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나는 프나틱스교에서 마련해 준 마차를 타고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마중 나왔던 마부께서 갑자기 셋이나 일행이 늘어난 걸 보고 적잖이 당황했으나 성검 소유자인 내가 데려간다고 했더니 굳이 별말 하진 않았다.
그렇게 마차를 타고 가는 나와 마리아, 다이니 그리고 벨레스.
샬롯과 베런, 실리아와는 겨울 방학이 끝나고 보자고 말하고 헤어졌으나.
이 셋은 아무래도 겨울방학 내내 같이 있게 될 것 같았다.
“성검이라는 게 확실히 편하긴 하네.”
내 검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마리아.
마부가 썩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다가도 내가 허리 뒤에 매어둔 성검을 보더니 곧장 물러난 게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근데 너무 꽁꽁 싸매고 있는 거 아니야? 누가 보물 아니랄까 봐.”
마차에 타기 전 왕창 사 왔던 과자를 오독오독 깨물며 다이니가 물어 왔다.
성검을 두꺼운 붕대로 꽁꽁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한테 보이지 않으려고 한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러고 보니 왜 나한테 도와달라고 한 거지? 검에 붕대를 묶는 방법을 모르진 않을 테고.”
내가 성검에 손을 댈 수가 없으니 벨레스에게 부탁했었는데, 그는 이제야 의아함을 느끼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으음.”
어차피 나랑 같이 프나틱스교로 가게 된 상황이다.
마몬에 관한 이야기는 슬쩍 빼고 성검이 나를 거부했다는 것만 간단히 말해줬다.
“엥? 그럼 뭐야. 우리 대접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성검 가지고 장난친 놈 족치러 가는 거였어?!”
“목소리 좀 낮춰!”
당황한 표정에서 마리아의 탄성이 뿜어져 나왔다.
설마 이럴 줄은 몰랐다며 마리아는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더니.
“키야! 겁나 재밌겠다!”
갑자기 흥분되기 시작한다면서 발로 마차 바닥을 쿵쿵 두드려 댄다.
“아, 빨리 가고 싶다. 누굴까? 엄청 쌘 놈이겠지? 진짜 기대되네.”
“저건 이제 병 아니야?”
“신전에 가는 거니까 진료를 부탁해도 될 거다.”
다이니와 벨레스가 마리아를 가리키며 한마디씩 했다.
방금까지는 심드렁하던 마리아가 갑자기 돌변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일 만했다.
“쟤가 저러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 익숙해진 나였기에 그냥 무시하고 다시 이야기에 집중한다.
“어쨌든 그래서 행동들 조심하고. 나만 노리는 게 아니라 일행인 너희한테도 위협이 가해질 수 있으니까.”
“생각지도 못하게 위험한 마차에 타게 됐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의 무력에 자신 있는 벨레스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뭔가 제대로 도와줄 수 있다는 생각에 어깨를 들썩인다.
“…….”
반대로 다이니는 사뭇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 안에 마몬이라는 대악마가 있는 걸 유일하게 알고 있는 부원으로서, 성검이 거부반응을 일으켰다는 점을 꽤나 걱정하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하지 마.”
그런 그녀에게 안심하라고 피식 웃으며 먹던 과자를 하나 뺏어 먹자, 다이니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끄덕였다.
“그래, 내가 걱정할 만한 사람이 아니지.”
* * *
“오와.”
하루 종일 덜컹거리는 마차에서의 생활하다, 잠은 또 침낭 속에서 자는 생활이 지긋지긋함을 넘어서 슬슬 익숙해졌을 무렵.
어느새 마차의 창문 밖에는 곳곳에 하얀 종 모양의 심볼이 달린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잔잔한 종소리가 어울리는 마을.
도시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크진 않으나, 전체적으로 깔끔하며 오밀조밀하게 있을 건 다 있다.
시골 마을치고는 꽤나 번화했다는 느낌이 딱 어울렸으며, 발전 도중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맺혀 있는 장소였다.
“여기 사는 애들은 다 프나틱스교를 믿는 건가?”
마리아의 질문에 다이니가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건 아니지 않을까? 보니까 단순히 사업 때문에 온 사람도 있을 텐데.”
“아마 심사 같은 걸 거쳐서 오지 않았을까 싶군.”
벨레스의 말에 두 사람 다 “오.”하면서 그럴 듯하다고 동의한다.
종교라는 이름 위에서 지어진 장소라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평화로움이 묻어나는 마을.
썩 나쁘지 않은 분위기였다.
“다 왔습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해 준 마부의 인사와 함께 마차가 멈춰 선다.
어느새 우리는 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신전 앞에 도착해 있었다.
일단 건물 높이 자체가 상당했다.
아카데미의 본관 수준은 아니지만 적어도 4층에서 5층 정도는 있을 듯했으며.
신전의 위에는 거대한 하얀 종이 달려 있었는데, 단순 장식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짐을 챙겨서 마차 밖으로 나서자 이미 신전 앞에 우르르 몰려있는 신도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프나틱스 마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나를 향해 일제히 외치는 신자들과 그 중앙에 서 있는 성녀 루메나.
곱게 차려 입은 그녀는 앞으로 한 걸음 더 나서더니 우아하게 인사를 건네 왔다.
“이안 님,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대접해 드릴 수 있는 시간이 왔음을 신께 감사드려야겠군요.”
“왜 신한테 감사하냐. 와준 건 넌데.”
마리아가 뒤에서 심드렁하니 대꾸하자 다이니와 벨레스가 곧장 달려들어서 그녀의 입을 막는다.
“넌 닥치고 있는 법을 몰라?”
“눈치 좀 챙겨라!”
“하, 하…….”
아마 들렸을 텐데도 신자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 척 마차에서 우리의 짐을 빼주기 시작했고.
성녀인 루메나도 어색한 웃음과 함께 슬며시 말을 돌린다.
“아직 식사 못하셨죠? 조촐하게나마 대접해 드리기 위해 저희가 자리를 마련했으니 가시지요. 짐은 따로 준비해 둔 방에 옮겨두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서로 격식이 오가며 안으로 들어간다.
외부와 마찬가지로 내부도 상당히 깔끔했는데 단순히 오늘 하루 내가 온다고 청소해 놓은 게 아니라 늘 깔끔하다는 게 티가 나는 부분이 여럿 있었다.
식사 자체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신전인지라 완전히 호화스러운 식사까지는 불가능했으나 긴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한 배려가 느껴지는 메뉴들이 더러 보였다.
식사를 끝마치고 소화를 위한 차가 나오면서 그제야 대화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안 님께서 말씀하셨던 신학을 배우기 위한 과정 말인데요.”
아.
“아무래도 생도 신분이시다 보니 길게는 못해서 제가 최대한 짧게 압축해 봤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를 따라온 세 사람의 시선이 곧바로 쏠려온다.
그러고 보니 어떤 이유로 프나틱스 신전에 찾아간다고 말하지 않았었다.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었다.
솔직히 별 시답지 않은 이유였기에 까먹어버렸다.
‘신학을 배우겠다고 하고 왔었지.’
찻잔을 입에 댄 상태에서 들어서 다행이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표정이 풀어질 뻔했다.
‘그래도 짧게 잡았다니까.’
며칠 정도만 고생하고 그 뒤부터는 자연스럽게 성검에 관해서 알아볼 생각이었으나.
“7주 정도면 될 겁니다.”
“예?”
지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7일이 아니라 7주?
거진 두 달에 가까운 시간을 여기에 있으라는 소리인가?
겨울 방학의 반 이상이 날아간다는 소리였다.
다시금 쏘아져 들어오는 생도들의 눈초리.
심지어 마리아는 버럭 뭔가 외치려 했으나 다이니가 겨우 입을 틀어막았다.
“그, 7주요?”
“네! 조금 짧긴 하지만 그래도 교단의 뿌리와 줄기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으으. 음…….”
계속해서 쏟아지는 눈초리는 어서 거절하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왜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말씀 공부를 해야 하냐는 원망.
하지만 여기에 오기 위해서 말해둔 건 말해둔 거니까.
“좋, 네요.”
나는 따끔하게 타들어 가는 목구멍에 차를 흘러 넘길 뿐이었다.
* * *
“자, 그러면 1페이지부터 볼까요?”
교육은 바로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가장 높은 직급이자 깨달음을 얻었다 알려진 성녀 루메나가 교육을 맡아주었다.
그녀가 가르쳐준다면 분명 이해하기도 쉽고, 심화적인 부분도 어렵지 않게 알려주겠지.
우리가 진정으로 프나틱스교의 교리를 배우고 싶고, 신학의 뜻이 있었다면 참으로 좋은 기회를 얻은 것이겠으나.
겨울 방학에도 책상에 앉아 펜을 쥐게 된 우리는 다들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이 페이지를 보시면 신들의 사자이신 천사님들께서…….”
칠판에 뭔가를 적기 위해 루메나 성녀가 몸을 돌리는 순간, 이곳저곳에서 돌돌 말린 종이가 날아든다.
뒷자리에 있는 마리아와 옆자리에 있는 다이니가 쉴 틈 없이 뭔가를 적으며 내게 던져댔다.
정말 읽고 싶지는 않지만.
일단 슬쩍 펴본다.
– 죽여 버리겠다.
“…….”
– 절대로 죽여 버릴 것이다.
무슨 계시처럼 적혀 있는 녀석들의 경고. 어제 내 방에 와서 하루 종일 찡얼거리는 걸 겨우 납득시켰구나 싶었으나.
막상 이렇게 교육이 시작되자 참지 못했는지 발작하듯 편지를 날려댄다.
– 살려 보내지 않겠다.
– 죽어서 신을 만나라.
– 겨울방학을 없애는 건 횡포다.
– 넌 단장 하지 마라.
– 저녁은 나가서 먹자.
“적당히 해, 이것들아.”
이제 슬슬 받아주기 힘들 정도로 날아드는 종이들.
어느새 내 책상 위에 수북하니 쌓인 것들을 치우며 한 소리한다.
적당한 투덜거림은 받아주려 했으나 나중에는 그냥 교육 대신 재밌는 걸 찾아서 놀고 있는 걸로밖에는 안 보였다.
그제야 좀 가만히 있게 된 두 사람.
재미없다면서 축 늘어지지만 일단은 도망가거나 쓸데없는 소리를 하진 않는다.
그나마 벨레스가 프나틱스교의 가르침에 꽤나 집중하고 있었는데.
성녀가 말하는 평등에 관한 이야기가 인간으로 위장 중인 그의 심금을 울렸던 모양이다.
‘너무 빠지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수인으로서 인간에게 인정받으려는 그였기에, 이런 식으로 종교에게 협력을 받는 방식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분명 기쁘긴 하겠지만.
그래도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 컸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의구심을 가지신답니다. 신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걸까? 그분들은 정말로 우리를 긍휼이 여기사 보살펴 주고 계신 걸까.”
다른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진도가 훌쩍 나가버렸다.
성녀는 시간이 없다고 몸으로 말하듯 상당히 빠르게 진도를 뽑아내고 있었다.
“그런 부분을 완전히 잠식시키기 위해. 자그마치 100년 전, 신께선 이 땅에 증거를 내려주셨습니다.”
100년 전?
“그게 바로 세리안의 알. 교본을 보시면 당시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답니다.”
슬그머니 교본을 확인하자 사진까지 찍혀 있는 거대하고 둥근 알처럼 생긴 게 떡하니 땅에 박혀 있었다.
“알을 깨기 위해 자그마치 5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저희는 깨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리고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세리안의 알이라면 아마, 그 안에서 나온 게.
“바로 그 성검, 세리안의 검이 있었지요.”
내가 책상 옆에 기울여 둔 붕대에 둘둘 말린 성검을 가리키는 그녀.
확실히 특별한 물건이구나 정도의 감상이 흘러나오던 그때.
턱을 괴고 지루해하고 있던 다이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손을 휙 든다.
“근데 왜 천사의 이름을 알이랑 검에 붙였어요? 그것도 계시가 내려왔나요?”
상당히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알이나 검에 이름표가 붙어있을 것처럼 보이진 않으니까.
의문 섞인 다이니의 질문에 성녀 루메나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두루뭉술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건 다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
그녀의 묘한 대답에 나와 다이니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우리 둘 다 느낀 것이다.
저게 바로 실마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