임에 망설임 따윈 없었다.
어김없이 가슴에 날카로운 도를 거침없이 찔러 넣고 죽어 버린 것이다.
“이봐,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기겁한 천군지사대의 동추가 소리쳤다.
일순간에 열 명이 명을 달리했다. 그런데 팽가는 아직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두려움도 주저함도 없었다.
세 번째 열에 서 있는 다섯 무사.
이제는 그들이 칼을 꺼내는 동작만으로도 소름이 돋고 있었다.
“이봐…….”
“그만!”
주위 무사들이 뭔가 막으려는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팽가 무사들의 눈빛은 결연하게 변해 있었고 단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도를 찔러 넣었다.
“팽가의 부흥을!”
“명예로운 죽음을!”
푸욱! 푸욱! 푸욱! 푸욱! 푸욱!
그렇게 팽가 무인들이 짧은 시간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아아…….”
이곳저곳에서 복잡한 감정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껏 험하게 달려들던 모습보다, 단숨에 일제히 목숨을 끊은 그들의 모습이 더욱 삼엄해 보였다.
휘익!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팽인호.
그 역시 도를 높이 들어 올렸다.
“중원 제일 세가 팽가의 부흥을! 명예로운 죽음을! 그리고…….”
휘릭.
도를 높게 든 팽인호.
그는 장내의 모두를 보며 지그시 웃어 보였다.
“오호단문도의 미래를…… 위하여.”
“이봐!”
“그만!”
콱.
데구르르.
바닥에 그의 목이 떨어졌다.
“아미타불…….”
침묵 속에서 나한승의 불호가 낮게 울렸다.
대의멸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결코 권장할 일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대의에 따라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것은, 유파와 사문을 가리지 않고 숭고한 의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저렇게까지 한답니까…….”
“대체 무엇이 저들을…….”
한편, 한쪽에 물러서서 지켜보고 있던 곡전풍과 황진수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들로서는 굳이 이 정도로 하는 팽가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죄를 지었다고 하여도 죽지 않고 목숨을 구걸할 방도는 분명 있었을 것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명가니까…….”
그들 옆에 있던 능자진이 짧게 대답했다.
곡전풍과 황진수가 그를 바라보자 능자진은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명가란 이름의 무게가 바로 저런 게다…….”
화산파 속가제자인 그는 팽가의 행동에 일견 이해가 가는 게 있었던 것이다.
명예, 그리고 신념. 그것을 위해 목숨 따윈 초개같이 버릴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알고 있는 명가였다.
‘책임을 진다지만, 결국 팽가 자신들을 위해서였다.’
경악과 놀라움, 당혹으로 변한 분위기와는 달리 진일강은 오히려 냉정해졌다.
그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원래 팽가는 이곳에서 모든 구실을 잡힌 뒤에, 남은 모든 이들은 죽고, 가문 또한 강호 공적으로 몰릴 만한 처지였다.
하지만 눈앞에서 목숨을 끊은 열여섯의 강력한 기개, 그리고 그들이 발설한 내용 때문에 더 잘못을 추궁하기 힘들어졌다.
그들이 저지른 행동을 맹과 황실, 그리고 은자림에 대한 처분과 연관시켜버린 것이다.
“광 호위…….”
진일강이 광휘의 생각을 묻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언제 사라졌는지 그는 그곳에 없었다.
*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그때까지 장련은 칠흑 같은 어둠과 싸우고 있었다.
“아…….”
사아아아악.
계획된 기관이 발동된 건지, 아님 무언가를 잘못 건드렸는지 벽 틈새로 흙이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점차 흙이 방 안으로 쌓이면서 방을 밝히는 횃불들이 모두 꺼져버렸다.
“침착하자. 침착해…….”
아직은 흘러내리는 흙의 속도가 늦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장련의 가슴은 쿵쾅댔다.
머리로는 움직이면 안 된다고 냉정한 사고를 하고 있었지만, 어둠과 함께 흙무더기가 차오르자 점점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었다.
“소저! 안에 계십니까?”
때마침 들려오는 목소리.
장련의 안색이 확 밝아졌다.
“네. 여기 있어요.”
“다, 다행입니다! 너무 걱정 마시고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저희들이 꺼내드리겠습니다.”
이들은 서혜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하오문 문도들이었다.
화르륵.
천장에 난 구멍에서 사람 한 명의 얼굴이 보였다.
뒤이어 허리에 줄을 묶은 하오문 문도가 횃불을 들고 조심스레 안을 밝혔다.
가주전 내에 남은 함정과 장련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 줄을 잡으십시오!”
사내 한 명이 잡았던 줄을 힘껏 던졌다.
기릭기릭 피이익!
아직 남은 기관이 발동되며 날카로운 화살들이 대여섯 개가 날아왔다.
헌데 줄을 맞히지 못하고 반대편 벽에 박혔다.
그리고 그때였다.
기리릭. 기리릭. 솨아아아아.
화살이 맞히지 못하자 갑자기 가주전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벽 틈 사이로 흙이 엄청난 속도로 들어오기 시작했고, 괴이한 기계 소리와 함께 보이지 않는 화살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악!”
장련이 소리 지를 때쯤 주위가 다시 어둠으로 변했다.
청년이 화들짝 놀라 천장 위로 올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아, 어떻게…….”
솨아아아아. 기리릭. 기리릭. 패애액! 패애액!
기관이 고장 난 듯 주위에서 기계음이 너무나 크게 들렸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기에는 모래들이 점차 쌓이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무릎까지 차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왜 기관이 다시 움직여?”
“나도 모르겠어! 그냥 갑자기 저렇게 된 거야!”
“이제 어쩌지? 안에 장련 소저가 계시잖아.”
밖에서는 사내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수록 장련의 마음은 더욱 초조해졌다.
툭툭.
“방법을 생각해야 해……”
장련은 자신의 볼을 때리며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상황에서 어둠은 정말로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주위가 어둡기에 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 줄!”
순간 사내가 던진 줄이 생각난 장련은 천천히 앞을 더듬었다.
떨어진 위치에서 줄만 당기면 올라갈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스스슥.
다행히 기관들은 더는 움직이지 않는 듯 보였다.
다만 어둠과 발목까지 찬 흙 때문에 줄을 찾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찾았어!”
하늘이 도왔는지 운이 좋게도 손에 걸렸다.
“저, 여기 있어요. 당기셔도 돼요.”
“…….”
“당기셔도 돼요!”
거듭 외치는 장련.
헌데, 이상하게도 더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순간 장련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어둠과 함께 사람들이 사라지자 그 순간 참았던 공포가 확 엄습한 것이다.
“저, 여기 있어요!”
장련은 어떻게든 살기 위해 소리쳤다.
하지만 이번에도 반응이 없자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저 여기…….”
“보고 있소.”
“……!”
장련의 눈이 커졌다.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단지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데.
갑자기 마음이 너무나도 편안해진 것이다.
“어떻게 됐나요?”
장련의 물음.
어둠 속 사내의 말은 곧장 들려오지 않았다.
“상황이 이런데 아직 장씨세가를 걱정하는 거요?”
“…….”
왠지 쓴웃음에 가까운 목소리였다.
장련은 왠지 얼굴이 붉어져 대답하지 않았다.
“잘 해결되었소.”
다행히 어둠 속 사내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잘 해결되었으니 이제는 마음…….”
사락.
사내, 광휘의 눈이 커졌다.
장련이…….
갑자기 품 안으로 달려든 것이다.
“고마워요…….”
품속에 안긴 장련은 잠시 호흡을 고르고는 말을 이었다.
“장씨세가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울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 내지 않았지만 광휘는 알 수 있었다.
어깨에서 약간 촉촉이 젖어든 느낌이 난 것이다.
“나도 고맙소.”
광휘는 천천히 그녀를 안았다.
평소에 무섭기만 한 이 어둠이.
지옥 같았던, 피하고 싶었던 이 어둠이.
지금은 가슴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당신이란 사람이 내 곁에 있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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