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419
420화 동량지재(棟梁之材) (5)
남궁완은 쿵쾅, 쿵쾅, 귓가까지 울려 대는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를 몇 번이나 들으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암습! 살수!’
수풀 너머에서 목격한 찰나의 번뜩임은 날붙이의 반사광이 분명했다. 아무리 경험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때마침 고개를 들지 않았다면, 전혀 파악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에게 대처할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화를 자처할 뿐이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남궁완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다. 이미 얼굴은 식은땀으로 흥건했다. 극도의 긴장에 밤새 괴롭혔던 고민은 확 날아가 버렸다.
‘어쩌지? 어쩌면 좋지.’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고, 목 뒤는 뻣뻣하다. 그리고 손이 떨렸다. 그래도 검자루에 손가락을 살짝 올릴 수는 있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온몸의 감각을 극도로 곤두세우고서 일어날 상황에 대비하는 것뿐이지 않을까.
과연 얼마나 대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다른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하다못해 가까이 있을 고진무에게 경고라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섣부르게 움직였다가는 날붙이가 날아들 듯했다.
일각이 여삼추라 했던가.
남궁완은 그만 시간이 멈춰 버린 것만 같았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남궁완이 각오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암습자가 아니라, 고진무였다.
“깨어났는가. 남궁 소협.”
“허, 허윽. 은공!”
차분한 목소리가 굳은 남궁완을 깨웠다.
남궁완은 덜컥 숨을 삼켰다. 맹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자, 고진무가 수풀을 헤치면서 걸어 나왔다.
가까이 있는 줄 알았던 고진무였다.
남궁완은 뭔가에 홀린 기색이었다.
분명 불가에 같이 있었다. 그런데 대체 어느 틈에 자리를 옮겼단 말인가. 움직이는 기척조차 듣지 못했다.
남궁완이 깜박 정신을 놓았으면 모를까, 불안과 혼란함으로 내내 눈도 붙이지 못하고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남궁완은 한참 맹한 얼굴로 고진무와 그가 누워 있던 자리를 번갈아 보았다.
“아, 암습자가 아니었습니까?”
“암습? 뭔가를 본 모양이군.”
고진무는 놀라는 남궁완 모습에 쓴웃음을 그렸다.
“예, 예, 분명히 날붙이가 번뜩였는데.”
“암습자까지는 아니고. 지켜보는 자가 있었지만, 잘 처리했으니. 걱정할 것 없네.”
“후우, 그럼 다행이군요.”
남궁완은 안도하여서 한숨을 푹 흘렸다. 그러고는 굳은 얼굴을 겨우 들썩거리면서 애써 웃어 보였다. 한참 가슴 졸이면서 긴장했던 것이 아깝다 싶을 정도였지만, 아무 일도 없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남궁완은 소매 끝을 당겨서 식은땀이 흥건한 이마를 쿡쿡 찍어가면서 땀방울을 훔쳤다.
고진무는 모닥불 앞까지 와서, 남궁완의 흐린 눈동자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곧 안타까운 기색이 스쳤다.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 지경이 되어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니.
“이런, 남궁 소협. 전혀 눈을 붙이지 못한 모양이군. 눈 아래도 그렇지만, 피로가 전혀 풀린 기색이 아니야. 이래서야 길을 나서기 어렵겠는데.”
“아닙니다! 아니에요. 저는 괜찮습니다.”
남궁완은 바로 소리를 높였다. 자신의 상태 때문에 고진무의 발목을 잡는 일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 때문에 벌써 며칠이나 지체한 셈인데. 여기서 또다시 지체할 수는 없어!’
남궁완은 흔들리는 두 눈에 힘을 잔뜩 주고서, 억지로 또렷하게 눈을 떴다.
“아니, 괜찮다니?”
“정말 멀쩡합니다. 은공. 바로 출발하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상태가 아닌데.”
남궁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보란 듯이 가슴을 탁탁 두드렸다. 딴에는 기운을 내는 모습이지만, 고진무는 쓴웃음을 지었다.
남궁완은 어떻게 보더라도 멀쩡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빳빳하게 목을 세웠지만, 무리하는 게 뻔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눈빛은 탁했고, 눈 아래는 퀭하였으며, 낯빛은 창백했다.
고진무는 입매를 비틀고서, 우뚝 선 남궁완의 위아래를 살폈다.
스치는 눈길에 남궁완은 가슴을 더 활짝 펼쳐 보였지만, 그럴수록 무릎이 덜덜 떨렸다.
“남궁 소협, 이대로는 움직이는 것도 어려울 듯하네만.”
“아닙니다. 은공. 가만히 있다고 해서 나아질 상태도 아닌 것을요. 정말로 괜찮습니다.”
남궁완의 태도는 단호하다면 단호했다. 그리고 괜한 고집을 부리는 건 아니었다.
고진무도 남궁완의 속내를 짐작해 볼 수는 있었다.
마음이 어지러워서 눈을 붙이지 못한 남궁완이었다. 무작정 자리를 지킨다고 해서 어찌 쉴 수가 있을까. 그렇더라도 걱정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은공, 저 때문에 더 시간을 지체하실 것 없습니다. 그리고 황산영까지도 그렇게 멀지 않으니까요.”
“흐음.”
고진무는 억지로 눈을 치뜨는 남궁완을 잠시 지켜보았다.
확실히 시간의 여유가 그렇게 많은 상황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길을 이끌어줄 남궁완이 심란함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무작정 길을 재촉하는 것도 못 할 짓이었다.
고진무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짧게 흔들었다.
“남궁 소협. 아무리 멀지 않다고 해도, 바로 산 아래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게…… 그건…… 예…….”
“지금 무릎이 흔들리는 걸 보면, 여기서 비탈길을 넘어가기도 쉽지 않을 듯하니.”
“은공, 그, 그렇더라도.”
남궁완은 더듬거렸다. 무릎이 멋대로 후들거리고 있는 건 사실이었으니까. 와중에도 입매를 일자로 굳게 다물고서 사뭇 고집스러운 눈으로 고진무를 빤히 보았다.
더는 폐를 끼칠 수 없다는 각오이면서, 책임감이기도 했다.
“이런, 이런. 알겠네. 일단 움직이지. 그래도 단숨에 황산영까지 갈 생각은 말게. 가까이 민가가 나오면 거기서 잠시 신세를 지는 것으로 하지.”
“은공…….”
“나야말로 괜찮아. 자네가 더 걱정할 일은 없으니.”
고진무는 손을 펼쳐서, 남궁완이 재차 고집부리려는 것을 만류했다.
적어도 몸 상태에 대해서는 더 말할 일이 아니었다.
두 다리로 온전히 서 있는 것도 한참 신경 써야 할 상태인데, 무슨 먼 길을 나설 수 있을까. 게다가 그곳에 뭐가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고진무가 예상하기에는 열에 여섯, 일곱으로 살정과 관계된 무엇이 있으리라고 보지만, 어쨌든 생각 없이 향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고진무는 바로 주변을 정리하면서 길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이제는 이골이 날 정도로 익숙한 고진무였다. 누구의 도움을 바랄 것도 없이 삽시간에 끝나 버렸다.
남궁완도 거들고자 했지만, 몸도 성치 않은데 뭘 도우려고 하느냐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해가 조금 더 높아졌을 때에, 고진무는 끼니를 챙길 틈도 없이 길을 나섰다.
남궁완은 부축을 받았다. 자신이 앞서서 길을 안내해야 할 터인데, 앞서기는커녕 거꾸로 이렇게 도움을 받고 있다니.
참으로 면목이 없다.
고진무는 시무룩하여서 고개 숙인 남궁완의 안색을 흘깃 보았다.
이 이상으로 마다하는 것은 고집이라는 건 알아서 고진무의 뜻에 따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슴에 주저함이 솔직하게 남아 있었다.
한편, 높은 자리에서 은밀히 지켜보는 한 쌍의 눈이 있었다.
“근래에 찾았다는 인재가 저 아이인가. 황산 남궁가의 아이라고 하더니. 무슨 인연으로 종남 검성과 같이 움직이는 건지 모르겠군.”
눈초리는 남궁완에 대해서도 물론 눈길을 주었지만, 고진무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와가숙의 전충을 처리한 칠흑의 인영이었다.
그는 굳이 나서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은밀한 눈길을 건네었다. 눈초리에 의문은 있을지언정 다른 기세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
산길을 넘어서 해가 중천을 살짝 넘어갈 때까지, 느릿느릿하지만 계속해서 길을 나아갔다.
힘겹게 내려오고도 한참을 나아가야 했다. 근처에 다른 민가가 없었다. 그래도 버려진 빈집은 있었다.
단칸의 초가였다. 허름해서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그래도 두 사람의 처지에는 없는 것보다야 백배 나았다. 무엇보다 참 적절한 시기에 찾았다.
남궁완이 더는 버티지 못할 만큼 기진맥진하기 때문이었다.
억지로 버티면서 험한 길을 넘어온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이쯤 되면, 남궁완도 더는 괜찮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먼지 가득한 실내라도 안에 들어서자마자 벽에 기대어서 스르륵 주저앉았다. 다리뿐만 아니라 온몸이 축 늘어졌다.
고진무는 잠깐 숨을 돌리고서, 늘어진 남궁완을 힐끔 돌아보았다.
헥, 헥, 헥.
아이가 헐떡거리는 숨소리는 가늘었다.
“그래서, 괜찮은가?”
“예?”
남궁완은 퍼뜩 눈썹을 치켜들었다.
이제 막 벽에 기대어서 주저앉은 참인데, 왜 굳이 괜찮으냐고 묻는 것인지.
남궁완은 풀린 눈으로 고진무를 올려다보았다. 문짝이 떨어진 문가에 선 고진무였다. 그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남궁완을 보고 있었다.
남궁완은 한 호흡 늦게나마 그 눈치를 짐작했다. 몸 상태를 묻는 것이 아니었다.
가문의 일이었다.
고진무가 어느 정도 내막을 짐작한 것이다.
까닭에 남궁완은 차마 괜찮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입을 벌렸다가, 선뜻 대꾸하지 못하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지금 면경을 들이대기라도 하면, 분명 자신의 눈동자는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남궁완은 어깨를 바짝 세우면서 숨을 한차례 삼켰다.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괜찮지 않습니다. 그러나 괜찮으려고 노력해야겠지요.”
한숨을 억지로 참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린 나이에도 무인의 심정으로 자신을 다잡으려는 것인지, 인내하는 모습은 대견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고진무는 눈살을 찌푸렸다.
좋게 보는 눈초리가 아니었다.
“남궁 소협, 그래서는 안 되네.”
“예? 예?”
“괴로운 것은 괴로운 것이고, 힘든 것은 힘든 것일세. 그것을 속이려 드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야.”
고진무는 오히려 꾸짖듯이 엄한 어조였다.
가문에서 누군가 자신을 노린다고 하는 것은 분명히 큰 충격을 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외인에 불과한 자신이 어찌 내막을 알 수 있겠는가만, 그 사연이야 어떻든 한 가지는 분명했다. 괜찮으려고 노력하겠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이다.
그렇게 속이고 덮으려고 하면 할수록, 이 일은 짙은 어둠이 되어서 계속 남궁완을 따라다닐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떨쳐낼 수 없는 심마로 남아서, 무인으로서, 검객으로서 나아갈 때에 심각한 벽으로 우뚝 설 것이다.
“으, 으으…… 그, 그래도 참는 것 말고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지 않습니까.”
남궁완은 꿈틀거리는 얼굴을 붙잡고서 겨우 말했다.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고진무는 주저앉은 남궁완에게 다가가서 잘게 떨고 있는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남궁 소협, 울게.”
“예?”
“울어도 괜찮네. 상황이 아니라, 감정을 억누를 일이 아니야.”
“어으, 어으으. 어으으이잉! 히으으!”
흔들림 없이 차분한 목소리에, 남궁완은 제 나이의 아이처럼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 속에는 서러움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