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57
57화.
“뭐 따로 살 건 정해뒀나?”
“아뇨, 정하진 않았습니다. 일단 보면서 사려고요.”
“흐음, 돈이 많나 보군.”
어린 녀석이 돈지랄하는 걸로 보였던 건지 테르토나는 못마땅한 듯 굴었으나….
“제가 만족스러운 물건 사는 걸 도와주시면 원하시는 걸로 하나 사드리죠.”
바로 자본을 들이밀자.
“아이구! 내가 아주 기똥찬 가게들로만 안내하겠네! 어서 가지!”
굴복해서는 꼬리라도 있으면 흔들 기세였다.
비서 쪽을 보니 따로 한마디 거들거나 하지 않는 걸 보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일단 레이마스 마도구점으로 가도록 하지!”
대륙에서도 1, 2위를 다투는 레이마스 마도구점.
특별한 물건은 없지만 모든 물건이 믿을 수 있으면서도 보편적인 도구들이 즐비한 장소.
다만 돈 걱정 없이 귀한 물건을 살 수 있게 된 상황에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았다.
“금액이 좀 나가도 괜찮은데요. 어차피 제 돈 쓰는 거 아니거든요.”
“어엉? 네 돈이 아니라고?”
“예, 학회장이 찾아온 선물이랍시고 마음대로 사고 싶은 거 사라고 했거든요.”
“프라이드가?”
못 믿겠다는 눈으로 나와 비서를 번갈아 보는 테르토나.
뒤에 서 있던 비서가 작게 고개만 끄덕이는 걸로 확인해 주자 테르토나는 신기하다며 턱을 긁적인다.
“허, 이번 행사로 자금을 잔뜩 당겼나? 하긴, 자그마치 힐다 님의 마석 관련 행사인데 후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들어왔겠지.”
“뭐, 본인은 최근 학회가 어렵다고 했지만요. 어쨌든 그런 거니까 굳이 돈 걱정할 필요 없이 지르면 됩니다.”
고급 레스토랑에 갈 수 있는데 굳이 언제라도 갈 수 있는 선술집에 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테르토나는 혀를 차며 손가락을 흔든다.
“물건을 사자는 게 아니야. 가서 무슨 물건이 필요한지 확인하자는 거지. 레이마스 마도구점은 전문적이진 않아도 폭넓게 마도구를 팔고 있으니까.”
“아아, 가서 필요한 물건을 확인하고 더 전문적인 곳으로 가자는 소리군요.”
“그렇지! 바로 맞았어!”
그런 의도라면 굳이 여기서 시간을 더 허비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에게 바로 가자고 말했고, 테르토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 * *
레이마스 마도구점은 로베르담에도 분점으로 있었고 거기도 규모가 꽤나 컸으나 본점인 이곳에 비할 바는 되지 못했다.
로베르담에서 봤던 가게보다 적어도 2배는 큰 크기의 매장.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으며 입구에서부터 각기 종류별로 물건이 어디 있는지 매장지도가 걸려 있기도 했다.
“크흠, 비서 양은 잠시 밖에서 기다리는 거 어떻겠나?”
매장 안으로 들어가기 전, 테르토나는 대놓고 불편하다는 티를 내면서 비서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필했다.
뜬금없다고 생각했으나 비서는 내 의견을 구하듯 빤히 쳐다봤고.
“그래요. 어차피 여기서 뭐 구입하진 않을 거니까 잠깐 밖에서 기다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비서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차분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멀뚱히 서 있는다.
“자, 들어가지!”
혹시 마음이 바뀔세라 황급하게 안으로 들어가는 테르토나의 뒤를 따른다.
복잡하게 전시된 마도구들을 휙휙 지나치던 테르토나는 입구에서 거리가 좀 벌어지자 심호흡하며 작게 속삭였다.
“저 여자는 조심해야 돼. 저렇게 보여도 인간이 아니거든.”
“수인인 거 알아요.”
“으잉?!”
내 말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하는 테르토나.
그는 나름 귀중한 비밀을 알려주려 했던 것 같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머리카락으로 가렸어도 귀가 잘린 흔적도 있고 피부도 보통 인간이랑 조금 다르잖아요. 짧게 잘랐지만 손톱도 날카롭고.”
“눈썰미가 대단하구나.”
뭐, 그와는 반대로 저렇게 수인의 흔적을 지우는 걸 썩 좋아하진 않았다.
특히나 수인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귀까지 잘라낸 건 썩 탐탁지 않았다.
“프라이드가 학회장에 오르면서 비서를 골라야 하는데 마탑들이 워낙 뒤가 구려야지. 어디서 누가 정보를 빼돌릴지 모르거든.”
“그래서 아예 수인 노예를 인간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쓰고 있다?”
“맞아, 원래부터 유능한 녀석이니까 사실 비서는 그냥 잡일 담당이라고 볼 수 있지.”
“흐음.”
단순히 잡일 담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난 단순히 그녀가 수인이라는 것만 알아챈 게 아니다.
몸의 밸런스나 걷는 보폭 등이 일정한 걸로 보아 전문적으로 무술을 배운 여인임이 분명했다.
아마 프라이드 학회장의 호위 역할 정도는 해주고 있겠지.
“그런데 프라이드 학회장이랑 아는 사이인가 보군요?”
의아함에 묻자 테르토나는 코를 슬쩍 훔치며 괜히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지만.
내 시선이 계속 따라붙자 한숨을 내쉬며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메이지 아카데미 동기야. 나는 늘 차석이었고, 그 녀석은 늘 수석이었거든.”
“아아.”
그렇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동갑이라고요?!”
이건 진짜 놀랄 수밖에 없었다.
프라이드는 겉으로 봤을 때 훤칠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한 미남이었는데.
테르토나 샤이먼은 허리가 굽고, 머리가 빠지고 있으며, 얄쌍한 게 나이가 훨씬 들어 보였으니까.
“눈썰미가 별로구나.”
삐진 듯 뒷짐을 지면서 투덜거리는 테르토나.
아니, 이건 내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여기서 더 말해봤자 입만 아프겠지.
자연스럽게 주제를 옮겨본다.
“그래서 알프레도 교수님이 당신을 알고 있었군요? 저한테 소환마법의 권위자라고 소개해 주셨습니다.”
메이지 아카데미 출신이면 당연히 알프레도 교수를 알겠거니 싶었다.
알프레드의 이름이 나오자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진다.
“아아! 교수님은 아직도 현역이시군! 그때는 정말 재밌었는데! 내 소환마법을 처음으로 인정해 주신 분이 바로 교수님이셨지. 우리 학년에서 유일하게 나만 조교로 받아주시기도 했어.”
정말로 당시가 그립다는 듯 회상하는 모습은 즐거워 보이면서도 뭔가 안쓰러웠다.
“교수님은 마법에 편견이 없으셨어. 지식에 높낮이를 두는 순간, 한계를 정하는 것이라며 괄시받는 소환마법도 인정해 주셨지.”
“…….”
“소환마법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려고 했지만 왜 괄시받는지 알고 있니?”
그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손을 비벼대며 묻는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말이 많아지는 타입이었다.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죠. 또 그만큼의 성과를 얻기도 쉽지 않고요.”
“맞아! 소환마법을 다루기 위한 준비와 지식은 다발로 필요하지만, 막상 소환한 존재가 별로인 경우도 있고. 그것에 투자할 시간에 마법사 개인의 능력을 높이는 게 더 효율이 좋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몇 달을 열심히 노력해서 소환했는데 막상 고블린 같은 게 툭 튀어나오면 어떻겠는가.
게다가 그런 부류는 명령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몇 달간의 성과인 소환수를 마법사 스스로 죽이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가장 중요한 건 소환수가 특정이 되지 않는다는 거란다! 내 책을 읽었다면 알겠지만, 촉매나 마법진 종류를 통해 범위를 좁힐 수는 있어도 결국 소환수는 반쯤 운이거든.”
이렇게 들으니 내가 소환만 하면 기사단원들이 나오는 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세삼 깨닫는다.
나는 절대로 꽝이 없는 뽑기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 거니까.
“그렇기 때문에 마법사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소환수가 소환됐을 경우 위험할 수도 있단다. 꽤나 자주 있는 일이지만 의외로 잘 알려지진 않았단다. 왠지 아니?”
짓궂으면서도 장난스러운 수수께끼를 내미는 테르토나.
어렵지 않게 답을 내놓는다.
“해당 마법사가 소환수한테 죽었기 때문이겠죠.”
“맞아! 그래서 소환마법이 괄시받는 거란다. 리스크만큼의 리턴이 명확하지 않고, 본인의 마법에 본인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도 생각보다 높지.”
“하지만.” 하고 테르토나가 덧붙인다.
“나는 그걸 방지하는 방법을 찾아냈단다. 아주 획기적이고 놀라운 방식으로 말이지!”
“…….”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이 남자의 성격상 그런 게 있으면 집필했던 책에 조금은 내용이 나왔을 텐데.
“크흠, 사실 최근부터 연구를 시작해서 아직 완성되진 않았지만.”
내 눈초리에 떠밀려 솔직하게 토로하는 테르토나.
하여간 허세가 가득한 양반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획기적이란다! 이 방식이 완성되면 소환마법은 다시 한번 재조명받게 될 거다! 마법 학계가 아주 뒤집어질 거야!”
“알겠으니까, 일단 살 거나 정합시다.”
그의 얘기가 흡입력이 있었는지 나도 모르게 휘말려 버렸다.
테르토나는 쩝 소리를 내며 아쉬워하면서도 알겠다며 안내한다.
하지만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그는 다시 걸음을 멈추고는 나를 돌아본다.
“그런데 무슨 마법 전공이니?”
“아.”
생각해 보니까 그걸 말하지 않았구나.
내심 소환마법이라고 말해주길 기대하는 테르토나에게 솔직하게 답한다.
“저는 기사생도입니다.”
“뭬에야앗?!”
매장이 떠나가라 소리치는 테르토나.
순간 주변 마법사들의 차가운 시선이 꽂혀 들어오지만 테르토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기, 기사생도라고? 검을 휘두르고 땀이나 뻘뻘 흘려대는 그 야만적인 것들 말이냐?!”
“말 심하게 하시네.”
“아니! 메이지 아카데미 학도 아니었니? 알프레도 교수님도 알고 있다며!”
뭐, 이상하게 들리긴 하겠다 싶었다.
기사생도가 메이지 아카데미의 알프레도 교수랑 대화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그걸 다 설명하기도 복잡했기에 그냥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로 했다.
“아, 그럴 일이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기사생도고 사용하는 마법은 보조마법이랑 소환마법입니다. 그걸 중점으로 필요할 법한 마도구를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보조마법……? 허! 마법과 검술은 보통 완전히 다른 길이라고 일컬어지는데, 너는 그게 아니구나.”
테르토나의 눈동자가 신묘한 빛을 띄운다.
방금 전까지는 단순히 자존심 강한 아저씨였다면 지금은 지식욕이 강한 탐구자의 눈이었다.
“네가 걷는 곳이 바로 길인 것이야. 마법이든 검이든, 그것들에 휘둘리는 게 아니라 너라는 사람에 두 가지를 맞추는 거지.”
본인의 턱을 쓰다듬으며 이해했다는 듯 고개까지 끄덕인다.
“그래, 알프레도 교수님이 좋아할 법한 인재구나. 그리고 나 역시 네가 아주 흥미로워졌다.”
테르토나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더니 혀를 찬다.
“그렇다면 여기 올 필요가 없었구나. 너한테는 지팡이도, 로브도 필요 없어.”
“뭐, 있으면 좋긴 하지 않겠습니까?”
어깨를 으쓱거리며 묻자 테르토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있으면 좋긴 하겠지. 하지만 우선순위는 아니라는 얘기란다.”
확신하며 팔짱을 끼는 테르토나.
이미 그의 안에서는 내가 무엇을 사야 할지 확정이 난 듯했다.
“마도구란 결론적으론 마법사의 보조도구일 뿐이다. 지금의 너처럼 마법에 발만 걸친 상태로 효율 좋은 도구를 사용해 봤자 실력만 정체되겠지.”
검에 대입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판단이었다.
실력이 없는데 너무 과한 명검을 쥐게 되면 본연의 실력이 아닌 검에 의존하게 된다.
검에 휘둘린다는 건 그런 때 쓰는 말이었다.
“그럼 뭘 살 생각입니까?”
내 질문에 테르토나는 악당 배역을 맡은 극단배우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댄다.
“너는 아주 운이 좋아.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함께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고는 나를 데리고 망설임 없이 가게 밖으로 나선다.
“프라이드 놈의 돈이라고 했지? 아주 흥청망청 쓰면서 최고의 효율을 뽑아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