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rina's Last Days RAW novel - Chapter (114)
>114 화>
“사람한테 실험해본 적이 없는 일이고 또한, 전제조건이 까다로워서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도 안 돼요.”
“네, 잘 새겨 둘게요. 그러니 편하게 말하세요, 페리얼.”
카리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페리얼을 보며 옅게 웃어 주었다. 밀라이언 역시 팔짱을 낀 채 묵묵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참,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야.’
페리얼이 쓰게 웃었다. 싫어하려고 해도 싫어할 수가 없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다. 제 친우도 그가 마음을 준 다정하고 상냥한 여인도.
“나는 하론으로 몇 가지 가설을 세웠어요. 보통은 짐승으로 실험 했고 리스크가 크지 않은 가설은 저를 매개체로 사용해 그걸 전부 실험해 봤습니다.”
“네?”
“그 중에 성공을 한 가설이 몇 개 그리고 실패한 가설이 몇 개 입니다.”
“……페리얼을 매개체로 썼다고요?”
“가설의 확인을 위해서…….”
“페리얼 미쳤어요?”
“네? 미쳤…….”
“무슨 문제가 있을 줄 알고 그런…….”
카리나가 답답한 듯 숨을 들이켜며 말을 멈췄다. 확 일그러진 표정이 불쾌감을 고스란히 드러 냈다. 그녀의 거친 언사에 페리얼이 저도 모르게 입을 꾹 다물었다.
‘밀라이언 녀석한테 배웠군.’
페리얼의 시선이 불신을 가득 담은 채 밀라이언을 향했다. 페리얼의 시선을 받은 밀라이언이 모른 척 시선을 슬쩍 돌린다.
“제 몸만 소중하고 페리얼의 몸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잖아요. 날 위해 주는 게 고맙긴 하지만 그게 페리얼의 희생 위에 만들어지는 건 싫어요.”
“알겠습니다. 조금 특수하게 실험을 해 볼 게 있어서 그랬던 것 뿐이에요. 이젠 안 하겠습니다.”
카리나의 매서운 시선에 페리얼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라고 위험성을 끌어안는 것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페리얼의 대답에 카리나가 순순히 물러났다.
“어쨌든 실험한 것 중에 그나마 창조자에게 적용할 수 있는 가설은 딱 한 개가 있었습니다.”
“한 개요?”
“네, 창조자들은 기적의 대가로서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지불합니다. 나빠진 시력을 좋게 한다거나 둔해진 감각을 되돌리는 거랑은 달라요.”
페리얼의 설명에 카리나가 수긍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나빠진 시력이나 무뎌진 오른팔의 감각과는 다르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마다 누군가 자신을 어딘가에 걸어 놓고 손끝부터 아주 조금씩 서걱서걱 잘라 나가는 느낌이었다.
“다른 예술병과는 그 궤가 확연히 다르다는 걸 둘 다 알고 있지요?”
페리얼이 말했다. 그는 몇 차례나 말을 멈추고 또다시 단어 고르기를 반복했다.
언제나 당당하고 말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던 그로선 무척이나 드문 행동이었다.
“몇 가지 가설과 실험을 통해 전 이곳에 하론을 품은 마수들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대충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한참이나 망설인 끝에 페리얼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 생각에…… 하론을 품고 있는 마수들은 원래 한 번 죽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죽었다뇨?”
“말 그대로입니다. 하론은 생명의 원천이더군요.”
페리얼의 말에 카리나의 미간이 좁아졌다.
생명의 원천이라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녀의 고개가 채 기울어지기도 전에 페리얼이 다시 입을 열어 왔다.
“이곳의 마수들은 무언가를 먹고 하론을 몸에 축적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몸에 하론을 축적한 마수가 죽으면 그것은 소생합니다.”
“……뭐라고?”
반문한 것은 밀라이언이었다. 그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페리얼을 바라봤다.
페리얼이 밀라이언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자네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매번 시체의 산이 쌓일 정도로 토벌하는데 마수가 거의 비슷한 숫자로 매년 돌아온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어?”
“…….”
“내 결론에 따르면 하론을 품은 마수들은 소생하고 있네.”
“말도 안 되는 소리. 죽은 게 어떻게 살아 돌아오지?”
밀라이언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는 노릇이다.
“나도 믿지 않았어. 하지만, 동물에게 억지로 하론을 품게 하고 그것을 죽였어. 그리고 그대로 가둬 뒀지. 사체는 썩지 않고 일주일 뒤 살아서 움직였어.”
“나보고 그녀를 죽이라는 소리는 아니겠지.”
험악한 목소리가 페리얼에게 날 카롭게 쇄도했다.
페리얼이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끔찍한 짓을 시킬 수 있을 리가 없다. 애초에 그가 그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 하지도 않는다.
“첫 실험체는 쥐였다. 두 사람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난 몇 번이나 쥐를 죽였어. 그리고 다섯 번째 죽였을 때 놈은 살아 돌아 오지 않았다.”
“……죽었나?”
“그래. 시체는 썩고 쥐는 죽었다. 살아 돌아오는 일은 없었어.”
페리얼이 입을 닫자 무거운 적막이 내려앉았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카리나가 꼭 쥐었던 주먹을 조심스럽게 폈다.
“그리고 해부해 보니 내가 억지로 품게 한 하론이 없더군.”
“……결론만 말해.”
밀라이언의 재촉에 페리얼이 입을 열었다. 벌어진 그의 입술이 긴장을 담은 채 천천히 달싹였다. 밀라이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페리얼의 멱살을 붙잡았다.
“장난치나?”
“자네는 지금 이게 장난으로 보이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페리얼이 굳은 표정으로 나직하게 대꾸 했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밀라이언이 이를 악물었다.
“밀라이언.”
카리나가 손을 뻗어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페리얼의 멱살을 붙잡았던 밀라이언의 손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토닥이듯 밀라이언의 손을 쓰다 듬어 준 카리나가 이번엔 페리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시선을 받은 그가 말없이 자리에 선 채 주먹을 꽉 쥐었다.
“페리얼,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인 거죠?”
“……그렇습니다.”
“페리얼이 최선을 다한 일인데 왜 고개를 숙여요.”
“…….”
페리얼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도 않았으며 밀라이언이나 카리나를 바라보는 일도 없었다.
카리나가 페리얼에게 다가가 양 손으로 그의 볼을 꾹 눌러 들어 올렸다. 페리얼의 눈이 동그래졌다.
“난 괜찮아요. 하지만 페리얼이 말해 준 건 고민을 좀 해 볼게요. 실패할 가능성도 있는 거죠?”
“네.”
“혹시나 실패하면 나는 거기서 끝이겠죠?”
“…….”
담담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물음에 페리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카리나도 밀라이언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카리나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페리얼. 전요, 윈스턴을 만나고 밀라이언을 만나고 페리얼을 만나고 북부 사람들을 만나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아요.”
“…….”
“이곳에 와서 따뜻함을 알고 다정함을 알고 상냥함을 알았어요. 존중이란 게 무엇인지도 깨달았고 제대로 된 어른을 만났고 첫 친구도 생겼어요.”
카리나가 페리얼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눈을 접어 부드럽게 웃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였지만 제대로 웃는 것처럼 보였는지 잘 모르겠다.
“평생 꿈만 꿔 왔던 것들이 현실로 다가왔어요.”
“네.”
“지금이 너무 행복하고 꿈만 같아서 당장 페리얼의 가설에 도전 할 자신이 없어요.”
“이해합니다.”
페리얼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쉽게 하겠다고 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누가 봐도 이 일은 무척 큰 위험성을 짊어지고 가는 일이다. 그럼에도 전해야 할 것만 같았다.
또다시 적막이 내려앉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무거운 적막이었다.
카리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굳어 있자 밀라이언이 팔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뒤에서 휘감았다.
“카리나.”
“네?”
“언제까지 저놈 볼을 붙잡고 있을 생각이야? 손 더러워진다.”
그리고는 덜렁 들어 올려 의자에 앉히곤 손수건으로 슥슥 손을 닦아 냈다. 어찌나 꼼꼼하게 닦아 내는지 지켜보던 페리얼의 얼굴이 기어코 짜증스럽게 구겨질 정도였다.
“……자네보단 내가 더 깨끗할 거라고 장담하지.”
악문 잇새로 나오는 목소리에 밀라이언이 코웃음을 치며 그를 돌아봤다.
“난 매일 씻는다.”
“난 아침저녁으로 씻는데.”
“하루 세 번 씻진 않지 않나.”
“당연하지. 인간이라면 하루에 네 번은 씻어야 하는 거 아니겠나? 6시간마다 씻는 건 기본이지.”
밀라이언과 페리얼의 유치한 공방에 카리나가 애꿎은 눈을 깜빡 였다.
페리얼의 말에 대답하려 입을 열려던 밀라이언이 카리나의 살짝 좁아진 미간에 냉큼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내가 전해 줄 말은 이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페리얼의 시선이 밀라이언에게 돌아갔다. 밀라이언이 한쪽 눈썹을 쓱 치켜들었다.
“내가 언젠가 말했지? 전제 조건이 까다롭다고.”
페리얼의 말에 밀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 전쯤 주둔지 근처에서 처음으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때의 일이라면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하론을 분석한 결과, 하론에도 등급이 있더군. 카리나의 팔찌를 만든 것이 3등급 정도라고 치면 이 정도가 2등급이야.”
페리얼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놨다.
새끼손가락 마디만 한 정도의 작은 하론이었으나 그 빛깔은 다른 하론들과 차원이 달랐다. 돌멩이가 아니라 순도 높은 보석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게 1등급이지.”
페리얼이 손바닥에 쥔 것을 펴 보였다. 그것은 말 그대로 보석이었다. 빛을 받아 다채롭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태양 빛이 반사되어 산란하며 흩어지는 광경이 경이로웠다.
“마치 오로라 같군.”
“오로라요?”
“가끔 겨울의 끝 하늘 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야. 하늘에 다양한 색의 얇은 장막이 휘날리는 듯 보이지.”
카리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밀라이언이 옅게 웃으며 마저 입을 연다.
“올해는 그리 춥지 않아서 무리 였지만 북부 기준으로도 혹한기 라고 불릴 때 드물게 볼 수 있어.”
밀라이언의 설명을 들으며 그녀가 시선을 다시 하론으로 옮겼다.
그림으로 남기고 싶은 너무도 아름다운 현상이 아닌가. 카리나의 얼굴이 한 차례 맑아졌다.
“이 정도의 하론은 나도 처음 보는군.”
“무척 작아서 발견하기가 힘들었을 거야. 나도 없는 줄 알고 그 사체를 버리려다가 운 좋게 발견했거든.”
페리얼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밀라이언이 카리나를 제 무릎에 앉힌 채 낮은 한숨을 내 쉬었다. 카리나가 손을 뻗어 더듬더듬 밀라이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 상등품의 하론이 한 개 더 있었어. 이것보다 훨씬 작은 크기였지. 그런데 그걸 품은 짐승은 스무 번도 더 넘게 소생 하더군.”
“그게 있으면 되는 건가?”
“어디까지나 개체가 작은 짐승 위주의 실험이었어. 만약 인간에게 이 방식을 적용하려면 1등급의 하론이 필요해. 이것보다 훨씬 더 큰 거.”
“어느 정도나?”
밀라이언이 미간을 좁힌 채 말했다. 페리얼의 손에 있는 건 지 금껏 본 적도 없는 순도와 모양을 가진 하론이다.
밀라이언이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건 그 수가 무척 적다는 의미였다. 여태까지 제대로 심장을 파내지 않아서 발견하지 못한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크면 클수록 좋아. 최소 주먹 크기는 되어야 하고.”
페리얼이 제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말을 하면서도 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못했다.
“솔직히 존재할지도 의문이긴 해. 자네가 잡아 온 수많은 사체를 헤집었는데도 겨우 이만한 것 두 개였으니까.”
“만약 그걸 잡아서 가져왔다고 쳐. 네 이론대로 일을 진행하고 그게 성공하면?”
밀라이언의 물음에 페리얼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만큼 달콤한 이야기도 없겠지. 그가 답답한 듯 목 부근의 옷자락을 한 번 잡아당기더니 입술을 열었다.
“카리나는 건강해지겠지. 하론이 예술병의 진행을 막아 줄 테니까 지금처럼 괴로운 일도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