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성검의 주인.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청년이라도 저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에 대해선 모르지 않을 것이다.
신이 내려준 검.
왕국에서 소유 중인 귀중한 보검이나 위대한 대장장이가 두드려낸 숭고한 명검과는 다르다.
실력이 있다고 쥘 수도 없고, 돈이 있다고 얻을 수도 없다.
그야말로 대륙에서 유일하게 선택된 딱 한 사람만을 위해 선사되는 최고의 보물.
다른 검들과는 애초에 분류조차 다르게 들어간다.
보검과 명검 같은 경우는 그래도 검이라는 대분류에서 나누어지는 거라면.
성검은 애초부터 성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검으로 파생되어 들어간다.
태생과 배경부터가 아예 다르다는 뜻이었다.
그런 검을.
“저요?”
나한테 준다고?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녹색 머리카락의 여인은 밝게 웃으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은발의 기사 생도, 이안 아이넬. 당신이 바로 세리안 님께서 이 땅에 하사하신 검의 주인입니다.”
세리안은 또 누군가 싶었다.
“와.”
평소답지 않게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앤이 탄성을 흘린 덕분에 그나마 제정신을 좀 차릴 수 있었다.
“성검의 주인이라고? 이안이? 와아.”
그녀의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것처럼 방금까지 나를 잡아두고 있던 선도부에서도 황급히 아카데미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 대해서 자신들은 판단할 수 없으니 누구든 본인보다 높은 직책의 사람에게 보고하려는 거겠지.
선도부는 내버려두고.
얼떨떨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여신도를 보자 그녀는 뜬금없이 앤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다.
“저기…… 어디서 뵌 적이 있지 않나요?”
“예? 아, 아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깜짝 놀란 앤은 자신이 뭔가 크게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곧장 고개를 돌린다.
그게 굉장히 부자연스러워 보였기에 여인의 시선이 그대로 앤에게 따라붙었으나.
“그래서 저한테 성검을 주시겠다고요?”
나는 슬쩍 끼어들어 앤에게 향하던 시선을 잘라낸다.
여인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는지 손뼉을 짝 치며 답했다.
“맞아요. 그것도 아주 위대한 세리안 님께서 사용하시던 성검이에요.”
아까부터 그 세리안이라는 놈이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나빠 보이진 않는 조건이었다.
아니, 오히려 타이밍이 너무 좋다고 말해야 할 지경.
‘검이 필요했는데 이렇게 검이 굴러들어 온다고?’
신기할 정도로 딱 맞물리지 않는가. 진짜로 신이라는 존재가 내 상황을 보고 딱 맞춰서 선물이라도 쥐어준 기분.
“일단은 이렇게 서서 얘기하지 마시고 저랑 같이 다른 곳이라도 가서 얘기를 나누시죠.”
“……아카데미 안으로 가시죠.”
내 말에 여인은 살포시 미소를 흘리다가 깜빡했다며 손으로 입가를 가린다.
“제 소개를 아직 안 했네요. 저는 프나틱스교의 성녀, 루메나라고 합니다.”
“성녀?”
뜬금없는 단어가 튀어 나왔다고 생각해 어깨가 살짝 들렸으나, 더욱 신뢰를 주는 직책이기도 했다.
“나, 나는 이만 갈게.”
“어, 그래. 마법 조언 고마워.”
아까 루메나에게 한마디 들은 뒤로 조심하고 있던 앤은 휙 몸을 돌려 그대로 메이지 아카데미 쪽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성격상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끝까지 따라붙을 텐데 따로 특별한 사정이 있어 보였다.
“자, 가시죠.”
뭐, 그건 그거고.
일단 나는 루메나와 함께 아카데미로 넘어갔다.
중간에 경비들이 묘한 표정을 지었으나 주말에는 외부인 출입도 가능하기에 크게 문제는 없었다.
메이지 아카데미에서도 주말만 되면 마탑의 마법사들이 힐다의 마석을 해석하겠다고 찾아왔었으니까.
그것도 이제는 과거가 되었지만.
“멋진 장소네요.”
“뭐, 기사를 키우는 장소니까요.”
“후훗, 좋습니다. 이런 장소에서 훈련을 받으시고 교육을 받으셨으니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겠죠.”
“…….”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나이트 아카데미의 훌륭한 교육 때문은 아니지만.
일단 그것보다는 그녀가 내 행보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가 신경 쓰였다.
“당연히 저는 이안 님에 대해서 여러 조사를 해봤답니다.”
내가 그런 부분을 묻기도 전에 먼저 말을 꺼내는 걸 보면 눈치도 상당했다.
단순히 기도만으로 성녀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건 아니란 거겠지.
“1학년 1학기부터 로베르담 지하수로에서 레지스탕스를 무찌르시고, 마몬의 하수인이라던 가르간테와의 전투에서도 기지를 발휘하셨으며…….”
그 뒤로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 쭉 나열된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까지도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으며 유능함을 입증해 갔다.
“그리고 이렇게 잡지에도 실리셨고요.”
옆으로 매고 있던 가방에서 슬쩍 꺼내 든 둥글게 말린 잡지. 아까 무기점 아저씨가 보여줬던 월간지였다.
“아.”
“잘 나오셨네요.”
내 사진을 가리키며 웃는 그녀.
일단은 어디 자리라도 좀 잡고 앉으려고 했으나.
저 멀리서 다급하게 걸어오는 한 무리의 사람들.
학장인 로젤리아의 뒤로 쭉 뻗어 있는 선도부원들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나랑 나름대로 연이 있는 에디 브릴리언 정도가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안녕하세요, 나이트 아카데미의 학장인 로젤리아라고 합니다.”
“학장이신데 굉장히 젊으시네요. 저는 프나틱스교의 성녀 루메나라고 합니다.”
“성… 녀.”
힐끔 눈동자를 굴려 나를 보는 로젤리아에게 그저 어깨만 으쓱거려 준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본교의 생도에게 성검을 양도하고 싶으시다고…….”
“네, 맞습니다. 신탁이 내려왔거든요.”
“신…… 탁.”
“기도를 드리던 와중 갑자기 빛이 쏟아져 내려오며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로베르담의 이안 아이넬에게 성검을 전달하라고.”
점점 더 안색이 하얗게 뜨고 있는 로젤리아는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다시금 나를 확인한다.
폴탄 해안 사건 탓에 탄탄하게 잡혀가던 선도부의 입지가 흔들리고, 대신에 내가 활약해 버렸다.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서 나를 억지스럽게 규제하던 선도부였으나 성검까지 받게 된다면 아카데미 내에서 나라는 존재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린다.
하지만 학장도 잘 알고 있겠지.
자신이 막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걸.
피식 웃으며 로젤리아를 보자 그녀의 표정이 굳더니 결국에는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정말, 축하할 일입니다.”
“네, 맞습니다. 성검 발굴 이후 드디어 주인을 찾은 거니까요.”
눈치가 좋던 루메나가 학장의 탐탁지 않아 하는 반응을 모를 리 없으나.
그녀는 철면피처럼 계속 미소를 띤 채로 대화를 이어갔다.
일단은 아카데미 소속이었기에 성검 수여식이라는 걸 위해서 학장과 함께 일정 조율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 * *
기숙사의 내 방.
성검 수여에 대한 소문이 어찌나 빠르게 퍼졌는지 벌써 은빛 사자 연구회 부원들이 한 차례 내 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설명해 달라는 것부터 시작해서 대단하다는 감탄, 성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고찰, 프나틱스교에 대한 설명이나 소문 등.
생각보다 자세하게 알고 있던 베런 덕분에 여러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생도들이 다 빠져 나가고 방 안이 너저분해졌으나 나는 청소할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마나를 쏟아낸다.
어느새 여덟 명이나 소환할 수 있게 된 기사 단원들이 방 전체를 꽉 채운다.
“아우 좁아!”
“발 밟지 마세요!”
“단장님, 톰은 역소환 하시는 거 어떠십니까?”
“뭐라는 거야! 역소환 할 거면 가장 늦게 소환된 네가 역소환 돼야지!”
여덟 명이나 되니 심각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게다가 부대끼면서 갑옷끼리 부딪치는 소리까지.
더 큰 방으로 옮기거나 할 수는 없으니 나중에는 상황 설명을 해줄 때, 1, 2차 소환으로 나누게 될 것 같다.
“다들 조용하고 아무 곳이나 일단 앉아 봐.”
침대에 꾸겨 앉고, 바닥에 억지로 몸을 웅크린 채 앉은 단원들을 보며 나는 숨을 고르고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설명했다.
프나틱스교의 성검 소유자로 인정받고, 성검 수여식을 가야 한다는 이야기.
내 말을 듣는 순간, 단원들의 반응들은 여럿으로 엇갈렸다.
“와! 대단하십니다, 단장!”
“역시! 300년 전까지 포함해서 대악마만 셋을 죽였는데 당연한 결과입니다!”
“키야! 성검 수여식이면 먹을 것도 많겠네요?”
일단 무지성으로 좋다면서 박수 치고 대단하다고 축하하는 애들.
“성검……? 그리고 프나틱스교?”
“…….”
입을 꾹 다물고 고민에 빠진 워즈와 한나.
“성검 받아 오면 제대로 대련 한번 할 수 있겠네. 지금 검으로는 힘들었잖아.”
현 상황이나 미래에 대한 생각은 일절 없이 이제 제대로 나랑 대련할 수 있겠다며 장죽을 입에 무는 윤.
마음 같아서는 첫 번째와 세 번째는 전부 역소환하고 싶었지만 일단은 조용히 시킨다.
내가 썩 유쾌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다들 눈치를 보며 다무는 분위기.
“기쁘지 않으십니까?”
톰이 은근슬쩍 물어왔을 때 나는 미묘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말이야. 처음에는 좋았거든? 마침 검을 구하러 갔었는데 마음에 드는 검이 없었으니까. 타이밍이 너무 좋구나 싶었지.”
그래, 당시에는 그랬다.
사람이 좋은 일이 생기면 그대로 흐름을 타는 경향이 있듯이. 나 역시 당시에는 크게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단순히 대악마들을 사냥했으니 내게 자격이 주어졌다고 생각했을 뿐.
근데 점점 생각하다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단장님의 몸에는 이미 대악마가 깃들어 있는데 성검의 주인?”
워즈의 말이 정확했다.
내가 이상하게 여긴 점도 바로 저것이었다.
“그치? 나도 그게 묘했어.”
내가 아무리 대악마를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내 몸에도 대악마가 살아 숨쉬고 있다.
예전에는 잠들어 있다는 느낌이었는데 최근 레비아탄과 벨페고르를 먹어치우면서 녀석의 감각을 종종 느낄 때가 있었다.
“불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나쁘게만 볼 수도 없습니다.”
그때 슬며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한나. 그녀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견해를 보였다.
“반대로 성검을 통해서 단장의 안에 있는 마몬을 더 강하게 억제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도 그렇네.”
아예 없는 가능성은 아니었다.
성검이라는 게 정확하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악마 같은 것들을 잡는 데 뭔가 유용한 효과가 하나라도 있긴 할 테니까.
워즈 역시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에는 내가 가서 직접 쥐어보지 않는 한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성검이라는 게 진짜로 있는 거였습니까?”
당장에 뭔가를 확인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흐르던 침묵을 깬 건 넬슨이었다.
“저희 시대에는 그런 거 없지 않았습니까?”
“있었으면 바로 가서 챙겨왔을 텐데.”
“우리 때는 전설의 무기 같은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진짜로 있다니까 신기하네.”
300년 전에는 성검 같은 건 없었다.
그런 게 있었으면 마몬이랑 싸울 때 내가 사용했겠지.
“듣기로는 신탁을 듣고 가본 곳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져 있었는데 그 안에서 나온 게 성검이라고 하더라.”
내 말을 듣더니 다들 기묘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기에 얼른 뒤에 덧붙인다.
“나한테 그런 눈 보내지 마. 베런이 말해준 거야.”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어쨌든 그렇다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