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in the Smoke Gods RAW novel - Chapter 64
64화
김리나는 한성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혁명의 시간’의 배역 중 하나인 안중근 열사를 연기하고 있는 한성태.
노래를 부르고 대사를 내뱉는 그의 모습을 보며 김리나는 묘한 표정이 되었다.
‘정말 잘하네.’
그녀는 한성태가 연기했던 레이스 스타트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괜찮은 연기였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수 없으리.
당신들의 죄를 낱낱이 밝히리라.
한성태의 연기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김리나는 소름이 돋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뮤지컬 배우였다.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뮤지컬 배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랜 시간 배우 생활을 해온 베테랑이었다.
어머니를 보고 자란 김리나 역시 뮤지컬 배우로서 꿈을 품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했다.
보고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잘하고 못하고를 구분할 수 있는 눈과 귀가 있었다.
‘목소리에 힘이 있어.’
한성태는 잘한다.
단순히 노래를 잘하고 말고를 떠나서.
그의 목소리와 표정, 그 모든 것이 포함된 연기는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호소력이 있었다.
“와……. 이게 배운가?”
“노래도 엄청 잘하지 않아? 막 심금을 울려.”
“그러니까. 지원하길 너무 잘했어.”
옆에서 동기들이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리나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한성태의 연기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여기까지 보여주면 되겠죠?”
연기를 끝낸 한성태의 목소리에 김리나는 아쉬워졌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듣고 싶었는데.
시간은 무한하지 않듯이 한성태라고 해서 계속해서 연기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럼 이제 연습 시작해 볼까요?”
그녀의 아쉬움은 길지 않았다.
오늘 있을 연습동안 그의 연기를 계속 볼 수 있을 테니까.
대본을 넘기며 말하는 한성태의 모습에 김리나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 * *
“주, 죽을 것 같아요!”
1학년 중 한 사람이 한성태에게 제발 살려달라며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한성태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요.”
자신의 바지를 붙잡은 손을 떼며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부드러운 목소리.
하지만, 그를 마주하고 있는 1학년의 얼굴에는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제, 제발!”
“목소리 보니까. 아직 힘이 넘치는 것 같은데. 여기 이 신도 연습해보죠.”
“아, 안 돼!”
한성태의 손에 이끌려 일어나게 된 그녀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도저히 못 하겠다며 비틀거리는 그녀였지만, 한성태의 도움으로 더 연습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뭐 힘들다고.’
한성태는 무대 위, 비틀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연습 시작한 지 뭐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힘들어한단 말인가.
“이 정도 연습은 다들 기본으로 하는 건데.”
아무리 연습이 하기 싫어도 그렇지.
엄살을 피우며 연습을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을, 한성태는 가만히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서로 다른 작품을 찍는다면 모를까.
“조금만 더 열심히 해요. 지금 연습한 게 나중에 무대 올라갈 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활기찬 한성태의 말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1학년들은 그렇다 쳐도 그를 불러낸 과대마저 아무런 대답이 없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웠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자신이 보고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합니다.] [‘자신의 시대를 정의한 존재’는 당신을 바라보며 말문을 잃은 듯 입을 다뭅니다.]연습하는 한성태에게는 신들의 메시지도 보이지 않았다.
연습에 연습.
한성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연습에 임했고.
“스, 스톱! 더 못 해. 더 못 한다고! 조금만 쉬었다 가자!”
그런 그에게 안재우가 백기를 들었다.
“연습을 뭐 얼마나 했다고 벌써 쉬자는 거야?”
“야! 지금 벌써 연습 시작하고 두 시간이 지났어! 아무리 연습이 중요해도 그렇지. 십 분이라도 쉬어야 하는 거 아니냐?”
시간이 벌써 두 시간이 지났나.
과대의 말에 한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음…….”
안재우의 말처럼 두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한성태는 더 연습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더 연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만.
[‘천의 얼굴’은 모든 사람이 당신처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속도에 살고 속도에 죽는 자’는 당신이 특이한 것이라고 강한 확신을 보입니다.]연기의 신들조차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메시지를 빠르게 살펴본 한성태는 고개를 들어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살폈다.
‘많이 힘들어 보이기는 하네.’
멀쩡하다 못해 쌩쌩한 한성태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전부 지쳐 있었다.
[‘절권도의 창시자’는 휴식이 있어야 근육이 성장할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심지어 운동하라고 강요하는 연기의 신조차 그를 향해 휴식을 권유하고 있었다.
그쯤 되니 한성태도 연습을 더 하자고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그럼 십 분만 쉬었다가 다시 하자.”
“흐아!”
“드디어 쉰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
한성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람들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의자에 걸어갈 힘조차 없었던 걸까.
눕기까지 하는 그들의 모습에 한성태는 헛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네가 연습을 많이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건 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안 힘들어?”
“어? 어, 뭐…… 익숙해져서. 오히려 이렇게 연습하면 나중에 몸이 근질거려.”
“와……. 진짜 너는 대박이다. 네가 먼저 데뷔할 수 있는 이유가 있었네.”
안재우의 말에 한성태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한성태는 평생을 해오던 일이기에 매우 익숙한 것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도대체 뭐, 얼마나 성공하려고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이렇게까지 안 하면 성공할 수 없으니까. 난 내가 재능이 없거든. 노력이라도 열심히 해야지.”
“…….”
“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안재우의 시선에 한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는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라. 진짜 한 대 맞을 수도 있겠다.”
“뭐가.”
“벌써 데뷔까지 해서 사람들한테 칭찬받고 있는 네가 재능이 없으면. 진짜 재능 없는 놈들은 사람도 아니냐? 가끔 보면 있는 놈들이 더 한다니까.”
안재우의 말을 들은 한성태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한성태의 전생을 안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없을 텐데.
굳이 그 사정까지 입에 담을 생각이 없었던 한성태는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애들은 좀 어떤 거 같아. 무대 올라가도 괜찮겠어?”
“음……. 뭐,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렇지? 내가 MT에서 고르고 고른 애들이야. 특히, 김리나 쟤는 물건이야. 너만큼은 아니지만, 연기 잘해. 노래도 잘 부르고.”
“그런 거 같아.”
안재우의 설명을 들으며 한성태는 김리나를 바라보았다.
숨을 고른 그녀는 아직까지 쓰러져 있는 동기들과 다르게 대본을 펼쳐 개인적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구슬땀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은 충분히 힘들어 보였지만.
‘즐거워 보이네.’
한성태는 그녀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볼 수 있었다.
“다 쉰 것 같은데, 연습 시작하자.”
“뭐 얼마나 셨다고.”
“이 정도 쉬면 충분하지.”
“……너를 부른 게 실수 같다.”
작게 중얼거리는 안재우의 목소리에 한성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 * *
1학년들과 연습을 시작하고.
시간은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
1학년뿐이었던 강당에 2학년들이 찾아와 연습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야, 오늘 3학년 선배들 와서 연습 도와준다는 거 들었지?”
“어, 들었어.”
“하……. 벌써부터 한숨만 나온다. 그 선배도 오겠지?”
“그럼 안 오겠냐? 자기 자랑하기 딱 좋은 상황인데.”
강당의 분위기는 마냥 밝지 않았다.
3학년이 연습을 도와주기 온다는 소식.
“어쩔 수 있냐. 외부에서도 뮤지컬 보러 온다는데. 교수님이 3학년들한테 제대로 준비시키라고 신신당부했다고 하더라.”
“다 떠나서 그 선배만 안 왔으면 좋겠어. 잔소리도 잔소린데, 자기 잘난 척하는 게 꼴도 보기 싫어.”
“그래도 이번에는 다르지 않을까. 한성태가 있잖아. 어떻게 보면 쟤가 먼저 데뷔했으니까 선배라고 볼 수 있는데. 막 함부로 하기야 하겠어?”
아이들이 숙덕거리는 소리를 들은 한성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강당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아이들의 노골적인 시선이 따라오고 있었다.
[‘천의 얼굴’이 확실히 1학년 때보다 규모가 커졌다고 말합니다.] [‘비극 속에서 웃음을 만든 이’가 당신이 무대에서 보여줄 모습을 기대합니다.]신들의 메시지를 살펴보고 있을 때.
“왔다.”
“아, 그 선배도 왔어.”
입구 쪽이 시끄러워지는 소리에 한성태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국대학교 연극영화과의 3학년들.
그들은 주위를 둘러보며 느긋하게 걸어왔다.
“연습 안 하고 뭐 해? 이것들이 빠졌나. 뮤지컬이 장난이야?”
3학년들 앞에 선두에 선 한 사람이 주변에 있는 2학년들에게 잔소리하는 게 보였다.
3학년들이 온다는 소식에 아이들이 숙덕거리던 대상.
“야야. 박해야, 벌써부터 그러지 마라. 애들 기죽겠다.”
“그래. 그래도 이제 2학년 된 애들인데. 1학년들도 함께 있는데 기 살려줘야지.”
박해군의 뒤로 다른 3학년들이 웃으며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들의 말에 박해군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를 찾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박해군의 눈이 한성태에게 향했다.
그가 한성태를 향해 다가왔다.
“너 맞지? 한성태. 이야, 여기서 연예인을 다 만나네.”
‘……뭐야, 이 사람은?’
박해군을 바라보는 한성태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다짜고짜 다가와 말을 거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무례하게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어, 그래. 잘 부탁한다. 유명인과 친해지고. 역시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야.”
한성태의 어깨를 두드리며 박해군이 입꼬리를 올렸다.
언제 봤다고 이렇게까지 친하게 구는 걸까.
한성태는 박해군이 두드린 어깨를 힐끔 바라보고는 손을 들어 먼지를 털어내듯이 툭툭 쳤다.
“연습하자, 연습.”
짝짝.
박수를 치며 소리치는 박해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성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연습은 조금 많이 힘들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