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on military officer establishes Balhae RAW novel - Chapter 107
107화
황진의 선택
병력을 나눠 각개 격파하는 태건의 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전 병력이 험로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처럼 연대 단위로 움직이는 전략이 더 효율적이었다.
태건이 이끄는 제1연대는 남쪽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렸다. 1연대는 노토 본거지, 즉 태평사 바로 남쪽에 자리한 동량동에 이어 모로, 죽돈, 파오달 등 군소 노토 부락들을 차례로 점령하며 두만강까지 빠르게 나아갔다.
물론 이 마을들은 모두 비어 있었다. 로툰이 남쪽으로 퇴각하며 주민까지 모두 데려갔기 때문이다. 태건은 이들 마을마다 동행한 김어소라의 아치랑귀 병력을 백 명 단위로 남겨 놓았다.
이제 태건 군은 두만강 변, 곡강 하구에 자리를 잡은 파오달 부락까지 점령한 후, 동북쪽에 자리한 보이하 부락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태건은 파오달 부락과 두만강 강변에 숙영지를 만들게 한 다음, 지휘관과 함께 강변을 따라 동쪽, 즉 하류 쪽으로 나아갔다. 파오달에서 보이하까지 거리는 대략 6㎞인데, 그곳으로 가려면 비좁은 두만강 강변길을 통과해야 한다.
“이곳 강변은 지형이 험해 강변을 따라 큰길을 닦기도 어렵겠네요.”
송찬황이 길을 가며 말했다.
“그래도 도로를 내야지. 앞으로 강변을 따라 정착촌이 들어설 테니까.”
두만강이 굽이쳐 흐르는 이 산악 지대에 좁게나마 평야가 곳곳에 펼쳐져 있어 농민들이 충분히 정착할 만했다. 그러므로 두만강을 따라 정착촌을 조성하려면 마을들을 연결할 도로를 반드시 내줘야 했다.
이윽고, 일행은 보이하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랐다.
“오오! 여긴 정말 괜찮군요.”
송찬황은 주변 환경을 보고 탄성을 터트렸다.
“그렇군. 강변 평야가 넓은 데다 배후의 구릉지 또한 주변에 비해 나지막하니, 큰 마을이 들어설 만해.”
“그런데 저들은 아직 도주하지 않았군요.”
“후후! 그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있지.”
“예?”
“로툰에게 반기를 들지 않았을까? 저 부락 추장 이름이 가단이었나?”
“허허! 그걸 어찌 다 기억하시는지요?”
“그놈이 전에 가시툰과 함께 양영만동보로 쳐들어왔거든.”
“아, 그럼 크게 패하고 생각을 고쳐먹었을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 있지. 게다가 조만간 우리 제2연대가 하류 쪽에 나타날 테니까.”
제2연대에서 보낸 전령이 오늘 도착해, 헐연평을 점령한 사실을 전해주었다. 그러므로 지금쯤이면 화상가사 부락 인근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컸다.
“어? 움직임이 바빠졌는데요?”
보이하 부락을 굽어보던 송찬황이 마을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아차렸다.
“우리 군이 강변에 도달한 사실이 알려졌나 보군.”
역시 태건의 예상대로 깃발을 든 기병 몇 명이 목책을 나와 파오달 부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내려가서 잡을까?”
“하하! 좋습니다.”
태건 일행은 바로 언덕을 내려와 보이하 부락에서 나온 기병을 막아섰다. 깜짝 놀란 기병에게 경현호 부령이 나서서 여진어로 물었다.
“어딜 가느냐?”
“누, 누구시오?”
경현호가 일행의 정체를 밝히자 기병들은 즉시 말에서 뛰어내린 다음, 무릎을 꿇었다.
“마을의 수장, 가단님이 보냈습니다. 우리 보이하 부락은 조선군에 항복하고자…….”
“조건은?”
태건이 사자의 말을 끊고 물었다.
“그, 그게…….”
태건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사자는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가단 추장을 살려 달라?”
“그, 그렇습니다. 우린 노예로 잡은 조선인과 오도리 사람들을 이미 석방했습니다. 아울러 그전에 행한 허물을 뉘우치고 있으니 부디 우리 수장의 생명을 보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알겠다. 그럼 무장을 해제하고 기다려라. 열흘 내에 하류 쪽에서 우리 군이 올 테니까.”
“예? 파오달에 주둔 중인 병력이 오는 게 아니었습니까?”
“또 다른 우리 군이 화상가사와 무을계를 점령하며 여기로 오고 있지.”
“항복의 표시로 말과 무기를 이곳으로 가져오게.”
송찬황이 나서서 추가할 조치에 대해 알려줬다.
“아, 알겠습니다. 그럼 돌아가서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사자가 돌아가자 송찬황이 물었다.
“저 노토 놈들은 인성이 좋지 못해 언제 돌변할지 모릅니다. 가단 추장 정도는 포로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런 작은 부락의 추장을 잡아 뭐하게?”
“그, 그래도 분탕질 치면 골치 아프지 않습니까?”
“노토 놈들이 노략질을 일삼는 이유는 딱 하나다. 먹을 게 부족해서 그러거든.”
“맞습니다. 이곳 두만강변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내하 산골은 그렇지 못해 늘 놈들이 경성과 길주, 갑산은 물론 단천 북부까지 와서 노략질하고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난 노토 부락 주민을 대부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킬 생각이네.”
“예? 그 많은 여진인을 이주시킨다고요? 어디로…….”
“공업단지가 조성되고 있는 곳으로. 조산만과 덕산, 슬해항, 국화동, 안화 등지에 말일세.”
“그럼 공장 일꾼으로 쓸 생각입니까?”
“어차피 농사에 소질도 없는 자들 아닌가? 가족 구성원 중 몇몇만 공장에 가서 일하면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게 해 준다면, 오히려 저들에게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저들을 도르기 비라나 안출라쿠 산지와 같은 척박한 땅에 그대로 살게 하면 또 노략질을 일삼을 테니, 그걸 방지해서 좋고.”
“그럼 저들을 내보낸 후에 조선인을 들이실 생각입니까?”
“적은 인구만 정착시키면 아무리 산골이라도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지 않겠어? 게다가 미래에 광산까지 개발되면 더욱 형편이 좋아질 테고.”
안출라쿠 산지, 즉 오랑캐령 산지는 금광이 많이 분포해 있다. 사금 채취가 가능한 하천도 꽤 많았다. 그리고 도르기 비라의 중심지 삼봉평, 미래의 무산은 훗날 노천 철광으로 유명해질 곳이다. 철광석의 품위가 다소 낮다는 문제는 있지만, 매장량만큼은 어마어마해 추정 매장량이 30억 톤에 달하는 곳이었다.
* * *
황진과 함께 진주성으로 들어간 병력은 관군 육천과 의병 2천 8백으로, 둘을 합쳐 대략 9천 정도였다.
황진은 의병장 김천일 ― 수원 부사를 지낸 관리 출신으로 크고 작은 전공을 세워 창의사란 군호를 받음 ― 과 함께 문루에 올라 진주성으로 들어오는 백성들의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비록 창의사님과 진주성을 지키기로 결의하였으나, 저 백성들이 줄지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소.”
“그게 무슨 말이오? 생각이 바뀌다니.”
“이곳을 치러 몰려오고 있는 왜적이 무려 십만입니다.”
“그, 그건 알고 있소. 그럼 혹시 겁이 나서…….”
“날 그렇게 보시오?”
황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 버리자, 김천일이 급히 사과했다.
“미안하오. 말이 헛나왔군.”
“그보다… 왜적과 싸워 이길 수 있으리라 봅니까?”
“휴! 모르겠소. 하지만 우리가 목숨을 바쳐 왜적의 수를 줄여 준다면 그 또한 나라를 위하는 길이 아니겠소?”
“수를 줄이는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끝내 함락당할 겁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럼 왜군이 저 백성을 가만히 놓아주겠소? 그 잔인하고 흉포한 놈들이?”
“…몰살당하겠지.”
“게다가 삼천에 달하는 의병은 백성 아닙니까? 우리 관군이야 그 본분이 나라를 지키다 죽는 일이라 할 수 있지만 의병이 그럴 의무가 있습니까?”
“음…….”
“일만에 가까운 우리 병력도 매우 귀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 모두 섬멸당하는 것보다, 병력을 보존해 왜적의 북진을 저지하고 호남을 방어하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지금 황진의 얘기가 바로 부원수 선거이 장군이 진주성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내세운 논리였다.
선거이 부원수의 끈질긴 설득으로 도원수 권율도 결국 진주성 입성을 포기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훗날 선거이 장군은 이순신과 권율 장군에 견줄만한 공을 세웠음에도 1등 공신 자리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황진의 말을 듣자, 김천일의 생각이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그럼 왜 영감은 진주성으로 들어왔소?”
“저 백성들을 구하려고 왔소.”
진주성이 난공불락의 성이라는 인식 때문에, 주변 고을에 사는 주민들이 줄을 지어 진주성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황진은 그 사실을 떠올리고 일단 진주성으로 들어온 것이다. 실제로 전투 직전까지 2만 4천 명의 민간인이 들어왔다고 한다.
실제 역사에서 진주성이 함락되며 이들도 결국 몰살당하게 된다. 태건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이런 끔찍한 비극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황진과 마지막으로 만난 자리에서 ‘백성을 위하는 게 먼저’라고 조언해 준 것이다.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이가 있어요. 그가 오늘의 일을 예견하고 내게 귀띔해 주었지요. 명분보다 실리를 중시하라, 백성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실리는 없다. 백성은 곧 신하 된 자의 본분이라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오면 이 말을 떠올려달라고 부탁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인 것 같소.”
“허, 그래요? 그가 누구요?”
“태건이오.”
“태건이라…….”
김천일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혹시 역적의 말이라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소?”
“아, 아니오. 역적이라니요? 함경도 방면의 왜적을 물리친, 큰 공을 세운 장수가 아닙니까? 간신배들이 모함해서 역적으로 몰린 게지.”
“간신배… 후후! 그럴지도 모르지.”
일선에서 왜적과 싸우는 조선 장수 중에 태건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태건의 활약상이 소문으로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들도 조정에 얼마나 많은 간신배가 도사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국왕까지 대놓고 욕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명령이 여러 번 도착했지만, 임금을 탓하기보다 간신 탓이라며 원망을 떠넘기기 일쑤였다. 이 또한 유교적 가치관 탓이었다.
“그러면 경상우병사도 설득해야 하지 않습니까?”
경상우병사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의 약자로, 황진과 같은 계급이었다.
“그래야죠. 끝내 따르지 않을 경우, 우리가 병력을 데리고 성을 나가겠다면 그도 어쩔 수 없이 따를 겁니다.”
현재 진주성에 들어온 지휘관 중 꽤 많은 병력을 보유한 축에 속하는 이가 바로 황진이었다. 그가 지휘하는 병력이 대략 7백이었다. 김천일은 3백이고 경상우병사 최경회는 5백이었다. 아울러 수백 명 단위의 여러 의병 집단으로 진주성 수비군이 구성된 상태였다.
“그럼 늦기 전에 빨리 경상우병사부터 설득합시다. 그가 따르면 진주 목사나 사천 현감, 김해 부사도 따르지 않겠어요?”
“그래야지요.”
두 사람은 의기투합한 다음, 곧바로 최경회를 찾았다.
최경회 역시 김천일과 마찬가지로 전직 관리였다가 의병장으로 나서 큰 공을 세우고 경상우병사란 높은 직위에 오른 인물인데, 그 또한 문관 출신이었다.
충청병사 황진의 설득에 처음 최경회는 크게 반발했다.
“난 경상우병사요. 경상우병사가 진주성을 버리는 결정을 하라니, 그게 말이 되는 얘기요?”
하지만 황진은 물론 김천일도 간곡히 설득하자 그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성이 함락되면 왜적은 필시 모든 장졸과 백성을 죽이고 시신마저 훼손하겠지. 우리 장수들은 목이 잘려 왜의 태합에게 보내질 테고, 이만을 넘는 백성도 비슷한 처지가 되겠지요. 그래도 좋소?”
“그, 그래도 내 본분은…….”
“이미 도원수 대감도 개죽음이라 여겨 진주성으로 들어오지 않았지요. 경상도 땅에 있는 명군도 그렇고.”
“휴…….”
최경회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황진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난 충청도 병력을 이끌고 성을 나가겠소. 아울러 성내 백성에게 일러 빨리 성을 빠져나가라 알리고, 병력을 성문 밖에 배치해 백성들의 진입을 막겠습니다.”
“자, 잠깐…….”
황진이야말로 진주성 최고의 전력이었다. 그와 그의 병력이 빠져나가면 진주성은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된다. 또 실제 전투에서, 황진이 살아 전투를 지휘했을 때만큼은 나름 훌륭하게 방어했지만, 그가 왜 조총병에 저격당해 전사하자 바로 다음 날 함락당하게 된다. 그런 사실만 보더라도 황진이 얼마나 뛰어난 무장인지 알 만했다.
“휴! 그럽시다. 두 분의 뜻에 따르지요. 그럼 서둘러 백성부터 내보내고…….”
결국 최경회도 황진의 설득에 넘어왔다.
“훗날 장계에 분명히 쓰십시오. 내가 고집부려 할 수 없이 따랐다고.”
황진은 선물을 주듯 최경회가 걱정하는 뒤탈도 어느 정도 감해 주었다. 그는 이 일로 온갖 불명예를 뒤집어쓸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결국 황진의 결단으로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고, 삼만이 넘는 조선인이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