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48
48화
* * *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잔잔한 팝송을 들으며 한성태는 대본을 보고 있었다.
“성태야, 조금이라도 쉬는 게 어때? 촬영장 가면 쉬지도 못할 텐데.”
“조금만 더 보고요.”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본을 한 장 넘겼다.
촬영을 위해 세트장으로 가는 길.
무려 두 시간이나 걸렸기에 잠깐 정도는 충분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일찍 나왔는데도 차가 많이 밀리네요.”
“그러게. 출근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차가 많네. 일찍 나와서 망정이지. 안 그러면 지각할 뻔했어.”
도로만 놓고 보면 삼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도로에 차가 너무 많았다.
과거 한성태는 길이 막힌다고 해서 답답해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매 순간이 대본을 보고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천의 얼굴’은 시간이 남을 때마다 연습해,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지 말라고 합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차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운동법을 찾아야겠다고 중얼거립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이 보는 대본을 같이 살펴봅니다.]하지만, 최근에는 길이 막히면 조금 답답해졌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가장 빠른 경로를 찾기 위해 눈을 바쁘게 움직입니다.]속도도 속도지만, 연기의 신의 영향이 있는 거겠지.
한성태는 크게 숨을 내쉬고는 답답함을 뒤로한 채 대본에 시선을 내렸다.
‘이름 없는 배역인데, 상당히 비중이 강하단 말이지.’
배역을 배정받고 본격적으로 파악하고 연습했다.
이름이 없는 배역이었지만,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한성태가 어떤 연기를 보여주냐에 따라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이미지가 달라질 수 있는 배역.
[‘천의 얼굴’이 당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천의 얼굴’이 긴장해서 제대로 연기를 못할 것 같은지 묻습니다.]한성태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긴장하는 건 사실이지만, 연기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은 없었다.
‘당장 연기하고 싶어.’
현재 그가 느끼는 기분은 긴장보다는 기대에 가까웠다.
준비해온 연기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과 기대.
어떻게 보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자신의 연기를 보이는 작품이었기에, 그만큼 더 열심히 준비했다.
“도착했다. 내리자.”
“네, 형.”
두 시간이 조금 넘어 도착한 촬영장.
한성태는 차에서 내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석정과 이민성, 공진효가 주연으로 출연하기 때문일까.
촬영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스태프부터 시작해서 조명팀, 음향팀, 분장팀 등등…….
그들은 촬영장에서 부지런하게 움직이며 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게 준비했다.
‘조석정이다.’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로 조석정이 보였다.
이민성은 오늘 촬영이 없어 오지 않았다.
내일 온다고 하는데 조금 아쉽지만, 조석정과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멍하니 뭐 하고 있어? 들어가자.”
주차하고 다가온 정두식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세트장으로 설치된 카메라와 촬영 장비들.
“오늘은 구름이 져서 좀 어두운 게 조명이 중요할 것 같네요. 제대로 준비되어 있죠?”
“네.”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고. 배우 들어가면 패널로 제대로 비춰주시고.”
그 옆에서 남석대가 촬영팀들을 모아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촬영에는 어떤 조명을 사용하고, 어떤 식으로 촬영하는지에 따라 영상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그렇기에 연출 감독은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연출팀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수밖에 없었다.
“차는 준비되었나요? 액션 캠이 제대로 달려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레이스를 주로 다루는 드라마이기 때문인지 세트장에는 차가 상당히 많았다.
대현에서 협찬을 해줬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상당히 고급스러운 느낌의 차들이 꽤 있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익숙한 느낌이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짓습니다.]촬영장의 분위기를 보며 연기의 신이 반응을 보였다.
그들이 보내오는 메시지를 읽으며 한성태는 남석대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 어서 와요, 성태 씨. 일찍 왔네요.”
“네, 감독님.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마약 운반책 역을 맡은 한성태라고 합니다.”
남석대와 빠르게 인사를 주고 받은 그는 바로 옆에 있는 조석정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반가워요. 조석정이에요.”
조석정의 인사는 매우 간결했다.
자신의 입지를 제대로 다진 배우만이 보일 수 있는 분위기.
한성태는 그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조석정 선배님과 함께 촬영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영광까지야. 너무 뛰어주는 거 아니에요?”
“아닙니다. 선배님이 하신 작품들을 전부 감명 깊게 봤습니다. 특히 헤드윅에서 보여주신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습니다.”
“어, 그걸 봤어요? 내가 헤드윅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감독님, 나 이 사람 마음에 들어.”
전생에 미리 공부했던 내용을 토대로 말했을 뿐인데, 조석정은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한성태에게 슬쩍 다가온 조석정의 팔이 그의 어깨에 올라왔다.
“한성태라고 했죠. 어떻게 준비는 잘했어요?”
“민폐 끼치지 않을 수 있게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딱딱하게 말할 필요 없는데. 나이 어떻게 돼요?”
“스물한 살입니다.”
“나보다 어리네. 우리 편하게 말 놓을까요?”
“편하게 말 놓으세요, 선배님.”
한성태의 말에 조석정이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장난스러운 그 미소에 한성태도 함께 미소를 보였다.
조석정이 입을 열어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남석대의 말에 조석정이 한성태의 어깨에서 팔을 내렸다.
“촬영 시작했네. 나머지는 나중에 말하자고.”
“네!”
한성태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조석정이 웃음을 흘리며 걸음을 옮겼다.
남석대의 지시하에 촬영이 시작되고 세트장에 올라선 조석정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천의 얼굴’이 자연스러운 연기라며 작게 감탄을 흘립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좋은 느낌의 연기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괜히 유명한 배우가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듯, 조석정의 연기는 배울 게 무척이나 많았다.
“컷! 석정 씨, 너무 좋다! 이대로만 갑시다.”
남석대도 환하게 웃으며 조석정의 연기를 마음에 들어 했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았던 촬영장의 분위기.
하지만, 문제는 생소한 곳에서 발생했다.
“감독님, 어떻게 하죠? 지금 민혁 씨가 배탈이 나서 화장실에서 못 나오고 있는데.”
“아……. 오래 걸린답니까?”
“그럴 것 같아요. 어제 상한 음식을 먹었는지 화장실에서 나오지를 않네요.”
“그건 좀 곤란하네요.”
마약 운반책의 스턴트를 맡은 배우가 자리를 비우게 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당장 촬영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한성태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한숨을 내쉬는 남석대에게 다가갔다.
“감독님, 그 연기 제가 해도 될까요?”
한성태의 말에 남석대와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 * *
“아,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네.”
소품 감독의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한성태는 쓰게 웃었다.
스턴트맨이 일을 하지 못한다는 말에 호기롭게 나섰고 남석대의 허락을 받았지만, 주변 시선은 마냥 긍정적이지 않았다.
한성태를 걱정하는 시선이 대부분.
정확하게 말하면 그가 운전할 차가 망가질 것 같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안심되지 않겠지.’
한성태는 자신이 아무리 잘할 수 있다고 해도 설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정답이었다.
“성태 씨, 준비됐습니까?”
“네, 준비됐습니다.”
“주의사항도 다 들으셨고요?”
“네.”
차에 올라타는 한성태에게 액션 감독과 소품 감독이 다가와 운전할 때의 주의사항을 말했다.
이미 전생에서 몇 차례 차량 연기를 한 적이 있었던 한성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전생의 경험과 연기의 신이 함께 하고 있었으니까.
한성태가 운전대를 붙잡고 남석대의 큐 사인이 떨어지면서.
부아앙!
한성태의 ‘레이스 스타트’의 첫 촬영이 시작되었다.
* * *
한성태가 맡은 배역은 마약 운반책으로, 경찰들을 따돌리며 마약을 운반하다 결국 사고로 죽게 되는 인물이었다.
1화에 등장했다가 1화에서 사라지는 비중이 적은 캐릭터였지만.
‘그렇기에 더 강한 임펙트를 줄 수 있는 거지.’
잠깐 등장하는 그 장면은 보는 사람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겨줄 수 있었다.
한성태는 핸들을 꽉 붙잡았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는 한성태가 아닌 마약 운반책이었다.
이름도 없는 역할이었지만, 한성태는 신경 쓰지 않았다.
끼이익.
그의 손과 발이 바쁘게 움직이고, 그가 탄 차량이 도로에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미끄러졌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는 운전이란 매우 섬세한 작업이라고 말합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당신의 어깨를 건드립니다.]신기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몸이되 자신의 몸이 아닌 느낌.
그의 손이 핸들을 돌리고 발이 페달을 밟을 때마다 차는 완벽한 동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그 덕분에 한성태는 평소보다 더 배역에 몰입할 수 있었다.
부우웅!
대사 한 마디 없는 장면이었지만, 한성태의 표정은 현재 그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위용위용.
뒤에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올수록 그의 차는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여러 대의 차량이 놓여 있는 도로 세트장.
그는 그 차량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경찰을 따돌렸다.
“컷! 너무 좋습니다.”
드리프트를 하며 차를 멈춰세우기 무섭게 남석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
“허억……. 허억…….”
차에서 운전하는 장면을 연기했을 뿐인데, 이상하게도 숨이 거칠어졌다.
운전하는 동안 숨을 제대로 쉬지 않은 느낌.
한성태는 겨우 숨을 가다듬으며 차에서 내렸다.
“수고하셨습니다.”
“와……. 엄청나네요. 예전에 이쪽으로 일한 적 있어요?”
다가온 사람들이 한성태를 향해 감탄하며 말을 걸어왔다.
그들의 말에 한성태는 웃으며 대답하고는 모니터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성태 씨, 엄청 수고했어요. 이렇게 잘해줄 줄 몰랐는데. 연습 많이 했나 봐요.”
“네, 저, 모니터 확인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한성태는 모니터로 다가갔고 방금 그가 연기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레이스를 펼치는 한성태의 모습.
한성태는 자신의 연기를 보며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천의 얼굴’이 좋은 연기였다며 미소를 짓습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당신을 바라봅니다.]모두가 만족하는 한 장면이 만들어졌다.
“수고했어.”
조석정이 다가와 말을 거는 모습에 한성태가 웃음을 보였다.
그렇게 한성태의 첫 드라마 촬영은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