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
11화.
샬롯 일레인은 손이 절로 가는 아이였다.
넬슨도 처음 입단했을 때, 제대로 적응 하지 못하고 선배들 기에 눌려 힘들어 하던 때가 있었다.
나중에는 까불거리다가 한 대씩 쥐어 박히는 역할이 되었으나, 처음에는 정말 선배들 눈도 못 마주쳤다.
‘누가 넬슨 후손 아니랄까 봐.’
지금 샬롯 일레인이 딱 그 꼴이었다.
심지어 이 녀석들은 선배가 아니라 동급생인데도 바짝 쫄아서 입 꾹 다물고 있는 거 봐라.
“자, 10분간 휴식!”
“후우아아아!”
숨을 깊게 내쉰다.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 게 의아하다는 눈길들이 쏟아졌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몸이 전체적으로 후들거려서 서 있기도 힘들었으니까.
겨우 호흡을 고르면서 천천히 시선을 교수진에게 두었다.
나를 아카데미에 데려온 헥토르 교수가 생도 길들이기 담당.
얼굴이 굉장히 사납고, 상처투성이인 모습이 생도들 겁주기에는 딱 좋았다.
훈련의 강도가 너무 강한 탓에 오히려 생도들 반감만 사지 않을까도 싶었으나.
‘그래서 뒤에 있는 교수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거였구나?’
통나무를 내려놓고 손을 털면서 이해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교수들이 나서지 않는 이유는 생도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함.
한마디로 헥토르는 생도들의 욕받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였다.
당근과 채찍에서 채찍 역할.
그렇게 생각하니 묘하게 헥토르가 불쌍하게 느껴졌다.
“후우, 후우.”
당연히 나처럼 지쳐서 숨을 거칠게 고르고 있을 줄 알았던 샬롯.
하나, 그녀는 의외로 손을 가슴에 얹고 차분하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겉보기랑 다르게 체력이 꽤 괜찮은 듯하다.
‘흠, 근육량 자체도 나쁘지 않아. 근데 사용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고. 중요한 건 유연성인데…….’
“쟤한테 관심 있냐?”
무슨 아저씨처럼 클클거리며 다가와서는 팔뚝을 툭툭 치는 마리아 레이로즈.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모습이었으나, 그렇다고 그녀가 열심히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아마 이 정도는 너무 쉬웠던 거겠지.
뭔가 지는 기분이라서 나도 억지로 숨소리를 옅게 내면서 답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짜증 내면서 툭 쏘아붙이자 마리아는 나와 샬롯을 힐끔힐끔 번갈아 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
“안 어울려. 반려를 고를 거면 적당히 비슷한 실력은 돼야 하는 거 아니냐? 네가 아까워.”
“짐승이야? 강한 순위로 사귀는 사람을 정하냐?”
얘는 여기가 무슨 정글인 줄 아는 건가.
하지만 마리아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젓는다.
“잘 봐라. 이제 좀 지나면 여기저기서 누구랑 누가 사귀네, 결투로 누구를 가지자, 양다리를 걸쳤네 이딴 말 엄청 많이 나올 거다.”
“…….”
“귀족들이 모였다고 뭐 대단히 고풍스러울 줄 알았냐? 귀족들이 왜 멋들어진 옷으로 지들을 치장하는 줄 알아?”
주변 생도들을 쓱 둘러보던 마리아는 혐오감이 든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속이 너무 썩어있으니까, 일부러 더 멋들어진 비단으로 스스로를 감추는 거야. 악취가 역해서 향수를 뿌리고, 다들 옹기종기 모여서 서로를 핥아서 현실을 잊지.”
“…….”
“여긴 그런 것들 천지라고, 잘 알아둬.”
마리아가 왜 나한테 은근히 친밀하게 구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자신을 대신해서 귀족들의 높은 콧대를 눌러주고 있으니 당연히 친해지고 싶겠지.
뭐,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알아서 판단할 거야.”
“어련하시겠어! 둠베스트도 조지셨는데!”
괜히 이상한 선입견을 심지 말라고 툭 쏘아붙이자, 마리아는 바로 뒤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베런 둠베스트를 타깃으로 돌렸다.
그리고 당연히 둠베스트의 장남은 이런 도발을 가볍게 넘기지 못했다.
“지금 뭐라고 했지?”
“왜? 내가 틀린 말 했나?”
“그건 승자인 이안 아이넬이 할 말이다. 너는 본인이 이긴 걸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군.”
어깨를 풀며 베런이 천천히 앞으로 나선다.
마리아도 여성치고는 작은 편은 아니었으나, 베런이 남성치고도 큰 편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마리아가 올려다보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압도적인 체격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비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는다.
“왜? 나랑도 한번 해볼까? 난 언제든 환영인데.”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시비를 거는 게 취미인가? 그렇다면 어울려 주지.”
두 사람이 싸우는 걸 내버려두고. 나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는 샬롯에게 다가갔다.
“뭘 그렇게 쫄아 있냐.”
“……안 쫄았어.”
괜히 기죽지 않은 척하면서 어깨를 펴는 샬롯.
하지만 그녀의 자신감은 그 어깨 넓이만큼이나 좁게 느껴졌다.
“내가 둠베스트 이긴 거 봤어?”
그 말에 마리아와 다투던 덩치 큰 곰이 움찔하며 이쪽을 슬쩍 바라본다.
그 모습을 본 마리아는 깔깔 웃어대며 녀석을 다시 한번 도발했다.
“……아니, 안 봤는데.”
그래, 너는 울고 있었겠지.
“자, 휴식 끝났다! 다들 다시 자세 잡아!”
절로 한숨이 나왔기에 뭔가 말해주려 했으나 헥토르 교관의 목소리가 거세게 울려왔다.
일단은 다시 통나무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 * *
훈련이 전부 끝나고, 다시 방에 돌아온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쭉 켰다.
창문 너머 운동장을 보니, 마침 검을 휘두르고 있는 분홍머리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다시금 손끝에 마나를 집중시켰다.
넬슨을 한번 소환한 이후, 가용 가능한 마나량이 늘어났기에 처음보다 쉽게 소환이 가능했다.
녀석은 무릎을 꿇은 채로 나타나서는 내게 예를 차린 후, 천천히 일어섰다.
“단장님! 지금 다른 단원들이 전해달라는 말이 엄청 많습니다!”
“어, 나중에 나와서 하라고 해. 저기 쟤 좀 봐봐.”
내가 창틀에 기대서 샬롯 일레인을 가리키니, 넬슨은 벌써부터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무슨…….”
그냥 당장에라도 달려가서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다는 넬슨의 표정.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라 신선하긴 했으나, 지금은 그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으아아! 답답해! 단장님 진짜 딱 한 시간만 주시면 저거 2배는 나아지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게 무슨 감정인지 아십니까?!”
방방 뛰면서 반쯤 호소하다시피 외친다.
“쟤는 지금 오른손에 검을 쥐고 왼손으로만 싸우는 꼴입니다. 아니, 일레인의 무기가 뭔지 전혀 모르고 있네! 이거 진짜 조상님들이 아시면 경을 치다 못해, 열불이 나서 쓰러지실 겁니다.”
“그래서 지금 네가 쓰러지려고 하고 있구나?”
“아, 그렇네요.”
자신이 샬롯의 조상이라는 걸 인지한 넬슨은 헛기침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서 특별히 쟤를 가르칠 생각이거든? 그러니까 요점만 좀 알려줘 봐.”
“단장님이 직접요?”
“그래, 너 신입일 때도 내가 많이 가르쳐 줬잖아.”
“부끄러운 시절 얘기를…….”
“그때 네 수준도 쟤랑 비슷했어. 말해봐, 내가 핵심만 정리해서 쟤한테 말해주고 올게.”
“에이, 그래도 저 정도는 아니었죠. 그보다 이거 가업 비밀인데…….”
“그럼 알려주지 말까?”
“아뇨! 아뇨!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 * *
후웅!
휘두른 목검이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내리쳐진다.
부들거리는 손은 더 이상은 무리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직.”
입술을 깨문 샬롯은 부들거리는 손에 다시금 힘을 줬다.
텅 비어 있는 운동장이었기에 샬롯은 거리낌 없이 기합을 내질렀다.
“하아!”
검은 다시금 같은 궤도를 그리며 휘둘러졌으나 결과는 달랐다.
힘이 풀린 샬롯의 손이 그대로 목검을 놓친 것.
그 탓에 바닥에서 튕긴 목검이 바닥을 튕기며 멀리까지 날아가 버렸다.
놓쳐버린 목검을 망가진 인형처럼 멍하니 바라보던 샬롯의 눈가에 갑작스레 눈물이 맺혀왔다.
“흐, 으.”
억지로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아본다. 괜히 눈을 감고 솟아오르는 감정을 삼키려 애쓴다.
하지만.
분홍빛 눈동자에서 떨어진 굵은 눈방울은 결국 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후아, 하아아.”
깊게 참았던 숨을 토해낸다. 원래 의도는 심호흡이었으나 의도치 않게 감정이 함께 쏟아져 나왔다.
“흐아아아!”
누가 듣지는 않을까?
그런 걱정 속에서도 소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졌다.
지독하리만치 우습게 져버렸다.
상대인 다이니 브랜드는 장검을 주로 사용하는 검사도 아니었다.
단순하게 대련용 무기는 무게가 가볍다는 점 때문에 거리적 이점이 있는 장검을 골랐을 뿐이다.
그런 상대에게도 져버렸다.
늘상 노력 뒤에 따라오던 아버지의 “넌 할 수 있다.”라는 말이 이제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흐윽, 노력하면 된다고?”
샬롯은 억울함에 주먹을 쥐었다. 파르르 떨리는 어깨는 넘실거리는 감정의 파도를 연상케 했다.
“열심히 하면 결과가 따라올 거라고?”
아카데미에 오기 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초체력을 단련하고 밥을 먹고 계속 검을 휘둘렀다.
단순하면서도 당연한 일과.
노력가라는 말은 그녀를 위한 말이었으나.
재능이 없다는 말 역시 그녀를 칭하는 말이었다.
“뭘 더 노력해야 하는데!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하는데!”
기초가 없다.
기본이 없다.
노력은 길을 걷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꾸준하고, 일정하게.
그런데 도대체.
일레인의 길은 어디로 간 거지?
“흐으윽! 바보 같은 사람들! 그걸! 그걸 왜 유실해서! 가문의 가장 중요한 비급을 왜에에에!”
길을 모르는 소녀에게 노력은 무의미했다. 나아갈 방향을 잃은 소녀는 제자리걸음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날려버린 목검을 주울 생각도 못 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무릎을 감싸 안았다.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일까 싶어 걱정이 드는 순간.
“야, 일어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샬롯은 그 걱정이 한참 늦었다는 걸 깨달고 몸을 움찔 떨었다.
황급히 눈가를 소매로 닦아낸다.
흙먼지가 묻어 있어 눈이 따가웠지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자연스레 일어난다.
거기엔 어두운 밤에도 눈에 확 들어오는 은발을 가진 생도, 이안 아이넬이 서 있었다.
“나 안 울었어.”
괜히 찔려서 먼저 말해봤지만 이안은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그래, 질질 짰을 뿐이지. 별 관심 없어.”
“…….”
위로해 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샬롯은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으나 신경도 쓰지 않는 이안은 가지고 온 목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잘 봐.”
“어…?”
“지금부터 내가 검 휘두르는 걸 잘 보라고.”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에 잠시 침묵이 맴돌았다.
하지만 샬롯은 이안이 자신을 도와주려 왔다는 걸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배치고사 봤을 때도 일레인의 검술에 대해서 뭔가 아는 듯 말했었어.’
이에 대해 물어보고 싶지만, 샬롯은 질문을 애써 참았다.
어차피 설명하려 했다면 이미 말하고도 남았다.
무너져 가는 가문. 모든 걸 짊어진 자신. 이런 상황에서 내밀어진 손이다.
강해질 수만 있다면 그가 무엇을 숨기고 있든, 그 의도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잠시 망설인 샬롯.
확실한 대답이 필요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도와주는 거야?”
“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되돌아온 대답에 샬롯은 조금 어벙한 표정을 지었으나, 다시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소매로 쓰윽 닦으며 말했다.
“대신 하나만 확실히 해줘.”
“뭘.”
“나 안 울었어.”
“……고집 있구나?”
쓸데없는 자존심이라는 건 알지만, 일단 이거라도 챙겨야 오늘 밤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쪽팔려서 침대를 나뒹굴며 발차기 하고 있을 미래의 자신을 위해.
대답을 받은 이안은 천천히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니, 휘두른다고 표현해도 괜찮은 걸까?
마치 화가가 거대한 캠퍼스 위에서 붓질을 하는 것처럼 움직이는 검의 궤적.
부드러운 듯하지만 그 안에 힘이 담겨 있다. 샬롯은 그것이 유연함이라는 걸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와.”
난생처음이었다, 검을 보고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단순히 검이 신비롭기 때문이었을까?
원무처럼 경쾌하면서도 깔끔한 호선을 그리는 보폭 때문일까?
아니면 단순히 어두운 밤, 별처럼 빛나는 은발을 흩날리는 저 소년의 미색에 취한 걸까.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저 아름답다는 감정만이 샬롯의 가슴을 먹먹하니 채워올 뿐이었다.
또한 꿈틀거리는 욕망을 느낀다. 방금까지 더 이상은 한계라며 검을 놓친 손이 까딱거린다.
자신도, 저런 검을 휘두르고 싶다고 원하고 있었다.
“후우.”
짧았던 이안의 검무가 끝나고, 샬롯은 저도 모르게 박수를 치려 하는 손을 발견했다.
애써 손을 내리며 헛기침과 함께 감상을 말하려 했으나….
“이안 아이넬!”
“이안 아이넬!”
각자 다른 방향에서 들려오는 남녀의 목소리.
샬롯과 이안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고개를 돌렸고.
헥토르 교수와 에밀리 교수가 이안 아이넬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