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49
49화.
“그래서 진짜로 다 거절했다는 거냐?”
같이 훈련을 하러 온 베런의 말에 옆에 있던 샬롯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방금 전까지 근심이 가득하던 표정에는 다시금 생기와 기쁨이 가득 차있었다.
“응, 나중에 다시 오라고 그랬어.”
나한테 찾아왔던 생도들은 전부 돌려보냈다.
은빛사자 기사단을 다시 부흥시켜야 하는 내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굴러 들어온 호박이었지만, 사실 당장에 필요한 건 아니었으니까.
무엇보다….
‘한때의 감정으로 찾아온 걸 수도 있으니까.’
단순히 내 가르침으로 성적이 올라왔으니까 그걸 이용하려는 녀석들이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은빛사자 기사단은 예전부터 소수정예로 이루어져 있었다 보니 원석을 구별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따로 생각해 둔 방법은 있었는데…….
“이안 아이넬.”
그때 또 나를 찾아온 한 사람.
푸른 넥타이, 팔뚝에 걸린 노란 선도부 완장이 눈에 확 들어오는 2학년 생도, 실리아 위드니스였다.
“선배!”
연푸른 머리카락의 그녀가 등장하자 샬롯은 무슨 강아지라도 된 것처럼 벌떡 일어난다.
꼬리가 있었으면 꼬리를 세차게 흔들지 않았을까 싶은 반응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바로 달려가서는 깡총거리는 샬롯을 반겨주는 실리아.
“아, 잠깐 선도부 일 때문에 왔어.”
“선도부요? 이안, 뭐 잘못했어?”
“아니.”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하자 실리아도 빙그레 웃으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일축한다.
“이안한테 제안을 하러 왔어. 선도부에 들어올 생각 없는지.”
“……!”
“와.”
순간 베런이 놀란 눈으로 나와 실리아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샬롯은 입을 헤 벌리고 탄성을 내뱉는다.
“어때? 생각 있니?”
아카데미에서 짧게 생활한 나조차 선도부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위치인지는 알고 있었다.
단순히 생도들을 단속하는 수준을 넘어서, 메이지 아카데미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사실 기숙사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선도부는 사감이나 다름없기도 하다.
“원래 1학년 중에서는 잘 뽑지 않아. 우리는 여러 권리를 가진 만큼 능력도 있어야 하고, 또 주변에서 원한을 품는 일도 많으니까.”
“그런데 저는 괜찮다는 겁니까?”
“응, 맞아.”
인정을 받는 건 썩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1학년 수석만으로는 이렇게 부르지도 않아. 레지스탕스를 처리한 경험도 있고, 들어보니 이번 마수 사태를 해결했던 것도 너라며?”
가르간테 사건을 말하는 거였다.
내가 굳이 부정하지 않자 베런과 샬롯은 다시금 깜짝 놀란다.
마석을 사용해서 내가 가르간테를 죽였다는 건 교수진 정도만 알고 있는데 확실히 선도부가 좋긴 좋나 보다.
“우리 측 선도부에서도 너를 상당히 좋게 보고 있어. 1학년을 받는 건 몇 년 만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만장일치로 동의했고.”
“흐음.”
“네가 모르는 여러 혜택도 있을 거야. 당장 선택하기 힘들면 나랑 같이 가서 설명을 들어도 괜찮아.”
슬며시 손을 내미는 실리아.
나를 선도부로 데려오고 싶다는 의욕이 가득한 미소에 대고 말하기는 미안하지만….
“죄송한데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으음, 이유를 알 수 있을까?”
내 대답이 의외였음에도 실리아는 크게 내색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내리며 덤덤하니 물어 왔다.
“선도부는 동아리에 가입하지 못하니까요.”
선도부가 되면 나이트 아카데미에 있는 동아리에 따로 가입할 수 없게 된다.
특정 동아리를 편애할 수도 있는 문제도 있지만, 그냥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는 거기도 했다.
“따로 들고 싶은 동아리가 있니?”
흥미롭다면서 묻는 그녀에게 고개를 젓는다.
“2학기가 되면 1학년도 동아리를 창설할 수 있으니까 제가 동아리를 만들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내가 기사단원들을 모으는 핵심적인 구조가 될 것이다.
방금 전처럼 나를 찾아와서 가르침을 청하는 생도들을 동아리로 받는다.
당연히 입부 시험이라는 거름망을 통해서 부원을 받을 생각이고, 배우고 도망칠 수 없게 동아리로 묶어둘 계획이었다.
2학기부터 시작될 내 계획을 위해서는 선도부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따로 동아리를 만들 계획이었구나.”
실리아는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아쉬워한다.
“동아리 창설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너는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네.”
“뭐, 그렇겠죠.”
이미 한 무리가 찾아와서는 가르침을 청했었다. 동아리를 만드는 기준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
“그래도 여름방학 이후에 생각이 바뀌면 선도부실로 찾아와 줘. 우리는 널 언제나 환영할게.”
생각보다 과한 어필에 나는 머쓱하니 알겠다고만 답했다.
그런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걸까.
실리아는 싱긋 웃어주었다.
“이제 너희도 실전 실습을 갈 시기가 왔으니까. 가서 부상당하지 않게 조심하고. 혹시 실습 갈 때 필요한 거나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보러 와도 괜찮아.”
친절하게 선배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실리아. 샬롯이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이트 아카데미에 와서 지금까지 봤던 선배들은 하나같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실리아만은 그야말로 선배의 표본과 같은 행동거지를 보여줬다.
‘흐음, 탐나는데.’
몸을 돌려 그대로 가버리는 실리아의 등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신다.
마리아를 이길 정도의 실력자.
연푸른 머리는 마나친화력이 높은 축복받은 유전자라는 증거.
올곧으면서도 단아한 행동거지와 후배를 향해 배려심 넘치는 모습까지.
순식간에 실리아 위드니스가 내 안에서 기사단에 데려가고 싶은 인물 1위가 되어버렸다.
미안하다, 마리아.
‘하지만 2학년이란 말이지.’
학급적인 부분이 애매했다. 당장에 접점도 없고, 그녀는 내가 창설하는 동아리에 들어올 수도 없다.
당장에는 절벽 위의 꽃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쩝 하고 아쉬운 소리를 내고 있자니….
“너무 뚫어져라 보는 거 아니야?”
옆에서 샬롯이 툭 하고 건드리며 묻는다.
“음? 아쉽잖아.”
그녀를 당장 기사단으로 끌고 올 방법이 없다는 게 아쉽다는 뜻이었으나, 샬롯과 베런은 다르게 이해한듯했다.
“선도부는 좀…… 아깝긴 해!”
“그래, 1학년 선도부는 정말 드문 일이다.”
뭐, 그 얘기는 아니었으나.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대강 두 사람의 말에 맞춰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실리아 위드니스가 말했던 것처럼 1학년 여름방학 직전, 우리는 실전 실습을 가게 되었다.
사실상 실전 실습이라기보다는 방학이 시작하기 전, 생도들에게 스스로의 성장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시간.
비교적 쉬운 마수들을 상대로 밀어주며 생도들이 자신의 성장을 깨닫길 바라는, 소풍에 가까운 간단한 이벤트였다.
그 장소는 펠로칸 숲이라는 독특한 장소였는데, 로베르담 시내와 크게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과 인접한 숲이었다.
마차를 타고 이동한지라 오래 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엄청난 준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키야아! 좋다!”
마차에서 내린 마리아는 숨을 깊게 마시며 탄성을 내뱉는다.
로베르담에서 그리 많이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실한 숲내음이 자연스레 코를 간질였다.
물론, 마리아가 저렇게 신이 난 이유는 자연과 가까워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얼른 가고 싶다. 바로 시작하면 안 되나?”
마수 토벌이라는 거에 흥분해서는 신났을 뿐이었다.
“뭘 처음 해보는 것처럼 그러냐.”
시끄러움에 옆에서 핀잔을 주자 마리아는 휙 고개를 돌리면서 당당하게 답한다.
“나 마수 토벌해 본 적 없는데?”
“음?”
마수를 토벌해 본 적이 없다?
바로 어색함이 느껴졌다.
사실 마수를 토벌해 본 적 있는 생도보다는 없는 생도들의 숫자가 더 많을 거다.
대부분이 귀족 집안 자제들이고, 왕국 내에서는 숲 깊은 곳이 아니고서야 마수를 보기도 힘드니까.
하지만 마리아가 마수를 사냥해 본 경험이 없다는 건 의외였다.
그렇다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풍부한 실전경험들은 전부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의문이 내 안에서 잔불처럼 타올랐으나….
“자, 미리 짜둔 조원들과 같이 서라.”
헥토르 교수의 지시에 맞춰 편성된 조로 이동한다.
마리아와 나 같은 경우는 1학년 주요 전력이나 다름없는지라 교수들이 일부러 각기 다른 조로 포진해 뒀었다.
조원은 총 4명.
우리 조원들은 대부분이 C반이었는데 내가 수석이다 보니 다른 조와 전력의 비율을 맞추기 위함인 듯했다.
“아, 안녕.”
“오늘 잘 부탁할게.”
“떠, 떨린다.”
하나같이 평민 출신에, 나와 은빛사자 기사단에서 함께했던 생도도 두 명이나 있었다.
나를 보며 안심한 표정을 짓는 걸로 봐서는 아무래도 셋 다 마수를 사냥했던 경험은 따로 없는 듯했다.
괜히 긴장했다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
사실상 마수보다는 생도들이 긴장해서 굳어버리는 사태가 가장 위험했다.
“너무 긴장들 하지 마. 펠로칸 숲에 크게 위험한 마수는 없다고 들었으니까.”
기껏해야 고블린 정도가 있고, 조금 위험한 마수라고 해봐야 코볼트 정도라고 들었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간단한 목책과 자경단만 두고 살아갈 정도면 크게 위험하진 않다는 소리였다.
“1학년들이 1학기 마무리로 자신들의 성장을 직접 체험하는 실습이라고 들었어. 너희가 배운 걸 그냥 뽐내면 되는 거야.”
웃으면서 진정시키자 다들 조금은 차분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눈가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신뢰감. 그들이 나를 이 조의 리더로서 믿는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단순히 숲의 중심부까지 가서 도우미에게 증표를 받아 다시 돌아오면 되는 쉽고 간단한 실습.
조금 여유를 가지고, 후배나 다름없는 귀여운 세 사람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해줄 생각이었다.
* * *
“하암, 다 끝내려면 하루는 족히 걸리겠죠?”
“그렇겠지.”
펠로칸 마을 주민들에게 있어 나이트 아카데미 1학년들의 첫 실습은 계란 노른자와 같은 속이 꽉 찬 행사였다.
억지스러운 마을 통행세를 시작으로 마을 사람들이 따로 가벼운 심부름을 받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처럼 교수들의 도시락 배달.
펠로칸 마을 산나물을 이용해서 만든 도시락은 교수들에게 상당히 호평이라 그들이 실습을 올 때마다 마을 차원에서 대량의 도시락을 만들어놓는다.
생도와 교수.
모두를 만족시키는 한 끼 식사를 바가지 조금 씌워서 파니 사실상 1년 중 가장 큰 수입이 나는 시기였다.
“안쪽에 있다고 들었는데.”
“저기야 저기. 매년 큰얼굴바위가 반환지점이었어.”
“어우, 깊게도 가네요?”
이제 막 15살이 된 소년, 미티는 손에 도시락이 담긴 보따리를 쥔 채로 이마의 땀을 닦는다.
나이가 찬지라 이번에 처음으로 마을 사람들을 돕고 있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보람은 있었다.
이번 일의 보수가 들어오면 자신에게도 어느 정도 콩고물이 떨어질 테니까.
그 돈으로 목걸이를 사서 다른 마을 처녀에게 고백할 생각이었다. 그 마을 남정네들은 배가 아파서 고꾸라지겠지.
“아카데미에서 펠로칸 숲을 선택한 게 참 다행인 것 같아요.”
미티가 웃어 보이자 옆에 있던 콧수염이 굵은 중년 남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숲에 내려오는 전설 덕분이지. 사실 숲에서 가장 가까이 살아가는 우리는 그런 거 전혀 믿지 않지만.”
“그렇죠.”
클클거리면서 웃어대는 두 사람. 이제 곧 도착하지만 잠시 쉬려 몸을 낮추는 순간.
뻐억!
뒤통수를 스치는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뭔가 잔혹하게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투둑.
바닥에 튀어버린 붉은 핏물은 자연스레 흙바닥에 스며들어 간다.
“어?”
미티가 황급히 일어나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바로 뒤에 있던 중년 남성은 얼굴에 돌팔매질을 맞고는 피를 흘리며 그대로 쓰러진 상태였다.
“어? 어?”
돌이 날아왔다?
만약 몸을 숙이지 않았다면 자신이 저렇게 됐을 거라는 공포감이 미티의 전신을 짓누른다.
키륵 키륵 키륵.
사방에서 들려오는 고블린의 비웃음 소리에 더욱 혼란이 가중되며 손에 쥐고 있던 도시락 바구니를 놓친다.
“여, 여기는 마수가 다니지 않는 길인데?”
거기에 나이트 아카데미 교수들이 혹시나 싶어서 이미 길을 뚫어뒀다고 들었다.
아니, 애초에.
고블린들이 이렇게까지 모여서 밖에 나와 있다고?
동굴에서 생활하는 겁쟁이들이 이렇게까지 밖에 나와 있는 건 15년 간 숲 근처에서 살아온 미티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부스럭.
또 돌멩이가 날아올까 싶었으나, 수풀을 헤치고 밖으로 나온 건 매우 독특한 고블린이었다.
다른 고블린보다 곱절은 덩치가 크고, 손에는 가시가 잔뜩 박힌 지팡이를 쥐고 있으며, 목에는 역십자 목걸이가 달려 있었다.
콰득!
“끄어아아악!”
놈의 지팡이가 정확하게 미티의 허벅지를 찍어 눌렀고, 핏물과 함께 미티의 비명이 사방으로 퍼져간다.
이제 죽는 건가 싶었으나 그렇진 않았다.
덩치 큰 고블린은 미티의 머리를 낚아채고는 그대로 질질 끌고는 어딘가로 데려가기 시작했고.
돌에 맞아 기절한 중년 남성 역시 아직 미약하게 숨이 붙어 있다는 걸 확인한 고블린들이 그대로 뒤따라 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