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g family's escort warrior RAW novel - Chapter 79
79. 아버지도 광 호위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고 계셨어.2015.08.05.
“빌어먹을 왕초 대가리. 삼 년 내내 밥값 하라고 닦달하더니 결국 날 일터로 내모는구먼.”
단의에 적삼을 걸쳐 입은 노천이 불쾌한 표정으로 대문을 걸어 나왔다.
슬슬 잠을 청하려고 침상에 누웠는데 웬 거지 놈이 방주의 부탁이라며 이리 불러낸 것이다.
“죄송합니다.”
허리춤에 세 개의 매듭이 져 있는 분타주 취의걸(取義乞)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노천의 일갈이 곧장 터져 나왔다.
“그럼 죄송할 짓을 안 해야지!”
“아, 예. 그건 그렇지만…….”
“그런데 그놈은 언제 와?”
“저, 저기 오는 것 같습니다.”
광휘가 오는 모습을 본 취의걸이 한 곳을 가리켰다. 노천은 단단히 주의를 줄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뭐 저런 괴상한 녀석이 있나…….’
광휘를 바라보던 노천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전신을 가릴 듯한 긴 도.
그리고 괴이한 검 한 자루.
척 보기에도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드러내는 듯한 차림새였다.
“네 녀석이냐? 왕초 놈을 꼬드겨, 자려던 날 불러낸 놈이? 감히 노부가 누군지 알고…….”
광휘가 지척까지 오자 노천은 곧장 불만을 쏟아냈다.
“그건 나중에 듣겠소.”
하지만 광휘는 말을 자르며 취의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에 노천이 눈을 껌뻑이며 황당한 표정으로 변했다.
“여기서 하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어딘가?”
“아무래도 관도(나랏길)로 가는 길이 가장 빠르지요.”
“더 빠른 길은 없소?”
“없습니다.”
“길이 아니라면.”
광휘가 진지한 표정으로 재차 물었다.
“길이 아니라면 어떻소?”
취의걸은 턱을 괴었다.
길이 아니라는 모호한 말의 의미를 되새겨본 것이다.
“모든 지형과 지물을 무시하고 직선으로 간다면 가장 빠를 겁니다. 허나…….”
잠시 고민하던 취의걸이 광휘를 응시했다.
“도중에 험준하고 쉽게 오르기가 힘든 산도 있을 겁니다. 협곡이나 동굴 혹은 하천 같은, 말 그대로 길이 아닌 길이지요.”
“혹 지도를 가지고 있소?”
광휘가 묻자 그는 품속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근방부터 삼백 리까지 표시된 지도입니다. 원하신다면 가는 도중에라도 필요한 지도를 구해 드리겠습니다.”
광휘는 지도를 유심히 내려다보다 말했다.
“이건 내가 가져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광휘가 품속에 지도를 집어넣으며 말했다.
“험한 지형은 그냥 뚫고 가겠소. 개방은 이 어르신을 내가 모실 수 있게 좀 도와주시오.”
“이미 그 명은 하달받았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광휘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노천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헛소리를 해대는 건가 하는 시선으로 광휘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의 인사 역시 나중에 드리겠소. 그럼.”
정신을 차린 노천이 한마디를 덧붙이려고 입을 떼는 순간, 광휘는 곧장 달렸다.
노천의 표정이 기가 참을 넘어 난감 그 자체로 변했다.
“어르신.”
“…….”
“저를 따라 오시지요.”
노천이 고개를 돌리자 취의걸이 미소를 띠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의 미소를 보던 노천의 얼굴이 점점 붉게 변하더니, 그는 마침내 욕설을 내뱉었다.
“안 가, 이 거지새끼야!”
*
다닥. 다닥.
‘정말 짜증 나는구만.’
노천은 말을 모는 사내 등 뒤에 올라탄 뒤부터 갖은 인상을 썼다.
안 간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가 ‘그럼 그동안 밀린 약재값부터 내놓으시지요.’란 말에 할 수 없이 길에 오른 것이다.
‘내가 내 무덤을 판 게지. 뭐가 좋다고 거지 놈들하고 어울려 다니다가 말년에 이런 험한 꼴을 당하다니.’
그가 개방에 머물렀던 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었다.
천하에 구하기 힘든 약재들을 힘 안 들이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 개방 아닌가.
“그런데 그놈은 어디에 있나?”
그 때문에 이 고생이다. 한나절 동안 말을 무려 세 번이나 갈아탔다.
짜증이 짜증대로 솟은 노천이 말을 모는 사내에게 물었다.
“아마 이 길 끝에 있는 산을 통과해서 가신 것 같습니다.”
“먼저 산을 통과해서 뭐하려고?”
“움직이기 쉽게 길을 만드시려는 것 같습니다.”
“길을 만든다고? 왜? 어떻게?”
이히히힝.
그의 물음이 끝날 때 말이 멈춰 섰다.
그리고 말을 몰던 기수, 이결 제자가 손으로 산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렇게 말입니다.”
이름 모를 산등성이에 사람이 지나다닐 법한 뚜렷한 길이 나 있었다.
원래 있던 길이 아니라 누군가 나뭇가지를 베며 통과해 길을 만든 것이다.
“허어…….”
노천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쫘악 흉터가 난 산과 그 숲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결 제자 역시 자신이 가리키고도 당황했는지 입을 쩌억 벌리다 설명을 시작했다.
“이 산은 본래 가파르지 않으나 유독 남쪽 방향만 경사가 심합니다. 특히 잡목들이 많이 엉켜 있어 누구도 오르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방향으로 통과하지 않으면 돌아가야 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이리로 가는 것과는 반나절 이상 족히 차이가 납니다.”
“그럼 이걸 그 녀석이 다 베어버렸다고?”
“저도 좀 믿기지가…… 개방 방도들이 도와주었겠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만들리라고는…….”
노천의 눈에도 정말로 오르기 쉽게 잡목들을 제거한 흔적이 보였다.
“에잉…… 빨리 따라오라는 건가?”
노천은 입을 씰룩거리며 눈썹을 찡그렸다.
*
“어디서 경공술을 좀 배웠나보군.”
수월하게 산을 내려온 노천이 입을 열었다.
내려오자마자 하천이 나왔고, 그 앞에는 장정 한 명과 광휘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광휘에게서 별다른 대답이 없자 그는 몸을 배에 실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체 왕초 놈과 무슨 사이냐? 아니, 그보다 무슨 일이기에 이렇게 정신없이 가는 것이냐?”
광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불쾌했는지 노천이 다시 한마디를 건넸다.
“이놈이 내 말을 무시하는 것이냐?”
그제야 광휘가 시선을 들었다.
“뭐라 하셨소?”
“……응?”
헌데 그를 바라보던 노천의 표정에 약간 당혹감이 어렸다.
사내의 눈에 초점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아, 미안하오. 조금 피곤해서 잠시 졸았던 모양이오.”
“……졸아? 눈을 뜨고?”
광휘가 어딘지 모르게 정신 나간 사람처럼 말을 이었다.
“독에 감염된 사람이 있소. 해독에 뛰어난 분이 필요하다 말하니 개방의 방주께서 어르신을 추천해 주었고, 그래서 모신 것이오.”
“뭐, 노부가 뛰어난 건 만고의 진리이긴 하지.”
그 말에 노천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허나, 그건 내가 독을 고쳐줄 때야 해당되는 말이야. 그런 기회가 너에게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 않느냐?”
광휘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몸을 움직이지 않자 짙은 피로감이 온몸을 짓누를 만큼 그를 괴롭혀 왔다.
“응? 왜 말이 없지?”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노천의 표정이 다시 변했다.
‘이놈이 다시 조나?’ 그렇게 생각 하고 있을 때 광휘가 시선을 들었다.
“어르신 말씀이 맞을지도 모르겠소. 그런 기회가 내게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허?”
노천은 의아했다.
일부러 반박이 들어오게 거만을 떨었는데 상대가 너무 순순히 받아들인 탓이다.
그러나 그런 그의 놀람은 광휘의 다음 말에 눌려 버렸다.
“혹시 죽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이렇게 서두르는 거요.”
“……!”
상기된 얼굴과 충혈된 눈동자가 노천의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그는 그제야 침음하며 알아차렸다.
‘이놈…… 절실하구나.’
다급해도 보통 다급한 게 아닌 걸로 보인다.
대체 누가 그렇게 위중하기에 숲 하나에 길을 내면서까지 서두를 수 있을까.
보아온 내내 잠 한숨 못 잔 채 죽어라 달리면서 말이다.
“가자, 그럼.”
이제는 그 역시도 궁금해져 광휘의 어깨를 두들겼다.
*
드르륵.
장웅과 일 장로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창가 쪽에 앉은 의원, 유겸승(庾謙昇)이 그들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제 막 의식을 차리셨습니다.”
장웅과 일 장로가 목례를 하고는 침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사이 유겸승은 조심스런 동작으로 밖으로 나갔다.
“왔느냐?”
장원태가 평소보다 몇 년은 더 늙어 보이는 얼굴로 먼저 말문을 열었다.
얼굴 빼고는 온몸이 천으로 빽빽하게 감겨 있었다.
“좀 괜찮으십니까?”
일 장로가 말했다.
오래 신경을 쓴 탓인지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장원태는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보다시피.”
“아버님.”
장웅이 다친 다리를 이끌고 침상 옆에 앉아 울먹였다.
장원태의 초췌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미어진 것이다.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말거라. 너는 장씨세가의 기둥이 아니냐.”
“죄송합니다.”
그 모습에 장원태가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괜찮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기도 하고.”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이들을 결단코…….”
“누굴 말이냐?”
“예?”
“누굴 용서치 않는다는 것이냐?”
“예?”
“여긴 우리 장씨세가가 아니다.”
장원태가 목소리에 힘을 주자 장웅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긴 장씨세가가 아니란 말에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것이다.
“웅아. 우선 너부터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본가도 중심을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경솔함을 깨달은 장웅이 고개를 숙였다.
다시 밝은 얼굴로 돌아온 장원태가 일 장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들었소. 이 장로와 삼 장로는 화를 당했다고?”
“죄송합니다. 부끄럽게 소인만 도망쳤습니다.”
일 장로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내가 누굴 탓하려는 게 아니오. 그래, 장로들은 어땠소?”
“예?”
“마지막 가던 길은 어땠냐고 묻는 게요.”
일 장로가 장원태의 의중을 깨닫고는 입을 열었다.
“더없이 용맹했습니다. 특히 삼 장로는 저의 활로를 뚫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다행이구려. 대공자가 죽은 후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 중이었는데…… 역시 본심은 의인이었소.”
장원태의 귓가에 죽은 이 장로와 삼 장로의 얼굴이 그려졌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본가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석가장의 검에 찔려 죽더라도, 혼자라도 가겠습니다!”
일 공자가 죽고 황 노인과 장웅, 장련과 함께 본가로 돌아온 날.
그들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듯 격분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상념에서 빠져 나온 장원태는 다시 장웅에게 시선을 돌렸다.
“련이가 위독하다는 얘길 들었다. 대체 어느 정도냐?”
“오래…… 걸릴 것 같다 했습니다, 의원 말로는.”
장웅은 말을 하다가 급히 중간에 바꿨다. 정확히 의원이 했던 말은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비에게 딸자식 상태가 그렇다는 말이, 어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던가.
“광 호위는?”
“팽가를 잠시 나가 있습니다. 고명한 의원을 데려오겠다 했습니다만…….”
“그렇다면 아직 희망은 있는 것이구나.”
“예?”
장원태의 말에 일 장로가 당황한 듯 의문을 표했다.
갑자기 장원태가 낙관적인 얼굴을 보이자 지레 걱정이 된 것이다.
“가주, 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팽가 의원의 말로는 하북에서 가장 고명한 의원도 이런 독은 손대기 힘들다 했습니다. 아무리 광 호위라도 이번 일만큼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웅이도 그리 생각하느냐?”
장웅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련이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지만…… 이번에는 힘들 것 같습니다. 듣기로 련이를 치료한 의원은 팽가에서 4대를 지낸 의방 가문의 인물입니다. 그런 이가 방도가 없다고 손을 놓았는데 어찌 더 대단한 사람을 데려오겠습니까.”
“네 말도 일리는 있구나.”
장원태는 부드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천장으로 시선을 돌린 그가 입을 열었다.
“사경을 헤매다가 눈을 떴을 때였다. 매우 불안하고 초조하더구나. 우리 식구들은 살았는지, 혹여나 모두 죽은 건지 싶어서 말이지.”
장원태는 누군가를 떠올린 듯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그때 내가 누굴 떠올렸는지 아느냐?”
장웅과 일 장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광 호위였다. 그를 떠올리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지더구나.”
“…….”
“사실 팽가로 왔을 때 겉으로야 당당한 척했었지만 매우 불안했었다. 생각지도 못한 명문세가와 명문대파가 있지 않았느냐. 그러니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이 자리에 있어야 할지, 또 어떤 식으로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이 되더구나. 그러던 와중에 팽가의 뛰어난 무인이 무위를 보였고, 걱정은 더욱 커졌지.”
“…….”
“그러던 그때 광 호위가 내 불안감을 단번에 날려버려 주었다. 이런 말하면 부끄럽지만, 그가 감흥이 없다고 말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짜릿했었다. 그 순간만큼은 가슴이 뛸 정도로 말이다.”
“…….”
“그는 항상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을 해오지 않았느냐. 이 아비는 이번에도 왠지 그가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구나. 허황된 생각이란 걸 알면서도 말이야.”
장원태의 목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잠시 쉬고 싶구나. 련이를 잘 보살피거라.”
그 말을 끝으로 장원태는 눈을 감았다.
장웅과 일 장로는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방문을 나섰다.
“정말 가주의 말대로 광 호위께서 그런 의원을 구해 올까요?”
일 장로가 장웅을 향해 물었다.
“모르겠소. 허나, 이거 하나만은 확실하오.”
장웅은 담담한 말투로 대답을 이었다.
“그가 사람을 데려온다면, 그 사람은 평범한 인물이 아닐 거라는 거요.”
장웅은 방문을 힐끔 바라봤다.
묘하게도 장원태가 말한 마지막 말의 여운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아버지도 광 호위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하고 계셨어.’
장웅은 장련이 있는 처소로 향했다.
걸을 때마다 문득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도 그분께 기댈 수밖에 없구나. 부디 무탈한 걸음으로 오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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