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3
173화.
어렸을 적.
황제이던 아버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위압과 공포의 대상이셨으나 우리에겐 달랐다.
형제자매들의 방으로 찾아와 종종 책을 읽어 주시기도 했고. 오늘 뭘 했는지 자상하게 물어봐 주시기도 했다.
그걸 보면서 어린 시절의 나는 혼란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중인격이라는 걸 소설로 배운 뒤부터 혹시 아버님은 이중인격이 아닐까 싶기도 했었다.
황제의 왕좌에 앉은 채로 신하들을 내려다보던 아버님과 우리를 만나러 오셔 자상하게 웃어 주시던 아버님은 많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어렸던 나는 황제로서 가져야 할 의무, 무게감을 알지 못했고.
그렇다고 내게 자상하신 아버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기에.
우습게도 나는 아버님이 실무를 보실 때 앉으시는 왕좌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아버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리가 아버님을 그렇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 보면 틀리진 않았구나.
어쨌든.
그렇게까지 자신의 원래 모습을 감추며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는 건 실로 대단하다고.
아버님의 등을 보며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아…….”
눈을 뜨자 어두운 천장이 자연스럽게 시야를 가득 메운다.
푹신한 침대, 머리를 감싸는 포근한 베개, 향긋한 로즈마리향.
황궁 밖으로 나선 이후, 7년 동안 지내왔던 그 어떤 장소보다 훨씬 화려하며 고급스러운 방이었으나.
막상 앤의 마음을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짓눌러 왔다.
화려하면 뭐 하겠는가.
결국 자신에겐 감옥이나 다름없는데.
잠에서 깬 앤은 묵직한 머리를 억지로 들고 일어선다.
제국의 수도까지 오면서 몸에 주입됐던 수면제가 아직까지도 다 빠지지 않아 부작용을 남기고 있었다.
‘이름만 공주야.’
대우가 공주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처럼 자신의 방에 감금된 것도 그렇고, 끌고 오면서 보였던 대우도 그렇고.
이런 과격한 행위들 하나하나에서 아리안 황자가 얼마나 황제의 자리를 원하는지 알려주고 있었다.
‘옛날에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어렸을 때의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다소 소심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세밀한 부분에서 신경을 잘 써 주었고, 이야기를 듣고 공감도 잘해 주었다.
그랬던 그가 어째서 저렇게까지 변했는지.
앤은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다른 오라버니들은 어떻게 있을까.”
2황자와 3황자 같은 경우도 황제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들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여기까지 몰고 왔는가.
한숨을 흘리며 앤은 천천히 창밖으로 향했다. 창살만 걸려 있지 않을 뿐인 장소.
그래도 바람이라도 쐬며 머리를 환기시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막아아아!”
“안으로 들여보내면 안 된다아아!”
그런 그녀의 바람조차 무시하듯 밖에서 울려오는 거친 기사들의 목소리.
새벽에 질러댈 만한 소리는 아니었기에 앤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소리를 쫓아 시야를 돌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건 놀랍게도 치열한 전투였다.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로 보이는 괴한들이 밀려오고 있었고, 황궁의 근위기사들이 그걸 막아내는 중이었다.
‘무슨 일이지?’
자그마치 황궁으로, 저렇게 소란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괴한들을 보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겉으로 봤을 때는 기사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황궁을 습격할 기사들이 있을까 싶었다.
애초에 타국의 기사들은 수도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한다.
수도에 머물고 있는 기사단이 몇 있긴 해도, 반란이라도 일으킬 게 아니면 저런 습격을 벌이지 않았겠지.
“도대체 뭐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에 앤이 머리를 긁적이는 순간.
콰득!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려왔다.
깜짝 놀라 몸을 휙 돌린 앤의 시야엔 굳건히 잠겨 있던 방 문고리가 덜그럭거리며 흔들리는 게 보였다.
“아, 씨. 그냥 나한테 열어달라고 해.”
문틈 사이로 흘러 들어오는 여성의 속삭임. 그러자 이번에는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너 마법 너무 쓰지 마. 하나 쓸 때마다 내 마나가 너무 훅훅 사라져.”
“그건 네가 허접하게 마나를 다뤄서 그런 거고.”
“마법사들 눈 돌아가는 마나량을 가지고 있는 나한테 뭐라는 거야.”
“네가 왜 그 정도 마나량을 가지고 있는지 알기는 해? 그거 내 덕분…….”
콰득!
꿍얼거리던 두 사람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고리가 결국 박살 나며 기름칠이라도 한 듯 아무런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린다.
“아니, 여자애 방을 왜 네가 먼저 들어가려고 해!”
“내가 아는 사이잖아!”
긴장감이 전혀 없는 두 사람의 대화. 은발의 소년과 금발의 마법사.
“이안?!”
뜬금없는 두 사람의 등장에 앤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반가웠다.
이안과 수온에 대한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보니 울컥한 감정도 치솟았다.
“이안! 몸은 괜찮아?!”
다시금 그를 부르며 양손을 펼쳐 끌어안으려던 앤이었으나.
툭.
힐다의 지팡이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더니, 이윽고 힐다에게서 불쾌한 헛기침을 흘러나왔다.
“감동적인 재회를 할 시간은 없는데.”
“……이분은 누구셔?”
덕분에 밀려오던 감정이 싹 흘러가며 냉정히 상황을 파악하게 되었다.
물론, 저쪽에서는 그런 걸 의도하진 않았지만.
“음, 그냥 아는 마법사?”
“친한 쩌는 마법사.”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본인의 입으로 대단하다고 외쳐대는 그녀를 보며 앤은 어처구니가 없긴 했으나.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같은 마법사인 앤도 느낄 수 있었다.
‘……뭐지?’
대단하다는 수준으로 끝날 존재가 아니다.
그녀 주변의 마나들이 마치 그녀라는 존재를 찬양하듯 떠받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말투는 다소 저급하다고 할 수 있으나, 위대한 마법사라는 건 앤도 알아차릴 정도였다.
‘하르제 스승보다도…….’
얼마나 거대한지 가늠조차 할 수 없으나 자신의 스승이자 한때 제국의 대마법사라 불렸던 하르제보다 뛰어난 마법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지나쳤다.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결국 중재에 나선 이안.
그는 손을 뻗으며 앤에게 말했다.
“가자, 구해 주러 왔어.”
* * *
“가자, 구해 주러 왔어.”
생각보다 앤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황궁 내부를 달리던 와중 딱 봐도 창고는 아닌데 굵직한 자물쇠가 달린 방이 있었으니까.
아님 말고 식으로 부수고 들어왔는데 정말 딱 앤이 있던 건 운이 좋았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일이 진행됨에 안도했으나 의외의 말은 앤에게서 튀어나왔다.
“……미안해.”
“어?”
“갈 수 없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가 착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녀의 스승인 하르제에게 이야기만 듣고 앤을 황실에서 빼내 주려고 했을 뿐.
정작 당사자인 앤의 입장은 들어 보지 않았으니까.
그런 생각에 등 언저리가 따끔거렸으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늘진 앤의 표정을 보며 이곳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왜 그래?”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 조심스럽게 묻자 앤은 다소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내 아버님, 그러니까 황제께선…….”
그 뒤 이어진 건 로아 제국의 비사.
어째서 이토록 길게 후계자 문제가 이어져 오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
이야기를 듣는 동안, 앤은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울먹이면서 말을 끝마쳤다.
“그래서 지금 후계자 선정을 두고 유언장을 찾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나 봐.”
“…….”
“아리안 오라버니뿐만 아니라 다른 오라버니들도 이것 때문에 제대로 실무를 돌보지 못하고 있어. 제페른을 봤으니까 잘 알잖아.”
제국이라는 거대한 이름을 차지하기 위해서 황자들은 진땀을 흘려가며 서로를 견제하고, 유언장을 찾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것에 너무 심취해서 제국이 서서히 녹이 슬어가고 있는 건 보지 못하고 있었다.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친다. 속국에서 흘러 들어오는 뇌물을 아낌없이 받고, 왕좌에 앉아야 한다는 생각에 공수표를 남발한다.
황자들은 지금 제국의 미래를 태워 연료로 사용해서 황제의 자리에 앉으려 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있어선 안 돼. 내가 참여해서 유언장을 찾겠어. 누가 다음 황제가 되든 일단 이 혼란스러운 상황은 끝나겠지.”
과연 그렇게 쉽게 이야기를 끝맺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거기까지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 앤과 제국이 고민해야 되는 부분이었다.
“진짜 공주답네.”
앤이 공주라는 걸 들었을 때 조금 놀라긴 했는데 이렇게 보니 또 어울린다.
생각해 보니까 프나틱스교의 성녀이던 루메나가 그녀를 본 적이 있는 것 같다고 얘기했었는데 아마 앤이 공주이던 시절에 만나본 게 아닐까 싶었다.
“고, 공주답다니.”
칭찬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괜히 몸을 배배 꼬는 앤.
설마 로베르담 하수구에서부터 이어진 인연이 로아 제국의 황실까지 닿을 줄은 몰랐다.
어쨌든 앤이 우리와 함께 가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잘 알았다.
그런데 사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이후 안타깝다는 감정보다는 의아하다는 부분이 더 컸다.
“뭔가 이상한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내뱉은 힐다. 나 역시 고개를 곧장 끄덕이며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맞아. 이상하긴 해.”
“이상……?”
뜬금없다고 생각했는지 앤이 갸웃거리며 우리 둘을 바라본다.
그녀에겐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인지라 다소 조심스럽게 설명을 시작했다.
“왜 유언장을 남겼으면서 그걸 숨긴 걸까?”
황제가 병상에 눕기 전, 미리 유언장을 적어뒀다는 건 자신의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유언장을 적었던 이유는 계승권 문제에 있어 논란이 없게끔 분명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함도 있었다.
“어…….”
앤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제야 이해했는지 옅은 탄성을 흘렸다.
여기서 의문은 그치지 않았다.
힐다가 팔짱을 끼며 한마디 더 보탠다.
“그리고 중간에 병상에서 일어났다며? 근데 의식을 차리고 한 말이 유언장을 찾으라는 거라고? 유언장 숨긴 것부터 이상한데 후계를 말하지 않고 굳이 찾으라는 게 묘해.”
황제에겐 몇 번이고 제국의 후계자를 입에 담을 기회가 있었다.
하나, 의도적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아버, 님이?”
마치 제국의 혼란을 방치하는 듯한 이해하지 못할 행보.
우리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방 안에 침묵이 감돌기 시작했다.
“뚫리면 안 된다아아!”
그나마 밖에서 들려온 근위기사들의 외침에 분위기가 깨지며 다시 정신을 차렸고.
앤은 깜빡했다며 슬그머니 창밖을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저기 밖에 있는 기사들도 네가 부른 거야?”
“……여기 있는 마법사의 동료들이야.”
“엣헴, 내 꼬봉들이지.”
바로 어깨를 들썩이면서 장단에 맞추는 힐다.
다소 꼴 보기 싫었으나 어쨌든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시간이 아니었다.
“…….”
앤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지려던 걸 보며 나는 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제안했다.
“한번 황제에게 가 보자.”
“하, 하지만 지금 병상에 누워 계신데? 의식도 잃으신 상태야.”
“그래도 가 보자. 가면 할 수 있는 게 있어.”
내가 힐끔 힐다를 보자 그녀는 엄지를 척 치켜들며 답했다.
“내가 또 새로운 마법을 배웠거든.”
의식을 잃었더라도 살아있으면 괜찮다. 영혼만 몸에 붙어 있다면 된다.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가 이제는 사령술까지 다룰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