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50
50화.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건 실습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각 조별로 숲에 입장해서 교수들이 있는 큰얼굴바위에 가서 증표만 받아오면 되는 일.
지나가면서 있는 마수들이라고 해봐야 기껏 고블린 정도라고 들었기에 크게 어렵지 않겠거니 싶었으나….
“…….”
바닥을 축축하게 적셔놓은 핏물을 내려다보며 나는 심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와, 애들이 여기서 싸웠나 봐?”
“대단하네.”
“고블린 사냥 정도는 우리도 할 수 있겠지?”
내 뒤에서 핏자국을 향해 한마디씩 하는 생도들.
아무래도 이런 경험 자체가 전무하다 보니 상황 파악이 어려운 듯했다.
‘이건 사람 피다.’
언뜻 봤을 때 붉은색으로 비슷해 보이지만 고블린 같은 마수들의 피는 인간보다 좀 더 찐득하고 비린 향이 강하다.
이걸 바로 알려봤자 당황하면서 흥분하거나 도망치려고 하겠지.
나는 덤덤하니 일어나서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고민해 본다.
‘그런데 생도에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 교수들이 파악하지 못했을까?’
숲이 넓긴 해도 평균적으로 생도들이 도착하는 시간과 복귀하는 시간 정도는 알 거다.
그런데 지금 교수들은 딱히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하고 있으니.
‘생도의 피가 아닌 건가?’
일단 사람의 피는 확실하다. 하지만 생도들에게는 어떠한 피해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이지 않을까.
‘마을 사람?’
여기까지 사고가 닿은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춰 섰다.
펠로칸 마을의 사람들도 이번 실습을 도와주고 있다고 들었다.
도시락 같은 것도 그쪽에서 준비해준다고 들었으니 숲에 들어올 일도 있겠지.
“왜 그래?”
생도 중 하나가 의아해하며 멈춰선 나에게 다가온다.
혹시 모르니 이 아이들을 두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진실을 알리기에도 애매한 상황.
“나 잠깐 볼일 좀 보고 올게. 배가 아파서.”
어색하게 웃으면서 나는 다급하니 근처 수풀로 들어간다.
다른 아이들도 괜히 민망하다는 듯 괜찮다고 말하며 거리를 벌려준다.
어느 정도 멀어진 후, 손끝에서 마나의 푸른빛이 펼쳐진다.
뭉텅이로 사라진 마나는 곧이어 사람의 신형이 되어 나의 앞에 떠오른다.
“오? 밖이네요?”
“스읍, 후.”
“키야아! 고향 생각나는구먼! 야영이라도 하는 겁니까?”
오랜만에 밖이라며 설레 하는 넬슨과 숲의 공기를 음미하는 한나 그리고 산에서 살았기에 바로 흥분하는 톰.
호들갑스러운 세 사람의 앞에서 검집으로 바닥을 한 번 쿵 찍자 그들은 이제야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깨닫고 바로 입을 다문다.
“지금 숲에 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거든?”
생도가 아니라 굳이 마을사람을 습격했다는 점이 거슬렸다.
숲에 넓게 포진된 생도들을 피해서 소수인 마을사람을 딱 집어서 습격한 거니까.
단순 우연으로 치부하기 어려웠다.
“각기 따로 행동하면서 상황을 좀 파악하고 나한테 보고하든가, 개인의 판단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면 그냥 해결해도 상관없어.”
단원들이 해결해도 충분한 사안이면 나는 그냥 평범한 생도들처럼 섞여서 다니면 그만이니까.
“생도들이랑 대화는 금지다. 괜히 이상한 짓도 하지 말고.”
특히나 톰 같은 경우가 숲이라고 흥분해서는 일을 그르칠까 걱정되었다.
“가 봐.”
세 사람은 바로 주먹을 가슴에 대고 몸을 숙인 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떠나갔다.
이렇게 하면 별문제 없겠거니.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다시 조원들에게로 돌아갔다.
* * *
“아, 재미없어.”
투덜거리는 마리아를 보며 힐끔거리는 다른 조원들.
단순히 1학년 차석의 강자라는 이유만으로 눈치를 보는 건 아니었다.
소문 때문이었다.
1학년들 사이에서는 마리아에 대한 악평과 더불어 기피하는 분위기가 퍼져 있었다.
1학년 1학기 가장 많은 대련을 한 여생도.
전투 자체를 즐기며, 검을 맞대는 게 삶의 낙인 것처럼 살아가는 전투광.
붉은 머리카락은 핏빛을 연상케 하여 1학년들에게 기피되는 대상 중 하나였다.
그녀의 조원들은 그래도 마리아가 실력은 좋으니까 이번 실습이 어렵지는 않겠구나 싶었으나.
막상 숲에 들어오고 몇 시간 동안 마수는커녕 작은 동물 하나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마냥 편하기만 한 것도 아닌 게 마수가 안 나올수록 마리아의 기분이 안 좋아진다.
심지가 타들어 가는 마리아라는 이름의 폭탄이라도 들고 있는 기분.
그게 터지면 마리아가 마수가 되어서 자신들을 덮치는 게 아닐까 싶은 두려움이 조원들 사이에는 깔려 있었다.
“아오!”
하지만 마리아의 입장도 나름 이해는 되었다.
한껏 기대했던 만큼 실망이 컸기에 그녀의 신경질은 극에 달해 있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면 조원들은 차라리 마수가 나와 줬으면 싶은 상황.
그때 수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경이 곤두서 있던 마리아는 감각적으로 그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숲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붉은 눈동자에서 생기가 물씬 묻어나온다.
콰앙!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조원들은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았으나.
기대감으로 한껏 물들었던 마리아의 표정은 바로 식어간다.
“아이 씨! 베런이잖아!”
“누군지 정도는 확인하고 검을 휘둘러라.”
마리아의 검을 막아낸 베런은 수풀에서 자신의 조원들과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다른 입구에서 출발했는데 도착지는 같다 보니 중간에 만나게 된 듯싶었다.
“아오! 힘 빠지네! 야, 너희는 마수 봤냐? 찌끄레기 같은 거라도?”
신경질을 부리며 베런에게 묻자 그 역시 작게 고개를 젓는다.
베런의 조원들도 마찬가지로 아무런 전투 없이 손쉽게 이곳까지 도착했었다.
“아니, 이게 뭐냐고. 이럴 거면 그냥 생도들끼리 대련이나 시키든가!”
결국 폭발한 마리아는 씩씩거리면서 목적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나는 마수들 찾아서 도륙 내러 갈 거야! 너희는 알아서 가라!”
독단적인 행동은 위험했으나 그걸 마리아에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마리아가 같이 있으면 역으로 본인들이 위험할 것 같은 조원들이었기에 얼른 가길 바라기도 했다.
휙 떠나버린 마리아.
그 뒷모습을 보며 베런은 드물게도 짜증스러운 한숨과 함께 손으로 이마를 짚더니 남은 생도들에게 말했다.
“두 팀이 같이 움직이면 혹시 마수가 나와도 쉽게 대처할 수 있을 거다. 나는 가서 마리아를 데려오겠다.”
“으응.”
“힘내, 베런.”
“같은 조인 우리가 미안해.”
생도들의 격려와 사죄를 들으며 베런은 마리아의 뒤를 쫓았다.
이런 때 이안 아이넬이 있었으면 마리아의 고삐를 확실하게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마리아가 1학년들 중에 그나마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이안밖에 없으니까.
마리아가 상당히 멀리 갔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베런은 의외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서 멈춰서는 멀뚱히 서 있었으니까.
“단독행동은 벌점 사유다. 얼른 돌아가면 지금이라도 조원들과 합류할 수 있을…….”
마리아의 어깨를 낚아채듯 강하게 잡으며 베런이 경고했으나 그의 말은 제대로 끝맺지 못했다.
크릉.
길게 뻗어지는 묵직한 숨소리.
바위와 같은 피부는 오돌토돌하니 굴곡져 있는 것이 꼭 곰팡이가 핀 것 같았으며 덩치는 두 사람보다 배는 되는 것처럼 보였다.
커다란 가죽을 그냥 대충 걸치고 있는 모습은 빗속에서 우비를 입고 있는 분위기를 풍겼다.
커다란 코를 벌름거리며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존재는 산과 관련된 괴담에서나 나올 법한 모습.
“이런 마수도 있었냐?”
“……마리아.”
베런이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음에도 마리아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어느새 숲속 사이에 서 있던 저 존재가, 잠깐이라도 눈을 떼면 또 어느새 자신들의 앞에 서 있을 거라는 일종의 공포가 차올랐으니까.
“저건 인간이다.”
베런은 최대한 차분함을 가장하고 평소처럼 말을 이어갔으나, 왜인지 모르게 느껴지는 불안감에 마리아는 다시금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걸 인지한다.
“그런데 마수에게서도 이런 분위기는 느껴본 적이 없다.”
강대한 마수들에겐 일종의 위압감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 무리, 새끼를 지키기 위해 이빨을 내밀고 포효하거나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그것들도 결국에는 생물적인 본능에 의거한 생존을 위한 행동이라 볼 수 있겠으나.
앞의 존재는 달랐다.
스산하니 내려앉은 위압감은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선사하는 분위기는 위협이 아닌 공포.
마수가 아닌 일종의 괴담을 만난 것 같은 기분.
“하.”
그리고 여기 있는 붉은 머리의 소녀는 기가 죽는 걸 상당히 싫어했다.
공포라는 감정을 선사하고 있는 저 덩치 큰 남자를 향해 마리아는 성큼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후웅!
찰나의 순간이었다.
마리아의 붉은 머리카락이 역동적으로 요동치며 몇 가닥 뽑혀 나간다.
바로 앞에서 휘둘러진 거대한 주먹에 다급하니 마리아가 몸을 숙인 것.
계속 눈으로 괴한을 쫓고 있지 않았다면 마리아도 방금 그 일격을 그대로 허용하며 쓰러졌을 것이다.
‘역십자?’
그러면서도 눈에 들어온 건 손목에 걸려 있는 역십자 팔찌.
그냥 평범한 장식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이상하게도 마리아는 그것에 눈이 갔다.
“마리아!”
다급하게 부르는 베런.
마리아는 어느새 자신의 눈앞까지 다가온 다음 한 방을 바라보며 이를 으득 문다.
어차피 피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나마 덜 아픈 곳을 맞겠다는 일념으로 마리아는 바로 머리를 앞으로 내민다.
이마에 정통으로 들어온 주먹에 몸이 붕 떠서는 뒤로 구르는 마리아.
고작 한 방임에도 베런은 마리아가 기절했을 거라 은연중에 확신했으나….
“크아아아!”
붉게 혹이 진 이마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탄성과 함께 일어난 마리아.
머리카락으로 혹을 가린 후, 검을 쥔 손에 힘을 준다.
“그래, 어디 해보자고! 네가 뒤지나 내가 뒤지나! 어? 개새끼야!”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껴야 할 죽음의 공포.
그것이 마모되어 있는 듯 마리아는 역으로 입이 찢어져라 웃어대며 성큼성큼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방금까지 아무런 감정의 요동이 없던 괴한조차 마리아의 이러한 광기에 주춤거렸는데….
그 순간.
갑자기 숲에서 튀어나와 괴한에게 날아드는 은색의 인영.
달려든 덩치 큰 남자에게 밀려난 괴한의 허리가 활처럼 휘며 멀리 있는 나무를 들이박는다.
괴한이 일종의 괴담과 같은 공포를 지녔다면 옆에서 치고 나온 것은 그야말로 숲에 어울리는 짐승의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두꺼운 은색의 전신갑주로 온몸을 칭칭 감싸고 있었으나, 투구 밖으로 보이는 남성의 안광만큼은 또렷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흩날리는 망토와 어깨에 짊어진 거대한 대검. 사자 문양의 갑옷.
기사라면 모를 수 없는 은빛사자의 기사들이 떠오르는 외형.
“어?”
“무슨…….”
방금까지 결사의 각오를 다지던 마리아와 베런조차 이해하지 못한 표정.
하지만 기사는 두 생도에게 잠깐의 시선만을 준 후, 바로 허리를 틀어 대검을 양손으로 쥐었다.
깔끔하게 올려치는 일격.
두 생도는 허공에 갑자기 검을 휘두른다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달려온 괴한의 몸이 대검의 앞에서 두 동강 나고 있었다.
“미친.”
“놀, 랍군.”
기사 생도인 두 사람이기에 알 수 있었다.
방금 그 일격이 얼마나 경이로운 수 싸움의 결과물인지.
적을 베어 넘기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기보다는 적이 검에 베이기 위해 달려든 것처럼 보이는 기교였다.
방금까지 압도적인 공포를 선사하던 괴한은 그대로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투구를 쓴 기사는 그를 한번 내려 보더니 다시금 두 생도에게로 시선을 두었고….
후우우.
방금까지 느껴지던 격렬한 짐승의 살기는 아니었으나, 명백한 투기가 두 사람을 덮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