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햇볕이 사라지며 어둠이 드리운다. 아카데미의 보안을 위함이라며 담장 위에 걸린 철조망 사이로 싸늘한 찬바람이 불어왔다.
저릿저릿한 피부로 느껴지는 살의.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해서 미리 경고하는 따가운 공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까.
로베르담 시내에서는 지금 도둑들의 축제가 한창이었다.
“끼야아앗!”
“멍청이들! 이걸 놓고 갔다고?”
“마셔! 마셔! 다 마셔! 오크통 못 굴리니까 그냥 두고 간 게 한 무더기야!”
피어오르는 연기.
시내 중앙에 있는 공원에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지 고소한 향기와 더불어 과격한 술주정이 울려온다.
마수가 온다면 자신들이 죽이면 그만이라며 어디서 가져온 검을 가지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다.
“…….”
어리석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참으로 답답했으나.
내가 지금 저들을 막기 위해서는 가서 칼이라도 휘두르면서 강제로 윽박지르는 정도밖에 불가능했다.
선택은 본인들이 했으니, 책임도 본인들이 져야겠지.
저들은 이 땅을 향해 쉼 없이 내달리는 발굽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까.
하긴.
‘그것도 못 들으니까 이렇게 남아서 만찬이나 즐기고 있는 거겠지.’
경비대에서 아무리 경고를 하고, 강제로 끌고 가려고 해도 끝끝내 숨어서 도시를 즐기는 자들.
부모님이 일 때문에 집을 비우자, 자유가 드디어 찾아왔다며 좋아하는 어린애들처럼 느껴졌다.
“슬슬 준비를 해야겠네.”
여러 사건이 있었다 보니 로젤리아 학장이 견고하게 보수해 둔 담장 덕분에 시내에서 적을 받지 않고 아카데미에서 받기로 했다.
아까도 말했듯 벽 위에 철조망이 걸려 있어, 들어오는 입구가 제한된다.
그렇기에 내가 선택한 건 아예 입구 쪽이었다.
의자를 하나 가져와서 입구에서 일직선으로 놓는다. 훤히 보이는 입구 너머로, 도둑들이 피어 올린 노릇한 연기가 보인다.
열심히 고기를 구우며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그들을 보며 나 역시 식량으로 준비해 둔 빵을 씹어 먹는다.
비교되는 식탁이었으나, 텅 빈 도시에서 저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뭐야?”
“이거 무슨 소리야?”
“말 아니야? 기사단이 왔나?”
거친 발굽소리가 이제 로베르담을 밀고 들어온다.
취기가 잔뜩 올라 흐름에 몸을 맡기던 이들도 귓구멍을 울리는 진동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충격에 그들의 정신이 온전해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마, 마수다아아아!”
“도망쳐! 도망치라고!”
“건물 안으로……!”
다급한 외침이 비명으로 변하는 것 역시 길지 않았고. 비명이 고요함으로 뒤바뀌는 것 역시 한 순간이었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울려오지 않았다.
다만 결말을 말해주듯, 싸늘한 피 비린내가 밤바람을 타고 흘러들어와 콧잔등을 간질여 왔다.
‘본인의 선택이야.’
아까도 말했지만 결국 본인들의 선택이다.
저들을 구하겠다고 시내로 나섰다면 나는 탁 트인 장소에서 대량의 적들을 상대해야 했다.
기다리는 입장에서 장소까지 불리하게 시작한다?
그런 여유는 없었다.
그나마 해줄 수 있는 건.
복수 정도겠지.
빵을 다 먹은 나는 손에 묻은 빵가루를 털어내며 마나를 끌어올린다.
만반의 준비를 하기 위해, 미리 성검과 지팡이를 소환한다.
예전에는 자주 사용하던 전격 마법이 걸려 있는 지팡이였다.
입구 너머에서 흐릿하게 보이는 검은 실루엣.
검은 갑옷을 걸치고, 해골로 된 군마를 타고 온 그들은 지난번에 상대했던 흑기사와 같은 외형이었지만.
숫자는 훨씬 많았다.
어둠 속에서 숨어 행동하던 그들이 아카데미 안으로 들어서며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낸다.
대륙에 찾아든 죽음은 실로 웅장하나, 눈으로 쫓기엔 은밀했다.
“남은 건 네놈뿐이냐. 기사를 키우는 아카데미라 하여 기대하고 왔건만 신념 없이 다들 도망쳤는가.”
꽤나 신랄한 비판이었다.
손에 쥐고 있는 랜스에 묻은 피가, 명예로운 전사의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집의 곡식이나 파먹을 줄 아는 쥐새끼라는 점이 그들의 명예를 자극한 듯싶었다.
“대륙에 퍼진 종말. 그중 첫 번째 성운인 사탄. 그를 섬기는 흑기사단.”
나름대로 포장해서 말해줬음에도 그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
“기사단이라는 이름을 듣고 조금 궁금했어, 과연 대악마의 기사들은 얼마나 강할지 말이야.”
단순히 개인 기량이 아닌, 기사단으로서 만전의 준비가 된 놈들과 붙고 싶었다.
“우리 역시, 기사를 꿈꾸는 자들의 실력을 가늠하고자 이곳에 찾아왔으나 헛걸음했군. 이곳에 기사란 없었다.”
자존심이 좀 상하는데.
“기껏 우리를 맞이하고 있는 자도 기사가 아니라 지팡이를 쥐고 있는 마법사라니.”
“기사야, 허리에 검도 있는데.”
추위 때문에 두르고 있던 로브를 슬쩍 들춰서 성검을 보여준다.
검의 수준이 심상치 않다는 점과 대악마의 기운에 오염됐다는 걸 눈치챈 걸까.
푸른 눈동자가 일렁거린다.
“그대, 이름은?”
“이안 아이넬, 그보다 네가 착각한 게 하나 있어.”
입가에 웃음이 번져갔다.
조카들 서프라이즈 파티라도 해주는 것처럼.
흑기사들이 바라마지 않던 존재들을 선물할 수 있다는 게 즐거웠다.
지팡이를 통해 마나가 전격으로 빠르게 치환되며 순식간에 거대한 마법진이 바닥에 깔린다.
“지금 이곳에, 기사가 없다니?”
마법진을 통해서 나타나는 은빛의 기사들.
미리 준비하고 있었는지 벌써 전열인 레잔을 중심으로 하울로스와 엠버가 가장 앞에 서 있다.
또 한 번.
300년 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은빛 갑옷의 광활한 빛이 어둠을 몰아낸다.
기사단원들은 지금 이 자리가, 자신들이 있어야 하는 장소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투기를 쏟아내고 있었다.
바람이 불어왔다.
분명, 아카데미 꼭대기에 걸린 사자의 깃발은 늠름하게 펄럭이고 있겠지.
“내가 바로 기사단이야.”
콰앙!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찍는다.
손끝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마나가 전격이 되어 흩뿌려지기 시작했고.
“가자, 사자들아.”
기사단원들은 나의 부름에 맞춰, 묵직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기 시작했다.
“흐으으.”
서늘한 한기가 흑기사들의 투구 밖으로 흘러나온다.
뜨거운 우리의 투기에 맞춰 그들은 서늘한 한기를 쏟아내며 랜스를 앞으로 내민다.
말은 필요 없었다.
그들은 우리를 인정했고, 자신들의 전력을 맞부딪치기 위하여 달려든다.
기사와 기사끼리의 싸움.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군마를 타고 있는 저들의 일방적인 학살극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말이라고 해서 단숨에 전속력을 뿜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나 지금처럼 아카데미로 들어와 멈춰서 있던 순간, 이미 군마는 자신의 역할을 잃었다고 볼 수 있었다.
콰앙!
거대한 방패를 들고 있는 레잔이 전차처럼 앞으로 밀고 들어간다.
전격처럼 흐르던 나의 마나가 보조마법으로 변화하며 그의 몸에 힘을 덧씌운다.
“밀고 들어간다! 진형을 무너뜨리면서 상대하면 오히려 우리 쪽에서 유리하다!”
내 말을 단번에 이해한 단원들은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밑에서 찌르고 들어가는 칼과 창은 지근거리에서 다소 굼뜰 수밖에 없는 기병들을 유린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바닥에 떨어져, 그대로 일방적으로 찔려 쓰러지는 놈들이 한 무더기.
순식간에 소멸해 가는 흑기사들 덕분에 발치에는 검은 연기가 가득했다.
유리한 고지에서, 뜬금없는 장소에서 기습을 치고 들어갔다.
이 정도로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가 펼쳐졌을 때, 우리를 이길 수 있는 군대는 몇 없을 거다.
푸욱 푸욱 푸욱!
뒤따라 들어오는 놈들도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입구 너머로 달이 눈에 들어왔다.
일방적인 학살이라 부를 수 있는 전투.
처음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단장으로 보이던 흑기사가 톰의 대검에 찔린 채로 내 쪽을 노려본다.
“어때, 만족스럽나?”
뛰어난 기사를 보고 싶었다는 그의 소망에 걸 맞는 최후이지 않을까 싶어 물었으나.
투구가 벗겨진 그는 턱뼈만 달그락거릴 뿐 제대로 된 대답도 하지 못하고 소멸했다.
“단장, 끝났습니다.”
부단장인 마리가 없으니 참모 역할인 워즈가 대신해서 내게 보고한다.
깔끔하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아쉽지만 이제 시작이었다.
달빛 아래, 검은 구름이 밀려온다.
구름으로 보일 정도로 대량의 마수들이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대악마의 기운이 하늘을 타고 흘러 땅에 닿는다.
그것을 눈으로 쫓다보면 어느새 로베르담의 시내에 닿게 되고 그러면 시내를 내달리는 마수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담겼다.
“레잔 필두로 입구 쪽으로 지켜. 전열 쪽은 앞만 보면 된다. 담벼락 넘어오거나 하늘에서 오는 놈들은 이쪽에서 처리할 거니까.”
“받들겠습니다!”
내 명령을 받자마자 레잔이 곧바로 아카데미 입구로 달려가 방패를 바닥에 내리찍는다.
콰앙!
절대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널찍한 등.
그리고 그를 옆에서 보좌하는 하울로스와 엠버.
다른 단원들도 재빠르게 발맞춰 그들의 뒤에 자리를 잡으며 방진을 구축한다.
우웅!
다시금 지팡이에서 빛이 흘러나온다.
익숙한 마법진이 그려지며 순식간에 마나가 뭉텅이로 빠져 나갔다.
“우욱!”
현기증과 더불어 속이 울렁거렸으나 소환된 두 여인이 앞에서 나를 잡아주었다.
힐다와 윤.
“왜 얘랑 같이 소환하는 거야?”
“나도 싫어, 마법사들은 책에 파묻혀서 퀴퀴한 냄새가 나거든.”
“인형에 담기게 된 땅딸보 주제에. 나는 마법으로 향기 좋게 바꿔두거든?”
“그게 바로 몸에서 냄새가 난다는 증거 아니냐?”
“둘 다 조용히 해.”
두통이 서서히 가라앉고, 나는 심호흡하며 둘에게 지시했다.
“힐다는 공중을 맡아줘. 아래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안으로 들어오지만 못하게 해주면 돼.”
“그럼 마나 아껴. 최대한 내가 쓸 수 있게.”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힐다는 바로 하늘 높이 떠오른다.
고작 하나의 마법사가 전장에 등장했을 뿐이지만, 검을 다루는 우리에게 가장 커다란 약점이 사라졌다.
“윤은 따로 행동하는 게 편하지?”
“저 틈에 끼라고 하면 욕할 생각이었어.”
입구 쪽에서 밀려드는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는 기사단원들을 가리키며 윤은 혀를 날름 내민다.
누군가와 합을 맞추기 보다는 스스로의 검술만을 믿던 검객.
“뒷문 쪽 맡아줘. 정면에 전력이 쏠려서 많지는 않겠지만 돌아서 오는 놈들도 분명 있을 거야.”
“아, 어렵지 않지.”
태도를 쥔 채로 그대로 달려가는 윤. 인형이 되었음에도 재빠른 몸놀림과 더불어 그녀 특유의 검술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전투가 길어져서 그녀가 혼자서 후문을 지키지 못할 때가 된다면, 어차피 정면에서도 상대의 공세에 얼추 밀린 상황이겠지.
“그럼 나는…….”
지팡이를 들어 올려 전격을 흘린다. 마나량이 많다는 점을 이용해 계속해서 전격을 흘려 아예 담벼락 위에 있는 철조망에 두른다.
딱 마침 담벼락을 넘어오던 개와 유사하게 생긴 마수가 그대로 튀겨지는 모습이 보였다.
간단한 마법이지만 수성할 때는 뜨거운 물 같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해보자고.”
밀려오는 마수들과 찌르고 오는 광기 어린 살의를 느끼며 우리는 익숙하게 검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