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야, 우리 교수들 중에서 저런 식으로 대검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냐?”
쏟아지는 투기 속에서 마리아의 질문은 굉장히 냉정했다.
갑옷 안에 숨어있는 존재의 정체를 밝혀내겠다는 판단.
그 질문에 베런은 잠시 고민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헥토르 교수님이 그나마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아마 이쪽이 몇 수는 위다.”
“그치? 내가 봤을 때도 우리 쪽 교수는 아닌 것 같더라.”
교수들의 실력을 전부 안다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은빛의 기사는 너무나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버렸다.
저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 교수가 있었다면 두 사람 정도의 눈썰미로는 놓칠 수가 없었다.
갑옷을 입은 남자는 자신의 대검을 어깨에 짊어진 채로 이쪽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화를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옅은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로 그저 묵묵하니 두 생도에게 투기만을 발산할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두 생도에게 두렵냐고 묻는다면 그렇진 않았다.
‘살의가 담겨 있지 않아. 무슨 의도지?’
‘방금 저 남자를 상대할 때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감이 좋은 두 생도는 바로 톰이 내뿜는 것이 살의가 아니라 호기로운 투기임을 알아차렸다.
결투가 아닌 대련 신청을 받은 느낌.
그럼에도 혹시 모르기에 여러 생각을 하며 조심했으나 막상 상대인 톰은 발산하는 투기와는 다르게 태평하기 그지없었다.
‘부단장님 후손이랑 둠베스트 쪽 꼬맹이구나.’
톰에게 있어서도 두 사람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매일 이야기로 듣거나, 창문 밖에서 몰래 구경만 하던 두 사람을 보니 손이 근질거리는 걸 톰은 참을 수 없었다.
바닥을 나뒹구는 괴한에 대해서 단장인 이안 아이넬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역시 마리아 못지않게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면이 짙은 사람이기도 했고, 숲이라는 장소에 와서 흥분한 상태였기에.
‘대화하지 말라고 하셨지, 싸우지 말라고는 안 하셨다.’
어차피 말하면 혼날 게 뻔한데도 속으로는 괜히 변명을 준비해 두면서 대검을 슬며시 들어 올린다.
사실 사태파악 같은 머리를 쓰면서도 증거를 찾아서 확인해야 하는 임무는 톰에게 안 어울렸다.
그런 건 한나 같은 부류가 잘하는 쪽이고, 톰은 그냥 우직하니 앞에 나서는 게 특기였기에.
‘1분 정도면 충분하겠지.’
임무에 관해서는 한나를 믿자.
그렇게 마음먹은 톰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들어오라는 신호를 준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반응이 즉각적으로 찾아왔다.
마리아와 베런이 느끼는 톰의 태도는 위협보다는 가르침을 주겠다는 것에 가까웠기에.
“오늘 진짜 미쳤네! 1학년 차석 마리아 레이로즈!”
강대한 존재와 대결할 수 있음에 흥분한 마리아 레이로즈.
“1학년 베런 둠베스트입니다.”
긴장을 잃지 않은 채로 냉담하니 본인을 소개한 베런 둠베스트.
그들을 보며 투구 속에서 지어지는 호탕한 미소.
과연 레이로즈 부단장 후손의 실력은 어느 정도인지.
또 300년도 전부터 명문 소리를 들어오던 둠베스트의 유일한 맏아들의 실력은 어떤지.
톰은 확인하고 싶어졌다.
* * *
“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검술이었다.
그가 손에 쥐고 있는 한 자루의 검이, 거장의 손에 들린 붓처럼 보이는 착각이 들 정도로.
그의 검술은 예술적이며 아름다웠다.
괴한을 베어 넘기는 궤적은 실로 깔끔한 반달과 같아서 그걸 지켜보던 다이니와 샬롯은 자연스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미쳤네.”
다이니는 감탄사를 부추기듯 옆에 있는 샬롯을 툭툭 두드리며 입을 떡 벌린다.
같은 조가 되었을 때는 조금 어색했지만 막상 정체 모를 괴한의 습격을 받았을 때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전우가 되었던 두 사람.
하지만 아무리 두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괴한의 실력이 월등했기에 제대로 대응도 하지 못하고 밀리기만 하고 있었다.
특히나 다른 조원들이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기절한 시점부터는 더욱 더.
오롯이 두 사람이 등을 맞댄 상태로 치열하게 싸우던 상황.
울창하게 뻗어있던 나무 사이로 한 남자가 등장했다.
몸집은 크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왜소한 편에 속했다.
하지만 말랐다는 인상보다는 날렵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남자.
그는 우아하게 검을 뽑아 들더니 화려한 검술로 순식간에 괴한을 압도해 냈다.
마나를 사용하는 것도 아닌데 검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은 검술이었다.
“샬롯?”
자신의 부름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샬롯을 슬쩍 확인하는 다이니.
그런데 샬롯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눈가에는 옅은 눈물까지 지어진 채로 앞에 있는 남자의 현란한 검술을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뜨거운 숨이 토해진다.
사람은 참으로 뜬금없는 장소에서 기연을 만난다.
예를 들어 나이트 아카데미 입학식으로 가던 마차에서 친해진 이안 아이넬.
그리고 지금, 펠로칸 숲에서 만난 갑옷을 입은 기사.
샬롯은 그의 검술이 일레인의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지금까지 일레인의 검술을 복원하기 위해서 매일 이른 새벽에서 늦은 저녁까지 노력해 왔던 샬롯이라서 알 수 있었다.
다채롭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검.
일레인의 검술.
그 정수나 다름없는 움직임은 샬롯의 머리에 기포가 터져가듯 여러 창의적인 깨달음을 샘솟게 해주었다.
그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배움을 얻는다.
그가 보폭을 바꿀 때마다 문제의 답지를 확인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샬롯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고,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뿌옇게 변한 시야에 억지로 눈물을 손으로 걷어내지만 그럼에도 억제할 수 없었다.
쓸모없는 일을 한다며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던 현 일레인의 가주, 아버지.
그런 수모를 당하면서까지 과거의 검술을 고집할 이유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자신 또한 굳이 유실된 검술 하나 가지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버려가며 이렇게까지 노력해야 하는 건가 회의감이 들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그 끝을 보고 나서야.
일레인의 검술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가치가, 있었어.”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노력들에 그만한 가치가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것이 그 끝이라면.
아름답다는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저 검이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의 마지막이라면.
샬롯은 평생을 다 바쳐서라도, 이 길을 걸어가고 싶었다.
풀썩.
치열하고, 화려하게 타오르던 검이 움직임을 멈춘다.
어느새 괴한의 가슴팍에는 검이 박혀 들어 숨을 거둔 상태였고, 은빛의 검사만이 덤덤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목숨을 구했으니 안심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샬롯은 오히려 아쉬움이 짙게 찾아왔다.
절대로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공연이 막을 내린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멈출 수 없었다.
천천히 일어난 샬롯이 손을 뻗는다.
저 남자에게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정체부터 시작해서, 검술에 대한 이야기까지.
“저기……!”
떨리는 목소리로 기사를 부른 샬롯.
기사 역시 샬롯을 바라본다.
투구에 가려져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와 눈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감하고 있다는 확신이 퍼져 간다.
용기를 내어 다시 한마디 더 내뱉으려던 샬롯이었으나, 기사의 시선이 퍼뜩 돌아간다.
마치 어딘가에서 부름을 받은 것처럼.
“자, 잠깐만요!”
샬롯이 다급하게 불러봤으나 기사는 어떠한 말도 남기지 않고 그대로 숲 속으로 다시 모습을 감췄다.
* * *
톰과 넬슨이 숲을 휘젓고 다닐 무렵, 한나는 고블린 소굴에서 이미 마을사람들을 구출하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아, 아카데미 소속 기사님이신가요?”
“엄마아아아!”
보통 이런 숲에 사는 마수들은 비나 추위를 피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동굴을 찾는 습성이 있다.
그런 쪽으로 움직였던 게 정답이었다.
동굴 내부에 갇혀 있던 주민들을 대피시키며 한나는 굳이 한 점을 짚어준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한나가 가리킨 곳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그들은 두려워서인지 한나에게 물었다.
“가, 같이 안 가시나요?”
“안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며 한나는 자신의 활을 강하게 쥐며 화살을 꺼내 들었다.
“남아있는 마수는 있으니까요.”
팍!
그대로 쏘아낸 화살이 동굴 밖으로 나오는 고블린의 미간에 적중한다.
화살의 충격에 몸이 붕 떠오르며 뒤쫓아 오는 다른 고블린들도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그런데 이쪽은 마을 반대 방향인데…….”
“아카데미 교수들이랑 합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아!”
그 말에 너나 할 것 없이 바로 도망치기 시작한 사람들.
한나는 무심하니 시선을 돌려 다시 고블린들을 상대한다.
비교적 지루한 작업이었다.
마치 훈련할 때 목각인형에게 검을 때려 넣는 것처럼, 한나는 덤덤히 화살을 겨누고 활시위를 당겨 쏘아 고블린을 죽였다.
겁에 질린 녀석들은 제대로 밖으로 나오지도 못한다.
그렇게 지원이 오기 전까지 시간을 벌어두면 되는 건가 싶은 순간.
고블린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눈물을 흩날리며 달려드는 녀석을 팔로 활을 휘둘러 쳐내지만.
파각!
그 밑.
고블린의 그림자에서 솟아오른 검 한 자루가 아래에서부터 한나를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온다.
다급하게 허리를 비틀어 치명상은 피했지만 검이 갑옷을 스치며 그을림을 만들어냈다.
그림자에서 솟아올랐던 검은 그대로 진흙처럼 무뎌지며 사라진다.
“피해?”
목소리는 동굴 쪽에서 울려왔다.
두려움에 떠는 고블린들이 좌우로 갈라지며 나타난 여인.
두건을 두른 이마, 걸치고 있는 탁한 색의 조끼.
손에 쥐고 있는 흉악한 형태의 곤봉과 손목에 걸린 역십자 팔찌.
“눈이 좋네? 다리는 안 좋은데.”
곤봉으로 본인의 다리를 툭툭 두드리며 웃어재끼는 여인.
입이 경박하다.
겉모습이 동네 건달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데 실력은 그렇지 않았다.
“아쉽네, 그치?”
낄낄 웃으며 도발하는 여인.
“그건 그렇고 아카데미 교수들 중에 이 정도 수준의 궁사가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무언가 고민하던 여인은 한나의 다리를 보며 씨익 웃었다.
한나는 무덤덤하게 활을 쥐며 방금 여인이 보여준 능력을 분석하고 있었는데….
“만약 그 다리. 고칠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
한나의 눈이 슬며시 커진다. 대화조차 나누고 싶지 않았던 여인이었으나 저도 모르게 눈을 맞췄다.
사실상 한나의 가장 큰 욕망을 건드렸다고 볼 수 있었다.
“너 정도 실력자면 우리 계획을 막았더라도 환영이야. 그 다리, 고치고 싶잖아.”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올 때마다 평소에는 멀쩡하던 다리가 이상할 정도로 욱신거린다.
의족이기에 아플 리가 없는데도.
“함께 가자. 우리가 섬기는 분은 모든 이를 고치시는 이야. 함께 이 역십자를 섬기자.”
왼손을 들어 올리는 여인.
찰랑 소리와 함께 그녀의 손목에 걸린 역십자가 흔들린다.
“섬겨?”
“자세한 건 가서 설명해 줄게. 너도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할 거 아니야.”
“……정말로 고칠 수 있다고? 내 두 다리로, 다시 한번 살아갈 수 있다고?”
“당연하지!”
툭.
한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내딛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의족이 지나치게 무거웠다.
“내가 얼마나 많은 신들에게 기도를 드렸는지 알아? 하지만 누구도 내게 응답하지 않았어. 다들 나를 버렸다고!”
목소리가 격해진 한나.
그런 한나에게 여인은 답지 않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준다.
“원래 신이란 것들이 그래. 우리가 섬기는 건 신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분이야.”
“준한다고?”
“대악마 레비아탄. 그분께서 곧 지상에 강림하실 거고, 모든 이는 고개를 조아릴 거다.”
여인은 손을 쫙 펼치며 한나를 안아주겠다는 듯 다가왔다.
“함께 가자. 이 지옥 같은 삶도, 그분을 섬기면 해방된다.”
“대악마…… 레비아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한나의 표정이 다시금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으로 변한다.
마치 가면을 벗은 것처럼.
“알려줘서 고마워.”
재빠르게 활시위가 당겨지고, 화살은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날아들어.
파악!
여인의 살점을 꿰뚫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