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 Jeonsa Accumulates Characteristics RAW novel - Chapter (188)
특성 쌓는 김전사-188화(188/300)
188화 용과 양털 –1-
올림포스.
신들의 대지.
이 세상에서는 육안으로 직접 볼 수가 있다.
그리스 테살리아 주 북쪽.
해발 2,919미터 미티카스봉 바로 위쪽에서.
나는 레드 쿠거 조종간을 앞으로 밀었다.
레드 쿠거가 하강한다.
발밑에 깔린 구름이 다가오며 아득하게 펼쳐진 세계 또한 다가온다.
팽이처럼 뒤집어진 세상.
멀리서 관측은 할 수 있지만 아무리 달려도 가까이 갈 수는 없는 세계.
황금 숲과 순청 호수가 점점이 박힌 그곳.
올림포스.
“예쁘긴 하네.”
올림포스로 접근하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
미티카스봉의 가이아 대신전을 통과하는 것.
올림포스를 눈에 담으며 지상으로 내려갔다.
미리 조사했던 것처럼 가이아 대신전 앞은 도떼기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밀지 마!”
“거 순서 좀 지킵시다!”
“가이아 여신께서 보고 계십니다!”
미티카스봉 가이아 대신전은 성벽처럼 웅장했다.
사실상 성벽이자 성문의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는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신들의 세계.
올림포스는 달랐다.
과업을 수행하고 하늘길을 따라 오르면 육체를 가진 채 들어갈 수 있는 것.
그렇게 올림포스에 들어가고 신들을 배알하면, 육체가 증발하고 영적 존재가 되어 불멸을 누린다.
기이잉, 쿠웅.
레드 쿠거를 주차장에 대놓았다.
마법 정령이 팔랑팔랑 날아와 레드 쿠거를 스캔했다.
[무료 주차는 한 달. 이후에는 한 달 유료 주차 후 소유권이 가이아 대신전으로 넘어갑니다. 동의하십니까?]“동의한다.”
[가이아 교단 명예 성기사 김전사 님 소유 비행차 확인 완료 되었습니다. 불멸의 순례를 꼭 이루시기 바랍니다.]대신전 앞에 가서 섰다.
수백 미터는 넘을 듯한, 거인도 막아 낼 벽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로도 그랬다.
올림포스 신들의 종말인 기간토마키아 당시 여기서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다지.
제우스도 헤라클레스도 아테나도 그때 죽었다.
살아남은 것은 신과 거인의 조상인 가이아 여신과 로마로 도망쳤던 마르스를 비롯한 소수의 신뿐.
길을 따라 올라간다.
널찍한 순례길이지만 한 줄로 철저히 통제된다.
누군가 새치기를 하려고 하면 마법 정령이 찌릿 전격을 발한다.
하지만 내게는 해당 사항 없는 일.
줄을 서지 않고 올라가지만 마법 정령들은 본체만체했다.
당연히 불만이 쏟아졌다.
“뭐야!”
“저 형씨는 왜 새치기하는 건데!”
“어이! 어이! 질서 좀 지켜!”
대부분이 영어로 떠들어서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쩌라고?
나는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앞쪽에서 순례객들이 험악한 얼굴로 날 돌아본다.
그것도 잠깐이었다.
내 가슴에 달린 휘장을 확인하곤 고개를 돌렸다.
“성기사잖아.”
“젠장.”
“성기사가 왜 걸어 올라가는 건데.”
“그러게 말이야. 올림포스 갈 거면 페가수스 타고 슝 갈 것이지.”
내 공헌치를 생각하면 페가수스 한 마리는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페가수스가 별로다.
너무 느리거든.
예쁜 거 원툴 페가수스.
차라리 비룡이나 그리폰이 훨씬 멋있고 낫지.
성큼성큼 걷는 사이 대신전에 도착.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성기사들이 나를 보고 눈썹을 꿈틀했다.
내 가슴의 성기사 휘장을 확인하고 가볍게 신성력을 뿜는다.
한 명은 광휘.
다른 한 명은 성광.
가이아 교단 성기사 사이의 가벼운 인사 같은 거였다.
예전에 인도 대사관에서 만난 노르드 전사가 위협적으로 마력 파장을 발했던 것처럼.
[신성력][성광][광휘] [신기][마력 방패][영역 방어막]나도 한 번 웃고는 신성력을 뿌렸다.
왼팔에 찬 아이기스가 우윳빛으로 변하고 내 주변에 신성한 빛이 넘실거린다.
척 보기에도 강력한 성기사.
줄 서 있던 순례객들이 감탄을 터뜨리고, 두 성기사는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기사단장이셨습니까?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처음 뵙습니다. 저는 글라우코스, 이 친구는 밀티아데스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온 김전사입니다. 올림포스에 볼일이 있는데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음, 그것이 말입니다…….”
투구 아래에서 난색을 보이는 성기사들.
나는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저도 절차는 압니다. 기다리지요.”
“그러시겠습니까?”
“역시 성흔의 수호자다우십니다. 과연 공명정대하십니다.”
“절 아세요?”
“알지요. 제 매형이 대미궁에서 근무 중입니다. 얼마 전에 성흔을 치료…… 아니, 극복하고 복귀했지요. 정말로 감사합니다. 가족 모두가 큰 빚을 졌습니다.”
고맙다고 군례를 취하는 성기사.
듣고 있던 순례객들이 웅성거렸다.
“성흔의 수호자?”
“정말 그분이라고?”
“그 사람은 독일에 있는 거 아니었어?”
“맞아! 사진이랑 똑같아! 이거 봐!”
“진짜네!”
생각보다 성흔 극복법을 전한 여파가 컸던 모양.
순례객들이 슬금슬금 나에게 몰려든다.
줄을 선 채 통째로.
약간 당황하려 할 때, 다행히 신전 안쪽에서 폭죽처럼 누리끼리한 빛이 터졌다.
“으아아! 아우게이아스가 걸렸어!”
기쁨과 당혹함이 반쯤 섞인 함성.
순례객들이 혀를 찼다.
“저런, 쯧쯧쯧.”
“그래도 아우게이아스는 양반이지.”
“한 몇 달 죽어라고 하면 끝낼 수 있잖아. 운 좋으면 사람도 많이 모이고.”
“최소한 죽을 염려도 없고 말이야.”
“똥 밭에서 굴러야 하겠지만. 푸하하하!”
신전 안쪽.
줄 끄트머리에 달린 쪽문이 덜컹 하고 열렸다.
양피지 두루마리를 소중하게 안은 대머리 남자가 걸어 나온다.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순례객들이 응원하듯 소리를 질렀다.
“힘내라고!”
“죽었다 생각하고 열심히 청소해!”
“어쨌든 확실하게 올림포스에 갈 수 있잖아!”
“가이아 여신께서 보살피신 게지.”
“어이, 그거 팔 생각 없어?”
“흥. 여신께 천벌 받을 일 있어?”
올림포스에 오르려면 과업을 통과해야 한다.
대머리 남자가 뽑은 것은 아우게이아스의 가축우리 청소.
기간토마키아 후 아우게이아스의 가축우리는 아예 신화적 건축물로 거듭났다.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저절로 가축을 키우고 고기를 올림포스에 공급하는 것.
대신 청소는 해 줘야 한다.
주기적으로, 하루만 지나도 그득하니 쌓이는 오물을.
‘저런 거 걸리면 안 되는데.’
평범한 사람들한테는 개꿀일지 몰라도 나한텐 곤란하다.
아무리 청소 특성이 있어도 몇 달은 붙잡혀 있어야 한다고.
여신한테 천벌을 받는 한이 있어도 교환해야겠지.
머리를 굴리며 쪽문으로 다가갔다.
쪽문을 지키던 사제가 미소 지으며 문을 크게 열어 준다.
“성흔의 수호자님부터 들어오시지요.”
“감사합니다.”
“끄응…….”
“아오…….”
순례객들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지만 어쩌겠어.
규정이 그런 것을.
쪽문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단출한 석실이었다.
뻥 뚫린 천장을 통해 태양빛이 내려오는 중심.
가슴 높이까지 올라오는 우물에 파란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우물에 손을 넣으시기 바랍니다. 손끝에 잡히는 양피지를 꺼내세요. 그게 성기사님의 과업입니다.”
눈 가린 무녀가 말했다.
원래는 델포이 아폴론 신전을 지키던 무녀들.
기간토마키아 당시 아폴론이 죽자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눈을 가려 죽은 아폴론을 애도하나, 예언의 힘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들었다.
시키는 대로 우물에 손을 집어넣었다.
마력 덩어리가 몽실몽실 손끝을 찌른다.
그러다 잡히는 부드러운 양피지 하나.
단숨에 꺼냈다.
우물 전체가 빛나며 황금색 폭죽을 토했다.
퍼엉! 퍼퍼펑!
더없이 화려한 빛깔.
그러나 눈 가린 무녀는 살포시 얼굴을 찡그렸다.
“하필이면…….”
뭔지 알겠다.
나는 입을 여는 대신 양피지를 펼쳤다.
양각된 신성 문자가 도드라지며 내 뇌에 쏘아졌다.
[과업 : 용과 양털]그대여.
하늘길에 오르는 그대여.
조지아 왕국의 조지아 계곡으로 가라.
황금 광산 위 황금용이 있으니.
황금용이 지키는 황금 양털을 가져오라.
불멸과 부활의 황금 양털이,
그대를 신의 대지로 인도하리라.
게임에서도 가장 어려운 과업.
무녀가 소곤거리듯 말했다.
“황금 양털을 다 가져오실 필요는 없어요. 털 몇 가닥만 가져오셔도 돼요. 황금용은 잠들지 않는 용이 아니니까 판의 피…….”
“으흠! 으흠!”
참관하던 사제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소곤거리던 무녀의 얼굴이 금방 사무적으로 변했다.
“건투를 빌게요. 꼭 올림포스에 가셔야 한다면 다른 순례객과 양피지를 교환하셔도 돼요. 성흔의 수호자시라면 그 공헌을 고려하셔서 여신께서도 큰 벌을 내리시지 않을 거예요.”
“조언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성흔의 수호자가 아니셨다면 제 조카는 지금도 성흔에 고통받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조언을 한 거구나.
판의 피리를 쓰라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눈이 백 개나 되는 거인 아르고스에게 쓰였던 보물, 판의 피리.
이걸 사용하면 황금용도 잠이 들고 만다.
신화에 나오는 잠이 들지 않는 용이 아니니까.
그사이에 슬쩍 황금 양털을 훔치는 게 정석 공략.
올림포스로 오를 자격을 얻게 된다.
하지만 난 이 방법을 쓰지 않을 생각이다.
왜냐?
성공을 대성공, 성공, 턱걸이 셋으로 나눴을 때, 양털을 훔치는 건 턱걸이 성공에 불과하니까.
보상이 제로다.
올림포스 입장이 전부.
여기까지 왔는데 뭐라도 얻어 가야 하지 않겠어?
용과 양털 과업은 열두 과업 중 난이도 최상인 대신에 숨은 보상이 엄청나다고.
꾸욱.
나는 주먹을 한 번 쥐었다.
무쇠주먹 특유의 거칠거칠한 질감이 손 전체를 자극했다.
‘바꿀 때가 됐지.’
내 장비 중에 이거 하나만 SR급이다.
금오 세트나 다산총 세트는 다 모으면 SSR급이라도 되지, 무쇠주먹은 빼박 SR급.
하필 용과 양털 과업이 걸린 건 하늘이 주신 기회다.
황금 양털.
불멸과 부활 특성을 가진 SSR급 장갑.
과업 대성공 시 얻는 마법 무구가 내 첫 번째 목표였다.
“다행이지 뭐야. 어휴, 저 성기사 아니었으면 내가…… 으흠!”
쪽문으로 나오자 가장 앞에 있던 순례객이 급히 입을 다문다.
순례객 입장에선 그렇지.
나 아니었으면 용과 양털 과업을 받았을 테니.
실은 내가 더 고맙다.
조금이라도 서둘렀으면, 그래서 나보다 먼저 들어갔으면 난 다른 과업이 걸렸을 거 아냐.
쌔액!
레드 쿠거를 타고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조지아 계곡.
고대에는 에게 해와 마르마라 해, 보스포루스 해협, 흑해, 해안 저지대, 산악지대를 가로질러야 하는 장대한 여정이었다.
나는 1시간도 안 걸렸지만.
드높은 산들 사이, 드넓게 펼쳐진 계곡.
그림 같은 마을이 서 있었다.
파랗고 노랗고 빨간 지붕을 올린 벽돌집.
집마다 삐죽 솟은 굴뚝.
굴뚝에선 한가롭게 흰 연기가 피어난다.
마을 중심의 신전에선 은은한 신성력의 빛이 사방으로 번진다.
쿠오오오오!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용의 울부짖음이 아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그게 오히려 좋은 모양.
“오늘도 힘 좋네!”
“좋은 아침입니다!”
“다들 아침부터 든든히 드세요!”
예전에는 금광과 사금 채취로 유명했다는 마을.
황금용이 자리 잡은 후에는 광업은 완전히 쇠퇴했다.
대신 관광 자원이 생겼지.
과업을 수행하러 오는 순례객들.
먼발치에서나마 용을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
그들 덕에 마을 주민들은 오늘도 배가 불렀다.
슈우우우.
공용 주차장에 레드 쿠거를 댔다.
차를 등록하고 황금 광산으로 직행.
광산이라고 할 것도 없다.
마을 바로 뒷산.
커다랗게 뚫린 동굴 위, 황금용이 금광석으로 둥지를 쌓아 놓고 잠을 자고 있었으니까.
“쿠르릉…… 크르릉…….”
마을이 코앞인데도 황금용은 공격하지 않는다.
가이아 신전의 보호가 첫 번째 이유.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황금용이 365일 배가 부르다는 사실이다.
배는 부르지.
둥지는 따뜻하지.
보물 중의 보물인 황금 양털은 알 속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선사하지.
뭐 하러 힘들게 사냥해?
그럴 시간에 잠이나 한숨 더 때리는 게 이득.
“투명화를 써 볼까?”
“미쳤냐? 투명화 정도로는 택도 없어.”
“영체화라고 벽도 뚫고 바닥도 뚫는 능력이 있다던데…….”
“1킬로미터 안에만 들어가도 다 알아채는데 1킬로미터를 뚫겠다고? 영체화도 그건 불가능해.”
“판의 피리를 쓰는 건?”
“구해 올 방법은 있고? 판의 피리는 헤르메스 신이 죽을 때 묻혔어.”
“젠장.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어쩌자는 거야?”
“그러니까 황금 과업이지.”
황금용 둥지에서 떨어진 곳엔 전진 기지가 있었다.
정확히 1,500미터 떨어진 지점.
1킬로미터 안으로 들어가면 황금용이 반응하니 여기에 순례객들이 모이는 것이다.
나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 지나쳤다.
다른 순례객들에겐 말도 걸지 않고.
준비 따윈 필요도 없다는 것처럼.
“어어어?”
“어이, 미쳤어?”
“거기 가면 안 돼!”
“죽을 거면 혼자 죽어!”
“도전할 거면 말을 하고 하라고!”
순례객들이 급히 도망쳤다.
황금용이 깨어나는 순간.
전진 기지까지 용의 불길이 들이닥치니까.
마을 안이 아니면 황금용 주변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
“크르릉?”
1,200미터까지 접근.
황금용이 반응을 보였다.
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 꼬리를 움찔거린다.
누가 봐도 깨어나기 직전.
땡땡땡땡!
가이아 신전에서 비상종이 울렸다.
급히 전개되는 신성 방어막.
비명을 지르며 마을로 도망치는 사람들.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 재게 발걸음을 옮겼다.
200미터를 금방 지나쳐 1킬로미터를 표시한 선을 넘었다.
그러자 황금용이 눈을 떴다.
급히 몸을 일으키며 나를 노려본다.
활활 타오르는 황금빛 눈동자.
세로로 서서 분노로 번뜩이는 동공.
“크아아아앙!”
울음이 터졌다.
유형의 음파가, 용울음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소리.
하지만 나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지금의 나에게 용울음은 뜻 모를 굉음이자 공포가 아니라 단순한 말소리로 다가왔으니까.
[꺼져라! 미물아!]지극히 용다운 경고이긴 했지만.
말이 통한다는 게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달리거나 도망치는 대신 제 3의 선택지를 내밀었다.
“[안녕. 반갑다.]”
용울음까지도 필요 없다.
용언 특성만 장착하고 황금용에게 말을 걸었다.
황금용이 눈을 치뜬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휘둥그레 커진 눈으로 날 주시하는 황금용.
한참이 지난 후에야 되묻듯이 용언을 흘렸다.
“[말을 했어?]”
용언을 통한 대화.
과업 대성공을 위한 첫 번째 조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