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86
186화.
“신입생 뷔페, 진행 좀 해달라고.”
표정에서부터 헥토르 교수가 난처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나.
그렇다고 그의 말을 그냥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숨을 내쉬며 답하자 헥토르 교수의 얼굴에도 그늘이 진다.
교수라는 입장에서 이렇게 생도에게 다른 생도를 괴롭히라고 말하는 건 사실 큰 문제로까지 번져도 이상하지 않은 사안이니까.
게다가 헥토르는 딱딱한 성격만큼이나 원칙적이거나 윤리적인 행동을 중요시 여기는데 그의 자존심을 꺾는 행위였다.
“이렇게 찾아오셔서 직접 말하실 정도로 다급한 거예요?”
“학장님 지시란다.”
“학장 말을 언제부터 그렇게 잘 따르셨다고.”
헥토르는 이미 학장 눈 밖에 나있지 않은가.
그가 학장의 말을 열심히 따를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 나를 가리키며 답했다.
“네가 준 기회를 잃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잖니.”
“아하?”
“게다가 에밀리를 여기에 그냥 두고 떠날 수도 없다.”
“……짐이 많아지셨네요.”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자신의 행동에 무게감을 지녀야 하는 상황이 된 헥토르.
뭔가 괜히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그는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만큼 좋기도 하구나. 솔직히 자존심을 꺾으면서까지 너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최근 행복하다고 봐주면 좋겠다.”
“우와.”
진짜로 헥토르의 입에서 나온 말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오글거렸으나 그만큼 진심인 거겠지.
또한 그가 일부러 찾아온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 개인적으로는 신입생 뷔페는 나쁘지 않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네? 2학년이 패거리로 몰려가서 애들 두들겨 패는 게요?”
“방식을 좀 바꿔야겠지. 1학년 생도들에게 아카데미에 들어왔다는 경각심도 넣어주면서,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집어넣는 거 아니냐.”
“…….”
“게다가 일종의 모의 공성전을 통해서 1학년들의 단합력을 높일 수도 있는 기회다. 지금은 다들 눈치만 보면서 패거리를 만드는 시기이니.”
듣다 보니 썩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무식하게 방패로 밀고 가서 후려 패는 게 아니라, 적합한 무기와 방어구를 주는 거다.
조금 다칠 수는 있겠지만, 2학년한테 일방적으로 처맞는 거보단 훨씬 낫겠지.
“지금 생각하신 거 같지 않은데요?”
내 질문에 헥토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꽤 예전부터 이런 식으로 바뀌면 어떨까 생각해 왔단다. 지금의 방식은 단순히 2학년의 1학년 기강 잡기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건 그렇죠.”
“몇 번인가 2학년들에게 의견을 냈었지만 다들 한사코 무시하더구나. 자기들이 겪었던 걸 1학년에게 풀겠다면서.”
“…….”
원래 내가 맞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때려야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번 2학년은 좀 다르다.”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헥토르.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대로 흐름을 이어갈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1학년 때 대처가 좋았던 덕분에 신입생 뷔페가 생각보다 빨리 끝났지.”
에드원 브릴리언이 나와 싸우다 옥상에서 떨어진 덕분에 신입생 뷔페가 조기에 끝났다.
“게다가 이번에는 학급의 실력자들을 통솔하는 수석 생도도 있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이트 아카데미에 흘러오던 악습을 오히려 좋은 영향력이자 경험으로 뒤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들으면 들을수록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뛰고 있는 1학년에게 2학년과의 격차를 보여줄 좋은 기회이기도 하면서, 자신들이 보통 학생이 아니라 기사 예비인 생도라는 걸 알려줄.
“좋습니다.”
내 답에 헥토르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다른 문제를 제시한다.
“하지만 내가 방금 말한 건 1학년 남자 기숙사에 해당한단다. 당시 1학년 여생도들은 그대로 습격을 당했어.”
여생도들은 따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였으나.
“괜찮아요, 그쪽은 잘 타협시킬 수 있어요. 나름 휘두를 수 있는 인선이 배치되어 있으니까요.”
다이니와 샬롯은 아무래도 무리겠지만 우리 동아리에는 자타공인 미친년 마리아 레이로즈가 있다.
특히나 1년간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여생도들에게 마리아는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다.
‘에디랑 베런한테 언질을 줘서 여론 조성하고 마리아가 밀고 나가면 끝이네.’
이 나이 때의 여자애들은 소문에 민감하고, 다수의 흐름에 휩쓸리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인기 있는 에디와 베런이 자연스럽게 여생도들에게 언질을 주면서 여론을 조성할 수 있을 거다.
“어려운 점은 별로 없겠네요.”
어깨를 으쓱이며 답하자, 헥토르 교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주었다.
* * *
나이트 아카데미의 신입생.
1학년들은 작년 1학년에 비해서는 다소 느슨해진 상태로 학기 초를 이어가고 있었다.
2학년들이 별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자연스럽게 독자적인 학급의 생태계가 구축되었고 그 안에서도 포식자라 불릴 생도들은 무리의 덩치를 불려가는 중이었다.
에디 브릴리언과 베런 둠베스트를 두고 파벌이 갈렸던 때와 비슷한 상황으로 가는 중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브릴리언이나 둠베스트 같은 거물급 가문의 자제가 입학하진 않았기에 파벌이 여러 개로 나뉘고 있었다.
“2학년 선배들 별거 없다던데?”
“진짜로?”
특히나 허세를 부리는 게 멋처럼 느껴지는 나이.
그들은 접점이 별로 없는 2학년들을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입지를 다지는 중이었다.
“2학년 수석이 평민이잖아.”
“그렇다고 해도 브릴리언이나 레이로즈 가문 소속이신 선배님들도 있지 않나?”
“그게 바로 문제라는 거야. 작년 나이트 아카데미 사건 많았던 거 보면 딱 수준 나오지 않냐? 거품이었던 거지.”
“하긴, 2학년들 보면 우리 피하는 느낌도 있더라.”
근거 없는 정보들이 허황되게 퍼지기 시작하며 거품처럼 불어난다.
2학년들이 1학년에 아예 터치를 안 하고 있다 보니 벌어지는 상황이었으나.
콰앙!
강의실 문이 열린다.
교수님이 들어와야 할 시간이었으나 강단에 선 건 붉은 머리카락과 밤갈색 머리의 여인들.
둘 다 붉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2학년이라는 표시였다.
“안녕, 새내기들. 나는 2학년 마리아 레이로즈다.”
레이로즈라는 이름만으로도 술렁이기 시작한 1학년들.
나이트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 1지망 기사단이 신성이라면 2지망은 보통 레이로즈 가문의 적장미 기사단이다.
“내가 잠깐 공지하고 갈 건데. 불만 없지? 있으면 나오고.”
마리아의 말투 때문에 바로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런 경험이 없던 1학년이었기에 허리가 바짝 서며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안이 애들한테 겁주지 말라고 했잖아, 멍청아!”
옆에 서 있던 다이니가 짜증 내며 마리아를 밀어내고 단상에 선다.
“별거 아니고. 원래 아카데미에 1, 2학년 전통이 있거든. 신입생 뷔페라고.”
또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한 1학년들. 신입생 뷔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생도들이 몇몇 있는 듯 보였다.
“그거 2학년 선배님들이 밤에 기숙사 쳐들어오는 거잖아.”
“어, 엄청 맞는다고 하는데.”
“물건도 뺏어 가신다고 들었어.”
소란이 점차 커지기 시작하는 걸 보며 다이니가 한숨을 내쉰다.
“얘들아?”
고작 한마디였을 뿐임에도 다이니는 묘한 카리스마로 1학년 생도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밀려난 마리아도 “오오.” 하고 탄성을 내뱉을 정도.
“원래는 선배들이 방패 들고 찾아가서 일종의 훈육을 하는 게 맞아. 실제로 작년에는 우리가 겪었고.”
“아, 진짜 재밌었는데.”
당시를 회상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마리아.
유일하게 신입생 뷔페를 마음껏 만끽한 1학년 여생도였다.
“근데 우리 때부터 좀 달라졌어. 너무 폭력적이기도 하고 틈을 타서 물건을 훔치거나 하는 생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
또 다시 웅성거릴 뻔했으나 다이니의 갈색 눈동자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묘하게 위압감이 느껴지는 미소를 지으며 다이니는 말을 이어갔다.
“일방적인 습격이 아니라 너희도 대비할 수 있게 미리 언질을 주고, 저항할 수 있는 훈련용 무구들도 따로 줄 거야. 아예 다치는 사람이 없을 수는 없지만 그게 무서우면 기사 하면 안 되는 거고.”
지금까지 신입생 뷔페가 유지되어 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거였다.
아무리 다쳐도, 결국 기사 지망생이라면 그 정도는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나중에 진짜로 전장에 나가거나 마수들과 싸울 때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으니까.
어쨌든 1학년 생도들의 눈동자에 점차 생기가 돌기 시작하며 분위기가 살살 달아오른다.
그들도 이제 이해가 되기 시작한 거다. 나이트 아카데미의 개혁에 수혜를 입게 되었다는 걸.
또한.
“쉽게 말해서 공성전을 치르는 거야. 너희는 기숙사를 앞에 두고 수성하는 입장인 거고. 우리 2학년을 뚫는 거지.”
보통 공성하는 입장에서는 수성하는 측의 3배는 되는 병력이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지리적 약점을 기량으로 메꿔야 하니 2학년들도 꽤나 불이 붙을 거다.
“오오.”
“와, 대박.”
“이런 걸 원했어. 이게 나이트 아카데미지.”
이제는 단순히 부조리가 아닌, 1학년들이 흥미를 가지는 하나의 큰 이벤트가 된 상황.
1학년 생도들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들썩거리고 있다.
아마 다이니와 마리아가 나선다면 곧장 흥분해서는 떠들기 시작하겠지.
얼른 자리를 비켜줄 생각으로 다이니는 싱긋 웃으며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자, 질문 있는 사람? 손 들어 줘.”
잠깐의 정적.
그리곤 다수의 생도들이 번쩍 손을 들면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다이니를 바라본다.
나이트 아카데미에 들어와 호승심이 넘치는 시기. 제대로 마련된 판에 궁금한 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남녀 기숙사 따로인데 그럼 따로 진행되나요?”
“맞아, 남자 기숙사에는 2학년 남자들만. 여자 기숙사에는 2학년 여자들만 갈 거야.”
“무기는 어떤 게 준비되나요?”
“기본적으로 목검이랑 방패이긴 한데. 장봉도 있어서 창을 쓰는 애들도 문제는 없을걸.”
“따로 준비해도 되나요? 예를 들어 입구를 막는 목책 같은 거요.”
“가능은 한데. 아마 바로 준비하긴 어려울 거야. 책상 같은 걸 써서 막는 건 된다고 들었어.”
쏟아지는 질문 세례들이 얼추 줄어들자 다이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자, 그럼 이만 갈게. 여자 애들은 내일 저녁에 보자.”
“네!”
우렁차게 들려오는 대답.
다이니의 뒤를 따라가던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강의실 문 앞에 선 채로 가슴을 펴며 선언한다.
“내가 지금 2학년 차석이야. 성적으로는 벨레스라는 놈인데, 내가 그 자식한테 이겼거든.”
2학년 차석.
어림짐작으로 알 수 있는 무게감에 1학년 생도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마리아를 바라본다.
“실력에 자신 있는 놈들만 나한테 찾아와. 나는 손속 안 두니까.”
마지막으로 도발적인 문구까지 던진 후, 두 사람은 떠나갔고.
“야! 애들 모아!”
“목책 쌓아도 된다고 했으니까 아예 책상을 쌓아서……!”
“점심시간에 다른 반 애들이랑도 모여서 회의하자!”
1학년들은 처음으로 맞이하는 흥미로운 이벤트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