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프나틱스 신전에서 지낸 지 어언 일주일이 흘렀다. 음식도 잘 나오고, 크게 힘든 일도 없다.
아카데미에서 생활할 때보다도 더 규칙적인 삶.
원래라면 이렇게 일정할 정도로 규칙적인 삶은 마음을 평안하게 하고 일상에 안정을 주며, 건강하게 해준다고 말은 하지만.
“뒤지겠네.”
“무슨 세뇌 당하는 기분이라고.”
정작 이런 생활 속에서 마리아와 다이니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유는 딱 하나.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는 건 맞지만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간다고는 할 수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던 우리가, 이제는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침대에서 일어난다.
그 뒤로부터 성녀 루메나의 교리 공부가 쭉 이어진다.
우리한테 7주도 짧게 압축했다고 말했던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정말 쉬지도 않고 말을 쏟아낸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자유시간이 좀 찾아오나 싶었는데 기도도 배움이라면서 또 강제로 끌고 간다.
결국 규칙적인 생활과 신의 말씀을 배우는 시간 속에서 기사 생도인 우리를 향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흠, 그렇게 힘든 건가?”
그나마 한 사람.
벨레스만큼은 아무렇지 않게, 아니 오히려 꽤나 집중해 가며 성녀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있었다.
정말로 교리에 따라 종교라도 가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는데.
프나틱스교에서 수인인 벨레스의 마음을 자극하는 평등, 자유 같은 단어를 자주 사용하다 보니 그런 듯싶었다.
“쟤 이단이야.”
“저거 물들어서 기사 때려치우고 성직자 하는 거 아니야?”
마리아와 다이니는 그런 벨레스가 꽤나 마음에 안 들겠으나, 벨레스의 비밀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뭐 따로 성과는 없어? 결국 네 검에 뭔 문제가 있으니까 여기서 이 고생하고 있는 거잖아.”
저녁 기도회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 투덜거리며 묻는 마리아에게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나한테 오기 전까지 성검 관리는 주교가 했다고 하는데 그 사람을 만날 수가 없으니까.”
“아, 기도실인가? 거기 들어갔다며.”
두 달에 한 번, 보름 동안 폐쇄된 기도실에 들어가서 기도만 한다고 들었다.
신전 뒤편에 있는 건물로 매일 같이 신도들이 음식을 가져가며 주교의 기도를 돕는다.
그 말을 들은 다이니가 볼을 긁적이며 물었다.
“거기 안에서 정말 기도만 하는 건 맞겠지?”
“그럼 뭘 하겠어. 보니까 거의 오두막 수준이던데.”
마리아의 말은 옳았지만 다이니의 의문도 그냥 넘기긴 어려웠다.
정말로 단순히 기도만 하고 있을 수도 있으나, 그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듣기로는 지난달에 이미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좀 이르게 기도실에 들어갔다더라고.”
우리 네 사람 중에서는 가장 사교력이 좋은 다이니였기에 여신도들과 이것저것 대화하며 여러 정보를 얻은 모양이었다.
“아카데미에서는 친구가 하나도 없더니, 여기서는 또 열심히 만들었네.”
“씨, 원래 에디 쪽 애들이랑 친하게 지냈던 거 기억 안 나냐?”
피식하고 마리아가 그녀를 비웃자 다이니가 버럭 짜증을 내며 째려본다.
얘네가 티격태격 거리는 걸 보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이제는 그러려니 했으나.
“그럼 내가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 볼게.”
“……뭐?”
갑자기 척 하고 자신을 가리키며 당당하니 외치는 마리아.
왜 그런 쪽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건가 싶었는데 마리아는 당돌히 이유를 나열한다.
“거기서 뭔가 하고 있는 건 맞잖아. 그치?”
“아닐 수도 있지.”
정말 단순히 기도만 드리고 있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마리아는 고개를 휙휙 젓는다.
“난 이런 쪽으로 감이 좋아. 분명히 뭔가 하고 있어.”
저걸 믿어야 하나 싶었다.
그냥 지금 생활에 싫증이 나서 저러는 게 아닐까?
“이제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나오잖아. 그러면 안에서 뭘 했는지 아예 모르게 되잖아.”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결국 기도실에서 뭔가를 했더라도 주교가 밖으로 나올 때면 흔적이나 증거는 완전히 지운 뒤겠지.
나와 다이니가 잠시 머뭇거리며 고민하자 마리아는 이미 결론이 났는지 주먹을 꽉 쥐고는 열정적으로 토로한다.
“여기서 그냥 놓칠 거야? 성검 가지고 너한테 장난질 친 놈이 있는데, 주교가 성검을 관리했다며.”
“…….”
“게다가 이미 지난달에 기도실에 들어가서 보름 동안 기도를 끝냈는데, 우리가 오니까 타이밍 좋게 또 골방에 틀어 박혔어.”
“…….”
“나만 막 수상한 냄새가 진동을 하는 게 느껴지나? 아주 풀풀 풍겨서 코가 아릴 지경인데.”
“왜 이렇게 적극적이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이니가 대신해 주었다.
아까부터 심하게 적극적인 마리아의 모습 때문에라도 꺼려졌다.
얘가 하려는 일의 대부분은 일단 사고치는 거였으니까.
특히나 프나틱스 신전에 온 뒤로 억눌려 있던 본성을 깨우듯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눈동자가 타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왜냐면 이득밖에 없는 일이니까.”
씩 하고 머금은 웃음은 그야말로 악동의 것이었다.
“가서 뭐가 있으면 이안한테 장난질 친 놈이 주교인 게 확정되니까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가서 주교만 족치면 그만이니까 라며 덧붙이는 마리아.
“주교가 아니면 수상한 장소와 사람이 하나씩 사라진 거니까 괜찮아.”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실마리가 완전히 끊기게 된다. 오히려 이곳에 있을 이유가 마땅치 않아지는 상황.
“마지막으로 들켜도 상관없어.”
몰래 잠입했다가 들키게 됐을 경우를 떠올리면서도 마리아는 호탕하게 외쳤다.
“여기서 쫓겨나면 그건 그거대로 이득이야.”
“…….”
“이 지긋지긋한 장소를 어떻게든 탈출하고 싶다고. 아오, 답답해. 일주일 동안 검도 못 휘두르고.”
한동안 검을 휘두르지 못해서 다들 쌓여있는 건 있을 거다.
아카데미에서 훈련할 때는 싫다가도 막상 안 쥐면 허전한 게 검술이었으니까.
“나름 괜찮아 보이는데?”
이야기를 듣던 다이니도 찝찝함은 여전히 남아 있었으나 일단 마리아의 의견에는 동의했다.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는 건 썩 현명한 생각은 아닐 듯했다.
‘그럼 차라리 내가 들어가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기도실에는 여자 신도 밖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럼 다이니가 들어가는 게 맞지 않나?”
내가 힐끔 다이니를 보자 마리아는 바로 버럭 외친다.
“개소리야! 내가 해야지! 발안자가 나인데! 게다가 여신도 변장이면 내가 또 기깔 나게 할 수 있다고!”
“……그걸 믿으라고?”
“네, 믿으세요. 형제여.”
갑자기 양손을 꼭 모으고는 눈을 감으며 인자한 표정을 짓는 마리아.
사람이 워낙 휙휙 변해서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확 치고 올라왔다.
“뒤지기 싫으면 믿으세요.”
지난번에 레이로즈 가문에서 마법을 걸어서 조용해졌던 마리아가 떠올랐다.
꽤나 가혹한 마법이었지만 그래도 마리아가 조용히 있던 그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귀했다는 걸 알게 된다.
“제 이름도 마리아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가서 주교 또드려 패고 오겠습니다.”
“말을 순화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어쨌든.
마리아의 격렬한 주장으로 인해 그녀가 기도실에 잠입하기로 했다.
* * *
기도실에 여신도들이 들어가는 시간은 딱 정해져 있었다.
7시, 12시, 17시.
아침, 점심, 저녁.
깔끔하리만치 뻔한 시간과 목적.
그러니 침입 자체도 수월했고, 굳이 다른 신도들을 제압하거나 기절시킬 필요도 없었다.
“아오, 더럽게 불편하네.”
여신도들이 입는 옷으로 갈아입은 마리아는 답답함에 투덜거리며 어제 미리 준비해 둔 식사 카트를 끌고 기도실로 향한다.
2단으로 되어 있는 카트는 꽤나 컸는데 하루 세 끼를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양이었다.
음식은 따로 준비해 두지 않았다.
그냥 위에 천으로 덮어두었을 뿐.
17시에 딱 맞춰서 다른 여신도들이 들어가기 전.
마리아는 16시 30분이라는 30분 이른 시간에 먼저 진입하려 했다.
성녀 루메나의 교육에서 배가 아프다는 뻔한 핑계로 빠져 나온지라 마리아의 발걸음은 좀 더 조급하니 움직였다.
입구를 따로 지키는 사람은 없었다. 명목상 평범한 장소이기도 했고 애초에 신전에는 굳이 경비를 두지 않기도 했다.
신이 지키는 장소라는 게 이유였다.
‘안일하긴.’
정말 딱 오두막 정도 크기의 기도실.
문을 열고 카트를 끌며 안으로 들어서자 짧은 복도 끝에는 문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귀찮은 거 없어서 좋네.’
괜히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게 아니라 떡 하니 문 하나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발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안으로 향한 마리아.
‘조용하네?’
문 앞에서 잠시 멈춰선 그녀는 소리에 집중한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몇 번이나 기도회에 참석했던 입장으로, 신도들의 기도는 조용하지 않았다.
목 놓아 외치며, 신들에게 부르짖는 간절함.
주교 정도 되면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으나 왜인지 내부는 조용했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고개만 빼꼼 안으로 넣자 그곳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다만, 기도실 바닥 한편에 뚫려 있는 통로. 지하로 향하는 길이었다.
“와, 뭐야. 진짜였네?”
벌컥 문을 열며 카트를 끌고 안으로 들어온 마리아는 너털웃음을 흘려대며 망설임 없이 통로 쪽으로 향한다.
듣기로는 폴탄 해안의 워즈 과수원에서도 지하 통로가 있었다고 들었긴 했는데.
“이쪽은 상당히 본격적이네.”
거기서는 마수들이 파헤치며 만들어진 볼품없는 땅굴이었다면 여기는 건물을 지으면서 처음부터 본격적으로 공사를 한 듯했다.
심지어는 카트를 끌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계단 형식이 아니라 경사로로 되어 있었다.
“흐흥.”
콧노래가 절로 튀어 나온다.
이런 상황에 눈앞에 펼쳐졌다면 샬롯은 두려움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거고, 다이니는 일단 보고를 위해 물러났을 거다.
그리고 마리아는 직진한다.
카트를 밀며 지하로 내려가는 마리아.
꽤나 긴 통로였다. 내려가는 데만 10분은 족히 걸릴 정도였으며 그럴수록 마리아의 감을 확실하게 경종을 울려왔다.
여기가 맞다고.
경사면은 어느새 평평한 땅으로 변했고 어두컴컴하던 통로 끝에서 은은한 빛이 들어온다.
드디어 끝에 도달한 것이었다.
“와, 넓네.”
통로의 끝으로 빠져 나오자, 왜 지금까지 이렇게 깊게 내려왔는지 알 수 있는 돔 형태의 거대한 방이 있었다.
벽을 타고 울리는 마리아의 목소리. 그것은 당연하게도 그곳에 있단 남자에게도 닿았다.
“여신도?”
주교로 보이는 늙은 남성이 눈을 부라리며 마리아를 노려본다.
당장이라도 따지고 들려 했으나 마리아는 혀를 내두르며 눈앞에 펼쳐진 장관을 바라본다.
“알이네?”
주홍빛을 은은하게 띄우고 있는 거대한 알.
지난번 교본에서 봤던, 100년 전 하늘에서 떨어졌다던 거대한 알이 반파된 상태로 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세리안의 알이라고 했나?”
그리고 윗부분이 부서진 알을 마치 왕좌처럼 사용하고 있는 장신의 남성.
상식 이상으로 긴 백발이 마치 흘러넘치는 물처럼 알 밑으로 늘여져 있었고, 턱을 괸 채로 마리아를 담은 백색 눈동자에는 흥미가 묻어나왔다.
“그럼 네가 세리안이냐?”
어떻게 세리안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는지 이제야 알 것 같은 마리아였다.
50년 전, 알을 깼을 당시.
검만 나온 게 아니라 저 남자가 함께했기에 그렇게 이름을 붙일 수 있었음을 알아챈다.
세리안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자신의 앞에 놓인 사과를 크게 베어 물며 콧방귀를 뀐다.
굳이 답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란 뜻이었다.
“오케이, 검 주인이 너라면 이안한테 이상한 장난질을 한 것도 너라는 소리고.”
천으로 덮인 카트.
그 안에서 마리아가 쑤욱 빼낸 건 일주일 간 휘두르지 못한 자신의 태도였다.
“너만 족치면 이번 일도 대강 마무리 되는 건가?”
호전적인 자세로 나오자 세리안의 옆에서 고개를 조아리던 주교는 입을 떡 벌리고 벌벌 떨기 시작했고.
반대로 세리안은 흥겨운 기색으로 먹던 사과를 휙 던지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를 봤으니 죽어야 할 것이다.”
“지가 뭐라고.”
어이없다며 마리아가 어깨를 푼다. 만약 여기서 그녀 혼자였다면 사실 승산이 없으나.
덜컹덜컹!
카트의 두 번째 칸.
덮여있던 천이 스르륵 떨어지며 좁디좁은 곳에서 낑낑거리며 나온 한 사람.
“인형에 들어가 있다고 진짜 인형인 줄 아나.”
마리아의 스승, 윤이 몸을 풀며 밖으로 나선다.
윤을 보는 순간 세리안의 눈가가 살짝 떨려왔다. 인간과는 다른 다채로운 형태의 눈동자에 감정을 읽을 수는 없으나.
썩 호의적이지 않은 것만큼은 분명했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하나만 물어보자.”
마리아와 마찬가지로 카트 첫 번째 칸에서 꺼내 든 태도를 허리춤에 고정하며 윤이 물었다.
“네가 악마들을 보내는 놈이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따로 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스승과 제자는 답을 받으러 놈을 바라보며 검을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