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0
200화.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좀 떨어진 성 프롤라인은 300년 전 마몬의 공세 속에서도 굳건하게 인류의 방벽이 되어줬던 장소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보수도 더 잘되어 있고 방비가 철두철미해진 왕국의 요새.
프랑트가 함락되자, 후퇴한 기사들과 마도병단은 뒤로 쭉 물러났고.
여기가 바로 그 끝이었다. 이제 프롤라인을 기점으로 전력을 보강하고 가다듬어 반격의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아니, 언니. 왜 우리는 안 쓰는 거야?”
그리고 그게 마음에 안 드는 소녀가 여기 있다. 오랜만에 언니라는 호칭까지 꺼내 든 그녀의 이름은 마리아 레이로즈.
마리아는 프랑트에서 살아 돌아온 자신의 언니들에게 답답함을 토로했다.
“생도도 결국 기사가 될 사람들이잖아. 고작 1, 2년 좀 일찍 기사가 된다고 뭐가 달라?”
“좀 가라.”
마리안느의 대답에 마리아는 이마를 탁 치며 짜증낸다.
“아무리 그래도 생도들을 민간인 대열에 합류시켜서 뒤에서 처박혀 있게만 하는 건 아니잖아! 지금 성벽 밖에서 마수들 온다며! 그거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쾅!
결국 성질을 참지 못한 마리안느가 과격하게 외치며 일어난다.
같은 핏줄은 아니지만 어쨌든 같은 저택에서 자란 사이다.
성격이 드센 면은 의외로 비슷했다.
“어련히 필요하면 가져다 쓰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어련히 필요하면? 프랑트에서 줘 털리고 오지 않았으면 내가 말을 말아!”
짜악!
결국 마리안느는 참지 못하고 마리아의 뺨을 후려쳤으나, 당연하게도 마리아의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장녀와 삼녀의 싸움을 보며, 차녀인 메릴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지금 이 상황에선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왜 생도들을 안 쓰냐고? 우리가 쓰러지면 너희가 뒤를 이어야 하니까.”
“…….”
“기사들이랑 마법사들이 다 쓰러져도 이 나라를 지켜야 할 사람이 있어야 될 거 아니야! 그때를 위해서 너희 생도들이랑 마법학도들을 지키고 있는 거야! 더 성장하고, 전장을 눈에 담으라고!”
“여유가 넘치네?”
쓴웃음을 지은 마리아는 결국 한마디도 지지 않는다.
“언니들 다 뒤진 다음에 나한테 뒤를 맡긴다는 개소리 하지 말고! 그냥 같이 싸우면 되는 거잖아! 전황이 그렇게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평행선을 달리는 장녀와 삼녀.
차녀인 메릴 역시 원래는 끼어서 싸우는 성격이었으나 여기서 자신까지 그러면 정말 큰일 날 것 같다고 판단.
“여유로워.”
결국 메릴 레이로즈가 한숨을 내쉬며 끼어들었다.
“뭐?”
예상치도 못했던 대답에 마리아의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진다.
마리안느 역시 부정하지 않는 걸 보면 안심시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당연히 마수들이 이곳, 프롤라인 성으로 쏟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진군이 그렇게 격하지 않아.”
“왜……?”
정말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프랑트에서 왕국의 주전력을 박살 내놓고 다시 힘을 모을 시간을 주다니.
“모르지, 대악마라는 놈이 빡대가리인가 봐.”
어깨를 으쓱거린 메릴이 말을 잇는다.
“로베르담에 뭐 꿀이라도 발라뒀나?”
“……뭐?”
이번에는 처음으로, 마리아의 표정이 굳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예 두려움마저 느끼고 있었다.
‘음?’
‘얘가?’
로베르담에 마수들이 몰려들었다는 말에 마리아가 보인 반응은 언니들로서는 상상도 못 할 것이었다.
광인이라고 평가받아, 아비에게까지 버림받았던 마리아가 저런 감정을 내비춘다?
“로, 로베르담에 마수들이 모여들고 있다고? 그것들이?”
“어, 덕분에 우리는 비교적 수월하게 방어하고 있고. 전력도 더 편하게…….”
휙!
더 이상 마리아는 듣지 않았다.
그대로 천막 밖으로 나선 그녀의 발걸음은 반쯤 뛰듯이 다급했다.
“어휴, 저거 진짜.”
“뭔가 문제가 있나 본데?”
“지가 알아서 하겠지. 이제 가야해, 단장들이랑 모여서 회의하기로 했어.”
왕이 있는 프랑트가 사라졌으니 단장들끼리 총 지휘관을 다시 세우기로 했다.
프랑트에서는 마리안느가 했으나 패배했으니 그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하아.”
쓰라린 숨이 흘러 나왔다.
왕국의 미래가 어찌될지 근심 섞인 한숨만 계속 푹푹 쉴 수밖에 없었다.
“근데…… 정말로 로베르담에 마수들이 멈춰선 건 뭐 때문일까?”
회의장으로 뒤따라오는 메릴의 질문에 마리안느 역시 잠시 고민에 빠졌으나.
“모르지.”
당연하게도 답은 나오지 않았으나.
덕분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생겼다는 건 분명했다.
* * *
“야!”
로베르담의 이야기를 듣고 마라이가 찾아간 사람은 다름 아닌 다이니 브랜드였다.
다이니는 샬롯과 함께 자처해서 배급을 돕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마리아에 휙 고개를 틀었고.
콰득!
마리아는 곧장 다이니의 멱살을 낚아채며 흉흉하니 물어왔다.
“이안, 남은 이유가 뭐야.”
“이게 미쳐가지고!”
당연하지만 다이니도 한 성격하는 편이었기에 마리아의 기세에 밀리지 않고 뒤로 밀어낸다.
“뭔데 갑자기 와서 멱살 잡고 따지고 지랄이야!”
“이안이 남아있는 이유가 뭐냐고! 너 걔랑 평소에 둘만 아는 얘기 많이 했잖아!”
“이안이 왜! 걔는 알아서 잘 살아있을 거라고!”
분명 어딘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을 거라고 다이니는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있는 마몬의 기운도 여전하고 이안의 정체를 알면서, 기사단까지 소환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건 그녀가 유일했으니까.
하지만 뒤이어진 마리아의 말은 다이니조차 동요하게 만들었다.
“지금 마수들이 로베르담으로 집결하고 있다잖아! 이안, 이 새끼가 뭐 휘말린 거 아니야? 거기 갇혀서 탈출 못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마수들이 로베르담으로?”
“그래! 그놈 혼자만 남았잖아! 다른 생도들이 말하는 것처럼 도망칠 놈은 아니잖아!”
2학년 수석인 이안 아이넬이 없다는 건 이미 공공연하게 퍼진 소문이었고.
대부분의 생도들은 그가 혼자서 도망쳤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레지스탕스 가르덴과 잎담배 사건에서 이안이 베히모스를 소환해서 타고 있는 걸 봤으니.
마수를 소환해서 혼자 도망쳤다며 다들 대놓고 욕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은빛사자 연구회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뭔가 할 일이 있으니까 따로 떨어져서 때가 되면 돌아오겠거니 했다.
그만큼 이안이 보여줬던 행동들은 신출귀몰하면서도 대단한 것들투성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분명히 이안이야! 그 자식이 혼자서 마수들을 그쪽으로 끌어 모으고 있어! 싸우고 있는지 아니면 어디 숨어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구하러 가야 한다고!”
마리아의 외침에 다이니의 동공이 흔들린다. 그녀 역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으나.
“가자.”
옆에 있던 샬롯이 어느새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어던지며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
“…….”
마리아와 다이니가 동시에 샬롯을 쳐다본다.
처음이었다. 소심한 그녀가 이렇게 당돌하면서도 단호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건.
당장이라도 자신의 뒤를 따라오라고 압박하는 듯한 샬롯의 눈동자.
“가자고. 이안을 그냥 둘 수는 없잖아.”
이안을 믿는다고 해도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언젠가 돌아오겠거니 싶어서 기다렸으나.
로베르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은 지금은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소심하던 샬롯의 담대한 발언.
“그래, 그거지!”
마리아는 씨익 웃으며 호탕하게 외쳤고, 두 소녀가 동시에 친구를 향해 시선을 돌린다.
뭐 하냐고 쏘아붙이는 듯한 눈길에 결국 다이니도 한숨을 내쉬며 끄덕였다.
“가자, 가. 그래, 나도 가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
다이니까지 합류하게 되었다.
그녀는 주변을 힐끔 둘러보더니 뒤쪽에 있는 텐트로 샬롯과 마리아를 데려간다.
“우리만 가는 거 무리인 거 알지? 성 밖으로 나가는 것도 힘들어.”
다이니의 말대로였다.
단순히 마수가 들어오는 것만 힘든 게 아니라 인간이 밖으로 나가는 것 또한 막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성 밖으로 나간다고 해서 바로 로베르담으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근처에 마수들이 있을 테니까.”
마수가 생각만큼 많이 오지 않는다 뿐이지 이곳에도 분명 매일 마수들의 습격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금부터 할 일을 말해줄게. 나는 마구간 쪽으로 가서 말을 준비시킬 거야. 나이트 아카데미에 있던 말들이 다 이쪽으로 왔으니까 마구간에 자리가 없어서 그냥 밖에 대충 묶어둔 걸 봤거든.”
“나가는 법은?”
마리아의 질문에 다이니는 비장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것도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그럼 샬롯은 우리 부원 애들한테 가서 말 좀 전해줘. 다 전하진 말고, 우리 초기 멤버 있잖아.”
“베런, 벨레스 그리고 실리아 선배?”
“응, 딱 거기까지만 얘기를 해봐. 같이 동행하지 않겠냐고. 싫다고 하면 입단속 확실하게 해주고.”
“알았어!”
얘기를 듣자마자 바로 출발한 샬롯.
의욕이 넘치는 게 당장이라도 이안이 있는 로베르담으로 출발하고 싶다는 욕망이 보였다.
“마리아.”
“내가 할 것도 있나?”
따로 할 일이 없어 보였기에 마리아는 아쉬워하며 답했으나, 다이니는 비장한 표정으로 침을 삼키며 말했다.
“어찌 보면 네가 가장 위험한 일을 하는 거야.”
“엥? 그럴 게 있나?”
탈출 수단과 방법은 다이니가, 동료들은 샬롯이 구한다.
이미 필요한 업무는 다 배분된 게 아닌가 싶었으나.
“너는, 레이로즈 가문의 가보를 가져와 줘.”
“……마리안느 언니가 쓰는 검인데?”
“그거 복제품이잖아.”
마리안느가 사용하는 검은 두 자루였다. 동일하게 생긴 검이었으나 하나는 300년 전, 마리 레이로즈가 사용하던 검.
또 하나는 그것을 모티브로 만들어 낸 복제품.
지금까지 적장미 기사단의 기사단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온 전통적인 물건이자 적장미 기사단의 상징이었다.
“어디 팔아서 자금이라도 마련하려고? 그거 사려는 사람도 없을 걸.”
“아니, 그게 아니야.”
다이니는 더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안을 위해서야.”
무슨 인과관계가 그렇게 되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마리아였으나 다이니의 표정이 가짜처럼 느껴지진 않았기에.
“아, 젠장. 잘하면 로베르담 가기도 전에 뒤지겠네.”
뒷머리를 긁적이며 알겠다고 답한다.
“대신 왜 이안을 위해서인지 분명하게 설명해야 할 거야. 이쪽은 나름 목숨을 거는 거란 말이야.”
“다 오면…….”
다이니는 주먹을 꾹 쥐며 중얼거린다.
이제는 숨길 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다 오면, 이안에 대해서 내가 아는 모든 걸 말해줄게.”
* * *
목숨이 오가는 전투 속에서는 피로나 허기도 잊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끼리 각성했다고 부르는 상황인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었다며 자화자찬하지만.
긴장이 풀리는 순간, 미뤄뒀던 피로들이 순식간에 몰려오면서 급격하게 피곤해진다.
그래서 최대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각성 상태가 풀리지 않는 것도 또한 노련한 베테랑에게는 필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것이지 않겠는가.
“어우, 젠장.”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싸운 건지 모르겠다. 그나마 마나량이 방대해서 버티고 있지 아니었으면 순식간에 휩쓸리듯 패배했을 거다.
“단장, 괜찮으세요?”
마수의 피를 뒤집어 쓴 넬슨이 다급하게 나를 부축한다.
기사단원들이 마나로 이루어진 소환수라서 인간처럼 피로를 느끼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가까스로 일어선 나는 눈을 꾹 감으며 묻는다.
“누구였지?”
“엠버 선배랑, 릴리입니다.”
“후우.”
마법진이 다시금 그려진다.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마수들과의 싸움으로 역소환된 단원들을 소환 가능한 시간이 되어 다시 불러낸다.
“이번에는 최대한 오래 버티겠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엠버와 릴리가 나타나며 바로 전선에 합류한다.
이곳은 로베르담, 그 안에서도 나이트 아카데미.
우리는 여기서 마수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발악하며 헤엄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