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1
201화.
푸르릉!
어렸을 때부터 함께해 왔던 자신의 군마, 톨리아를 쓰다듬는 다이니는 사색에 잠겼다.
자신의 갈색 머리카락과 톨리아의 갈색 털이 어울렸기에 첫 만남부터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레비아탄교에 쫓길 때도 너한테 도움을 많이 받았지.”
톨리아와 지내던 시간은 그녀에게 있어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괜히 힘들어지면 톨리아에게 와서 같이 시간을 보냈고, 심란한 다이니의 마음을 이해해 주듯 톨리아도 얼굴을 비벼왔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다이니의 마음이 무겁다는 걸 아는지 톨리아는 오늘도 다이니에게 얼굴을 내밀며 괜히 애교를 부려왔다.
“이제 또 난관이 하나 있어. 힘들고, 솔직히 무섭기도 하지만 그래도 가고 싶어.”
천천히 톨리아를 쓰다듬으며 다이니는 슬쩍 웃었다.
“그러니까 도와줘. 부탁할게.”
기사로서 말과의 교감은 중요하다.
실제로 이안 아이넬이 다이니와 톨리아를 보더니 꽤나 좋은 관계를 구축했다면서 칭찬했던 적도 있다.
혼자 힘으로는 무리여도, 톨리아와 함께라면 다이니는 자신 역시 충분히 전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이니!”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밝은 소녀의 목소리.
분홍머리를 흩날리며 달려오는 샬롯의 표정은 밝았다.
이유를 아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녀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다른 생도들 때문이었다.
베런부터 시작해서 실리아 그리고 벨레스까지. 불렀던 사람들 전부가 와준 것이었다.
“다들 와줬어!”
환한 미소를 뒤따르는 다른 생도들의 표정은 조금 미묘했다. 아무래도 완전히 마음을 굳힌 걸로 보이진 않았다.
“베런은 괜찮은 거야?”
둠베스트 가문의 가주가 이끄는 흑곰 기사단도 지금 프롤라인 성에 와있다.
여기서 베런이 이상행동을 하면 자신의 가문에도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소리였다.
또한 베런은 외동으로 가문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를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은빛사자 연구회에 완전히 몸을 맡길 수는 없었다.
“샬롯이 말하기로는 로베르담에서 이안이 혼자서 버티고 있다더군.”
팔짱을 끼며 정말이냐고 물어오는 베런에게 다이니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하지는 않아. 로베르담에 마수들이 모여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 이유가 이안인지는 아무도 몰라.”
“어라?”
오히려 대답을 들은 샬롯이 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생도들한테는 이안이 로베르담에 있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베런은 미간을 찌푸리며 샬롯이 아닌 다이니를 바라봤다.
다시 묻는 베런.
“단순히 상황을 봤을 때. 확실하지는 않다는 소리라고 이해했다. 그럼 네가 생각했을 때는?”
다이니의 첫 대답은 단순히 상황만을 알려준 거였다. 그것에 대한 판단은 본인들에게 맡긴 것.
하지만 베런이 물은 건 다이니의 의견이었고.
“후.”
다이니는 괜히 한숨을 흘린다.
당이 떨어져 과자라도 먹고 싶었는데 과자를 챙길 정도의 여력은 없었다.
“무조건. 무조건 이안이 남아서 마수들을 유인하고 있는 거야.”
“이유는?”
“뭐, 당장 프롤라인 성 상황을 봐. 원래라면 마수가 미친 듯이 밀려왔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다소 평화롭잖아?”
“…….”
다이니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는 베런. 그 역시 긴장하며 프롤라인 성으로 찾아왔으나, 막상 생도에게까지 일이 오지도 않는다.
매일 마수들이 몰려오고 있긴 하지만 성벽 위에서 화살만 몇 발 쏴대면 그만일 정도로 싱거웠다.
“덕분에 전력을 정비할 시간도 충분히 벌렸어. 왕실이라는 머리를 잃었는데 기사단이랑 마도병단의 지휘권 관련 혼란도 슬슬 정리되겠지.”
이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아직도 교통정리가 안 됐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로베르담으로 갈 거야. 이안은 분명 거기서 혼자 싸우고 있을 테니까.”
“……좋다.”
얘기를 전부 들은 베런은 망설임조차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이니 쪽으로 다가갔다.
“합류하지.”
언제나 담담한 남자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이런 상황에서조차 결정은 신속하고 단호하다.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여러 의무들이 있음에도 베런은 이쪽을 골랐다.
굳이 그걸 언급하면서 다시 물어볼 정도로 다이니는 멋이 없지 않았다.
“뭐, 어차피 나는 할 일도 없어. 이안이 없으면 안 되니까 가겠어.”
창을 쥐고 온 벨레스도 별 망설임 없이 합류했다.
수인으로서 인정받는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필요했고, 이안은 가장 유능한 조력자였다.
“하아.”
이중 유일하게 3학년인 실리아 위드니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여기서 돌발행동을 하는 건 기사의 자격 자체를 의심받을 수도 있는 행위였고.
그렇게 된다면 지난 3년간의 노력은 한순간의 물거품이 되는 거나 다름없으나.
“그래, 가자. 이럴 때 움직이지 않으면 3년간 배운 것도 쓸모없는 거지.”
어깨를 으쓱거리며 합류한 실리아.
결국 은빛사자 연구회의 원년 멤버들이 전부 모이게 되었다.
“후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허리춤에 손을 얹는 샬롯.
앞으로 가게 될 장소가 마수들과의 전장이라는 걸 알기는 한지 해맑다.
“마리아는 어디 있지?”
“조금 있다가 올 거야.”
레이로즈 가문의 가보를 가져와야 하는 마리아였기에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겠지.
특히나 그걸 가지고 있는 건 프롤라인 성에서 가장 강한 기사라고 불리는 마리안느 레이로즈였다.
그건 마리아에게 맡겨두고.
“움직이는 건 오늘 새벽이야.”
다이니는 주변의 눈치를 보더니 조용히 자신이 세워둔 작전에 대해서 설명한다.
“너희 새벽조 나가봤어?”
“새벽조?”
“아니, 그거 생도는 못 나가는 거 아니야?”
실리아와 샬롯이 답했고. 베런과 벨레스도 고개를 저었다.
새벽조 같은 경우는 생도들이 아니라 일반 병사들만 나갈 수 있는 곳이었으니까.
“나는 가봤어. 우연하게 기회가 돼서 갈 수 있었거든.”
“그래서?”
“새벽조는 성문 열고 밖으로 나가.”
다이니가 턱으로 성문을 가리키자 다른 생도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향한다.
“수성하면서 쐈던 화살들을 밖에 있는 마수 시체에서 수거해 오는 일을 하더라.”
화살도 무한할 수는 없기에 당연한 거였고, 마수들은 동료의 시체를 거들떠도 보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때를 노릴 거야.”
유일하게 성문이 열리는 시간.
마수들의 위험도 떨어지니 밖으로 나갈 때 다른 시간대보다 훨씬 안전하기도 할 거다.
모르던 정보였던지라 뜬금없기는 해도 다른 생도들은 듣는 순간 이 이상으로 좋은 방법을 낼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애초에 성문이 열려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타이밍이 그때밖에 없는 거니까.
“내일 새벽 4시. 다들 마구간으로 다시 모여. 그때 출발할 거니까.”
당장에 몇 시간도 남지 않았으나 다들 별말 없이 받아들였다. 계속 마구간 근처에 있으면 이상하게 보일 테니 해산했다.
* * *
다시 마구간 앞.
옅은 안개가 끼어 있는 날씨 덕분에 아카데미 생도복 위에 지급용 로브를 둘렀다.
굳이 생도복을 입을 필요는 없었지만 지금 다이니와 다른 생도들이 가지고 있는 복장 중에 가장 익숙하고 전투에도 유용한 것이었다.
“후우.”
새벽에 깨는 건 어렵지 않았다.
다이니를 필두로 다른 생도들 역시 하나같이 약속 시간보다 이르게 모여서 미리 준비를 하며 몸을 데워둘 수 있었다.
덕분에 준비는 다 끝났다.
새벽조도 슬슬 밖으로 나갈 시간이 되었기에 지금 다들 마리아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야! 출발해!”
날선 외침은 새벽의 느슨한 공기를 찌르고 들어왔다. 긴장하고 있던 생도들은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손에 레이로즈 가문의 가보를 쥔 채로 다급하게 달려오는 마리아가 있었다.
성공했구나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갈 뻔했으나 다이니는 뒤따라오는 마리안느 레이로즈를 보고 전혀 성공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아오! 저 미친년! 일을 조용히 처리하는 때가 없어!”
사실 마리안느를 상대로 생도인 마리아가 몰래 가보를 훔쳐온다는 거부터가 말이 안 되긴 했다.
억지를 부렸다는 건 알지만, 억지를 부려야 하는 때도 있는 게 아닌가.
“다들 말에 올라타!”
다이니는 톨리아에 올라타며 그대로 마리아를 향해 말을 몰았다.
나가야하는 출구와는 반대방향이지만 마리아와 가보는 꼭 필요했다.
톨리아 위에서 손을 뻗은 다이니.
마리아는 그대로 낚아채며 뒤에 올라탔다.
“야, 성공했다!”
“성공은 개뿔! 타이밍이 너무 빨랐잖아!”
만약 다들 약속시간보다 빠르게 와서 준비하지 않았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전부 잡혔을 게 뻔하다.
“어쨌든 성공했잖아! 바로 가자고!”
“아, 씨! 새벽조 이제 막 출발했을 것 같은데!”
다이니의 예상은 적중했다.
성문은 이제 막 열리고 있었고 새벽조는 그 앞에서 괜히 춥다면서 몸을 비벼대는 중이었다.
그래도 말을 타고 지나갈 수 있는 틈새 정도는 된다.
“달려!”
외침과 동시에 베런과 벨레스가 앞장서서 앞으로 말을 몬다.
이안이 마수를 소환해서 상대하던 때와 비슷한 진형이 갖춰진 건 기분 탓이 아니었다.
“문 닫아!”
우레처럼 쏟아진 마나가 담긴 외침. 뒤에 있던 마리안느 레이로즈의 거센 외침이 울려온다.
처음에는 잠깐 당황했는지 성문은 계속 열렸으나.
“성문 닫으라고!”
다시 한번 외쳤을 때는 열리던 성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야! 저거 닫히잖아!”
“너희 언니 때문에 그런 거잖아!”
시간에 맞추지 못한다.
가장 앞에 있는 베런과 벨레스조차 아슬아슬해 보이는 상황.
결국 다이니는 입술을 깨물며 외쳤다.
“고삐 좀 잡아줘.”
“뭐?”
“나 안 떨어지게 대신 고삐 잡아 달라고!”
무슨 소리인가 싶었어도 마리아는 일단 다이니를 따랐다. 손을 뻗어 다이니를 품에 사이에 두고 고삐를 쥔 마리아.
손을 뻗은 다이니의 몸에서 마나가 발산되기 시작한다.
이 자식 마법도 쓸 줄 알았나 하고 마리아가 중얼거렸으나 다이니가 이용하는 건 마나가 아니었다.
어느새 갈색 눈동자가 붉게 물든다.
불길한 검은 기운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그것은 길게 뻗어져 성문을 향해 날아들었다.
“아오!”
마리아와 베런 정도의 검술을 사용할 수 없다.
샬롯처럼 300년 전부터 쌓아올려 왔던 원류의 검술이 있지도 않다.
실리아처럼 마나감응력이 뛰어나지도, 벨레스처럼 기본 신체능력이 우월한 것도 아니다.
다이니에게 있는 강점은 톨리아와 마몬의 기운.
마인화를 할 수 있다는 점이었고 그녀는 이 부분을 가장 중점적으로 연습했다.
이안 아이넬의 최초이자 최후의 신도.
“끄아아아아!”
검은 기운은 손의 형태를 띄우며 닫히던 성벽의 한쪽을 막아 세운다.
닫히는 건 여전히 변함없었으나 속도는 줄일 수 있었고.
“달린다!”
선봉인 베런과 벨레스를 시작으로 생도들은 프롤라인 성문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잘했어! 할 때는 하는구나?!”
탈진하듯 자신에게 기댄 다이니를 향해 웃으면서 칭찬하는 마리아.
성문 밖으로 모든 생도가 빠져 나왔고, 마리안느에게 도망쳤다고 생각했으나.
“마, 마수다!”
감각이 가장 좋은 벨레스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마수?”
새벽조가 화살을 구할 때는 마수가 없을 텐데?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벨레스의 외침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것들 매복 중이었어!”
죽은 척 위장하고 있던 마수들이 새벽조가 나왔다고 착각하고는 모습을 드러낸 것.
안개가 낀 새벽, 상대가 화살을 보충하는 타이밍을 노렸다.
마수들도 바보는 아니었다는 소리였고.
우습게도 생도들의 일탈이 느슨하던 프롤라인 성의 위기를 한 차례 구해낸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