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잠깐의 방황 끝에 다시 우리에게 돌아온 벨레스에게 박수.”
짝 짝 짝.
고요한 공간 속 울려 퍼지는 작은 박수 소리.
“바, 박수 치면 안 됐던 거야?”
유일하게 내 말에 호응해서 박수를 쳐준 샬롯이 다른 친구들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손을 내린다.
미묘한 반응 정도는 예상했지만 이건 싸늘한 수준.
이런 상황에서 당연하게도 먼저 입을 열며 치고 들어오는 건 마리아였다.
“쟤, 나갔었어?”
정말 벨레스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는 게 드러나는 한마디.
“그냥 가만히 있어.”
“굳이 입 열지 마라.”
그런 마리아에게 다이니와 베런이 한마디씩 했으나 정작 마리아는 심드렁하니 어깨를 푼다.
“나는 훈련하러 간다?”
귀찮다면서 그대로 떠나버린 마리아.
장죽을 입에 물고 있던 윤은 벌써 끝났냐며 마리아를 반겼다.
“저것들은 무시하고.”
어차피 얘기해 봤자 뭐 통하지도 않는 놈들이다. 그냥 지들끼리 놀게 둬야지.
“왜 최근에 모습이 안 보였는지 정도는 설명을 들어야 하는 거 아냐?”
다이니가 슬쩍 내 쪽을 힐끔거리며 묻는다.
“듣기로는 베런이랑 싸웠다던데?”
“베런이랑 싸웠었어?”
“…….”
다이니는 일부러 쪼아대는 말투를 구사하며 앞장서서 벨레스를 압박했다.
깜짝 놀란 샬롯과 상황을 지켜보는 실리아.
베런은 내 의중을 파악하려는지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야, 말 좀 해 봐. 모의고사에서 진 거 때문에 빡쳐서 싸운 거야? 아니면 서로 말다툼이라도 했냐?”
자연스럽게 베런을 향해 질문이 돌아간다.
“아니면 뭐, 말 못 할 엄청난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
다이니의 말에 베런은 시선을 돌려 그녀와 눈을 맞춘다.
걸치고 있는 외투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있는 다이니.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비를 걸 것 같은 누가 봐도 삐딱한 모습.
다이니가 눈을 피하지 않고 계속 노려보자 결국 베런은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그냥 잠깐 대련한 것뿐이다. 모의고사에서 졌지만 사적인 감정으로 다투진 않는다.”
“그랬냐?”
베런의 한마디에 빠르게 수긍하는 다이니.
그걸 보고 있던 벨레스도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잠깐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어. 하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거야. 미안하다!”
신입생 신고식이라도 하는 듯한 패기로운 외침.
그걸 끝으로 다들 자연스럽게 훈련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턱 쏴라.”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 치고 지나가는 다이니.
베런은 벨레스가 특별한 비밀을 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서로 불편한 관계지만 내가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기도 모호한 상황.
그래서 필요한 게 다이니였다.
내가 요구한 대로 다이니는 괜히 화가 난 척하며 흐름을 주도했고, 베런이 넘어갈 수밖에 없는 흐름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훨씬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해 낸 다이니에게 슬며시 엄지를 치켜 올려준다.
이번 주가 끝나고 다시 아카데미가 정상적으로 강의를 진행하게 되기 전.
회식을 한 번 할 생각이었으니 그때 대충 퉁 치면 되겠지.
“벨레스는 창을 쓰니까 도로시가 맡자. 엘빈이랑 켈빈이 실리아 쪽을 봐주고.”
“알겠습니다아!”
실리아를 봐주던 도로시가 경례하며 그대로 벨레스에게 달려간다.
아무래도 실리아와는 다루는 무기가 다르다 보니 가르침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음식 뭐 좋아해?”
벨레스에게 어떤 식으로 훈련이 진행될지 미리 알려 두긴 했지만, 도로시의 호들갑스러운 반응에 당황한 듯 보이는 녀석.
“계란 샐러드, 좋아합니다.”
“으음! 마요네즈 뿌리면 맛있지! 나도 그거 좋아해! 뭐, 실은 요리는 다 좋아하지만!”
해맑게 웃으면서 자신의 창을 가져온 도로시.
벨레스에게 이런저런 창술을 가르쳐주겠다고 방방 날뛰지만.
그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다른 생도들과 다르게, 그는 성인.
21살인 데다가 본인만의 창술도 나름대로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조금 어리게 느껴지는 도로시에게 가르침을 받는 게 불편한 듯싶었다.
하지만.
“흐응! 일단 대련부터 해볼까? 지는 쪽이 이긴 사람한테 빵 사주기.”
본인의 욕심을 그득 담은 제안을 하는 도로시.
곤란해 보이는 벨레스에게 그녀는 방실 웃으며 말했다.
“만약 네가 이기면 내가 빵에 추가로, 단장한테 말해서 개인훈련을 하게 해줄게.”
“……알겠습니다.”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승낙한 벨레스.
그렇게 잠시, 두 사람의 대련을 위해 훈련장의 자리를 비켜준다.
정중앙에 선 두 사람.
심판을 보는 건 톰으로, 둘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룰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뒤지지만 않으면 되는데. 훈련은 해야 하니까 어디 부러트리는 것도 안 된다.”
정말 나름이란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무식한 규칙이었다.
“와, 씨. 우리도 대련하면 안 되나?”
“아서라.”
방방 뛰는 마리아를 잠재우는 윤.
그런 두 사람을 지나쳐 슬며시 내게 다가온 베런.
할 말이 있어 보이는 그가 내 앞에 선다.
“이안, 나는 네가 남의 말을 허투루 듣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벨레스에 대해서 뭔가를 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베런은 고백하듯 말을 털어놓았다.
“벨레스가 우리와는 다른 건 알겠다. 레지스탕스와 연관이 있었음에도 네가 부원으로 받아들였다.”
“맞아.”
“레지스탕스라면 벨레스도 수인이겠지? 사실 인간으로는 생각되지 않는 힘이 의아했다.”
“……맞아.”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네가 가볍게 그를 받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도 맞아.”
내 앞에 선 이후로 베런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그저 무뚝뚝하게 자신이 느낀 바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를 믿고, 나도 편견 없는 시선에서 벨레스를 보고 얘기를 나눠보겠다.”
“…….”
벨레스가 수인이라는 걸 알더라도, 과묵한 베런은 내가 부탁하면 소문을 퍼트리진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다.
다만, 최악에는 그가 우리 동아리를 떠나는 것까지 걱정했었으나.
“고마워.”
그는 나를 믿어줬다.
나를 믿어주고, 또한 수인이라는 편견을 이겨내려는 베런이 고마웠기에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베런도 드물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섰다.
그러다 문득, 기억났다며 한마디 더 보탠다.
“그러고 보니 저 톰이라는 분은 은퇴하신 기사인가?”
“……뭐, 비슷해.”
“혹시 지난번 펠로칸 숲으로 실습을 갔을 때 나와 마리아가 상대한 것도 저분이신가?”
“아…….”
생각해 보니까 그런 일도 있었구나. 당시에는 갑옷에 투구까지 썼으니까 얼굴을 보지는 못했겠지만.
사용하는 검술과 덩치를 보면 이제는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이상했겠지.
“맞아, 그때 나를 따라서 펠로칸 숲에 왔었거든.”
굳이 숨기지 않고 대답하자 베런의 입가가 호기롭게 꿈틀거린다.
“잘됐다.”
“음?”
“그때의 느꼈던 위압감, 공포, 패배감은 어디서도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 투기를 발산하는 남자에게 배울 수 있다면 환영이지.”
“…….”
다이니도 그렇고.
베런도 그렇고.
눈치가 좋은 편에 속해서 그런 걸까.
분명 이상한 점이 있는 상황에서도 굳이 캐묻지 않는다.
어째서 톰이 갑옷을 입고 펠로칸 숲에 있었냐고 질문할 수도 있지만 베런은 하지 않는다.
나를 향한 믿음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 물어도 내가 제대로 대답해 주지 못한다는 걸 대강 눈치채고 있기 때문이겠지.
‘배려 받는 기분이네.’
받는 기분이 아니라, 배려를 받는 중이라고 스스로 정정하던 순간.
“쿠억!”
사정없이 바닥을 구르는 벨레스와 어깨를 활짝 편 채로 콧대를 높이는 도로시.
도로시는 창을 어깨에 얹고는 벨레스에게 웃으며 말했다.
“창술이 거칠고 공격적인 건 좋아. 그런데 거기서 끝나면 한계가 정해진 창술이야! 단순히 피지컬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기술을 써야지.”
“아.”
자신의 창술이 완벽하게 박살 났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는지 일어나지도 못하고 도로시를 올려다보는 벨레스.
그런 그에게 도로시는 빙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얼른 일어나! 네 창술은 매력적이야! 꽤 많은 부분을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아, 네에.”
도로시의 손을 잡고 벌떡 일어난 벨레스.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으나 일단은 도로시의 실력을 인정하게 된 건 분명했다.
“아참, 빵 사 와야지.”
하지만 내기는 내기라며 벨레스의 등을 밀어 훈련장 밖으로 쫓아낸다.
“흐음.”
어떤 빵을 사 올지 기대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훈련 멈추고 각자 맡은 생도랑 대련 한 번씩 하자.”
내 말에 몇몇은 좋다며 환호했고, 몇몇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어제는 하루라도 빠르게 부원들을 성장시키고 싶었기에 훈련에 들어갔지만 막상 우리 단원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부원들에게 인식시켜 주지 못했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기사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있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빠질게.”
“아, 왜?!”
그때 손을 번쩍 들고 말한 윤.
마리아는 대련을 한동안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으니 그런 거겠지.
“그래, 너희는 구경만 해.”
“싫어! 나도 대련할 거야! 윤이랑 싸울 거야!”
무슨 애처럼 투덜거리는 마리아였으나, 애초에 마리아는 윤이 얼마나 괴물 같은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레이로즈 가문에서 보고 겪었다.
이번 대련은 마리아에겐 굳이 필요하지 않겠지.
“더 강해지기 위해선 참는 것도 필요해, 이년아!”
“그냥 몸이 작아져서 쫄은 거 아냐?!”
윤과 마리아가 티격거리는 걸 무시하고 다른 이들을 불러 모은다.
서로 각자가 맡은 생도들과 짝을 이루며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다.
* * *
며칠 후.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오는 묘령의 여인.
큰 키, 굴곡진 몸매, 콧등에 걸린 안경과 깔끔하게 묶여있는 보랏빛 머리카락.
첫인상부터 사무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녀는 아카데미의 입구에 선 채로 주변을 슥 둘러봤다.
“쯧.”
그러곤 옅게 흘러나오는 혀 차는 소리.
무엇이 그리도 마음에 안 드는지 아카데미를 바라보며 구겨진 인상은 도저히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따위로 관리를 하니까 그렇게 소란이 터져 나오지.”
손을 뒤로 뻗자, 그녀의 뒤를 따라붙던 남성 중 하나가 곧바로 수첩과 펜을 건넨다.
펜을 받아 든 여인은 망설임 없이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노트에는 아카데미의 부족한 점들이 빼곡하니 채워져 간다.
왕실교육부의 정책실장으로 일하던 여인, 로젤리아는 이제부터 자신이 책임지게 될 나이트 아카데미를 바라보며 여러 생각에 잠겼다.
원래라면 은퇴한 기사단장 정도가 임명되어야 하는 자리.
하지만 이번에 학장까지도 굳이 기사일 필요가 있냐는 말이 나왔다.
애초에 학장은 직접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기보다는 사무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편이었으니까.
이미 뛰어난 기사로 빼곡하게 들어찬 교수진이 있으니 오히려 운영 면에서 유능한 인재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는 게 맞다는 주장.
좌천이라며 모두가 피하는 자리.
그럼에도 로젤리아는 본인이 직접 지원하여 수도에서 이곳까지 내려왔다.
원래라면 정년에나 앉아야 할 자리를 30대 중반의 여인이 꿰차게 된 것.
“많은 게 바뀔 필요가 있겠어.”
로젤리아는 하나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으며 아카데미 안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