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어후.”
메이지 아카데미의 학장실로 들어온 나는 괜히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300년 간 봉인돼 있던 마석의 봉인줄이 끊어지자 소란도 그런 소란이 따로 없었다.
마법사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러대며, 감동과 허탈함을 동시에 공존하는 옥상이었다.
겨우 소란에서 해방된 나는 아직도 이명이 들리는 듯한 귀를 툭툭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마석이 당장에라도 깨질 것 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면 반쯤 폭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르겠다.
덜컹.
내 옷을 여기저기서 당겨댄 흔적이 남았기에 간단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있자니, 문을 열고 들어오는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과 알프레도 교수.
두 사람 다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내가 어떤 상황인지 묻기도 전에 알프레도 교수가 먼저 설명했다.
“일단 힐다 님의 마석은 해제된 게 맞다네. 이안 학도가 300년 간 이어져 온 마법사들의 오랜 숙원을 해결했군.”
“…….”
본인이 말하면서도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듯 얼떨떨해 보이긴 했으나 일단 계속 이어간다.
“마석 안에 담겨 있는 게 무엇인지는 아직 모른다네. 바로 마석을 개방하면 알 수 있겠지만, 당장은 하지 않기로 했네.”
보물상자의 열쇠는 돌렸으나, 열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그럼 언제 하나요?”
“왕실은 물론이고, 마탑의 주인들도 불러야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내 질문에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이 불쑥 끼어든다.
나이트 아카데미의 학장이 거대한 덩치를 가진 은퇴 기사를 연상케 했다면.
이쪽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다니는 마탑의 주인들이 떠올랐다.
딱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을 할 것처럼 생긴 노파였다.
알프레도와는 다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의심의 눈초리로 노려보는 학장.
“그 봉인은 도대체 어떻게 풀었니? 수많은 마법사들이 자그마치 300년 동안 풀지 못했던 인류의 지고와 같은 문제였단다.”
그게?
“그걸 5분도 채 보지 않은, 그것도 일반 마법사가 아닌 학도가! 심지어 그것도 일주일 체험입학을 했던 기사생도가! 어떻게 풀었지?”
말을 하다 보니 목소리가 긁히듯 엇나간다.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이 얼마나 흥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 말에 나는 준비해 뒀던 대답을 꺼내들었다.
“라인 레이먼드 님과 힐다 님은 옛날부터 친한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렇지.”
“검과 지팡이라는 단어를 보니, 그분들의 관계가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수식이 담긴 문제 같은 게 아니라 그냥 친구한테 건넨 장난이 아닐까 싶었어요.”
“다, 답은 뭐였니?”
“‘꺼져’였는대요.”
어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과 알프레도 교수.
하지만 나는 더없이 당당했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뭐 어쩔 건가.
지금까지 300년이 물거품처럼 터져 버렸다 한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믿을 수 없다고?
근데 현실이다.
원래 세상에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도 결국 벌어지는 일들이 있다.
“제가 잘못했나요?”
일부러 어깨를 으쓱이며 능글맞게 묻는다.
“…….”
“…….”
결국 두 사람 다 할 말은 없었다. 어떤 방식이었든 나는 문제를 풀었을 뿐이니까.
굳이 탓을 하자면 괜히 저런 마석에 평범한 장난 문구나 적어둔 힐다와 그 의미를 확대해서 본인들끼리 좋다고 해석해 대던 마법사 탓 아닌가.
“잘못, 한 건 없네. 오히려 잘한 일이지.”
알프레도 교수가 슬며시 내편을 들어줬다.
그 역시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으나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으니까.
“하아, 그래. 내가 너무 감정적이었구나. 미안하다.”
솔직하게 사과해 오는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
그로서는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보니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이해는 간다.
“너는 분명, 300년 동안 마법사들에게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한 숙원을 풀어줬다. 그 부분은 감사하도록 하겠지만….”
“…….”
“그래도 다음부터는 이렇게 갑작스런 행동은 지양해 주렴. 혹시라도 다른 결과가 있을 수도 있었잖니.”
“예, 알겠습니다.”
나도 정답을 확신하지 않은 상태에서 굳이 도박을 걸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는 정답이 너무 뻔히 보였고, 지금을 놓치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돌발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래, 그럼 우선…….”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이 상황 정리를 하려던 순간.
쾅!
“하, 학장님!”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온 한 교수. 또 마석 관련 문제로 마법사들끼리 싸움이라도 난 건가 싶었는데.
창백해진 얼굴을 한 교수가 내뱉은 건 고작 그런 수준의 사건이 아니었다.
“지, 지, 지금 창 밖 좀 보시겠습니까!”
“음?”
가장 먼저 변화를 알아차린 건 알프레도 교수였다.
그의 감각이 뭔가를 색적한 듯 몸을 움찔거렸고, 학장과 함께 다급하게 창문으로 향했다.
나 역시 은근슬쩍 뒤따라 상황을 확인했는데….
“저게, 뭐지?”
하늘에 둥실 떠있는 거대한 구름들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무언가.
동화 속에서나 나오는 거대한 섬이라도 떠 있는 게 아닐까 싶은 크기.
파르르 떨리는 학장의 입술.
충격적인 상황이 연달아 펼쳐지기 시작하자,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듯했다.
삐죽 튀어나온 굵고 검은 꼬리와 거대한 그림자로 로베르담 시내 일부를 가리고 있는 존재.
“……!”
그 존재를 눈에 담자, 순간적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몬의 각인이 격렬하게 진동하며, 저것의 존재를 바라고 있었다.
* * *
“저걸 뭐 어떻게 하라고 했다고?”
메이지 아카데미의 운동장에 선 채로 하늘을 보던 로베르담의 경비대장은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할 지경이었다.
한 시간 전, 가르간테라는 마수가 로베르담 시내로 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하게 토벌팀이 향하고 있으니 시민들을 대피시키고 버티라는 내용.
경비대장은 로베르담 시장과 협력을 통해 바로 시민들을 대피시켰다.
마법사들이 특정하기론 세 시간 정도는 걸리는 거리라고 들었으니 충분할 거라 생각했으나….
“개자식들, 세 시간은 개뿔.”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로베르담의 상공에 도착한 가르간테는 빽빽한 구름 사이에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다.
놈이 도착했다는 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었다.
고작 등장만으로도 로베르담의 해를 가려버렸으니까.
순식간에 어두워진 시내를 보면 아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부족해 시민들의 대피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아카데미 측에 있는 교수들에게 지원요청까지 해야 할 상황.
경비대에는 마법사 전력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메이지 아카데미에 있는 마법사들의 지원을 받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주말이라 마탑의 마법사들이 메이지 아카데미에 모여 있었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긴급 상황인 만큼 그들에게까지 지원을 요청했고, 그렇게 마법사들도 경비대와 손을 잡고 가르간테로부터 도시를 지키려 하고 있었다.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님 오셨습니다!”
병사의 보고와 함께 콧잔등을 날카롭게 스치고 가는 찬바람이 아리다.
막상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서 대피하는 학도들이 보였다.
저런 학도들의 손마저 빌리고 싶을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긴 했으나….
경비대장은 고개를 저었다.
‘괜한 생각이군.’
아직 성장 중인 아이들을 전선에 내모는 꼴이다. 저들을 지키는 게 어른이지 않은가.
그때 다가오는 기품 있는 노파.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은 지팡이를 짚으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다급한 상황인지라 두 사람은 묵례로 짧은 인사만을 나누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로베르담을 지킬 수 있는 보호 마법은 아직 구축이 안 되어 있지요?”
“예, 맞습니다.”
도심 전체를 두르는 대규모 보호 마법은 수도인 프랑트에나 마련되어 있다.
참담한 심정으로 답하자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저희 메이지 아카데미에 있는 보호 마법을 증폭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메이지 아카데미에는 자체적으로 아카데미 전체를 두르는 보호 마법이 마련되어 있었다.
“최대한 시민들을 아카데미 내부로 수용합시다. 장소가 부족하면 나이트 아카데미 쪽까지 빌리도록 하죠.”
“우리도 돕겠소.”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구에서 걸어 들어오는 나이트 아카데미의 학장과 몇몇 교수.
상황이 상황인지라 서로 협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었다.
“결국 시간만 끌면 됩니다. 저 마수가 왜 아직까지 내려오거나, 공격하지 않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지금이 기회입니다.”
나이트 아카데미 학장의 말대로 왜인지 놈은 아직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덕분에 시간만 버티면 왕실에서 토벌팀이 올 거다.
여러 기사단과 마도병단이 합쳐진 정예 중의 정예가.
그들이 오기 전까지 버티기만 하면 됐다.
경비대장은 앞에 있는 노련한 두 학장과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가능성이 보이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가르간테라는 마수의 압도적인 덩치와 위용에 사기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해결방법을 찾아가다 보니 실마리가 보이는 기분.
주먹을 꾹 쥐고 해보자고 자신 있게 외치려던 경비대장이었으나 나이트 아카데미 학장이 팔짱을 끼며 말을 끊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소란스럽군?”
“…….”
“교수들도 그런데 마탑 마법사들이 특히 더 그렇군. 다들 화장실이라도 급한 것처럼 보인다만?”
그 말에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이 움찔거리며 한숨을 내쉰다.
괜히 나이트 아카데미 쪽 교수들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힐다의 마석에 있던 비밀이 풀렸는데, 곧장 그 비밀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당연히 마탑의 마법사들은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곳을 수성할 생각이었으나….
또 그러다가도 고작 어린애 하나가 그 비밀을 풀어냈다고 생각하니 허탈감이 느껴져서, 감정의 기복들이 심했다.
“나중에 알게 될 거니까, 일단 집중이나 합시다.”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의 기분이 언짢은 걸 느낀 나이트 아카데미 학장은 의아해하면서도 일단은 준비를 했다.
당장에 검을 휘두를 일은 없겠으나, 마나를 넘겨주는 정도는 가능했다.
효율이 좋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잠시 후.
로베르담의 시민 대부분이 아카데미 부지 근처로 모였음을 시장이 알리자 마법사들은 일제히 마나를 모았다.
대규모 보호 마법이 걸린 마석에 마나를 불어넣자 운동장 중심으로 광범위한 범위의 두꺼운 막이 형성된다.
그걸 보는 순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모두의 안에서 싹 틔웠다.
대부분의 사람이, 살아생전 이토록 듬직한 마법을 본 적이 없었기에 일각에서는 환호성마저 일었다.
그러나 그것이 기폭제가 된 걸까.
날갯짓에 구름이 걷힌다.
대륙을 집어삼키려던 악마의 하수인이 거대한 몸채를 드러낸다.
태양조차 자신을 막을 수 없다는 듯 햇빛을 등진 거체는 로베르담에 거무튀튀한 그림자를 선사한다.
뱀을 닮은 거대한 입이 벌려진다.
검은빛의 숨결은 조금의 유예도, 망설임도 없이 아카데미를 향해 직선으로 쏟아져 내렸고….
“어?”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누군가의 탄식과 함께….
보호 마법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사라졌어! 사라졌다고!”
“꺄아아아악!”
믿음이 컸던 만큼 실망과 배신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고작 브레스 한 번에 보호 마법이 눈 녹듯 사라지자, 그 허망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
당연히 이 마법을 주도한 메이지 아카데미 학장이 가장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의 숫자가 적긴 했다.
최대한 마법사를 끌어 모았지만, 결국 아카데미 교수들과 마탑에서도 신분이 보장된 마법사 몇몇이 전부였으니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쉽게?
어이가 없다 못해 억울할 지경.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의 브레스를 뿜었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 없이 무심하게 하늘에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마수.
학장은 그 눈을 마주하며 일순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그 순간, 무심하던 가르간테의 눈빛이 흉신악살처럼 구겨지고, 거대한 꼬리가 메이지 아카데미 본관을 향해 떨어진다.
콰아아아앙!
등 뒤로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진다.
가공할 만한 위력의 브레스만으로도 승산이 없을진대 저런 파괴력이라니.
그 압도적인 힘에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푸른 가루가 흩날린다.
정확히는 공기 중의 마나의 농도가 심하게 짙어져 일반인의 눈에도 푸른빛이 보이는 현상.
일반적으로 교전이 오래 지속되는 전장에서 일어난다는 블루 클라우드.
고작 여기 있는 마법사들이 잠깐 마나를 발휘한 걸로는 일어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늘로 향했다.
둥실 떠오르는 푸른 마나가 신비로우면서도 기묘했으니까.
결국 그 시선이 끝에 닿았을 때.
그들의 눈에 보인 건, 거센 날갯짓으로 마나를 날려버리고 있는 검은빛의 거대한 마수와….
아카데미의 옥상에 서서, 당당하게 마수와 눈을 맞추고 있는 은발의 소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