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269
269화. 오성군(五星君) (4)
붉은 핏물을 잔뜩 머금은 칼 한 자루를 어깨에 걸친 대머리 사내, 요광은 푸르스름한 안광을 번뜩였다.
그는 고진무를 한차례 흘겨보았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처럼 번뜩이는 눈초리에는 살기가 선명했다. 그래도 당장 칼날이 향할 곳은 따로 있었다.
요광이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처럼, 고진무도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눈빛에 뒷덜미가 서늘했다.
그는 이내 다른 녀석들 상태를 살폈다. 일단 도우빈은 가슴의 상처가 길었지만, 그 자체를 위중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도 상처를 단단히 묶어서 지혈까지 했다.
그리고 주저앉은 도우빈의 뒤에서 매일기와 한수동이 지친 기색으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크게 상하거나 내상을 당하지는 않았다.
두 녀석은 오히려 반짝반짝한 눈으로 고진무를 빤히 보고 있었다.
“음, 너희는…… 시무관 제자이구나?”
“예, 고 사형. 시무관 매일기입니다.”
“한수동입니다!”
둘은 후다닥 두 손을 맞잡았다. 고진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는 괜찮으냐?”
차분한 눈으로 매일기와 한수동, 두 아이의 위아래를 살폈다.
“예, 멀쩡합니다. 사형.”
“제가 죽겠어요. 제가…….”
“거죽만 살짝 베인 걸로 그런 소리를 하는 게냐?”
고진무는 슬쩍 눈썹을 찌푸렸다. 도우빈은 입술을 잔뜩 삐죽였다.
“그래도 때마침 혈사 혈도승께서 당도하셨으니 다행이구나.”
“피잇, 다행은 무슨. 진무 형이 다 처리할 수 있었잖아요.”
“아니, 이 녀석이. 내가 무슨 신선이라도 된다더냐.”
고진무는 지나는 투로 타박했다.
시무관 녀석이 어찌 종남봉 뒤에 있는지 꾸짖을 일이지만, 당장은 주변을 정리하는 게 먼저였다.
“여기서 몸을 살피고 주변을 경계하도록 하여라. 알겠느냐?”
“예, 사형.”
“진무 형.”
도우빈이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따라서 일어나기라도 하려는 모양이지만, 고진무는 대뜸 청명을 뽑아 들어서는 주변 바닥을 그었다.
촤학!
주변이 한참 어둑어둑했지만, 곧은 일직선이 바닥을 가르면서 뚜렷하게 남았다. 세 아이는 흠칫하여서는 크게 뜬 눈으로 남긴 검흔을 물끄러미 보았다.
“여기서 움직이지 마라.”
고진무는 바로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요광이 먼저 나선 만큼, 자신 또한 마냥 뒤처질 수는 없었다.
종남봉에 숨은 살수를 처리하는 게 먼저였다.
두 사람은 아이들이 주저앉은 종남봉 중턱을 사이에 두고서 발 빠르게 어둠 짙은 곳으로 뛰어들었다.
“히이이이…….”
새삼 불어오는 찬바람 탓인지, 세 아이는 일단 착 달라붙어서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웃기는 일이지만, 살수들에게는 은신이 오히려 방해였다.
혈도승 요광, 그리고 고진무도 거침이 없었다.
둘은 각자 살수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리고 족족 도검을 거푸 휘둘렀다. 그때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핏물이 연신 치솟았다.
둘에게 이들의 은신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큭! 이런 망할!”
요광은 짜증을 담아서 한층 거칠게 칼날을 휘둘렀다.
도신이 붉은 궤적을 선명하게 그리면서 어둠을 찢어발겼다. 그대로 굵직한 나무를 쪼개는데, 그 속에서 더운 피가 확 치솟았다.
좌우로 갈라지는 나무와 함께 두 쪽 난 사람의 시신이 굴러 나왔다.
요광은 살수들이 깊이 숨어 버리면, 가로막는 것과 함께 갈라 버렸다.
위력도 물론이지만 짜증이 그대로 드러났다. 연유로 따지자면 역시 주변에 쫙 깔린 살수 따위보다는 저기서 손을 쓰고 있는 종남의 검귀 때문이었다.
“검귀, 저 새끼…….”
검귀가 어쩌고 하더니, 괜한 허명이 아니었다.
어검술이라 할 정도의 신기는 놀랍기는 해도, 지금처럼 마음이 불편할 건 아니었다.
검귀는 자신보다 적어도 한 호흡은 앞서서 살수의 기척을 파악하고, 파악과 동시에 손을 썼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거슬려.”
요광은 짧게 중얼거리고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그는 몸을 비트는 것과 동시에 횡으로 그었다.
스팟! 스거거거걱!
오악도법 살자결의 거악단참이다. 가장 단순하지만, 또한 가장 광범위하게 일대를 갈라 버린다.
살기와 함께 일어나는 도경이 끝도 없이 퍼져 가면서, 진정 이름대로 종남봉을 가르기라도 할 것처럼 어둠과 함께 주변을 휩쓸었다.
퍼퍼퍼퍽!
굳이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요광은 주변을 싹 밀어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한참 멀찍이서 부상을 돌보던 도우빈과 두 녀석은 당장 놀라서는 번쩍 고개를 치켜들었다.
붉은 궤적이 피어오르고, 산이 무너질 것처럼 우르릉 울렸다.
“저거, 저게 그 오악, 맞지?”
“그게, 그렇지. 살자결. 이야, 요광 사형, 짜증이 제대로 나신 모양인데.”
도우빈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요광이 살자결을 거푸 휘두르면서 아예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그 속내가 솔직하게 드러나는 참이었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아주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는 모습이었다.
도우빈은 그럴수록 후환이 걱정이었지만, 매일기와 한수동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휘황한 혈사 혈도승의 진짜 절기 앞에서 연신 탄성을 흘렸다.
고진무가 보인 어검의 공부도 놀랍고, 저기서 거침없이 주변을 휩쓸어가는 혈도승의 도법도 놀랍다.
한수동은 특히 유운검법을 특기로 삼은 터라, 오악도법의 거침없는 흐름과 변화를 유심히 보고 있었다.
“이야, 진짜 오악도법은 다르구나. 장난 없다.”
“그건 무슨 소리지? 진짜라니? 그럼 내 도법은 가짜라는 거냐?”
도우빈은 한수동이 불쑥 내뱉은 말에 확 마음이 상해서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런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잖아.”
“야, 내가 칼이 없어서 그렇지!”
“에이……, 어디 칼 때문일까.”
“진짜야! 으익!”
욱해서 언성을 높였던 도우빈은 덜컥 가슴을 부여잡았다. 자기 성질에 소리쳤다가 끙끙거리는 모습에 두 아이는 한참 어이없는 눈으로 보았다.
“너 뭐 하냐?”
“쯧쯧, 지금이 이럴 때니.”
둘은 번갈아가면서 면박을 주었다. 부상당했다고 봐주는 건 여기까지였다.
“이, 이것들이……!”
도우빈은 가슴 잡고서 빠득 이를 갈았다.
종남봉을 타고서 발 빠르게 움직이던 고진무는 빙글 검을 돌렸다. 검여지성, 검강의 빛줄기가 피어오르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끅!
답답한 숨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살수는 필살의 암수를 준비하고 한 걸음, 딱 한 걸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자신이 어찌 발각되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은신 속에 숨이 끊어졌다.
고진무는 곧 청명검을 거두면서 허리를 세웠다.
“그래? 이제 이쪽에는 없구나. 다행이군.”
귀동이 빠르게 살펴준 덕분에 일대에 다른 살수는 없다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흠칫 고개를 돌렸다.
다른 쪽에서 아름드리나무가 와르르 넘어가고, 바윗돌이 갈라지면서 불똥이 번쩍번쩍 솟구쳤다. 붉은 칼날이 남기는 뚜렷한 궤적이 여기서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고진무는 성질부리듯이 거푸 혈도를 휘두르는 요광 모습을 보면서 잠시 입술을 꽉 다물었다.
“아이고, 저런…….”
일단 요광이 휘둘러 대는 쪽에 몇이 숨어 있는 모양이었지만, 저렇게까지 난리를 치는 데에 솟아날 구멍은 전혀 없을 듯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거들 수도 없겠고.”
다가서기만 해도 적으로 여기고 칼날이 날아올 판이었다. 고진무는 한숨을 삼키고서 슬쩍 몸을 돌렸다.
안전을 확인했으니 일단 세 녀석을 살필 참이었다.
도우빈과 시무관 두 녀석은 속닥거리다가, 조용히 다가서는 고진무의 모습에 절로 입을 꾹 다물었다.
한참 요란하게 칼날을 휘두르는 요광과 달리, 고진무는 어둠을 가로지르고서 조용하게 차근차근 제거하는 통에 미처 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따질 상황은 없었다.
“고 사형!”
“사형!”
두 아이는 바로 낯빛을 다잡았지만, 고진무는 눈살을 찌푸렸다. 주변을 정리하였고, 어린 녀석들 안위를 다잡으니, 이번에는 꾸짖을 참이었다.
“이놈들!”
“흐익!”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넘어온 게야? 종남봉 뒤쪽은 금지로 정했음을 너희가 몰랐더냐?”
“그, 그건 아니지만.”
매일기도 그렇지만, 한수동은 특히 고개를 잔뜩 움츠렸다.
흐릿한 어둠 속에서 고진무의 두 눈은 밝은 빛을 품은 채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귀신이 어쩌고 하여서 다른 녀석들을 끌고 오기는 했으니까. 그렇다고 솔직히 말 꺼내기도 쉽지는 않았다.
머뭇거릴 참에, 한수동은 문득 눈치가 이상해서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도우빈도 그렇고, 매일기도 슬쩍 뒤로 물러나면서 자신을 빤히 보고 있었다. 마치 ‘얘가 그랬대요.’라고 이르는 듯한 꼴이었다.
“이, 이것들이…….”
한수동은 크게 당황했지만, 뭐라고 다른 말을 하기도 전에 고진무가 한층 번뜩이는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보아하니 네가 주동자인 모양인데. 어찌 된 영문이냐?”
“그, 그게 실은…….”
한수동은 덥석 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하게 말 꺼냈다가는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분명히 좋은 소리는 아닐 터였다. 그렇다고 다른 소리를 둘러 대기도 어려웠다.
눈치 보건대 딴소리했다가는 저기 둘이 당장 고해바칠 게 분명했다.
“저기, 그게. 그게, 실은…….”
아무리 고진무라고 해도 귀신 구경하나 하겠다고 여기까지 몰래 들어왔다는 말을 듣고서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신? 그 귀신을 말하는 거냐? 귀신이 궁금해서?”
“그게, 예.”
“허어, 이런.”
고진무는 당장 꾸짖기보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참 황당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부주의 탓일지도 몰랐다.
고진무는 난처함에 입매를 찌푸리면서 슬쩍 눈을 들었다. 빈 허공, 그 자리에서 귀동이 동그랗게 얼굴을 드러내고서 눈만 끔뻑거렸다.
당황스럽기는 귀동도 마찬가지였다.
폐관동에서 주변으로 몇 번 들락거리는데, 어쩌다가 드러나기라도 하였던 모양이었다.
“흐, 흐음, 하여튼. 나중에 아주 크게 혼날 줄 알아라. 그리고 너희 두 놈도 똑같아.”
“예에…….”
매일기는 잔뜩 주눅이 들어서 고개 숙였다. 하지만 도우빈은 바짝 턱을 치켜들었다.
“아니, 진무 형. 나는 왜!”
“그래, 넌 뭐…… 내가 아니더라도.”
고진무는 억울함에 울상 짓는 도우빈을 보면서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도우빈은 따로 맡을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나 당장 끝은 아니었다.
고진무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리면서 검자루를 잡았다.
청명검이 차분하게 울었다. 그러자 아이들 앞에 미리 그어 놓은 깊은 검적에서 검기가 치솟았다.
고진무는 바로 그 자리로 재차 청명검을 깊이 찔러 넣었다.
헙!
집중한 검여일성이 수장 깊이까지 파고들었다. 그러자 주변 땅바닥이 쿠쿵! 들썩거렸다.
“흠, 이번에는 진짜배기인가?”
고진무는 지금의 일검이 빗나갔음을 깨닫고는 바로 물러서서 아이들 앞을 막아섰다. 그의 눈길이 향하는 자리에서 돌바닥을 뚫고서 시커먼 그림자가 불쑥 솟구쳤다.
시커먼 흙덩어리가 전신에 부스스 쏟아졌다. 그러나 두 눈으로 보이는 자리에서는 요사한 안광이 일렁거렸다.
“크흐…….”
그는 격한 숨을 토하면서 고진무를 향해 지독한 기운을 드러냈다. 단순한 살수의 살기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