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8
198화.
빛을 비추면 어둠이 사라지는 게 당연하듯.
대지에 깔린 가장 깊은 어둠을 은색의 빛이 몰아낸다.
앞으로 밀고 들어가는 기사들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고 그에 밀려나는 흑기사들은 다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흠, 머릿수 차이는 두 배 정도인가?”
이빨로 입에 문 장죽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윤이 한마디 툭 던진다.
대강 봤을 때 수적으로는 그 정도 열세라고 보면 되었다.
“그치, 고작 두 배지.”
담담한 내 말에 윤은 슬쩍 나를 보더니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치며 씨익 웃는다.
“자신감이 넘쳐?”
“냉정하게 판단했을 뿐이야. 틀린 말은 아니잖아.”
마몬의 군세와 싸우면서도 우리는 수적으로 언제나 열세였으나 그렇다고 전력에서 밀린다는 판단을 하진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의 전투에서 우리는 승리해 왔으니까.
“우리가 밀리는 건 전체적인 전선이 밀렸을 때뿐이야. 전장에서는 밀려도 각기 전투에서 패배한 적은 거의 없어.”
기사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밀고 나아간다.
터프한 성격인 톰이나 엠버 그리고 레잔이 앞으로 밀고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사기를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기세가 붙은 우리는 패배하지 않는다. 보통 저 셋이 불씨가 되어 전장 전체에 기세라는 영향력을 펼쳐 나갔고.
푸욱!
마지막.
하울로스의 창이 최후의 흑기사의 목을 꿰뚫으며 상황이 종료되었다.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흑기사와 그들이 타고 있는 해골 말들.
날이 밝기 전에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또 와 봐라, 이것들아아아!”
“대악마의 군세 따위! 사자의 발아래에 짓눌리리라!”
오랜만에 싸웠다고 신이 나서는 무기를 높게 치켜 올려서는 환호성을 토해내는 단원들.
옛날이 떠오르는 가슴 뭉클해지는 광경이었다.
사실상 나를 지키고, 대악마와 함께 싸우기 위해서 30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다려왔던 거니까.
그 시간이 보답 받는 중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대강 정리는 됐는데.”
단원들에게서 슬며시 시선을 돌려 우리가 온 로베르담 쪽을 바라본다.
멀어서 도시의 실루엣도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착잡함은 그대로 내 안에 남아있었다.
“다들 빠졌겠지.”
도시의 시민들이 도망칠 수 있게 나름대로 시간을 벌었다는 게, 정말 오랜만에 기사로서의 본보기를 보여줬다는 느낌을 받았다.
“따라갈 거야? 그쪽으로 가면 네 정체 같은 것도 다 밝히게 될 텐데. 아무래도 기사단을 쓰는 데 불편함이 있지 않겠어?”
윤의 말대로였다.
후우 하고 흩뿌리는 연초연기가 괜히 심란한 마음을 대변해 준다.
사실 당장이라도 프랑트로 진격해서 사탄을 토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기사단과 마도병단이 모여 있었는데도 패전했다. 우리가 단독으로 뛰어봤자다.’
아무리 그래도 현 시대의 기사와 마법사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인원수에 비해서 다소 규격 외의 전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지 그들이 무능한 게 아니었다.
특히나 힐다가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패배했다는 점이 더욱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결국 마몬에게 밀릴 때도 같이 전선을 이루고 있는 기사들이나 병력이 부족해서 밀렸었어. 우리만 간다고 뭔가 되진 않을 거야.”
“그러면?”
“기반을 마련해 줘야겠지. 조금이라도 적의 군세를 줄여주면서 버텨서 확실하게 싸울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게 필요해.”
사실상 이제 펼쳐질 대악마와의 전쟁에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국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주 전력이 패퇴한 지금, 얼마나 다시 전력을 모으고 수습하느냐에 따라서 이 전쟁의 승패가 갈리게 된다.
“방법이 있어?”
슬그머니 내 쪽으로 모여드는 단원들.
그들은 먹이를 바라는 강아지처럼 다음 명령이 내 입에서 떨어지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방법은 있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나한테는 악마 놈들이 가장 원하는 게 있거든.”
자그마치 두 마리의 동족을 흡수한 대악마 마몬이 내 안에 깨어 있다.
호시탐탐 내 육체를 탐하려 드는 놈을 견제하는 건 꽤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지만.
이놈 덕분에 상대의 전력이 나누어지게 할 수도 있을 듯했다.
“로베르담으로 돌아가자.”
다시금 지평선 너머의 로베르담으로 시선을 돌리며 선언했다.
탐욕의 대악마 마몬.
마몬이 집어 삼킨 대악마의 힘이 탐스러운 사탄은 홀로 있는 나를 놓치지 않을 거고.
“거기서 놈들을 먹어치운다.”
로베르담과 나이트 아카데미라는 거대한 입속으로 들어오면, 기사단이라는 은빛의 이빨이 놈들을 잘근잘근 씹어 삼키게 될 것이다.
* * *
“후우.”
쓰라린 숨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완전히 텅 비어 있는 아카데미는 처음 보지만 신선하다는 느낌보다는 섭섭함이 강했다.
어느 날인가 폐교를 하는 날이 찾아오면 이런 광경일까.
썩 보기 좋진 않았다.
나이트 아카데미뿐만이 아니라 로베르담 시내도 대강 이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시내에서는 약간의 인기척이 느껴지는 걸로 보아 남아있는 사람이 있긴 했다.
도둑이거나, 집을 지키겠다며 남아있는 사람이거나, 굳이 삶의 미련이 없거나.
나름대로 각자의 이유가 있어서 남았겠지만 사실 별로 탐탁지는 않았다.
지시에 따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런 자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내게 소중한 사람들이 희생된다.
잠시 고민하긴 했으나 시내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마수들이 몰려온다는 걸 들었음에도 다른 이들과 함께 도망치지 않았다면 그 책임도 본인이 짊어져야 하는 게 옳겠지.
“단장, 다 했습니다.”
“여, 여기서도 보여요.”
내게 달려오는 넬슨과 릴리.
막내 라인인 두 사람의 말에 나는 나이트 아카데미의 옥상 쪽을 확인한다.
메이지 아카데미로 치면 예전 힐다의 마석이 있던 장소.
높디높은 옥상에는 밤바람에 펄럭이는 하얀 사자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대사자깃발.
내가 말한 대로 잘 보이게 걸린 깃발이 괜히 웅장함을 자아낸다.
우리가 아카데미를 점령했다는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할까.
“멋들어지게 잘 보이지 않습니까?”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 말하는 넬슨.
그의 호쾌한 표정은 앞으로 펼쳐질 일들에 대해서 크게 걱정이 없어 보였다.
“참 멀리도 왔네.”
그걸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옛 생각이 떠올랐다.
처음 나이트 아카데미에 들어와, 메이지 아카데미의 알프레도 교수에게 받은 감별석을 통해서 넬슨을 소환했었다.
그때 당시에는 넬슨을 만난 것만으로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는데 어느새 기사단원들을 거의 다 소환했고, 이제 한 사람만 남았다.
“네?”
“어, 어디 다녀오시게요?”
내 말을 잘못 이해했는지 넬슨과 릴리는 어벙하게 답해왔다.
별거 아니라며 손짓했는데 막내 라인을 보면서 또 옛날 생각이 터져 나온다.
“생각해 보니까 나는 예전에 너희가 사귀는 줄 알았어.”
“네에?”
“……네, 넬슨이 저랑요?”
우습게 보일 수도 있지만 기사단장의 위치에서 단원들끼리의 연애는 꽤나 민감하게 반응해야 할 부분이다.
연애가 불가능하진 않지만 그래도 사람과 사람끼리 정을 나누다보면 이런저런 사건사고가 터지기 마련이니까.
“정작 헛볼을 찼었네. 쟤는 엠버랑 사귄 거잖아.”
“다, 단장!”
당황하며 주변에 엠버가 있나 눈치를 살피는 넬슨.
하지만 릴리는 검집에 들어가 있는 자신의 장검을 곰인형처럼 꼭 끌어안으며 답했다.
“네, 넬슨은 제 취향 아니에요.”
목소리는 떨리지만 확고한 대답.
칼같이 떨어진 선언에 괜히 넬슨에게 미안해진다.
“저, 저도 그렇긴 한데, 뭔가 차인 기분인데요.”
고백도 안 했는데 차인 느낌을 받고 있는 넬슨은 볼을 긁적이면서 찜찜해한다.
괜히 미안해서 둘에게 가보라고 손짓했고, 둘이 떠나자 자연스럽게 방패 삼총사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릴리와 마찬가지로 이번에 소환한 레잔과 하울로스 그리고 지난번 샬롯의 집에서 소환한 엠버.
“단장, 입구 쪽에서 진을 짜두면 되겠습니까?”
기사단의 방패 역할을 하고 있는 레잔이 웃음끼를 머금은 채로 물어온다.
흑기사들과 싸울 때도 그렇고 대악마들과 싸운다는 게 꽤나 흥분되는 모양이다.
지금 있는 기사단원들 중에서는 내 바로 밑. 레잔은 부단장인 마리와 동기였다.
“일단 좀 보자. 어떤 식으로 싸우게 될지는 모르지만 오히려 너희를 숨겨두는 게 훨씬 효과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아, 무방비하게 상대를 끌어들이고 한 번에 삼킨다는 말이군요.”
바로 알아들은 레잔이 껄껄 웃어댄다. 기사단 내에서 나이가 가장 많고 그만큼 성숙하고 성격도 좋은 편이었다.
푸근한 아저씨.
딱 그런 인상.
그래서 바로 아래인 톰, 한나, 워즈가 군기반장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마리가 나서면 그건 사태가 심각해지니까.
“그럼 저희가 따로 준비할 건 없군요?”
일이 없는 걸 아쉬워하고 있는 모습은 단장으로서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했으나.
아마 소환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으니까 힘이 남아나는 거겠지.
“마침 잘됐네. 어때? 300년 뒤는 좀 괜찮아 보여?”
레잔과 하울로스 그리고 엠버.
엠버는 그나마 샬롯의 고향에서 소환돼서 이것저것 경험해 봤지만 다른 두 사람은 그럴 시간도 없었다.
기사단장으로서 단원들과의 대화나 상담 같은 것도 업무의 일환이니까.
게다가 300년이 지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그들의 반응을 보고 싶었다.
단원들 소환하면서 느끼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였다.
“흐음, 별 감흥 없습니다.”
“단장님의 가르침을 계승받았다는 아카데미가 있다는 게 좀 놀라운 정도?”
“짜증 나요.”
세 사람은 꽤나 아쉬운 대답을 내놓았다. 레잔과 하울로스는 굉장히 재미없는 대답이었고, 엠버는 좀 당황스럽다.
“짜증 난다고?”
원래부터 입이 험하긴 했어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건 처음인데.
“곰인형 때문에 넬슨이랑 사귀던 거 걸려서 짜증 나요. 그거 가지고 계속 다들 놀려요.”
“……그건 내 탓이 아닌데.”
“300년이 지났는데 썩을 대로 썩은 곰인형 하나 버리지 않은 미련한 일레인 가문이 싫어요.”
“…….”
샬롯이 들으면 상처받겠다.
레잔과 하울로스가 끌끌 웃어대며 엠버를 놀리기 시작했고, 엠버는 둘을 툭툭 쳐대면서 짜증을 부려댔다.
그렇게 엠버에게 떠밀리듯 가는 두 사람이었으나 레잔이 휙 몸을 틀어 내 쪽을 본다.
“그러고 보니 도로시가 음식들이 그렇게 맛있다고 극찬하더군요. 나중에 한번 먹고 싶습니다.”
“뭐, 어렵지 않지.”
“저는 무기점을 가고 싶습니다. 300년 뒤 무기들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보고 싶군요.”
무기 마니아인 하울로스의 눈동자가 소환되고 처음으로 반짝인다.
“그것도 어렵지 않지.”
300년 뒤라고 느낄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 딱히 없었다 보니 레잔과 하울로스는 다소 싱거운 반응을 보였다는 걸 알아차린다.
이번 일이 잘 끝나면 충분히 여러 경험을 하고, 발전된 세계를 보며 충격을 받을 거다.
리액션을 보고 싶으니 그때까지는 살아있어야겠지. 덤으로 대악마로부터 세상도 구하고.
마지막으로 엠버 쪽을 향해 어깨를 으쓱였다.
“넬슨이랑 데이트 할 시간도 따로 주는 것도 어렵지 않은데?”
“아, 단장 제발!”
버럭 외치는 엠버의 반응에 깔깔 웃어대는 레잔과 하울로스.
나 역시 그녀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밤이 어둡다.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사탄의 군세를 기다리기 앞서, 이런 시간은 꽤나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