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9
9화.
“300년 전에는 일곱 성운 중 하나인 마몬의 군대가 밀려왔었습니다. 사실상 인류사의 가장 큰 위기였다고 말해도 손색이 없었죠.”
젠트 교수는 꽤나 열성적으로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이트 아카데미의 생도가 되기에 앞서, 기사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면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강의가 쏙쏙 들어온다.
적당한 제스처와 목소리 높낮이.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좋아하는 주제라 그런지 생도들이 관심을 가지게 하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나 역시 지금까지는 농사만 지었던 터라, 직접적으로 우리 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었다.
“당시 마몬의 군대를 몰아냈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사들이라 불리던 기사단이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은빛 사자 기사단이요.”
자신감이 넘치는 소녀의 당돌한 대답.
젠트는 자신이 할 말을 가로채여 당황했으나, 그걸 말한 주인공을 보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마리아 레이로즈 양. 당시 은빛 사자 기사단의 용맹한 부단장이 바로 마리 레이로즈님이시죠. 그야말로 기사의 표본과도 같은 분입니다.”
‘쓰읍, 그렇게 보기엔 좀…….’
레이로즈가 규율을 잘 따르긴 했으나, 사실 그건 후천적으로 바뀐 성향이었다.
단장인 내가 워낙 마음 가는 대로 기사단을 운용하다 보니, 부단장인 본인이라도 엄격하게 규율을 지키며 다른 단원들을 다스려야 한다고.
‘물론, 저 녀석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슬쩍 뒤를 돌아보자, 마리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나를 내려다봤다.
본인의 가문이 이 정도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같은데….
‘레이로즈는 애초에 오빠들이랑은 거의 대화도 안 했는데.’
레이로즈라는 성을 보면, 아마 부단장이 결혼을 한 건 아니고 레이로즈의 몇 있던 오빠들 중 하나의 자손 같은데.
막상 저 소녀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주는 마리 레이로즈는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게 뻔했다.
어쨌든 젠트의 강의는 계속되었다.
“또한 기사단의 단장이시던 분이시죠. 라인 레이먼드님이십니다.”
조금 흥미가 동했다.
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지 조금 기대하며 턱을 괴었다.
“레이먼드 가문에서 태어나신 라인 레이먼드 님은 그야말로 엘리트 코스를 밟으신 모범적인 기사이셨습니다.”
……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그분의 검은 하늘조차 베어 넘기고, 태산마저 갈라버렸다는 낭설이 있을 정도였죠. 물론, 실제로 그런 건 불가능했겠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검을 동경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아니, 잠깐만요.
뭔가 이상하신데요.
나는 손을 들어 뭔가 말하려 했으나, 주변의 다른 생도들을 보니 이미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경청하고 있어 강의를 끊을 수가 없었다.
라인 레이먼드라는 이름이 생도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특히나 마몬이 론그라트 언덕을 으로 우회할 때, 검을 쥐고 홀로 대군을 막으셨던 일화는 굉장히 인상적입니다만…… 아무래도 혼자 재앙의 대군을 막은 건 역사적으로 조금 과장되었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그거는 진짠데.’
그건 진짜로 혼자 막았었는데.
우리가 수성 중이던 텔른 성의 뒤를 치기 위해, 론그라트 언덕을 돌아서 오던 놈들을 정찰 중 발견했고 시간을 끌기 위해서 혼자서 싸웠었다.
결국, 시간을 끄는 걸 넘어 전부 죽이는 데도 성공했지만.
그 전장이 나의 최후가 되었기에, 그렇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막상 말로 풀어서 들으니 못 믿을 만하긴 했다.
“거기서 유명한 기사의 선서가 나왔죠. 여러분도 입학식에서 선언했었죠?”
그러고는 젠트는 마치 노래라도 부르듯 운율을 넣어서 손을 휘젓는다.
“기사라 함은 무릇, 담대히 나아가는 날카로운 검이며 또한 그와 동시에 방패이니.”
“검은 쉬지 않고 적을 섬멸하되, 방패는 눈을 감지 않고 사람들을 지키겠으니.”
“아아! 이 젊은 기사의 앞날에, 무한한 축복이 있기를.”
젠트의 과장된 행동에 키득거리며 웃어대는 생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감동에 젖은 표정을 지었다.
심한 경우 눈물을 그렁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라인 레이먼드 기사단장님은 이렇게 기사로서의 본분을 정의하시는 유언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저희 후손들을 위해서요.”
그렇게 장엄한 의미를 가지고 말한 건 아니었는데.
“물론, 현 시대의 은빛 사자 기사단은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미 과거의 영광이 되어버렸죠.”
씁쓸한 감정이 목구멍 안에서부터 툭 치고 올라온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불만이 샘솟았으나, 이번만큼은 새겨들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기사의 질을 양으로 채우려 했던 판단이 실수였습니다. 은빛 사자 기사단은 그 뒤로 기사단 운영에 대한 완벽한 반면교사가 되어주었죠.”
“…….”
300년이 지나면 영광도 그 빛이 바란다.
나이트 아카데미 생도에게 어떤 기사단에 입단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은빛 사자 기사단이라는 이름은 백에 하나 나올까 말까 했다.
그것도 정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단순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고르는 거겠지.
“하지만 너무 아쉬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은빛 사자에서 파생된 기사단이 많으니까요.”
“음?”
이건 조금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평민 출신인 나였기에, 자세한 정보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정말 간단한 역사 정도나 알고 있을 뿐 현재 어떤 기사단이 강세인지, 어떤 활약을 하고 있는지 같은 건 알기 어려웠다.
‘우리 기사단에서 파생된 기사단이 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경청한다.
“일단 부단장인 마리 레이로즈의 가문에서 주도적으로 창설한 적장미 기사단이죠? 많은 생도들이 가고 싶어 하는 기사단입니다.”
‘레이로즈 가문에서 기사단을.’
딱 봐도 부단장의 이름값을 이용해서 만들었다는 게 느껴진다.
“거기에 철의 열기, 새벽 눈, 론그라트 언덕 등. 현재 유명한 기사단 대부분이 그곳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숨을 한번 고른 젠트 교수는 씨익 웃으며 입을 뗀다. 이게 가장 중요하다는 듯이.
“그리고 은빛 사자의 주역인 라인 레이먼드 기사단장님.”
살짝 오글거리는 느낌이 들어서 괜히 못 들은 척하려고 했는데, 그 뒤에 이어진 발언은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분의 자손들이 만든 신성 기사단은 그야말로 최고의 기사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정예 중에 정예지요. 제가 알기로는 작년 졸업생들 중에서도 고작 2명이 신성 기사단의 종기사로 들어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종기사?”
“아니, 2명밖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수석에 가까울 텐데도 종기사부터 시작한다고?”
“와, 벽이 너무 높네.”
생도들은 현실의 벽에 맞부딪친 듯 얼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으나.
“……네?”
나만큼 놀란 사람이 있을까?
아니, 단순히 놀란 수준이 아니라 뒤통수를 혹시 누가 때린 게 아닌지 뒤를 슬쩍 돌아보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으음? 이안 생도 뭔가 질문이 있나요?”
어느새 벌떡 일어나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으나, 다시 앉을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조금 거칠게 목소리를 내었다.
“라인 레이먼드의 후손이 있단 말씀이시죠?”
그래, 좋다.
천애고아이자 길거리나 전전하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겨우 살아남았던 내가, 빼어난 귀족가문의 아이라고 왜곡시켜 위조한 것까지는 어느 정도 이해해 주겠다.
왕국의 입장에서는 평민 출신인 내가 너무 과하게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니 곤란했겠지.
억지로 귀족이라고 역사를 수정했을 것이다.
솔직히 기분 더럽고, 어렸을 때부터 치열하게 살아왔던 내 삶을 모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은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후손이 있는 건 진짜 아니지 않은가.
살면서 여자 손을 잡아본 기억이라고는, 대련 중 쓰러진 레이로즈한테 일어나라고 손 뻗어준 거 말고는 없다.
굳이 더 추가하자면, 매일 쓸데없는 마법으로 장난이나 쳐대던 힐다의 머리를 쥐어박던 정도.
그런 나한테 후사가 있다고?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말에 힘이 들어갔으나 젠트 교수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럼요. 오랜 기간 저희 왕국을 지켜주시며 늘 시대를 휘잡았던 기사를 배출해 내온 가문이지 않습니까.”
상식이라는 듯 말하는 젠트 교수 때문에 머리가 어지럽다.
게다가 신성 기사단은 나 역시 알고 있는 기사단이었다.
산골 마을에서 살아온 나에게조차 그들의 명성이 들릴 정도.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후배들이 참 열심히 하네.’ 하고 나름대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게 나한테 있지도 않은 후손들이 만든 기사단이었다고?
변방 깊숙이 있는 시골 동네라고는 하지만 이런 걸 몰랐다니….
본 적도 없는 후손과 신성 기사단한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확실해요? 정말로 그 사람들이 라인 레이먼드의 후손입니까?”
목소리가 살짝 떨려온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에 주변 소리가 자연히 묻혀간다.
“뭐야?”
“저거 왜 저래?”
“어휴, 꼭 제대로 교육도 못 받은 평민들이 저렇다니까?”
“이래서 시골에서 살던 애들은 받으면 안 되는 건데.”
“대련에서 좀 활약했다고 지가 진짜 대단한 줄 아네.”
사방에서 들려오는 생도들의 좋지 못한 반응.
그럼에도 나는 전부 무시하고 계속 젠트 교수를 바라봤다.
제발 다른 답을 내놓으라는 나의 간절한 염원 속에도 젠트 교수는 짐짓 불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맞습니다. 확실하죠. 그러니 그만 의심하고 앉으세요, 이안 생도.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레이먼드 가문을 의심하는 걸 썩 유쾌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허탈한 마음에 털썩 주저앉는다.
의자가 순간 뒤로 넘어갈 뻔했음에도 내 머리에는 한 가지뿐이었다.
‘우리 애들이 그냥 넘어갔을 리가 없는데?’
평민 출신인 내가 자수성가하여 그 자리까지 올라왔다는 걸 우리 기사단 단원들이 모를 리가 없다.
내 과거를 은폐하고, 위조한다고 해도 결국에는 단원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단체로 들고 일어나서 나에 대한 진실을 밝혀도 몇 번은 밝혔을 애들인데.
‘도대체 뭐지?’
생각해 보면 내가 죽자마자 다 같이 은퇴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의문점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그건 내가 우리 단원들을 소환할 수 있게 된 이유와 뭔가 밀접한 연관이 있으리라 판단된다.
당장이라도 넬슨을 소환해서 자초지종을 듣고 싶지만….
어차피 계약 때문에 알려주지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올 게 뻔했기에.
‘아무래도 빨리 애들을 소환할 필요가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