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성검 수여식을 여기서 하겠다고요?”
다음 날 아침.
기말고사가 코앞인 상황에서 오전 강의를 빼먹고 찾아온 학장실.
이렇게 불러낸 게 처음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학장실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학장 로젤리아와 성녀 루메나였다.
겨울방학 이후, 내가 직접 프나틱스교의 신전으로 찾아가서 하기로 했던 성검 수여식을 당긴다는 이야기.
당사자인 내가 없는 곳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게 아닌가 싶긴 했으나, 나한테 나쁜 얘기는 아니었다.
굳이 거기까지 가면서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네! 맞아요! 하루라도 빨리 이안 님에게 성검을 넘겨드리고 싶은 마음에 말씀드렸더니 학장님께서 아예 여기서 수여식을 진행해도 된다고 허락해 주셨거든요!”
목소리부터 행동까지.
즐거운 일만 가득하다고 말하는 듯한 루메나가 조금 부담스러웠기에 슬쩍 학장을 확인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똥 씹은 표정으로 나를 보던 그녀였으나, 지금은 방긋 웃고 있는 모습이 참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이안 생도가 성검의 소유자가 된다는데 우리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그냥 있을 수는 없잖니. 아주 성대하게 진행할 생각이란다.”
‘이용해 먹으시겠다?’
나를 견제하려던 노선을 참으로 빠르게도 변경했구나 싶었다.
폴탄 해안 사건 때문에 위상이 높아진 내가, 성검까지 소유하게 되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차라리 학장의 입장에서는 선도부를 통해 나를 압박하며 자신의 울타리에 넣는 게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떠받들며 휘광을 받기로 선택한 모양이었다.
‘저걸 현명하다고 해야 하는지.’
아마 성검 수여식이라는 이름으로 또 뭔가를 성대하게 하려 하겠지.
이름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면서 나이트 아카데미의 위상을 높이려 들 수도 있다.
아카데미 생도 중 성검 소유자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나이트 아카데미와 학장의 이름값이 높아지니까.
참 당돌한 여인이 아닐 수 없었다.
“솔직히 사람들한테 그다지 알려지고 싶지 않긴 한데요.”
대체로 성검이나 다른 이름 있는 보검들을 가지고 있는 경우, 겉으로 보기엔 득이 많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귀찮은 일이 자주 생긴다.
특히나 나 같은 경우는 성검 소유자라고 널리 퍼짐과 동시에 기사 생도라는 게 알려질 텐데.
그러면 고작 생도 정도면 자신들이 검을 뺏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놈들이 분명 나올 수밖에 없다.
가지게 되는 순간, 언제 어디서 찾아올지 모르는 괴한들과 성검의 소유권을 두고 다투게 되는 것.
로젤리아 학장의 표정이 굳더니 나를 설득하려 했으나, 그녀보다도 성녀인 루메나가 한 발 먼저 말했다.
“이안 님께서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부탁드립니다! 프나틱스교의 성검은 오랜 시간 주인을 찾지 못했어요. 교주님이나 장로님들께서도 이번 일을 아주 크게 공표하고 싶어 하십니다.”
“…….”
성검이라는 건.
말로만 들었을 때는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신성한 검으로 악마를 처단하기 위해서만 예비된 물건처럼 보이지만.
결국에 현실에서는 그것보다는 정치적인 의도로 이용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손 패에 불과했다.
‘뭐, 어차피 이름은 알려질 대로 알려졌고.’
잡지에도 실릴 정도인데 지금부터 몸을 사린다고 해서 될 수준이 아니었다.
게다가 상당히 격하게 원해오고 있지 않은가.
‘나름 학장한테 빚도 만들 수 있겠네.’
지난번부터 계속 거슬리는 학장에게 빚을 만들 기회이기도 했다. 성검의 선택을 받은 내가 수여식을 거부하면 결국 꽝이니까.
“고민 좀 해보고요.”
“아.”
“알겠습니다.”
내 대답을 듣자, 두 사람은 탄식에 가까운 대답을 뱉어낸다.
이미 내 안에서는 성검 수여식을 아카데미에서 하는 걸로 결정은 했지만, 굳이 그걸 바로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취할 수 있는 건 일단 최대한 뽑아 먹어야지.’
같이 휘말리게 된 성녀에겐 미안하지만.
어디 한번 열심히 짜볼 생각이었다. 나한테 무엇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
* * *
“네, 허락해 주셨습니다.”
로베르담에 따로 잡은 호텔방.
성녀 루메나는 마력 통신구를 통해서 프나틱스교에 보고하는 중이었다.
– 성검 소유자께서 썩 내켜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통신구 너머에 있는 주교의 질문에 루메나는 안도감 섞인 미소를 담아 답했다.
“아카데미 측에서 이안 님을 설득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주셨습니다. 단순 생도의 범주를 넘어선 부분들까지 요구조건을 들어주시면서요.”
루메나 역시 자신이 다룰 수 있는 마법 몇 가지를 알려주긴 했지만, 성검 소유자에게 가르침을 주는 건 그녀 입장에선 당연했다.
– 흐음, 생각보다 실리를 추구하시는 분인가 보군요.
주교는 적잖이 포장해서 말했지만 솔직히 이렇게 자신의 입장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았다.
성검의 소유자라면 깨끗하고 청렴하며 또한 세상적인 것에 크게 물들지 않았을 줄 알았는데.
일단 성녀가 신탁을 받았으니 따르긴 하고 있으나 주교의 입장에선 벌써부터 탐탁지 않아하는 게 목소리에서부터 느껴졌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시골 마을에서 자라셨고, 따로 말씀에 대한 가르침을 받지 않으셔서 그렇습니다.”
– 크흠, 어떻게 성녀님께서 가르침을 통해 따로 이끄실 수 있겠습니까?
성검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한들 프나틱스교의 교리에 따르지 않고 방만하게 활동한다면 오히려 성검을 주지 않는 게 맞다.
그가 성검을 가지게 되는 그 순간부터 프나틱스교라는 이름에 얽매이게 되는 것이었다.
“으으음.”
하지만 루메나 성녀는 그 질문에는 따로 답하기가 곤란했다.
잠깐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시간밖에 이안 아이넬을 보지 않았으나.
사람을 잘 보는 루메나 성녀의 입장에서, 이안 아이넬이란 소년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정말 시골 소년이 맞는 건지 의심이 될 정도로.’
성녀조차 그를 교화시켜 프나틱스교의 신자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은 하지 못하겠다.
“저는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만.”
루메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질문을 넘긴다.
“신탁이 내려왔으니 분명 계획이 다 있으신 거겠지요.”
– 크흠, 그렇겠지요.
그 뒤, 이어진 잠깐의 침묵.
주교는 다시금 헛기침하며 진짜 본론으로 들어간다.
– 성검을 이송하는 일에 그분께서 매우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분께서 말씀이십니까.”
루메나의 눈동자가 크게 뜨인다. 프나틱스교의 주교와 성녀조차 함부로 이름을 언급하길 꺼려하는 존재.
– 최근 말씀이 많아지셨습니다. 아무래도 자신의 검을 다루게 될 소년을 직접 보고 싶으신 듯합니다.
“그러시겠죠. 예전부터 그런 면이 있으셨습니다.”
성녀 루메나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지킬 수 있을지 모를 약속을 내건다.
“성검 수여식 이후, 겨울방학이라 들었습니다. 제가 한번 프나틱스 신전으로 이안 님을 데리고 가보겠습니다.”
– 후으, 부탁합니다.
* * *
프나틱스 신전에서부터 로베르담까지 성검이 서둘러 도착하길 가장 바란 사람은 놀랍게도 로젤리아 학장이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고 나면 생도들도 대부분 떠나가고, 행사를 열 수 없으니 로젤리아 학장도 조급할 수밖에.
겨울방학 이후에 성검이 도착한다면 그녀의 계획은 전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었으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성검을 실은 프나틱스교의 마차는 예상보다 이른 시간에 아카데미에 도착했다.
“적어도 기말고사 중간에 하게 될 줄 알았는데.”
프나틱스교에서 나를 위해 가져온 백색 정복의 단추를 매며 독백했다.
기말고사가 시작하기 딱 직전.
성검 수여식을 치르게 되었고, 다른 성검도 아니고 몇백 년 동안 공석으로 있던 프나틱스교의 성검의 주인이 가려지는 자리가 열렸으니 꽤나 명망 높은 귀족들이 자리에 참석했다.
특히나 둠베스트나 브릴리언 같은 거물 귀족들도 성검 수여식도 보면서 자신의 아들, 딸과 비교하려는 속셈도 있었다.
“좀 별로인데?”
“머리가 은색이라서 그런 것 같아.”
아까부터 내 복장과 머리를 코디해주던 다이니와 샬롯이 애매하단 표정을 짓는다.
순백색 정복은 나도 입고 싶지 않았지만, 성검 소유자는 티 없이 정결하다는 의미에서 꼭 입어야 한다고 들었다.
“뭐, 그래도 본판이 볼만하니까.”
“이안 파이팅!”
다른 부원들은 복잡해지니 오지 말라고 했기에 아마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다.
지난번 윙보드의 가르덴 사건 때문에 운동장에서 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찾아온 손님들을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바깥에 둘 수는 없기 때문인지 수여식은 강당에서 진행된다.
두 사람이 나가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이번엔 헥토르 교수가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나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번 수여식을 진행하는 조건으로 네가 내 재계약을 조건 중 하나로 넣었다고 들었다.”
“아, 들으셨어요?”
몰래 넘어가려고 했는데 들었구나. 나는 볼을 긁적이며 답했다.
“그냥 교수님한테 선택지가 있으면 좋겠구나 싶었어요. 너무 일방적으로 떠나게 되셨으니까요.”
“…….”
“굳이 제가 그렇게 제안했다고 무조건 재계약을 하실 필요는 없으세요. 경비대로 가고 싶으시면 가시면 됩니다.”
부담 느끼고 무조건 교수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할까 봐 따로 말하지 않았던 건데.
민망한 표정으로 내가 말하자 헥토르 교수는 여러 고민 중인 듯싶었으나 그래도 다시금 내게 감사를 표하고 떠나갔다.
“이안 님 시간이 다 됐어요.”
대기실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넣은 채 말하는 성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간다.
“성검 수여식이라고 해도 그냥 가셔서 저희가 케이스에 넣어둔 검을 뽑으시면 돼요.”
시간이 촉박해서 리허설을 하지 못했으나, 그냥 내가 가서 쑥 뽑으면 되는 건지는 몰랐다.
“성녀님이 수여하고 그런 거 아니었어요?”
“성검은 신께서 주시는 거니까요. 아무리 제가 대리인이라고 해도, 성물은 함부로 인간의 손에서 손으로 넘어가는 물건이 아니에요.”
“…….”
“그냥 검을 뽑으시고 높게 치켜 올린 다음, 포즈 같은 거 취하시면 돼요. 멘트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다급하게 열린 수여식인지라 생각보다 단출했으나, 사실 찾아온 이들도 말씀을 듣거나 신의 기적 같은 걸 목도하기 위해서 온 건 아닐 거다.
그렇게 행사가 시작된다.
성녀 루메아가 먼저 무대에 올라서 자신을 소개한다.
들려오는 박수갈채.
그녀는 아카데미, 찾아와 준 귀빈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에게 감사한다는 멘트를 하며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간다.
괜히 성녀가 아닌지 깔끔한 진행.
겉만 번지르르하고 뼈대에 붙은 살이 없는 행사였음에도 그녀가 마이크를 잡고 말하기 시작하니 뭔가 웅장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자, 그럼 오늘의 주인공을 소개하겠습니다!”
성녀의 부름에 나는 무대 위로 나선다.
“이안 멋지다아아!”
“은빛사자 연구회의 자랑!”
“부장 최고!”
은빛사자 연구회 부원들은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는 환호하며 나를 응원하는 중이었다.
피식 입가에 그려진 미소.
“자, 그럼! 이제 성검 수여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나와 눈을 맞춘 루메아가 신호를 준다. 우뚝 선 케이스 안에 곱게 세워진 세리안의 검.
세리안이라는 천사의 검으로 알려진 물건으로 은색과 청색이 잘 어우러진 명검이었다.
성검을 이렇게 가까이에선 처음 보는데 확실히 빼어난 검이었다.
성검을 받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검자루를 쥐었고.
그 순간, 전신을 태울 것만 같은 고통이 성검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다.
‘크으으읍!’
만약 내가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면 당장에라도 비명을 토해내며 성검을 놓았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과격한 고통이 찾아올 줄은 몰랐으나 어쨌든 머리에 드는 생각은 딱 하나.
‘역시 함정이었구나.’
워즈와 한나랑 예상했던 여러 가능성 중 하나.
성검 자체가 함정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대악마를 품고 있는 나한테 성검을 주라고 내려온 신탁 자체가 의문이었다.
뭔가 의아함을 느낀 듯 루메나의 갸웃거리는 시선이 닿았으나.
나는 씨익 웃으며 검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