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60)
186화 총잡이 유적 –1-
발을 내디뎠다.
석실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걸어간다.
메마른 공기가 후욱 밀려들었다.
수백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공간.
묵은 먼지가 목을 간지럽혔다.
“콜록! 콜록!”
서우진이 옆에서 기침했다.
“이런 곳이 다 있네요?”
입구는 이미 사라졌다.
석실 벽이 우리 뒤를 막고 있었다.
“총잡이 유적이라는 곳이야. 정약용이 만들었지.”
“아, 그 조선 대마법사요?”
“너도 알지?”
“그럼요. 10년만 더 궁정 마법사로 있었어도 우리나라 마법사를 바꿨을 거라는 사람이잖아요. 그 누구지? 맞다, 정조. 정조가 빨리 죽은 게 아쉽죠.”
저벅저벅.
천천히 걸어간다.
똑같은 마법등 똑같은 복도가 이어졌다.
그러기를 한참, 처음으로 갈림길이 나왔다.
세 갈래 길.
서우진이 움찔했지만 나는 거침없이 정면을 택했다.
“쭉 가면 돼.”
“길 아세요?”
“알지. 저기 가 봤자 시간 낭비야.”
오른쪽이나 왼쪽을 선택해도 된다.
소소한 퍼즐과 마법 골렘, 약간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게임이라면, 하다못해 백소린만 대동했으면 가서 마법 골렘과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나랑 서우진만 있으면 무의미한 일.
빨리 클리어하고 메인 보상만 챙겨서 떠나는 게 낫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법등이 유독 밝아지는 지점이 왔다.
더구나 복도가 확연히 넓어진다.
지금까진 나와 서우진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였다면 그 다섯 배 정도로.
검을 휘두르며 싸우기도 가능할 지경.
“조심해라. 마법 골렘이 있을 거다.”
“마법 골렘이요? 저한테 맡기세요. 제가 해치울게요.”
“넌 힘들어. 내가 할게.”
“예? 왜요? 저도 선생님 정도만은 아니어도 잘 싸워요!”
“평범한 놈들이 아니라서 그래. 흔한 마법 골렘이 아니라 개념적 마법 골렘들이다.”
“개념적 마법 골렘이요?”
뭔 소리냐는 듯 반문하는 서우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건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말없이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화악 넓어진 공터.
우리를 가로막는 마법 골렘 셋이 있었다.
쉬이익! 쉬익!
황동으로 만든 동체.
어깨마다 삐죽삐죽 솟은 관.
움직일 때마다 뿜어내는 허연 수증기.
동체 여기저기 박아 놓은 크고 작은 표적.
내가 표적을 유심히 살필 때 서우진이 검을 뽑았다.
“한번 가볍게 해 볼게요.”
탓!
서우진이 몸을 날린다.
한 마리 매처럼 날렵한 몸놀림.
시퍼런 검기를 담아 마법 골렘을 난도질한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빗나간다.
분명히 황동 동체를 강타했는데, 둘로 쪼개 놓기는커녕 표면을 미끄러지고 만 것.
“어? 어어어?”
서우진이 당황하여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역시 예전의 애송이는 아니다.
당황한 와중에도 몸을 빼며 검을 휘젓고 있다.
시퍼런 검기가 번개 줄기처럼 마법 골렘을 타격.
부아앙!
마법 골렘이 비로소 반응하며 주먹을 뻗었다.
아슬아슬하게 서우진을 따라잡는 공격.
서우진이 빠르게 몸을 돌려 겨우 회피했다.
완벽히 피하진 못했나 보다.
끊어진 머리카락이 허공에 몇 가닥 흩날렸다.
타타탕!
내가 총을 쏜 건 바로 그때.
쌍권총 세 발, 소총 두 발, 저격총 한 발을 마법 골렘에게 꽂았다.
동체에 표시된 표적에다가.
표적이 터지자 마법 골렘이 힘을 잃고 주저앉는다.
“허억, 허억, 허억.”
서우진이 내 옆으로 와서는 숨을 몰아쉬었다.
“구오오오!”
“구어어엉!”
이제야 반응해서 달려오는 마법 골렘 두 마리.
시간 끌 필요가 없다.
탕탕! 타탕!
보이는 표적마다 총알을 꽂았다.
두 종류 권총. 산탄총. 소총. 저격총.
다산총 세트를 완벽히 활용해서.
표적에 총알이 꽂힐 때마다 마법 골렘이 움찔거린다.
그러다 채 몇 초 만에 무릎을 꿇자 서우진이 쓰게 웃었다.
“개념적 마법 골렘이라는 게 이런 뜻이었네요.”
“알겠지?”
가장 가까운 마법 골렘에게 다가갔다.
[추출]오랜만에 특성을 사용해서 마력핵을 빼냈다.
5레벨 마력핵.
사실 안 챙겨도 된다.
난 돈 많으니까.
하지만 궁상맞게 산 세월이 길어서인지 이런 거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몸이 되어 버렸다.
솨아아.
마력핵을 뽑자 마법 골렘이 지워지듯 소멸된다.
“환상이었어요?”
“환상이자 실체지. 도깨비들의 능력이야. 내가 알기론 도깨비들이 여기 만들 때 힘을 보탠 걸로 알고 있어.”
“신기하네요. 정약용이 만들었다고 하셨죠?”
“응. 정조가 만들라고 해서.”
“정조랑 정약용이 총에 진심이었다더니 정말인가 보네요.”
게임에서도 오로지 다산총으로만 피해를 줄 수 있었다.
그것도 마법 골렘 머리 위에 뜨는 표적에 맞는 총으로 공격해야 했지.
그래서 유저들 사이에선 썩 평가가 좋지 않았다.
손이 너무 바빴으니까.
쭉쭉 전진했다.
나오는 마법 골렘은 내가 모조리 처리.
마력핵도 내가 챙겼다.
서우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 생각 없는 모습.
나한테도 서우진한테도 용돈 수준에 불과하니 당연한 일이다.
“거의 다 왔다. 우진아, 네가 해 줄 일이 있어.”
“말씀만 하세요.”
“지금 싸울 놈이 여기 유적 수호자야. 그놈만 잡으면 다 끝나. 수호자는 내가 잡을 거지만 싸우는 동안에 수정이 자꾸 떨어지거든? 그 수정이 마법 광선을 쏘니까 그 전에 네가 수정을 깨 줘야 해.”
“쉽겠네요.”
“아냐. 어려워. 수정이 한두 개가 아냐. 거의 초당 두세 개씩 떨어져. 그리고 검만 휘둘러서는 안 될 거야. 최소한 검기는 써야 할걸.”
“네? 검기요?”
서우진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초당 두세 개라니.
검을 1초에 한 번만 휘둘러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검기를 날려야 한다고? 1초에 최소 두세 번을?
나는 서우진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힘든 건 알아. 하지만 너라면 할 수 있어. 새로 얻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봐.”
“하…… 해 볼게요. 최대한 빨리 끝내 주세요.”
“한 번 공격할 때마다 최대한 마력을 담아야 해. 안 그러면 수정이 안 깨질 수도 있다.”
“후, 알겠어요.”
어렵지만 가능하다.
왜냐.
떨어지는 마법 수정은 일기당천의 영향을 받으니까.
특히 일기당천에 포함된 학살에게.
추가 피해가 적용되고 깨뜨리면 마력도 회복된다.
서우진은 자신 없어 하지만 의외로 할 만할 것이다.
‘마력혼까지 각성하면 좋겠는데.’
마법 수정이 깨지면서 마력 농도가 굉장히 높아진다.
따라서 마력 계열 특성 각성에는 최적의 환경이 된다.
도깨비들과 연속 씨름을 하면 일기당천 각성이 쉬워지는 것처럼.
마침내 유적 마지막 장소에 도착.
커다란 공동이었다.
중심에는 매끈한 벽돌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가까이 가자 바닥에 새겨진 마법진이 발동.
허공으로 날렵하게 날아오르더니 벽돌 무더기에 박히고, 벽돌마다 작은 마법진이 새겨져 둥실둥실 떠올랐다.
구웅, 구우웅.
벽돌이 서로 결합한다.
덩치 큰 사람 형상이 되어서는 우리를 굽어본다.
얼굴 부분에서 마력 안광이 형형하게 타오른다.
뿜어 대는 것은 장중한 마력 파장.
여태 만난 마법 골렘과는 격이 달랐다.
최소한 7레벨.
서우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선생님! 조심하세요!”
빠르게 달려간다.
서우진이 공격당했다간 죽도 밥도 안 된다.
대공습을 이용, 날다시피 뛰어올라서는 마법 골렘의 머리 위를 점했다.
매끈한 머리 꼭대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 중심에 박힌 동그라미 표적도.
탕!
동그라미 표적은 소구경 권총 표시.
총을 갈겼다.
표적이 부서지지만 마법 골렘에게 영향은 없다.
단지 표적이 박혀 있던 벽돌이 빙글 회전하여 다른 표적이 드러났을 뿐.
이번에는 십자 표적 셋.
내 손이 무장집을 스친다.
미리 비워 둔 무장집으로 빨려 들어가는 쌍권총.
대신 소총이 잡혔다.
아직도 체공 중인 상태.
총잡이, 사격, 조준 특성의 보정을 받아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난사.
탕탕탕 총성이 표적을 정확히 꿰뚫었다.
“구어어어!”
거칠게 포효하는 마법 골렘.
두 팔을 휘젓는다.
용수철처럼 벽돌 팔이 쭈우욱 늘어나서는 나를 후려갈긴다.
하지만 나한테는 금오신 도약이 남아 있지.
궤적을 홱 꺾어서는 땅을 향해 도약.
공격을 피하는 한편 총을 마구 갈겼다.
총 다섯 자루를 현란하게 바꿔 가며.
타탕! 타타타탕!
마법 골렘 여기저기가 출렁인다.
표적이 파괴되고 벽돌이 회전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도 수십 개씩.
전신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원전 사고 직전 원자로 제어봉 들썩이듯이.
쿵! 쿵! 쿵!
그렇다고 마음을 놔서는 안 된다.
천장에서 마법 수정이 떨어졌다.
오색 영롱한 색깔을 품은 마법 수정.
바닥에 꽂히자마자 찬란히 빛나며 광선을 쏴 대기 시작한다.
특히 나한테.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마법 광선을.
“우웃!”
벌써 몸이 무거워진다.
마법 광선의 효과는 간단하다.
모든 능력치 감소.
처음에는 미약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디버프 중첩.
더구나 모든 마법 수정이 똑같은 디버프를 사용한다.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
망하는 거지.
“하압!”
서우진이 적절하게 끼어들었다.
나한테 날아오는 마법 광선을 몸으로 가로막더니 검을 내리긋는다.
선명하게 그어지는 청색 검광.
마법 수정이 단번에 깨져 파편을 흩날렸다.
서우진이 나를 보며 외친다.
“선생님! 맡겨만 주세요!”
이어 동분서주하기 시작.
쿵! 쿵! 쿵!
마법 수정이 낙하하는 만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고 있었다.
내리치는 검마다 힘이 가득하다.
내 생각대로였다.
이형환위는 아직 없지만, 기동 특성만 가지고도 서우진은 마법 수정을 잘 처리하고 있었다.
가끔 새는 마법 광선은 몸으로 막아 가면서 분투.
결과적으로 내게 쌓이는 디버프는 거의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보답해 줘야겠지.
마법 골렘을 농락하듯이 주변을 돌았다.
무장집에 손이 스칠 때마다 총이 바뀐다.
처음에는 정자세로 총을 쏘던 나.
이젠 아예 아킴보로, 양손에 총을 쥐고 쏘아 대고 있었다.
권총만 말하는 게 아니다.
소총을 왼손에, 저격총을 오른손에 쥐고 쏠 때도 있었다.
산탄총과 권총, 산탄총과 소총 조합으로 쏘기도 했다.
현실이라면 말이 안 되는 기술.
실용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세.
그러나 이 세상의 나는 달랐다.
[총잡이][사격][조준] [거인의 힘][귀안][육감]정확도는 총잡이, 사격, 조준 특성으로 해결한다.
반동 따위 거인의 힘으로 제압하면 그만이다.
표적이 바뀌기도 전, 귀안과 육감이 속삭이는 대로 무장집에서 총을 바꾸어 쏴 갈긴다.
여기에 내 전신을 감싼 마법 무구들도 환하게 빛나는 중.
초당 수십 발씩 쏟아내는 총알 폭풍 앞에서, 마법 골렘의 마력 파장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꾸어어엉!”
마법 골렘이 날카로운 고함을 내지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이놈이 왜 이러는지 잘 알기 때문.
벌써?
전투 시작하고 몇 분이나 지났다고?
쩌어엉!
거친 징 소리.
마법 골렘이 분열한다.
수백 개 이상의 벽돌로 쪼개져서는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하여 형성되는 거대 중첩 마법진.
“우진아! 피해라!”
외곽에 있는 서우진은 피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불가능하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마법진이 발하는 빛을, 극대 영역 소멸 광선을 전신으로 뒤집어써야 했다.
“선생님!”
애타게 소리치는 서우진.
반면 나는 빙그레 웃고 있었다.
게임에서 7레벨 캐릭터도 즉사시키는 극대 영역 소멸 광선.
아무리 7레벨보다 강한 나라고 해도 죽었어야 맞다.
하지만 소멸 광선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간 다음에도, 바닥 일부를 지워 버린 다음에도 내 정신은 명료하기만 했다.
왜긴 왜겠어.
영체화 때문이지.
그 증거로 내 전신이 투명하게 변해 있었다.
소멸 광선은 내게 티끌만큼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내가 괜히 열과 성을 다해서 도깨비들을 전원 결혼시킨 게 아니라고.
전원 결혼이 아니었으면 도깨비 시리즈 중 하나는 빠졌을 거다.
“죽어!”
큰 기술을 사용한 보스는 경직 상태에 빠지는 법.
몸을 던졌다.
널브러진 벽돌에게 총을 갈겼다.
영체화는 재사용 대기시간이 길다.
만약 다음 소멸 광선을 쓰게 놔두면 나도 위험해질 수 있다.
극딜로 끝장을 보는 게 최선.
퍼벅! 퍼버벅!
벽돌이 들썩인다.
한 번 맞을 때마다 튕기듯 뛰어오른다.
그런 다음 또 총알을 얻어맞고 회전한다.
공중으로 튀고 빙그르르 회전하고 다시 튀고.
탁구공을 투명 탁구채로 계속 튕기는 듯한 장면이다.
그것도 수백 개나 되는 숫자를, 하나도 안 놓치고.
“하…….”
서우진이 기가 막힌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다.
경직 상태라 마법 수정도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에 열이 나는 걸 감수하며 사격하기를 한참.
슬슬 숨이 가빠올 때 변화가 있었다.
파스스스.
벽돌 하나가 부스러진 것.
그게 시작이었다.
저 멀리 있던 벽돌이, 그 옆에 있던 벽돌이, 또 내 앞에서 퉁퉁 튀던 벽돌이 무너져 모래로 변했다.
한두 개가 아니라 벽돌 전부.
완전히 소멸하고 마력핵 하나만 남았다.
7레벨 마력핵.
나보다 더 큰 크기.
골프백에 집어넣으며 실소를 흘렸다.
‘예전 골프백이었으면 들어가지도 않았겠네.’
새것이 확실히 좋긴 좋다.
성희영이 준, 최상급 공간 확장 마법이 걸린 골프백.
겉보기에는 평범해도 내부는 광활하다.
1톤 트럭 짐칸과 비교될 지경.
경량화와 보존 마법까지 걸려 여러모로 쓰기 편했다.
“선생님. 고생하셨어요.”
“너도 고생했다. 잘하던데?”
“생각보다 할 만하더라고요.”
빙글빙글 웃는 서우진.
조금 전만 해도 자신감 없어 하더니, 막상 싸워 보곤 자신이 붙은 모양.
그건 그렇고 왜 이렇게 늦지?
슬슬 나타날 때가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래처럼 쌓인 마법 골렘 잔해가 꿈틀거렸다.
그러더니 천천히 치솟아서는 어떤 형상을 만든다.
“어어?”
경계하며 검을 뽑는 서우진.
나는 달랐다.
무장을 해제하고 가만히 팔짱을 꼈다.
기다리고 있던 존재니까.
스윽, 스으윽.
형상이 완전히 갖추어진다.
곤룡포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중년 남자.
팔뚝에는 권총을, 등에는 천보총을, 허리에는 장총을 차고 있다.
누가 봐도 총기 덕후다운 모습.
[반갑네. 총잡이 친구들.]남자가 우릴 보고 미소 지었다.
[나는 조선의 임금, 이산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