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파지지지직!
외부에서는 들리지 않겠으나, 성검에서 흐르는 전격이 손바닥에서부터 어깨를 타고 머리를 태우려든다.
전신이 마비되는 듯한 착각과 더불어 타들어 갈 것 같은 고통에 눈을 뜨고 있는 게 어려울 지경이었으나.
부웅!
나는 깔끔한 궤적을 그리며 검을 천장을 향해 높게 치켜 올렸다.
그와 동시에 쏟아지는 환호성.
“와아아아!”
“멋지다, 이안!”
“은빛사자 연구회의 자랑!”
함정일 가능성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피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성검을 이용해서 나를 엿 먹이려고 한 것 같은데, 그렇게는 안 되지.’
성녀라던 루메나도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프나틱스교의 다른 누군가가 파놓은 덫인지 아니면 계시를 내린 신이라는 작자가 나와 마몬을 노린 건지 모르겠으나.
‘잘 받아 간다.’
미안한데 미끼도 너무 큰 미끼를 사용했다.
성검을 이용해서 실은 내가 선택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성검이 거부하는 악한 자라는 방식으로 흐름을 유도하고 싶었겠으나.
성검이라는 무기는 실로 탐스러웠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더더욱 군침이 흐를 정도로.
꽈득.
이미 몸 전체에 퍼져 가는 고통에는 슬슬 익숙해져 간다.
통증을 참아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건 또 기사의 특기이지 않은가.
우리는 늘 흔들리지 않는 든든한 등을 보여줘야 하니까.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안심하라는 한마디 말이 아니라, 우뚝 서 있는 모습으로 증명해야 하니까.
“흐.”
성검이라는 함정을 파놓은 녀석은 지금 이 광경을 보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흘러 나왔으나.
입을 벌리면 전격이 입 밖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 착각에 이빨을 꾸득 깨문다.
“성검의 주인! 이안 아이넬을 다시 한번 박수로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쏟아지는 환호성과 박수갈채는 성녀 루메나의 진행에 맞춰 더욱 크게 터져 나온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나는 성검의 주인이 되었다.
* * *
콰앙!
“어우, 씨.”
다시 돌아온 대기실.
꼿꼿하게 등을 세운 채로 입가에 그윽한 미소까지 띠우던 바깥에서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대기실에 들어온 순간 바로 검을 바닥에 내던지며 지끈거리는 통증과 타오를 듯 뜨거운 머리를 감싸 쥔다.
성녀인 루메나에게 성검 수여식을 하는 대신 배운 회복 마법을 사용해 보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전격이 몸 전체를 뛰어놀듯 휘몰아치던 감각이 그렇게나 충격적이었건만 정작 눈에 띄는 외상은 없다는 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도대체 어떤 개 같은 놈이…….”
이따위 함정을 파놓은 건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성검까지 활용해 가면서 나를 무너뜨리겠다는 건 확실한 적의와 일종의 간절함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으니까.
“후우우우.”
의자에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숨을 깊게 내쉰다.
뜨거운 열기가 코와 입을 타고 뿜어져 나가며 이제야 좀 안정화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내 마나를 야금야금 먹어치워 가던 마몬 쪽도 꽤나 피해가 있어 보였다.
아무래도 성검이니까 대악마에겐 상성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겠지.
덜컹.
“이안 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루메나 성녀. 그녀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와 함께 나를 향한 칭찬이 담겨 있었으나.
“프니틱스교로 갑시다.”
“정말 훌륭…… 네?”
자신의 말이 끊겼다는 건 생각도 못하고 쭉 올라가 있던 입 꼬리가 천천히 벌어진다.
갑자기 왜 그런 결론이 나왔냐는 표정을 짓고 있는 루메나 성녀의 표정에 나는 비릿하게 미소를 흘렸다.
“성검을 쥐니까 마음가짐이 아주 달라지네요.”
“그러시군요!”
비꼬고 있는 줄도 모르는 루메나 성녀.
눈치 빠른 그녀였으나 내가 방금 무슨 경험을 했는지 모르니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역시, 괜히 이안 님을 성검의 주인으로 부르신 게 아니었어요. 프나틱스교에서는 이안 님을 환영해요!”
“네에, 가서 여러 가지로 배워보고 싶기도 하고. 성검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네요.”
“좋아요! 그럼 제가 신전 측에는 미리 연락을 해두고. 저도 가서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이안 님은 겨울방학에나 오실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그때 뵙죠.”
* * *
기말고사.
1년의 마무리라고 볼 수도 있으며, 사실상 가장 배점이 높은 시험.
게다가 3학년들은 나이트 아카데미에서의 마지막 시험이었기에 그들에게 있어서도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면 중간고사 때처럼 바로 방학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 하루의 텀이 생긴다.
졸업하는 선배들을 위한 졸업식을 치르는 것.
다이니와 마리아는 3학년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냐며 귀찮다고 투덜거렸지만.
내 입장에서는 꽤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3학년 중에 연이 있는 사람은 딱히 없지만, 그래도 이제 기사단으로 들어가 왕국의 최전방에서 방패이자 검으로 활약할 후배이자 선배들.
강당 안에서 늠름히 서 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묘한 감동이 치고 올라왔다.
‘풋풋한 것들.’
1학년 쪽에 서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풋풋하니 귀여운 걸 어떡하겠는가.
3학년이라고 꼬장 부리거나, 훈련장 독점하고, 기숙사에 찾아와서 괜히 한번 트집을 잡거나, 아카데미를 문란하게 만들기도 했고.
‘생각보다 좋은 기억은 없네.’
그나마 졸업식이라니까 좀 좋게 봐주려고 했는데 이것들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별로다.
방금까지 귀엽다는 감상은 어느새 싹 사라지고, 은빛사자 기사단으로 가는 생도가 있는지 정도만 까치발을 들어서 확인한다.
“아, 뭐 해.”
내 뒤에 있던 마리아가 안 보인다면서 투덜거리지만, 어차피 얘는 안 보는 애다.
아까부터 옆에 있는 다이니랑 벨레스한테 장난치고 있는 거 다 알고 있다.
‘쓰읍.’
아무리 은빛사자 기사단이라도 매년 들어가는 생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원하는 기사단에 갈 수는 없으나, 기사가 아니면 나이트 아카데미를 졸업한 의미가 없다.
그러니 결국 수많은 기사단이라는 이름의 거름망에 걸러지고 걸러지다가 마지막에 도달하는 곳이 은빛사자였다.
지금은 누구나 받아주는 기사단. 아니, 자경단 느낌이었으니까.
‘잘하고 있으려나?’
생각해 보니까 경각심을 가지라고 깃발도 훔쳐오고, 훈련을 어떻게 할지도 다 알려주고 왔는데 과연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기사단 현장체험은 1학년만 가다보니 2학년 때는 따로 갈 기회가 없었다.
3학년은 돼야 면접도 보러 다니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갈 수 있을 텐데.
“아, 안 보인다고.”
주먹으로 등을 툭툭 두드리던 마리아는 이제 재미가 붙었는지 머리로 등을 쿵쿵 찍어대기 시작한다.
살짝 짜증이 나긴 했으나 겨울방학이 시작되면 한 동안 또 못 보니까 그냥 넘어간다.
그렇게 그냥 가만히 두고 있자니 갑자기 머리를 박은 채로 물어오는 마리아.
“졸업식 끝나고 어디 갈 거야?”
“음? 프나틱스 신전으로 간다고 말했잖아.”
성검 관련해서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수여식 뒤로 몇 번인가 다시 성검을 잡아봤으나 똑같은 반응이었다.
무슨 저주라도 걸린 것처럼 다룰 수밖에 없어진 성검.
심지어 소환한 단원들은 쥐는 순간역소환 당했다.
‘괜히 성검이라는 게 아니라니까.’
몇 번이나 생각하지만 악마의 극상성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쓰읍, 신전? 좀 별로인데.”
“……음?”
여전히 등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몸을 돌릴 수는 없었고, 마리아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식비는 지원되지? 너 방에 보니까 돈도 엄청 많던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는데 옆에 있던 다이니가 바로 거든다.
“레스토랑 한 번 더 가면 안 되나? 로베르담에 한 동안 안 올 테니까 거기 스테이크 먹고 싶은데.”
그러자 또 반대편에 있는 벨레스가 의견을 낸다.
“나도 거기 좋다. 샐러드가 아주 취향에 잘 맞아. 신선하니 마음에 들어.”
“……니네 뭐라는 거냐.”
왜 따라올 것처럼 말하는 건가 싶어서 등을 튕겨 마리아의 머리를 밀어내곤 놈들을 바라본다.
하지만 녀석들은 오히려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나에게 말한다.
“나 이제 갈 곳 없는데?”
브랜드 가문의 저택을 팔아버려서 이제 방학이 되어도 돌아갈 곳 없는 다이니.
“뭐, 나도 마찬가지다.”
윙보드가 사라지면서 홀로 서게 된 벨레스.
“내가 가문으로 돌아갈 수는 없잖아. 게다가 너랑 있으면 더 좋아할걸?”
이상하게도 나랑 마리아를 엮으려는 가주 때문에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는 마리아까지.
“…….”
혼자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이상한 혹이 늘어버렸다.
그렇다고 얘네들을 아카데미에 가만히 남겨두고 있는 것도 좀 그렇긴 했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성검을 가지고 대놓고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던 적이 있다.
정말 최악까지 가자면 신탁을 내렸다는 신에게까지 닿을 가능성이 있으나.
“에휴.”
이것들 표정을 보니 오지 말라고 해도 미행을 해서라도 따라붙겠다는 생각이다.
“그래, 이참에 훈련도 빡세게 하면서 가자.”
기말고사 성적 상위권을 깔끔하게 다 먹어치운 은빛사자 연구회였으나 아직 부족하다.
더욱 압도적인 실력을 지닐 필요가 있었다.
내 허락이 떨어지자 다들 좋아하며 자기들끼리 숙덕거리기 시작했고.
“재학생 대표, 실리아 위드니스입니다.”
재학생 대표로 떠나가는 3학년에게 축사를 보내는 실리아 쪽으로 눈을 돌렸다.
“우선 3학년 선배 분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3년 동안 많은 노력을 하셨고, 오늘이 그 결실의 마무리를 짓는 날입니다.”
‘결국 실리아한테 시켰구나.’
예전이었다면 당연히 실리아가 하는 게 맞았다.
2학년 수석에다가 사건이 없었다면 아직도 선도부를 계속하고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의 실리아는 선도부가 아니다.
게다가 나와 은빛사자 연구회를 견제하려 했던 로젤리아 학장의 입장에서 재학생 대표를 실리아에게 맡기는 건 배알이 꼴렸겠으나.
‘이제 완전히 우리한테 빨대 꼽겠다 이건가.’
성검 수여식 이후, 아카데미 내에서 나라는 생도의 무게감이 워낙 커졌다 보니 억누를 수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자신이 이끄는 선도부원 중 하나를 재학생 대표로 하고 싶었겠지만.
지금까지의 차별에 대한 보답이라도 하듯 실리아를 대표로 앉혔다.
‘이제 사이좋게 지내요.’ 하고 내게 제안하는 듯한 로젤리아의 행보.
강압적으로 생도들을 묶어두며 교육시키려 했던 학장의 말로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비참했다.
‘아마 본인도 고작 생도 하나 눈치나 보고 있는 게 고깝겠지.’
하지만 어쩌겠는가.
윙보드의 잎담배 테러 행위도 내가 가르덴을 쓰러트리며 잠식시켰다.
폴탄 해안 사건도 로젤리아의 측근들과 선도부가 해결하지 못한 걸 내가 해결했다.
마지막으로 성검까지 수여하게 되었으니 사실상 눈치를 보지 않는 게 이상했다.
“만족하실 시간이었을까요? 뒤를 돌아보면 후회가 남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조차 하나의 성장이자 기회로 여기시며…….”
졸업생들을 향한 실리아의 말은 우습게도 내가 학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후회되더라도.
성장이자 기회로 여기길 바란다.
‘배는 많이 아프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