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58
58화.
테르토나의 발걸음은 도시 더 깊은 곳으로 향한다.
골목을 몇 개나 지나니 분위기는 더 무거워졌고, 주변 사람들의 태도도 달라진다.
메이제렌에 살아가는 마법사들은 보통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편이었으나.
안쪽 뒷골목으로 들어오자 오히려 서로의 눈치를 자주 보며 견제한다.
특히나 지금처럼 불청객인 나와 학회장의 오른손으로 알려진 비서가 함께하고 있으니 시선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괜히 기죽지 말라고 하려고 했는데…… 확실히 강단 있구나.”
재촉하듯 빠른 걸음으로 향하던 테르토나는 슬쩍 나를 확인하고는 어이없다며 헛웃음 친다.
“정말 생도는 맞는 거냐? 하룻강아지라서 범이 무서운 걸 모르는 건지, 아니면 진짜 그냥 범인지 모르겠군.”
“이런 곳에서는 기가 죽는 걸 보이는 게 더 위험하니까요.”
“옳아, 현명해.”
전생에서도 쓰레기장을 전전했던 경험이 다수 축적되어 있었다.
그 시절의 삶은 지금의 나를 만든 초석이나 다름없었기에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이곳에 있는 마법사들은 당시 쓰레기장에 있던 건달이나, 노숙자들보다 훨씬 위험했으나 결국 뒷골목 생태계는 거기서 거기였다.
다들 가시를 뻗고 있으나, 그게 싸우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게 다가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설명 정도는 해주시죠.”
“아? 비밀이라니까.”
실실 웃으면서 말하는 모습이 꼭 아이 같았다.
테르토나 샤이먼은 상대방보다 정보의 우위를 점하는 것에서 묘한 만족감을 느끼는 듯했다.
또한 그것에 내가 놀란 반응을 보이는 걸 즐기는 거겠지.
“골목이 상당히 복잡하네.”
테르토나의 뒤를 따르며 중얼거리자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비서가 슬쩍 끼어든다.
“메에제린의 마법사들은 지식을 재산이라고 생각하니까 스스로의 몸을 감추는 편입니다. 이런 복잡한 도시 구조에서 마법사의 성향이 드러난다고 보시면 됩니다.”
“흐음?”
“특히나 마탑에 소속되지 않은 무소속 뒷골목 마법사들은 더욱 그렇죠.”
나름 여러 개의 마탑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마탑들에도 소속되지 않은 마법사들이 있구나.
‘하긴, 무조건 소속이 있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겠지.’
이들도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살아오면서 최선의 판단을 해온 거겠지.
마법사란 강박적으로 언제나 최선의 선택지를 찾는 인간들이니까.
“혹시 모르니 얼굴을 가리시죠.”
품에서 검은색 마스크를 꺼내 건네는 비서.
“이안 님은 지금 저희 측 VIP십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얼굴을 감추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크게 어려운 건 아니었기에 나는 바로 마스크를 걸었다.
어차피 은발이 톡톡 튀긴 했으나 어쨌든.
“아, 다 왔다.”
테르토나의 입가에 걸린 환한 미소와 함께 가리킨 곳은 ‘호우만 연금술’이라는 이름의 작업실처럼 보이는 장소였다.
그걸 보는 순간, 바로 비서의 눈가가 찌푸려진다.
“이런 곳은 위험합니다. 파는 물건의 품질과 안정성에 보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허! 이 테르토나 샤이먼이 보증하는 곳이면 충분하지!”
“뭐, 일단 들어는 가봅시다.”
갔다가 별로면 다시 나오면 된다.
“대신 별로면 하나 사드리기로 한 건 취소입니다.”
대신 시간이 아까우니까 이런 페널티 정도는 먹여도 되겠지.
그게 뭐냐면서 테르토나의 반응이 거셀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하! 보면 안다. 아주 침을 흘리며 좋아할 거야.”
콧방귀까지 뀌어가며 단언하는 테르토나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쯤 되니 비서도 의심을 살짝 거두며 우리 뒤를 따른다.
안으로 들어가니 지독한 시약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전생에서 힐다가 연구실에 이런 냄새가 풍기는 게 싫다고 향기를 내는 마법을 개발했던 게 떠오른다.
“호우만! 호우만! 내가 왔다! 소환마법의 천재이자 그대의 유일한 벗, 테르토나 샤이먼이 왔다!”
지인 가게였어?
인상을 팍 찌푸려지며 신뢰도가 급감한다.
비서도 그럼 그렇지 하고 혐오스럽단 표정으로 테르토나를 바라본다.
그의 부름에 나타난 인물은 조금 의외였는데.
호우만이라는 이름에 당연히 남자일 줄 알았는데 여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약에서 발하는 빛을 차단하기 위해 고글을 이마에 쓰고 있었고, 자유분방하게 멜빵에 장갑을 끼고 있는 모습은 마법사보다는 마차 정비공 정도로 보였다.
“돈 없으면 오지 말라고 했지!”
호우만이 바로 신경질적으로 외쳤으나 테르토나는 깔깔거리면서 외친다.
“내가 아주 엄청난 손님을 데려왔다! 그리고 너의 도움이 필요해. 우리 후배…… 는 아니지만 알프레도 교수님이 점찍은 친구거든!”
“알프레도 교수님이?”
호우만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내게로 향한다.
하지만 내 시선은 이미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가슴에 있는 마몬의 각인이 진열대 놓인 손바닥에 쏙 들어올 검은 병의 내용물을 원하고 있었다.
‘저게 뭐지?’
진열대라고 부르기도 애매할 정도로 난잡하게 널브러진 물건들 사이에서 정확하게 그것을 내가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마몬의 각인이 원하고 있는 걸 그대로 따르는 게 옳을까 라는 걱정도 함께 치솟았다.
“이안 군! 여기는 호우만! 내 메이지 아카데미 동기라네! 다른 마법은 구려도 영약 제조만큼은 아주 달인이지!”
“너처럼 매일 집에서 인형놀이나 처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아.”
“그, 그건 인형 놀이가 아니야!”
심드렁하니 답하는 호우만.
테르토나는 들키면 안 되는 걸 들춰진 듯 얼굴이 벌겋게 붉어진다.
하지만 나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렇구나, 영약이 있었지.”
마나량은 태생적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걸 강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끌어 올릴 수 있는 게 바로 영약.
그래서 명망 높은 귀족가문에서는 아이를 임신하면 그 아이가 나중에 복용할 영약을 혈안이 되어서 찾는다고 들었다.
물론, 단순히 마나량을 늘리는 영약만 있는 건 아니고 다채로운 종류의 것들이 있었다.
영약이라는 게 단순히 배합만 잘한다고 중요한 건 아니다.
물론, 제조사의 역량도 큰 부분을 차지하긴 했으나 결국에는 원재료.
기준이 되는 재료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보통 영약으로 쓸 수 있는 원재료들은 더럽게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나이트 아카데미에서 사용하기 껄끄러운 지팡이나 로브보다는 훨씬 나은 선택이긴 했다.
“뭐, 여기서는 스스로 고르는 거네. 마나량을 늘리겠나? 아니면 기사니까 신체능력? 혹은 마나 순환을 원활하게 할 수도 있네!”
“더럽게 비쌀 거야.”
심드렁하니 고급품이라고 선언하는 호우만.
그런 그녀에게 테르토나가 속삭이듯 답한다.
“프라이드 쪽 손님이라서 비용은 학회에서 지불해.”
“그러면 추가비용도 들어가. 그 뺀질이 놈 지갑 털어먹는 것만큼 즐거운 게 없으니까.”
둘이서 아주 쿵짝이 잘 맞는다 싶었으나 무시하고 바로 검은 병을 들어올린다.
“이건 뭡니까.”
그러자 두 사람은 동시에 눈을 와락 찌푸렸다.
테르토나가 다급하니 내게 다가와 병을 낚아채 간다.
“이, 이건 굉장히 위험한 물건이네. 하필 골라도 이런 걸 고르나.”
“……웃기는 놈이네?”
하지만 반대로 호우만은 카운터를 훌쩍 뛰어넘고는 내게로 다가온다.
이곳저곳 훑어보더니 테르토나에게 휙 병을 다시 뺏는다.
“이게 가장 눈에 들어와?”
“예, 그게 딱 꽂히네요.”
솔직하게 말하자 호우만은 씨익 웃어 보인다.
“나는 말이야. 영약과 사람에는 상성이 있다고 봐. 막 첫 만남에 사랑의 스파크가 남녀에게 파바박 튀는 것처럼 말이지.”
“그래서 프라이드랑 학창시절에 그렇게 찐하게 사랑을 나눴나?”
뒤에서 비아냥거리는 테르토나의 복부에 바로 주먹을 꽂아 넣은 호우만.
한 방에 소환사를 쓰러트린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말을 이어간다.
“귀한 영물의 잔재나 약초로 만들어진 건 그 나름의 의지가 있어서 주인을 찾는단 말이지.”
툭.
옆에 있는 진열대에 병을 올려놓은 호우만은 팔짱을 끼며 말한다.
“이건 내 마스터피스야. 돈도 가장 많이 들었고, 수고도 상당했지. 하지만 정작 사는 사람은 없더라.”
“왜죠?”
솔직하게 질문하자 오히려 호우만 쪽에서 깔깔거리며 웃어댄다.
웃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으나 그녀는 곧바로 설명했다.
“불길하니까.”
슬쩍 턱짓으로 비서를 가리키는 호우만.
비서는 어느새 나와 멀찍이 떨어진 채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감각이 좋은 수인 같은 경우는 저렇게 이걸 보는 순간 두려워해. 그만큼 위험한 물건이라는 걸 저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거지.”
“…….”
“감이 둔한 사람들도 다들 느끼거든? 사람은 생존본능이 강해서 딱 아는 거야. 이거 마시면 뒤지는 구나.”
나였기에 느끼지 못했다.
아니,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몸은 탐욕스럽게 저것을 원하고 있었다.
“뭐가 원료입니까?”
힐끔힐끔 병으로 시선이 가는 걸 억지로 참아보지만 호우만은 이미 눈치챈 듯 설명을 이어간다.
“아스모데우스라는 악마에 대해서 알고 있나?”
“예, 알고 있습니다.”
마몬과 같은 대악마 중 하나.
다만, 직접적으로 나와 연관이 있지는 않았고 마몬보다 훨씬 고대에서 살아가던 악마로 먼 옛날 토벌당했다고 알고 있다.
“그 악마가 사랑한 남자한테 준 검은색 꽃이 있어.”
“…….”
“악마의 진심이라고 불리는 꽃의 꽃잎이 주재료야. 경매에서 이거 사려고 테르토나랑 뼈 빠져라 고생했지.”
씨익 웃으면서 다시금 병을 들어 올린 호우만.
자연스럽게 내 시선이 그것을 따라간다.
“뭐, 진짜인지는 몰라. 단순히 어디서 또 튀어나온 영험한 약초에 그럴듯한 스토리만 입힌 걸 수도 있어.”
“…….”
“하지만 악마가 떠오를 정도로 불길한 건 사실이야. 그래서 아무도 사 가지 않았던 물건이지.”
위험하긴 하다.
내 가슴의 문양이 확실하게 알리고 있었다. 저건 분명 진품이라고.
그것도 실력 좋은 영약사가 잘 우려내어 그 효과가 뻥 튀어 오른 물건이라고.
“어차피 사 가는 사람도 없고, 나는 내 걸작의 효과가 궁금하기도 해. 어때? 살 거냐?”
악마의 유혹처럼 슬쩍 내게 병을 내미는 호우만.
뒤에서 테르토나는 말리려 들었으나….
이미 내 손은 그것을 낚아챈 후였다.
“금액은 학회 측에 청구하시죠.”
“오케이! 테르토나가 데려온 녀석치고는 화끈해서 마음에 들어! 복용할 시기만 알려줘. 내가 복용 전, 복용 중, 복용 후 처리까지 싹 다 도와줄 테니까. 다만 복용 이후 효과 정도는 확인시켜 줘야겠어.”
그 정도는 어렵지 않다.
애초에 영약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가이드가 필요했는데 차라리 잘됐다.
그녀가 돕는다면 할 수 있는 한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을 거다.
“하아, 난 모르겠군. 나중에 알프레도 교수님이 찾아오는 거 아닌가 몰라.”
“그럼 오랜만에 회식도 하고 좋겠네. 그러고 보니 꼬마야, 이름이 뭐냐.”
호우만의 호칭이 썩 거슬렸기에 나는 냉큼 이름을 알려준다.
“이안입니다.”
“그래, 이안. 일단 다시 줘라. 그렇게 들고 다니면 워낙 기운이 강한 물건이라 다들 쳐다볼 거야.”
보랏빛 천으로 조심스럽게 영약을 감싼 이후, 오동나무 상자에 깔끔하게 넣어준다.
확실히 불길함이 가셨는지 비서가 다시 내 쪽으로 붙었다.
“안에 쪽지도 남겼다. 복용하려면 거기에 장소를 적고 마나를 불어넣으면 알아서 나한테 연락이 올 거다. 가능하면 메이제렌에 있을 때 복용해 주면 좋고.”
“참고하겠습니다.”
“그래, 네가 복용했을 때를 대비해서 준비나 하고 있어야겠다!”
꽤나 신이난 목소리로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한 호우만.
테르토나는 힐끔 그녀를 보더니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밖으로 나가자고 손짓한다.
“솔직히 그걸 고를 줄은 몰랐지만, 마음에 드나?”
“예, 쏙 드는군요.”
이 가게를 추천한 테르토나에게 고마울 정도. 그는 씨익 웃으며 말한다.
“그럼 잠깐 내 연구실도 가지 않겠나? 아까 알려줬던 소환마법의 새로운 지평을 자네와 함께 나누고 싶군!”
아까부터 그것만 생각하고 있던 건가.
테르토나의 물건도 하나 사주기로 했으니까 어차피 그를 따라가긴 해야 한다.
게다가 소환마법의 새로운 방향성이라는 건 내게도 꽤나 흥미가 깊었고.
“좋습니다, 가시죠.”
나는 애처럼 즐거워하는 테르토나의 뒤를 따라 그의 연구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