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
10화.
당연하지만 대련 한 번으로 끝난 어제와는 달리 하루가 널널하진 않았다.
젠트 교수 이후에도 다른 담당 교수들의 강의 시간이 이어졌다.
지금은 에밀리 교수의 ‘마도 역사학’에 관한 강의가 한창이었다.
나이트 아카데미에 어울리지 않는 강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전장에는 기사만 있는 게 아니다.
이 강의에는 전쟁사를 통해 마법사와 협력하고, 대항할 방법을 찾는다는 목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기사들에게 있어, 마나통신구는 그야말로 혁신이었습니다. 예전처럼 말을 타고 직접 가서 서신을 전달해 줄 필요도 없고, 단순히 깃발로만 상황을 전달하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있던 지휘체계까지 완전히 뒤엎었으니까요.”
하지만 강의가 머리에 제대로 들어오진 않았다.
누군가가 내 후손을 사칭하여 그 이름으로 기사단을 만들고, 지금은 귀족 가문으로 떵떵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이넨 전투가 있습니다. 당시 마수들의 난동 때문에 산사태가 일어난 마이넨에는 전령은커녕 전서구들도 함부로 날릴 수 없는 상태였죠. 그때 지휘관이 바로 이 마나통신구를 가지고 있었던 덕분에 통신이 용이해졌죠.”
너무 어이가 없는 상황에서는 분노보다는 헛웃음이 나온다는 건 이런 상황을 의미하겠지.
감히 나를 사칭해?
“허.”
“…….”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고, 턱을 괸 상태로 잔뜩 인상을 쓰고 있자니 결국엔 에밀리 교수가 얇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나를 가리켰다.
“거기 생도.”
처음에는 아닌 척 고개를 뒤로 돌려서 “누구야?”라고 잡아 떼 보았으나, 교수는 말을 정정했다.
“은발 머리 남생도.”
“……이안 아이넬입니다.”
어차피 이름을 숨겨봤자 다 들킨다. 그냥 대놓고 말하며 당당하게 일어났다.
“마이넨 전투에서 시작된 마나통신구의 보급화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
덮어둔 책과 꺼내지도 않은 필기도구, 불만스럽던 표정까지.
교수는 당돌한 신입생의 기강을 잡을 생각으로 보였다.
‘이럴 때는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보다.’
차라리 나름의 신념을 가지고 있는 생도인 척 연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전제가 잘못되었다 생각합니다. 마이넨 전투는 마나통신구의 보급화가 이뤄진 전투가 아닙니다. 전령의 위대함을 알린 전투이지.”
마침 마이넨 전투는 나도 참가했었으니까.
“네?”
교수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고, 주변 생도들이 또 다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소리야.”
“아니, 이러니까 평민 받으면 안 된다고!”
“하, 지겹다. 또냐?”
“적당히 좀 해라.”
무슨 하이에나들인 줄 알았다. 물어뜯는 모습들이 예사롭지 않다.
다른 평민 생도들은 그런 분위기에 되레 겁에 질린 모습.
아무래도 나는 그들에게 완벽한 반면교사가 되어주는 듯했다.
하지만 여기서 기가 죽어서 물러나면 진짜로 끝이니까. 나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마나통신 자체의 개발은 되었어도, 막상 실전에 투입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상용화도 개발 기간에 비해 훨씬 오래 걸렸고요.”
슬쩍 칠판에 교수가 적어둔 글귀들을 확인한다.
저기서 얻은 정보들과 머리에 있는 정보들을 빠르게 조합한다.
“게다가 전장에서는 쉽게 이용되지 못했습니다. 수많은 기사와 마수들이 각자의 마나를 뿜어대는 전투가 길어지면 하늘에는 ‘블루 클라우드.’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블루 클라우드란 공기 중의 마나가 너무 많이 쌓여 눈에 보이는 현상을 일컫는다.
전장이 과열되면 이게 마치 안개처럼 껴서, 광풍이라도 불지 않는 한 하늘이 뿌옇게 보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당시에는 아주 옅은 블루 클라우드만으로도 통신에 장애가 생겨 버렸습니다. 마나통신구의 마나가 겹겹이 쌓인 마나층을 뚫고 갈 수가 없으니까요.”
“하, 적당히 좀 해라.”
“뭘 알고 까부는 거야?”
생도들이 짜증 내면서 목소리를 높인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교수가 반박하며 나를 앉히길 기대했던 것 같지만.
에밀리 교수는 천천히 분필을 내려놓고, 손을 털더니 흥미로운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계속해 보세요.”
그러자 투덜거리던 생도들이 놀라서 눈을 번뜩 뜨면서도, 입은 꾹 다물었다.
비율이 훌륭하다. 눈을 크게 뜨면 어디는 다물어야지.
“그러니까 도시에서는 잘 사용되던 마나통신구는 전장에서는 짐덩이가 되어 버렸습니다. 결국 산사태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보급이나, 지원을 요청할 방법이 사라져 버렸죠.”
“그걸 전령들이 해냈다고 말씀하고 싶으신 건가요?”
“맞습니다,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단호하게 말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뒤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실제로 전령이 된 병사들은 동료들과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아무도 그 공로를 알아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상황조차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생각하시는 근거가 있을까요?”
“당시 사상자 명단을 보시면 됩니다.”
이미 준비해 뒀던 대답을 꺼내 든다. 조금 뜬금없다는 표정의 교수에게 나는 차분히 설명해 준다.
“당시에는 시체가 온전히 남아 있는 사상자들이 많았습니다. 조금 이상하죠? 마수들에게 인간이란 병량이나 다름없기에 그들과의 전장에서는 인간의 시체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실제로도 그들은 무슨 청소부라도 되는 마냥, 죽어나간 우리의 동료들을 먹어치워 버렸었다.
덕분에 시신이 온전히 남은 사람은 천운이 따랐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바로 그들이 산사태가 일어난 산을 등반하다가 죽어간 전령들이다? 조금 빈약한 것 같습니다.”
“시신의 상태도 보셔야 합니다. 당시 기록을 보시면 전형적으로 산에서 굴러 떨어졌을 때 나는 상처들이 많습니다. 마수의 이빨이나, 발톱이라기엔 지나치게 얇은…… 마치 나뭇가지나 가시에 스친 것 같은 상처들이요.”
“…….”
에밀리 교수는 잠시 입을 다물고 팔짱을 끼더니 생각에 잠겼다.
몸이 들썩거리는 걸 봐서는 당장이라도 기록을 확인하러 가고 싶은 듯했다.
뎅!
때마침, 강의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이 울려왔다.
그 소리에 이 강의실의 누구보다 반색한 에밀리 교수는 바로 책을 정리하며 외쳤다.
“아주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습니다…… 생도 그,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했었죠?”
“이안 아이넬입니다.”
“좋아요, 나중에 한번 그 가설에 대해서 자세하게 얘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그럼 고생하셨습니다, 여러분.”
그대로 밖으로 나가는 에밀리 교수.
생도들이 봤을 때는 도망친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의 모습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게로 쏟아지는 여러 감정이 담긴 시선들.
동경, 선망, 놀람, 흥미, 질투, 분노, 짜증, 지루함, 못마땅함 등.
“하, 시간 아깝게.”
“교수님은 왜 저런 얘기를 들어주는 거야?”
“저렇게 해서 점수 좀 따려는 거겠지.”
바로 옆쪽 책상에 모여 있는 에디 브릴리언의 패거리가 그러했으나.
당연히 그렇지 않은 생도들이 더 많았다.
“아니, 근데 가능성이 있기는 해.”
“나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중요한 건 그 시대의 마나통신구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겠네.”
“마이넨의 언덕이라고 당시의 산사태를 그린 그림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확인해 보면…….”
에밀리 교수가 마지막에 흥미롭고 설득력 있는 의견이라고 말해줬기 때문일까, 이런 쪽에 흥미가 깊은 생도들은 저들끼리 토론하기 시작했고….
“와.”
“…….”
“쟤도 평민 맞지?”
저들끼리 눈치 보며 웅크리고 있던 평민 출신의 생도들은 선망을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쩝, 크게 상관없겠지.’
방금 대화를 통해서 교수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으면 남겼지, 나쁘게 보이지는 않았을 거다.
다시 돌아와서, 내 후손을 자처하는 자들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었다.
사실 그리 급한 일이 아니기도 하고.
당장은 현재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 가장 우선시되는 목표는 은빛 사자 기사단을 부활시키는 것.
은빛 사자가 덩치를 불린다면 자연스럽게 후손에 대한 진실에도 닿을 수 있을 거다.
‘그러려면 높은 학점을 딸 필요가 있어.’
일단 목표는 수석.
왜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화제성 때문이었다.
수석으로 나이트 아카데미를 졸업한 내가 은빛 사자 기사단으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한다면?
기사단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언급될 것이다.
어디든 골라잡을 수 있는 수석이 가장 낮은 자리로 향한 거니까.
그러면서 예전 은빛 사자의 영광에 대해서 약간만 흘려도, ‘다시 사자가 일어난다.’와 같은 느낌으로 소문이 퍼지며 나름 괜찮은 시작이 될 것이다.
‘뭐, 크게 어렵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 자신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기사는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들은 나를 대단한 기사라고 칭송하고 있었다.
그러면 기사들을 키우는 아카데미에서는 전생의 나 또한 위대한 기사의 기준 중 하나로 잡히지 않겠는가.
‘내가 나를 기준으로 하는 교육에서 1등을 못 할 리가 없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건 뭐야?”
이곳은 운동장.
오전에 실내 강의가 다 끝나고, 오후에는 야외 교육이라고 해서 조금 들뜬 마음이었는데.
무식할 정도로 큰 통나무들이 주르륵 놓여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는 이런 거 해본 적도 없는데.’
어디서 이따위 통나무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내 감상은 아랑곳하지 않고 교수들이 팔짱을 끼고 외쳤다.
“각 통나무마다 10명씩 짝지어서 선다!”
이제 검술 같은 걸 배우는 건가 싶어서 다들 기대하고 있었던 것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찾아온 건 일종의 신입생 길들이기.
마나의 사용을 제한한다는 대목에서 그 의도를 다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귀족 가문의 자제로 살아오면서, 멋대로 행동해 왔던 생도들의 버릇을 초장부터 제대로 고치겠다는 의지가 담긴 교수들의 전략적 얼차려였다.
이건 A~C반까지 모든 1학년들이 함께하는 훈련이었기에 분홍머리 소녀의 모습도 보였다.
‘차라리 잘됐네.’
반이 떨어져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는데 샬롯과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샬롯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아 보였으나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바로 그녀가 서 있는 통나무 쪽으로 향했는데….
“야, 나도 같이 하자.”
어느새 뒤따라온 코를 간질이는 장미향.
마리아 레이로즈가 나와 함께하자며 제안했다.
“뭐야, 나랑 하자고?.”
“이런 건 원래 센 놈이랑 붙는 게 맞아. 그래야 편하거든.”
생각 외로 머리가 제대로 굴러갔으나,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게 있다.
나는 강한 거지, 체력이 좋은 게 아니다.
오히려 마리아 레이로즈가 끼어들면 내 부담이 덜겠구나 싶어 굳이 거절하진 않았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와 대련을 했던 곰을 닮은 소년, 베런 둠베스트 역시 우리 쪽으로 와서 합류했다.
그를 따르던 추종자 무리는 이쪽의 인원이 다 차버렸다는 사실이 아쉬운 듯했다.
“…….”
입을 꾹 다문 채 얼른 앞을 보라고 눈짓하는 베런. 묵묵하면서도 능청스러운 모습에 한숨이 나왔다.
내 옆에 선 샬롯도 움찔거리는 게 내게 궁금한 게 있어 보였으나 주변 생도들의 기세에 눌려 입을 꾹 다물었다.
‘이야기하는 건 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