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입문(入門) (3)
도기홍, 왕이륜.
두 사람은 시무관에 들었다. 이곳에 마련한 연무장은 특히 드넓어서, 삼백에 이르는 아이들이 여유롭게 서도 자리가 남았다.
흙바닥을 고르게 다져놓았지만, 드문드문 잡초가 남았다.
끝에 도기홍이 우뚝 섰고, 왕이륜은 열을 갖춘 아이들 사이를 천천히 걸으면서 사뭇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였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꽉 다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압박감에 울상인 아이도 있었다.
지난 사흘, 아이들은 시간 대부분을 누워서 앓는 것으로 지새웠다. 그만큼 입문식은 혹독했다.
고련에 경험이 있어서 기운 차린 아이도 있기는 했지만, 제 몸 상태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딘가 삐꺽거리고 아픈 상태였다.
당장 지금만 하여도, 똑바로 서 있는 것도 힘겨워서 꿈틀거리는 녀석들이 부지기수였다.
왕이륜이 눈길을 줄 때마다 움찔거리면서 억지로 허리를 세웠다.
도기홍도, 왕이륜도 아이들 처지를 다 이해했다. 지금 나와서 서 있는 것도 힘들겠지. 그렇다고 사정을 봐준다는 뜻은 아니었다.
“똑바로 서지 못할까! 누가 움찔거려!”
“히, 히익.”
왕이륜이 거칠게 다그쳤다. 손을 쓰는 것도 아니건만, 외침으로 사람을 때리는 것만 같았다.
한번 큰 소리가 터져 나올 때마다 기겁하는 소리가 절로 새었다. 어떻게든 곧게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서야 도기홍이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인 줄 아느냐?”
“…….”
“…….”
아이들은 입을 딱 다물고서 눈치만 보았다. 여기가 어디냐니, 무엇을 묻는지 듣고도 모르겠다.
“어디인 줄도 모르고 온 게냐!”
“예, 종남파입니다!”
버럭 다그치기가 무섭게 한쪽 끝에 높은 목소리가 사뭇 힘차게 울렸다.
오른쪽 선두에 선 여아였다.
또래 녀석 중에서도 유독 키가 크기도 했지만, 아이는 마냥 뻣뻣하게 서 있는 게 아니었다. 몸을 빠르게 회복하여서 사뭇 차분한 모습이었다.
여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래, 여기가 종남파다. 너희 중에서 기본이 있는 녀석도 있을 터이고, 그렇지 않은 녀석도 있을 터이다. 하지만 오늘 여기에 든 이상 그런 사정은 알 바가 아니다. 무조건 따르든지, 아니면 퇴산하든지, 알겠느냐?”
“예!”
“예!”
도기홍은 딱 잘라 말했다.
따르지 않으려면 그대로 떠나라. 말투는 단호했고, 다른 감정은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앞에서 다그치는 왕이륜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긴장으로 굳은 정도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잔뜩 얼어붙어서는 쥐어짜듯이 힘껏 답했다. 그러고는 부르르 몸을 떨며 숨을 몰아쉬었다.
두렵기는 오히려 경험 있는 아이들이 더했다.
‘지, 진짜 종남 검객이다.’
‘으, 으아아…….’
서슬 퍼런 도기홍에게서 진짜배기 무림 검객 모습을 보았으니.
선망과 동시에 두려움이 몰려와서 숨이 턱턱 막혔다. 저도 모르게 힘주어 움켜쥔 주먹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도기홍은 예리한 눈초리로 조용한 삼백여 아이들을 빠르게 훑었다.
숨죽이는 가운데, 몇몇 아이는 그래도 똑바로 턱 끝을 치켜들었다. 버티는 기색이 역력했다. 고집스럽게 입술을 질끈 물기도 했다.
나서서 답했던 여아, 그리고 반대쪽 선두에 선 덩치 있는 녀석이었다.
아이라고 하기에는 참 대단한 덩치였다. 녀석은 입술을 댓 발은 내밀고서 불만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오기로 버텼다.
두 녀석 다 입문식 때에 이미 눈에 띄었던 녀석들이었다.
송아영과 언예진.
무엇보다 사흘 동안 나름대로 무리를 이루어서, 두 녀석을 중심으로 비슷비슷한 내력을 지닌 녀석들이 모여 있었다.
도기홍의 눈썹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그리 좋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당장 탓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도기홍이 입을 닫고 둘러보는 눈초리 속에서 아이들은 점점 고개를 숙였다.
버티는 두 녀석도 슬그머니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다가 도기홍은 끄트머리로 눈길을 주었다.
‘헙!’
그만 헛웃음이 왈칵 튀어나올 뻔했다.
이런 와중에도 멍한 얼굴로 있다니. 도기홍은 힘주어 이를 악물었다.
도기홍을 난처하게 만든 아이, 바로 고진무였다.
고진무는 맨 끝에 자리하여서는 멀뚱한 얼굴로 도기홍을 보고 있었다. 눈을 피하거나, 긴장한 다른 아이들과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아이는 도기홍 말을 귀담아듣고서는, 기본을 생각하고 있었다.
‘음음, 기본은 중요하지. 그래, 열심히 해야지.’
아이들은 준비한 목검과 띠를 일일이 받았다.
“이제부터 종남검법, 그 기본을 알려주마.”
말 끝나기가 무섭다. 도기홍은 훌쩍 손을 뻗었다.
차앙!
맑은 울림이 새삼 섬뜩하게 일었다. 장내를 무지갯빛이 아롱지는 반사광이 휩쓸었다.
아이들은 목검을 든 채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도기홍을 바라보았다.
눈빛이 초롱하게 반작였지만, 이내 아이의 절반은 바로 시무룩해졌다. 도기홍이 펼치는 검법은 여기 아이들도 다 아는 검법이었다.
정검팔법세, 혹은 팔법검세.
삼대무관이 모두 기본으로 삼은 검법이 아닌가.
대단한 무엇을 기대한 아이들이었기에, 자신들도 다 아는 팔법검세 모습에 바로 실망하고 말았다. 심지어 무관 출신이 아닌 아이들도 그리 집중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나 오직 한 아이만 눈빛이 딴판으로 돌변해서, 도기홍이 하는 모습에 무섭도록 집중했다.
고진무, 아이는 맨 끝에서 움찔움찔하면서 몸을 떨었다.
도기홍이 허공에 남기는 검광의 궤적을, 그가 나아가고 물러나는 걸음을, 그리고 내뱉는 호흡까지도.
고진무는 모두를 받아들였고, 심상으로 따라서 펼쳤다.
-저것이 검법의 시작이고 끝이다.
퍼뜩 귓가에 속삭임이 일었다. 환청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고진무는 그대로 집중했다.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아니었다.
보이는 모든 것을 마치 빨아들일 것처럼 깊은 눈동자였다.
도기홍은 거푸 팔법검세를 시연했다. 그러나 아이들 눈초리는 영 시무룩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데, 예상했던 바였다.
막 입문하였을 때에, 자신이라고 달랐겠나.
그린 쓴웃음은 떠오르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도기홍은 벼락같이 외쳤다.
“목검 똑바로 잡앗!”
풀어져 있던 아이들이 부랴부랴 목검을 치켜들었다.
도기홍은 이제부터 지옥을 보여줄 참이었다. 팔법검세는 검법의 바탕이면서, 또한 연골연신 과정 중 하나인 까닭이었다.
팔법검세를 끝도 없이 펼치고, 또 펼쳤다. 그만이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도기홍과 왕이륜은 도끼눈을 뜬 채 아이들 사이를 계속해서 맴돌았다.
해가 뉘엿 저물 무렵까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제야 도기홍이 외쳤다.
“그만!”
흐억! 헉!
아이들은 숨을 터뜨리면서 흐느적거렸다. 너끈했던 목검이 지금에는 바윗덩이, 철근처럼 무겁다.
도기홍은 쯧쯧, 혀를 찼다.
“팔법검세가 그리 우습더냐. 제대로 펼치는 녀석이 단 한 놈도 없구나. 죄 형편없어!”
도기홍은 한껏 꾸짖고서 홱 돌아섰다. 여하간, 첫 대면부터 시작한 수련은 이렇게 끝난 셈이었다.
아이들은 흐느적거리더니,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흥, 애송이들.”
아이들만 남아서 조용히 있으려는데, 퍼뜩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흘렀다.
들으라고 한 말이니, 듣지 못할 리는 없다.
다른 쪽에 있던 아이들이 홱 고개를 돌렸다. 도끼눈을 뜨고서 버럭 소리쳤다.
“뭐야, 애송이? 거기 애송이 아닌 놈은 누구냐!”
“해보자는 거냐!”
“그래, 이것들아! 팔법검세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우리도 같이 욕먹었잖아!”
“뭐? 네들은 똑바로 했다고?”
당장 서로 삿대질에 고함이 연이어 터졌다. 사이에서 어디에도 있지 못하는 아이들은 그만 기가 죽어서는 주춤주춤 물러섰다.
왁자한 소리가 담 너머로 울렸다.
“저것들이!”
“아직, 아직 아니다. 내버려두어라.”
“도 사형.”
왕이륜이 그만 불끈하여서는 자리를 박차려는데, 도기홍이 손을 내저었다.
“지금 다그쳐봤자 언제고 다시 충돌하겠지. 차라리 지금 부딪치게 하는 편이 나아.”
“으음.”
출신대로 갈라지는 것을 어찌 다잡을 수가 있겠나. 몇몇 방편은 있겠지만, 첫날인 지금에는 어디까지 나가나 지켜볼밖에.
도기홍은 잠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다가 퍼뜩 고진무 모습을 떠올렸다.
‘천하검법에 입문하였다는 것은 알았지만, 설마 팔법검세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검팔법세, 팔법검세. 이름은 참 여럿이지만, 결국 끝이 없는 검법이다.
그 자신도 팔법검세를 십 년을 연공하고서야 나름 검세를 갖추었다고 자신하는 바였다. 그런데 오늘 고진무가 펼친 팔법검세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경지 성취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도기홍은 쓰으…… 잇새로 낮은 신음을 흘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분명 세월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도기홍은 곧 고개를 치켜들었다. 들리는 소란함이 점점 소리가 바뀌어 갔다.
“응? 이건 좀 이상한데?”
아이들끼리 다툼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연무장이 한참 시끄럽지만, 고진무는 우두커니 서서 늘어뜨린 목검을 한참이고 내려다보았다.
“팔법검, 팔법, 팔법.”
연신 중얼거렸다. 검이 나아가는 길이 있고, 그에 따라 보법을 펼치며, 호흡을 유지한다.
고진무는 홀연 검을 치켜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에 힘을 쭉 빼고서, 목검이 움직였다. 검에 휘둘리는 것처럼 나아갈 때마다 무릎이 흔들렸고, 발이 질질 끄는 것처럼 먼지가 일었다.
마침 패가 갈려서 서로 다그치던 아이들이다.
“엉? 으엇? 뭐야, 저거!”
당장 달려들 것처럼 악다구니 쓰던 아이들이 저도 모르게 물러섰다. 사이로 고진무가 움직였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다시 앞으로.
팔법검세를 이렇게까지 엉망으로 펼칠 수 있단 말인가.
서로 다투는 와중에도 조용히 있던 송아영과 언예진은 고진무가 하는 이상한 검법에 그만 오만상을 썼다.
“저 자식이 지금 뭐하는 거야?”
언예진이 먼저 발끈했다. 그렇지 않아도, 입문식 때에 자신보다 오래 뛰고 눈에 띄어서 마음에 들지 않던 차였다.
시무관에 들어서는 내내 침상에 들러붙어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있다가, 오늘 처음 마주했다.
그런데 하는 양이 우스꽝스러웠다.
이래서야 같이 시무관에 든 자신들도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나.
언예진이 으득, 소리 나게 이를 악물었다. 그는 퍼뜩 섬뜩한 눈초리로 가까이 녀석들에게 눈짓했다.
어찌 되었든 저 우스꽝스러운 짓을 멈추게 해야 건너에 있는 무식한 야인 놈들을 상대할 것 아닌가.
언예진의 눈빛을 받은 몇 아이들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 셋은 언예진처럼 군문이나, 관문 무인의 자제들이었다. 언예진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훌쩍 큰 녀석들이었다.
그렇게 덩치 셋이 고진무에게 바로 다가갔다.
“야! 너 임마!”
“…….”
고진무는 자신을 향한 외침을 전혀 듣지 않고 있었다.
도기홍이 보인 팔법검세가 눈앞에서 아른거렸고, 검오의 심득이 내내 귓가에서 울리고 있었다.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셈이지만, 고진무는 깊이 집중했다. 허투루 들을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그러다가 불현듯 뻗어오는 그림자에 움찔하면서 반응했다.
어깨를 잡아채려고 한다. 이때에는 선의 후를 취하니. 바로 몸을 돌려서 목검으로 짧게 끊어 쳤다.
따악!
억센 손아귀가 그만 허공만 가른다. 대신에 옆에서 툭 때린 한 번에 손목을 부여잡았다.
“악! 이 새끼가!”
험한 욕설이 터지면서, 다른 둘이 동시에 뛰어들었다. 큰 그림자가 좌우에서 같이 달려든다. 고진무는 비스듬히 서서 거푸 목검을 휘둘렀다.
목검이 그리는 둥근 궤적이 전면을 뒤덮었다.
따닥! 따다닥!
소리가 시원하게 울렸다. 막무가내로 돌진하는 상대는 중요한 곳을 노려서 발목을 잡는다.
검법은 흔한 팔법검세, 그렇지만 계속해서 속삭이는 검오의 심득 속에서 고진무는 목검을 휘둘렀다.
나선 셋이 고꾸라지기가 무섭다.
“야! 다 달려들어!”
“으아아악!”
“이 새끼가아아!”
휘적거리는 고진무 모습에 아이들은 죄 눈이 돌아갔다. 다들 목검을 치켜들고 고진무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래도 제법 무공에 입문한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기운찬 일성을 터뜨리면서 고진무를 향해 막무가내로 몰아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