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gnam Sword Castle RAW novel - Chapter 441
442화 대륜불괴(大輪不壞) (3)
대사공은 별부에 홀로 앉아 있었다. 이곳에 들고 나기 위해서는 특별한 술법이 필요하다. 그것은 성물로 유지하고 있었는데, 천외루의 성물이 파괴되었는지, 봉인되었는지, 어쨌든 힘을 잃으면서, 대사공은 이곳에 갇힌 셈이었다.
물론 움직이고자 하면, 얼마든지 몸을 뺄 수 있었지만, 대사공은 허망함에 의욕을 다 잃은 셈이었다. 그는 빛을 잃고, 말라 버린 신지수반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수반이 파괴될 정도의 외법이라면, 대사마는 성륜교를 저버렸을 것이다.
“성륜교를 따르던 신도가 몇이었지?”
본산에만 기천을 헤아리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들 전부가 외법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외법에는 정도가 없으니.
단지 목숨만 빼앗았을 리가 없었다. 영육 일체가 전부 집어삼키면서, 또 다른 성물을 이루고자 하였을 테니까. 그런 외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차마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성마 아래, 본종의 순혈인 자신 또한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건만, 대사마에게 그런 한계는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속내를 헤아릴 수 없기에 두려운 자였다. 어찌하여서 그것을 몰랐을까.
대사도가 신검에게 무너졌을 때에, 대사마는 그때를 기회로 삼았다.
당시 대사도가 이루어 낸 교세는 지금 ‘교’의 수배에 이르는 전력이었건만, 그 전부가 신검의 검 한 자루에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았던가.
자신 역시 신검을 피하지 못하고, 상당한 부상을 안아야 했다. 이제는 아물었다고 하지만, 후유증은 아직도 남아 있을 정도였다.
까닭에, 대사공은 대사마가 나서서 ‘교’를 수습하는 일에 순응할 뿐이었고, 그를 의심할 여유가 전혀 없었다. 그때의 시간이 천추의 한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다른 것은 두렵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 하나가 죽고 사는 것이야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성마를 복권하는 대의에 전혀 도움되지 못하고, 대사마의 사심에 속절없이 희생되는 것이 분명하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후우…….”
한숨이 가늘게 흘렀다.
괴로움이 눈앞을 어지럽게 했다.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그저 목을 늘어뜨린 셈이었다.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 사방신군은 이미 유명무실이고, ‘교’의 직속인 사자, 사령은 태반이 무리한 계책으로 잃었다.
외부 인사인 사령은 아쉬울 바가 없다지만, 사자, 특히 직속의 팔대사자를 잃은 것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내가, 내가 그들을 돌보았어야 했는데. 그들 또한 성마의 이름을 받드는 자들이었건만. 어찌 허무하게 쓰러지는 것을 방치하였던가.”
핑계는 여럿이었지만, 결국 그들 또한 대사마의 외법에 희생되는 제물에서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참 뒤늦은 일이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대사마의 행보는 참으로 수상했다.
대사마가 사심을 따로 품었다면, 대관절 무엇일까.
대사공은 이제까지 이어졌던 온갖 작전과 희생을 차차 돌이켰다. 의아함이 의심으로 물들었고, 이제는 확신이 되어서 답을 찾고자 고민했다.
부귀영화를 바란다면, 이제껏 키워 낸 성륜교를 내던지는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였다.
성마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남은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삼공은 본래에 비인지경을 진즉 넘어서서, 초월경을 보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 벽을 넘을 수 있다면, 그때부터는 진정 신인의 반열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을 터였다.
대사도야 말로, 그 경계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었지만, 결국 진정한 신인에 이른 신검을 감당하지 못했다.
“아, 그렇군. 대사마. 자네는 신인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로군.”
성마와 신검이 올라선 자리에, 그 또한 오르고자 하는 것이다.
대사공은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나 또한 노리고 있겠군.”
별부에서 홀로 앉아 고민하고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오래 남지 않을 듯했다.
착잡한 심정이 앞섰다. 그때, 대사공의 등 뒤에서 기이한 일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별부로 드는 결계가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대사마인가.”
참 발 빠른 자이다. 헛웃음을 삼키면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막상 마주한 것은 생각과는 달랐다. 삼공을 제외하고 별부로 들 수 있는 것은 오직 성물을 바탕으로 한 술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면, 누가 있어서 천외천의 아득한 산봉으로 접근할 수가 있을까.
그런데 지금처럼 꾸물거리면서 제대로 길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대사마의 움직임은 아니다. 그렇다고 성물을 잃은 천외루에서는 불가능한 일일 텐데.
“수상하군, 힘은 분명히 있고, 정해진 길을 따르지만, 제대로 길을 열지 못한다는 것은…….”
대사공은 기이한 상황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지수반 위로 은사가 얼기설기 얽혀 있고, 그에 은종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태반이 빛을 잃어서, 검게 물들어 있었다.
‘교’에서 관리하는 온갖 마물과 신비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기물이다. 이것 또한 천외루에 둔 성물의 힘을 빌려서 비로소 공능을 발휘하였던지라, 성물의 힘이 사라진 지금, 그것 또한 빛을 잃고 보통의 은방울만도 못한 꼴이었다.
그런데 외부의 파동이 은사를 흔들면서, 매달린 은구슬에서 찌링찌링,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탁한 소리였지만, 대사공은 고민에서 벗어나서 고개를 돌렸다.
그는 파동의 중심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공간이 심상치 않게 꿈틀거렸다. 별부로 드는 길이 흔들리는 뜻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일어나고 있었다.
“저것은 본루의 공간일 텐데…….”
성물을 잃은 지금 열릴 리가 없었다. 그는 차분한 신색으로 반응하여서 정자 앞에서 공간이 열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불안정하지만, 공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곳과 저곳의 경계가 모호한 그 틈에 한 줄기 검광이 치솟았다. 두터운 장막을 가르듯이 허공이 갈라지면서 누군가 인영이 불쑥 파고들었다.
언뜻 보기에도 상당한 수준의 법력을 지닌 고검이었다. 그렇게 들어선 자는 자신이 검을 휘둘렀음에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깨닫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어? 어어?”
“허어…….”
당황한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그를 보면서, 대사공은 쓴웃음을 그린 채, 묘한 한숨을 흘렸다.
허공을 베어내면서 별부로 뚝 떨어지다시피 내려선 것은 젊은 검객이었다.
그렇다고, 대사공은 그를 가볍게 여길 수는 없었다.
“모습을 보아하니. 근래에 ’교‘의 행사를 무참히 좌절시켰던 그 검객이군. 종남의…….검성이라 하였던가? 이런 식으로 마주할 줄은 몰랐네.”
“대사……마이십니까?”
“아닐세.”
“그럼……천외루의 대사공이시겠군요.”
“호오.”
대사공은 약간의 감탄을 담아서 새삼 고개를 들었다.
당황하는 자신을 빠르게 다잡은 젊은 검객, 그는 정명한 검기를 품었고, 두 눈에는 정광이 짙었다.
무엇보다 정안을 타고난 자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설픈 술법으로는 눈가림조차 할 수 없겠군.’
고진무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일단 별부에 들어섰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했다. 그렇다면 넋을 놓을 때가 아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마주하고 있는 삼공의 일인, 대사공은 다른 적의를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당장 목숨의 위협을 걱정할 것까지는 없었다.
고진무는 청명검을 거두고서, 자신이 불쑥 튀어나왔던 자리를 잠깐 곁눈질로 살폈다.
성은장 지하의 천외루 비처로 연결되는 공간은 싹 사라진 다음이었다.
“어찌 천외루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자네 또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던 것 같군.”
“사실은. 예, 그렇습니다.”
고진무는 괜한 허세를 부리기보다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기왕에 이리된 것, 고진무는 바로 마음을 다잡고 진지한 기색으로 말했다.
“대사공, 성마께서 ‘교’의 행사를 전혀 바라지 않으십니다.”
“응? 지금 뭐라 하였지?”
대사마는 고개를 비틀었다. 차분한 기색이 딴판으로 돌변했다.
하얀 얼굴이 파랗게 물들면서 서릿발처럼 냉랭한 기운이 스멀스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감히 성마의 이름을 함부로 꺼내다니.
지금 쇠락했다고 하지만, 대사공 역시 천지를 희롱하는 초월자 중에서도 극의에 이른 자였다. 그는 격동하는 것만으로도 일대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였다.
아닌 게 아니라, 고진무는 좌우에서 보이지 않는 철벽이 덜컥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크게 반응할 정도는 아니었다.
고진무는 별부라고 부르는 선경 속의 정자에서 꼿꼿하게 정좌를 취하고 있을 뿐이었다.
드드드드…….
오히려 고진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대사마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서 더 힘을 쓰면, 정자가 무너질 판이었다. 비록 빛을 잃고, 힘을 잃었다고 하지만, 성마께서 남긴 여러 신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진무가 아니라, 정자의 상태를 봐서라도 함부로 힘을 쓸 수는 없었다.
대사공은 동요한 자신을 억지로 다잡았다. 그래도 정자는 물론 고진무를 에워싼 기파를 거두지는 않았다.
섬뜩한 눈빛이 고진무를 더욱 압박했다.
“검성,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오. 마치 직접 뵈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놀린다면…….”
“예. 아주 신신당부하시더군요.”
“……뭣?”
서늘한 눈빛이 크게 동요했다.
고진무 역시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처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담담한 기색이었다. 그는 슬쩍 한숨을 흘렸다.
신검의 뒤에서, 굳이 전언이 아니더라도 심상으로 신신당부하였던 성마의 전언이 새삼 떠오른 탓이었다.
“으으…….”
다시 생각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당시의 압박에 비하면 지금 대사공이 드러나는 마도의 압박정도는 동요할 바가 아니었다.
고진무는 곧 숨을 삼켰다.
“신검이 계시는 곳에서, 성마께서 남기신 화신을 마주한 바가 있습니다.”
쿠쿵!
땅을 들썩거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별부라고 불리는 일대 전부가 이대로 무너져내릴 것처럼 거칠게 요동쳤다. 정자가 좌우로 뒤틀리면서 우직, 우지직, 불안한 소리를 냈고, 빼곡하게 걸려 있는 은사, 은령이 뒤엉켰다.
소란의 중심에는 대사공의 분노가 있었다.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그는 마주한 고진무를 향해서 하얗게 타오르는 눈빛을 발했다.
천산에서 쫓겨났다고 하지만, 그는 성마로부터 태어난 자였다. 그토록 간절하게 성마를 찾았건만, 아무런 응답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 그분께서 눈앞에 있는 하잘 것 없는 자에게 친히 모습을 드러내셨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진무는 자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불붙어 버린 대사공의 분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주변을 무너뜨리면서, 자신 또한 집어삼킬 것처럼 분노했다.
이것은 무공의 경지로 논할 일이 아니었다.
고진무가 대사공의 세세한 내력까지 헤아릴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성마의 가호와 성혈을 직접 받은 순혈의 종복이라는 건 분명했다.
그렇더라도, 막상 자신에게 직접 위해를 가할 수 없다는 건 분명했다.
따지고 보면, 고진무는 지금 성마의 전언을 직접 들고 온 셈이지 않은가.
잠깐 정신이 나갔더라도, 대사공은 고진무를 성마의 사자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뒤틀리던 정자는 그대로 무너질 듯하다가, 돌연 제자리를 찾아갔다. 뒤엉키던 은사도 알아서 실타래가 풀려나가더니, 멀쩡하게 줄을 늘어뜨렸다.
정자를 중심으로 한 별부의 들썩임도 마찬가지였다.
티끌 하나 남기지 않았다.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것처럼 기이한 광경이었다.
고진무는 그것을 유심히 보았다.
‘이것이 또한 초월경이구나…….’
별부 일체가, 대사공의 의지 아래에 완벽하게 놓였다는 뜻이었다.
고진무는 휘휘 주변을 새삼 둘러보았다.
어렵게 길을 내면서 뛰어들기는 했지만, 다른 술법적인 공간은 아니었다. 심상에 든 것처럼 허상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속세와도 거리가 멀었다.
“후우…….”
가는 숨소리가 맥없이 흘러나왔다. 고진무는 그 숨소리에 부랴부랴 대사공을 똑바로 마주했다.
대사공의 지친 속내가 닿기라도 하였는지, 주변이 한층 어둑어둑해지고, 잿빛의 운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런 변화야 어떻든, 대사공은 자신의 속내를 전혀 감추지 않았다. 그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검성, 그래. 자네는 자신을 증명했군. 내 심사가 뒤틀렸다고 해서, 자네를 계속 핍박한다는 건 옳은 일이 아니지.”
분노에 몸을 떨었던 모습은 사라졌다. 대사공은 어두운 얼굴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염치없는 일이네만. 성마께서 남기신 다른 말씀은 없으신가?”
간절하기까지 하다. 뜻을 따로 세운 대사마와 달리, 대사공은 여전히 성마만을 보고 있었다.
고진무는 새삼 정좌한 자세를 바르게 하고서, 고개를 세웠다.
“성마께서는 모든 것이 의미 없다 하셨습니다. 하계를 소란케 하는 것으로 자신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부, 불편? 우리가 성마를 불편하게 하였다는 건가?”
눈동자가 좌우로 정신없이 요동쳤다. 믿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차마 고진무를 책망하는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대사공은 연신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중얼중얼했다.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던가.
대사공은 멍한 얼굴로 고진무에게 물었다.
“성마께서는 정녕 아무렇지도 않으시다는 건가?”
“으음…… 아무렇지도 않다기 보다는…….”
고진무는 잠깐 눈동자를 굴렸다. 북방의 하늘에서 신검을 붙들고 있는 성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즐기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
고진무는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성마께서는 지금의 휴식을 굉장히 기껍게 여기시더군요.”
“휴식, 휴식인가.”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사공은 더없는 충격을 받아서,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벌린 채,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황망함이 그를 흔들었다.
고진무는 동요가 눈에 잡힐 지경이 되자, 머쓱한 기색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 정도는 당황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을 줄이야.
‘이런 상황은 예상 못 했는데.’
따지고 보면, 애초에 별부로 들어서는 상황 역시 생각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