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어땠어?”
각기 훈련이 끝나고.
내 방에 빙 둘러앉은 단원들.
오늘이 젊은 생도들을 가르치는 첫날이었으니 각자의 판단을 들어보고 싶었다.
“잘하지.”
내 질문에 먼저 입을 뗀 건 윤이었다.
마리아를 담당한 그녀는 왜인지 본인이 자랑스러워하며 장점을 늘어놓는다.
“기본적인 센스가 좋아, 재능이라 볼 수 있겠네. 검을 어디로 휘둘러야 할지. 상대의 약점이 어디이며, 버릇은 뭔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본능으로 알아차려.”
마리아는 수인의 핏줄이 섞여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감각적인 검사이긴 했다.
“뭐, 그렇다 보니까 냉정한 판단이 부족하지. 그런데 승부욕이 워낙 강하다 보니까 그런 부분을 보완하려고 애쓰고 있기도 해.”
가장 강점은 전투 그 자체를 즐기는 것.
즐기면서 노력하는 마리아는 은빛사자 연구회 동아리 부원 중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일 것이다.
이전 모의고사에서 베런과의 대련에서 패배한 건 아마 금방 설욕할 정도로 실력이 올라오겠지.
“베런은 우직한 검사입니다.”
윤의 이야기가 끝나자 톰이 바로 손을 들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둠베스트 가문에서 꽤나 잘도 길을 터놨더군요. 가르치는 맛이 있습니다. 아닌 척하지만 강함에 집착도 하고요.”
베런은 몇 번이고 시험에서 패배해 왔다.
나는 물론이고 마리아에게도 진 적이 있으며, 지친 상태에서 바로 이어진 대련에서는 일반 생도에게도 패배한 적이 가끔 있었다.
“가문의 외동이기에 강함에 집착이 심하지만, 패배에 두려움은 없습니다. 크게 될 놈입니다.”
강함에 집착하나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은.
패배를 통해서 배우는 게 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확실히 그는 고작 몇 번의 패배로 마음이 꺾이지 않는다.
“다이니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단원들의 보고가 이어졌다. 다이니, 샬롯, 실리아.
각자의 개성이 있으며, 검술에 대한 깊이와 방식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 같이 재능이 있는 생도들이라는 것.
키울 맛이 난다고 얘기하면서도 서로 앞으로의 훈련에 있어 토론을 이어갔다.
“개인적으로 샬롯은 지속적으로 대련을 시켜주고 싶습니다.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새가슴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그럴 거면 익숙한 생도보다는 우리랑 대련하는 게 낫지 않냐?”
넬슨의 말에 톰이 한마디 보탠다.
분명 샬롯은 아직 강자를 상대할 때 담대함이 부족했다.
“마리아는 반대야. 걔는 대련을 좀 억제할 필요가 있어. 내 검술을 배우는 데 있어 자제력은 꽤나 중요한 요소니까.”
대련만 하면 흥분하고 난리를 피우는 마리아를 떠올리며 윤이 장죽을 입에 문다.
따로 피우진 않지만 그냥 분위기라도 내는 중이었다.
“실리아는 단장이 좀 봐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마나감응력이 높은데 막상 다루는 방식이 유연하진 못합니다.”
엘빈의 말에 실리아를 같이 가르쳤던 도로시도 바로 맞장구친다.
“맞아요! 애가 고지식한 성격이라 그런지 너무 경직된 방식으로만 사용하는 감이 있어요.”
“그럼 다이니도 확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몬의 기운이 몸에 퍼져 있다 보니 관련해서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이니를 관리하는 한나는 그녀가 마몬의 기운에 너무 휘둘릴까 걱정하는 중이었다.
“그래, 내일이라도 바로 보자.”
어차피 앞으로 일주일.
아무런 강의도 없고, 따로 스케줄도 없다.
생도들은 찝찝함에 훈련장도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있으니 오늘 사용했던 4번 훈련장을 아예 전세를 낸 것처럼 일주일간 사용할 생각이었다.
“다들 훈련 방식 생각해서 내일까지 보고해 봐. 개선할 부분이나 고칠 점이 있는지 확인 좀 하게.”
내 말에 다들 알겠다고 답하면서도 자기들끼리 숙덕거리며 계속 토론을 이어간다.
꽤나 긴 시간을 이 방에서 갇혀 있다가 이제야 자신들의 진가가 발휘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도 있지만, 그저 어린 후배들을 가르친다는 게 꽤나 즐거워 보였다.
나 역시 혼자서 전부를 가르치지 않아도 되니까 훨씬 편해졌고.
‘위험하긴 해도, 이게 낫다.’
이들이 내 소환수라는 걸 생도들에게 들킨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지는 않을 거다.
이미 그 애들한테 그 정도 신뢰는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은빛사자 기사단이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최대한 나중에 밝힐 생각이었다.
‘우리의 존재는 대악마와 연관되어 있으니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 본인들을 키운다는 그런 부담감을 17살, 18살의 나이인 소년소녀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전부 성장한 다음.
한 사람의 역할을 톡톡히 하며 자랑스러운 기사라 부를 수 있을 때가 된다면.
아마 그때는 본인들이 두 팔 걷어붙이며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다.
“다이니는 애초에 그런 훈련이 필요 없다니까?”
“애 좀 도와주면 어디 덧나? 같이 상부상조 해야지!”
“샬롯도 거기 좀 껴주시면 안 돼요?”
자기들끼리 불이 붙어서 서로 훈련 방식에 대해서 토론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건 꽤나 건강한 방식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근데 나 잘 건데.”
나는 지금 자야 건강하다.
그냥 역소환 해버릴 생각으로 손을 뻗는 순간.
똑똑.
밖에서 들려온 노크소리.
순간적으로 모두의 고개가 휙 돌아가며 문으로 시선이 쏠린다.
“이안 아이넬,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겠나.”
“헥토르 교수님?”
늦은 시각이지만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아직 잠들지 않았다는 걸 알았나 보다.
단원들을 역소환하려 했으나 이것들이 한쪽 벽으로 찰싹 달라붙어서는 모습을 최대한 안 보이려 몸을 숨긴다.
역소환 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들을 보며 나는 한숨과 함께 문을 열었다.
“아직 안 자고 있어서 다행이다.”
“무슨 일이세요?”
나는 일부러 방 밖으로 나서며 헥토르가 내부를 보지 못하게 했다.
“잠깐 올 수 있겠나? 학장님이 부르신다.”
“학장님이요?”
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야심한 밤에 굳이 헥토르 교수를 통해서 나를 부르는 걸 보면 심상치 않은 일이지 않을까.
방문을 닫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단원들이야 자기들끼리 떠들 시간이 늘었으니 좋아하겠지.
헥토르와 함께 조용히 기숙사 밖으로 나서자 쌀쌀한 밤공기가 몸 사이사이를 스치고 지나간다.
여름은 진즉에 끝났고, 이제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
하지만 춥다는 느낌보다는 콧잔등이 시큰하니 시원하다는 감상이 더 강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금방 도착한 학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노란 등불 하나만 켜둔 채로, 학장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뒷짐을 진 채로 아카데미의 풍경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는 그의 뒷모습에서는 묘한 애한이 느껴졌다.
“이안 생도, 왔는가.”
천천히 몸을 틀어 나를 바라보는 학장.
두툼한 그의 근육들이 오늘따라 힘이 없어 보였다.
“예,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좀 거칠게 말했던지라 나를 향해 적대적으로 굴 거라고 생각했으나.
의외로 학장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학장실에 놓인 소파로 안내했다.
앞서 두 차례 학장실을 방문했지만 소파로 안내한 건 처음이었다.
“늦은 밤이긴 하지만 오면서 쌀쌀했을 테니 차라도 들지.”
그렇게 대접용 소파에 앉는다.
맞은편에 학장이 앉았으나 헥토르는 그의 옆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여기 있네.”
끓여진 차의 온기와 향을 느끼며 한 모금 마신다.
사실 차의 맛은 잘 모르지만 윤이라면 이런 걸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쨌든 몸이 따듯해지는 효과는 있었다.
잠시 차를 마신 후, 학장은 나를 응시하며 본론을 꺼내 들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해 줘서 고맙네. 자네가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더한 피해를 입었겠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저 말고 헥토르 교수님도 노력해 주셨으니까요.”
일부러 헥토르를 언급했으나 학장은 고개만 끄덕이며 넘어간다.
아무래도 칭찬하려고 부른 건 아닌 듯싶었다.
“그래, 하지만 이번 일 때문에 전도유망하던 생도들이 많이 눈을 감게 되었네.”
“…….”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당장에는 그들이 행실도 썩 좋지 않고, 불량했을지 몰라도.
아직 어린 소년들이었다.
미래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였다.
“그리고 나는 아카데미의 최고책임자로서 그들의 목숨에 대한 책임을 짊어질 필요가 있네.”
예상하지 못했다는 건 거짓말이겠지.
이미 아카데미에는 너무 많은 사건이 일어났고, 학장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일부는 내가 연관되어 있었기에 좀 미안했지만 어쨌든.
“나는 이번 사건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네. 내 다음 학장이 될 인물도 벌써 내정된 상태지.”
이미 차기 학장으로 내정된 사람이 있다는 건 조금 뜻밖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일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능한 여인이니 아마 지금보다 훨씬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 줄 게야.”
생도인 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빙그레 웃어주는 모습을 보니 조금 애처롭긴 했다.
“하지만 다음 학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전에,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네.”
아마 지금부터 할 말이 나를 부른 이유일 테고, 하나 정도 짐작하는 부분이 있었다.
“벨레스인가요?”
혹시나 하고 찔러보자 고개를 끄덕이는 학장.
벨레스 테오도른.
최근 모습이 보이지 않아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하고 있었다.
학장은 다시금 차를 마시며 목을 축인 후, 챙겨두었던 벨레스의 학생기록부를 내민다.
“벨레스는 따로 내게 자백했네. 자신이 예전 윙보드 소속이었으며, 이번 습격을 막고자 연막탄을 뿌린 게 본인이었다고.”
“저도 들었습니다.”
“그래, 이안 생도에게 쓰러진 것까지 다 얘기해 주었네.”
“…….”
그렇게까지 다 얘기했다는 건, 벨레스가 결국 자신의 꿈을 포기했다는 뜻이 아닐까?
수인이라는 걸 밝히고 자수한 게 아닌가 싶었으나.
“자네의 이야기를 듣고 싶네.”
“예?”
학장은 조금 뜻밖의 말을 내뱉었다.
“자네는 벨레스와 친구로 동아리에 받아주기까지 했지. 하지만 반대로 가르덴이라는 수인의 폭주를 막아서기도 했어.”
“…….”
“벨레스와 가르덴은 서로의 신념에 있어 대척점에 서 있더군. 그리고 그 부분은 내게 꽤나 흥미롭게 다가왔네.”
예상치 못한 학장의 말.
이번 사건을 통해 그가 무언가 느꼈을 수도 있다.
수인의 분노를 보며 나와 마찬가지로 인간과 수인의 관계에 대한 의문을 품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혹은 원래부터 수인에게 선입견이 없었을 수도.
다시 생각해 보면 아무리 그래도 반년 동안 레지스탕스의 간부를 생도로 두는 건 너무 위험한 행위였다.
혹시 학장은 가르덴을 잡는단 명목을 이용해서 반년간 벨레스를 시험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확인할 길은 없었다.
“벨레스를 믿어보고 싶지만, 가르덴을 생각하면 그게 힘드네. 내가 또 하나 분란의 씨앗을 남겨두고 떠나는 게 아닐까 싶어.”
“그 말씀은…….”
“자네의 선택에 맡기겠네.”
슬며시 벨레스의 학생기록부를 내미는 학장.
“벨레스가 수인이라는 걸 알고 있는 건 나와 헥토르 교수밖에 없어. 극비 중의 극비였으니까.”
“…….”
“만약 자네가 벨레스를 믿어보겠다고 한다면, 벨레스 테오도른이 수인이라는 기록은 아카데미에서 지워지게 될 걸세.”
수인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의 신분으로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 역시 경비대의 감옥으로 이송되겠지.”
어찌 보면 책임을 떠넘긴다고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떠나가는 입장이 되어버린 현 학장의 관점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게 나라는 뜻이기도 했기에.
나는 벨레스의 학생기록부를 받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