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85
185화.
2학년이 되면서 이제는 훈련장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악습과도 같던 1학년 훈련장 사용 금지는 내가 1학년일 때는 거슬렸으나, 2학년이 되니 이렇게 쾌적할 수가 없다.
물론, 내가 따로 1학년들에게 사용하지 말라고 막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아무 말 없이 내가 쓰고 있으면 1학년들은 눈치를 보면서 가버린다.
이게 내 양심에 그다지 찔리지도 않았고, 괜히 부조리를 한다는 느낌도 주지 않는다.
‘그냥 쓰면 되는 걸.’
지금도 우리 동아리가 훈련장을 쓰는 걸 보곤 그대로 지나가는 1학년들.
말이라도 해보면 그냥 쓰라고 해줄 텐데 눈치만 보다 가버리니 가서 먼저 말하기도 뭐하다.
“뭔 생각해. 준비해야지.”
맞은편에 있는 마리아가 나를 부른다.
아까부터 마리아를 코칭하던 윤이 이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로 팔짱을 끼고 뒤로 물러난다.
“나랑 대련하지 말라는 이유가 이런 거였어? 실력이 얼마나 향상됐는지 숨기려고?”
내 질문에 윤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장죽을 꺼내 든다.
“그런 것도 있고. 네가 보면 좋아 죽는 것도 보고 싶었어.”
“좋아 죽어?”
무슨 소리냐고 되물으려 했으나 훈련장 바닥에서 뽀드득 소리가 들려왔다.
마리아가 허리춤의 태도에 손을 얹고 자세를 잡은 것.
뒤로 한 발 뺀 자세는 정말 윤을 보는 듯했다.
‘꽤나 태가 나는데?’
마리아의 붉은 머리카락이 어깨에서 흘러내림과 동시에, 그녀의 발이 강하게 바닥을 박차고 치고 들어온다.
발끝에서부터 피어오른 붉은 마나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강렬한 열기를 토해낸다.
카아앙!
눈 깜짝할 새에 거리를 좁힌 마리아. 이전에 대련할 때랑은 분명 다른 묵직함과 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성검과 맞대고 있는 태도 너머, 마리아의 미소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해맑았다.
“오랜만에 대련한다고 신났네.”
서로의 무력을 맞부딪치는 와중에도 나는 굳이 한마디 덧붙인다.
심리전을 걸거나 하려는 건 아니었고 애초에 마리아는 그런 게 걸리는 스타일도 아니다.
그냥 저렇게까지 즐기고 있는 모습이 신기해서 물었던 거였고 마리아도 별 의미 없다는 걸 알기에 검으로 답할 뿐이었다.
몇 번이나 검을 주고받으며 마리아의 검술이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건 마리아라서 익숙한 게 아니라. 몇 번이나 싸워왔던 숙적, 윤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리웠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윤보다 훨씬 공격적이고 거칠다.
검술에서 거친 면은 단점으로 작용될 때가 있으며, 특히나 윤이 쓰는 검술은 절제할 필요가 있었으나.
‘놀랍네.’
절제된 광기.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맞물리며 마리아 레이로즈라는 소녀의 안에 깃들었다.
윤이라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수많은 강자들과 겨뤄온 검객의 제자.
“하.”
맞는 말이었다.
슬그머니 지어진 미소는 더없는 만족감으로 찾아왔다.
최근 싸워왔던 기사들이 폴 벨크터스나 로만 레이먼드같이 워낙 수준 높은 상대였다 보니 아무래도 마리아와의 대련은 다소 밋밋하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그때의 둘과 비교하자면 아직 마리아는 갈 길이 멀다고 할 수 있어도, 아예 보이지 않는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이미 현역 기사들과 엇비슷한 실력을 지니게 된 마리아.
태도와 검술에 익숙해지면서부터 그녀의 성장이 가파르다고 생각은 했으나.
“놀라운데.”
과연 이 아이의 끝이 어디일지 이제는 나도 모를 지경이었다.
카아앙!
그렇다고 져줄 수는 없었으니.
몇 번이고 그녀의 검을 받아주다가 결국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움직임이 조금 커진 틈을 노려 마리아의 목에 검을 겨누는 걸로 대련이 끝이 났다.
“아, 졌네.”
진짜 이길 생각이었는지 아쉬워하며 태도를 거두는 마리아.
당연히 윤은 거기까지 바라진 않았겠으나, 만족스러운 미소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훌륭하네.”
새롭게 창설하게 될 은빛사자 기사단의 부단장에 대해서 종종 고민했었다.
아무래도 실력으로 가는 게 가장 옳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벨레스 테오도른이 유력한 후보이지 않나 싶었으나.
“이 정도면 벨레스도 이미 이겼겠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 걔한테 작년에 진 거 복수도 깔끔하게 한 다음 너한테 도전한 거지.”
씨익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하는 마리아. 역시 벨레스에게 승리까지 따낸 상태였다.
‘어쩐지 벨레스가 최근에 잘 안 보이더라.’
벨레스도 아닌 척하지만 승부욕이 있는 편이다. 특히나 자기보다 어린 애들이라고 게으름 피우다가 따라잡혔으니 꽤나 독기가 올랐겠지.
‘좋은 방향성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구나.’
결국 서로가 서로의 라이벌이 되어 끌어 올려준다. 단순히 마리아와 벨레스뿐만 아니라 베런도 이 구도에 참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테고.
다이니와 샬롯도 꾸준히 서로 경쟁하며 따라붙고 있는 중이다.
“너는 이만 가 봐. 나는 얘한테 방금 대련 복기 좀 시킬 테니까.”
“그래, 고생해라.”
윤의 말에 떠밀려 대련장 밖으로 나선다.
새로운 은빛사자 기사단은 꾸준히 성장하는 중이었다.
신성 기사단과도 분명 좋은 라이벌 구도를 잡을 수 있겠거니 싶었다만.
오늘 아침.
로만 레이먼드가 왕실에서 체포되었다는 신문 기사가 보도되었다.
죄목이 뭔지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무슨 일인지 예상은 대충 되었다.
‘하아, 이걸 뭐라 해야 할지.’
로만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모르겠지만 내게 말했던 대로 했다면 꽤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협상하려 했을 거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레이먼드 가문과 왕실이 그를 체포했을 거다.
뭔가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어도 내가 직접 갈수도 없고, 신문으로는 한계가 있다.
‘차라리 기사단원들을 보내볼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로만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 했다.
앞으로의 길은 그가 선택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당장은 그냥 두기로 했다.
‘내가 봤던 그 녀석은 이렇게 무너질 것처럼 보이진 않으니까.’
신성 기사단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지금은 상황을 보는 게 현명하단 판단이 확실하게 내 안에서 섰다.
‘그럼 오늘은 좀 이르게 힐다한테 가볼까.’
나머지 단원들을 소환하기 위해 최근 마법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중이다.
특히나 힐다는 기본기가 가장 탄탄해야 한다면서 이것저것 기초적인 부분을 단단하게 다지고 있는데 이게 나쁘지 않았다.
다소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던 마법의 지식이 균형을 맞춰간다고 해야 할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내 방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슬그머니 다가오는 선도부원들.
다들 2학년이었는데 그중 에디 브릴리언이 가장 대표로 내 앞에 선다.
“또 뭔데. 성교육인가 뭔가 때문에 그래?”
분명 내일부터 시작한다고 들었는데 왜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에디는 그게 아니라며 손짓하며 말했다.
“지금 네가 2학년 수석이잖아. 할 일이 몇 가지 있는데 안 해서 찾아왔어.”
“……뭔 소리냐.”
아직 2학년이 된 이후 시험을 보진 않았지만 1학년 기말 1등이었으니 내가 수석이긴 하다.
그것보다.
“성적이 좋으면 해야 될 일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네.”
“힘에는 책임이 따르니까.”
“와, 여기서 그런 말하니까 진짜 없어 보이네.”
없어도 너무 없어 보이는 말에 내가 혀를 내두르자 에디는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말을 이어간다.
“나이트 아카데미의 생도면 전통 정도는 지켜줘. 우리 대에서 명맥이 끊기는 건 좀 그렇잖아.”
“웬 전통.”
이 아카데미의 전통이라 함은 보통 부조리였기에 심드렁하니 답했고.
실제로 에디가 입에 담은 건 부조리의 극치였다.
“신입생 뷔페. 네가 수석이니까 좀 이끄는 거 어때?”
“……아.”
신입생 뷔페.
너무 오랜만에 들어서 생소하게 느껴질 지경이었으나 일단 기억에는 남아있다.
분명 밤에 2학년이 1학년의 기숙사로 쳐들어가는 공성전이지 않은가.
이제 막 들어온 1학년들과 이미 1년 동안 아카데미에서 구를 대로 구른 2학년과는 차이가 극심하니 일방적으로 구타를 할 뿐이다.
1학년 물 뺀다고 보면 된다.
“그걸 꼭 해야 하냐? 아니, 하고 싶냐?”
말하진 않았지만 에디의 형인 에드원이 나랑 싸우다가 기숙사 옥상에서 추락해서 호되게 당하지 않았는가.
자기 형이 다쳤던 이벤트를 꼭 해야 하나 싶었으나.
에디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쉰다.
“우리도 나름 이유가 있어서 제안하는 거야. 이번에 새로운 학장님께서 오셨잖아? 아카데미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고. 그 탓에 우리도 혼란스럽다 보니 1학년들 기강이 아직 잡히지 않았거든.”
“…….”
“벌써부터 일탈을 즐기거나, 비밀리에 연애하는 애들도 적발했어. 뿐만 아니라 은근히 2학년을 깔보는 녀석들도 나오고.”
“그래?”
“우리 기수는…… 다소 순한 애들이 많으니까. 아무래도 1학년들을 풀어주다 보니 이렇게 됐나 봐.”
그리고 신입생 뷔페가 늦은 까닭도 있다고 한다.
“원래 이미 했어야 됐거든.”
내가 로아 제국에 다녀오느라 늦게 돌아왔으니 그렇구나 싶다가도.
“근데 굳이 내가 낄 필요는 없지 않냐?”
당시에도 에드원 브릴리언은 2학년 전체 3등 정도의 위치였던 걸로 기억한다.
굳이 내가 포함되지 않아도 알아서 에디가 잘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후우, 적어도 10등 안에 드는 5, 6명은 와주면 좋겠는데 걔네 대부분이 네 동아리에 소속되어 있잖아.”
“…….”
“정 안 되면 마리아라도 붙여줘. 걔 하나만 들어가도 1학년 기숙사는 초토화시킬 수 있단 말이야.”
“네가 하면 되잖아.”
“나는 선도부라서 참여 못 해.”
다소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에디.
“뒤를 봐줄 수는 있어. 실은 마리아한테 먼저 말했는데 네가 허락해야 된다고 하더라.”
그런 일이 있었나.
마리아가 생각보다 내 의견을 존중하는구나.
“흐음.”
솔직히 굳이 해야 하나 싶었다.
1학년들이 아직 바깥 물이 빠지지 않았다고 해도 결국 그건 자기들 손해로 이어질 거다.
왜 후배들 관리를 우리가 해야 하는가.
‘1학년 원석을 발굴해 봐?’
내가 직접 가서 보면 몇 명 정도는 건질 수 있겠거니 싶었으나.
아직 2학년에 있는 생도들도 다 못 받아들였다. 연구회 인원은 좀 늘었고 가르치고는 있지만 아직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덜떨어진 1학년을 받는 건 오히려 독이 되겠지.
“하지 마.”
나는 짜증 내며 선언했다.
“신입생 뷔페는 뭔 신입생 뷔페야. 너는 형이 있으니까 그때 안 맞아서 모르겠지만. 다른 애들은 무서워서 도망 다니고 그랬거든?”
“…….”
“악습은 폐지되는 게 맞아. 1학년이 뭐 얼마나 개판이라고 우르르 몰려가서 패고 오냐.”
“좀 심각하단 말이야.”
“그건 교수가 할 일이지 우리가 할 일 아니야. 너나 좀 열심히 해라. 선도부에 들어갔다고 빠져가지고.”
베런 좀 본받으라고 말해준 후 몸을 휙 돌린다.
더 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힐다와 마법을 공부하고 있는 내게 헥토르 교수가 직접 찾아와서는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학장님께서 말 좀 전해달라고 하시는구나.”
“예?”
“신입생 뷔페, 진행 좀 해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