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68
68화.
덜컹거리는 수레 위.
메이제렌을 떠나, 로베르담 근처까지 온 나는 농부가 모는 수레를 얻어 타고 돌아가는 중이었다.
한나의 말에 따르면 다이니도 로베르담에 도착했을 시기니까 아마 금방 만날 수 있겠지.
앞으로 할 일을 대충 정리하는 와중에도 나는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수첩을 달달 외울 것처럼 반복해서 읽고 있었다.
다름 아닌 떠나는 나를 위해 테르토나 샤이먼이 적어준 소환마법에 관한 비법.
그의 말로는 지금의 내가 사용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기 위해서 연마가 필요한 부분 등을 정리해 뒀다고 하긴 했는데.
작은 노트라 여백이 적어서 그런지 예전에 적었던 책들처럼 쓸데없는 말은 없고, 딱딱 핵심적인 부분만 있었기에 훨씬 효율이 좋았다.
‘그래, 이렇게만 쓰면 얼마나 좋아.’
할 수 있으면서 꼭 그 괴팍한 성격이 본인의 이미지를 망친다.
호우만이 말하기로는 옛날에 워낙 무시를 많이 당해서 역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드러나는 거라고 한다.
파직, 파지직.
노트를 보며 쥐고 있는 지팡이에 살포시 마나를 흘려본다.
자연스럽게 마나량만큼 전격이 흘러나오는 모습.
여러 방식으로 이걸 사용할 수도 있겠거니 싶어 손이 근질거렸으나.
“어허, 수레 위에서 위험한 행동 하지 말아줘.”
“넵, 죄송합니다.”
수레 주인이 말을 몰면서 주의를 준다.
혹시라도 쌓여있는 볏단에 상처라도 줄 수 있으니까.
나도 가능한 자제하며 조금은 느긋하게 가는 길 동안 테르토나의 노트를 쭉 읽었다.
늦은 저녁시간이 되어 도착한 로베르담.
수레를 태워준 농부에게 감사하다 말하곤 그대로 나이트 아카데미로 향했다.
그리 오래 떠나 있던 것도 아닌지라 시내는 그대로였고, 나 역시 따로 특별한 감정을 느끼진 않았다.
그냥 평소 돌아다니던 그곳을 다시 왔다. 딱 그 정도의 감상뿐.
아카데미로 돌아와 우선 다이니를 찾았다.
1학년 여자 기숙사에 남은 학생에게 다이니에 대해 물었고, 그녀가 지금 로베르담 병원에 할머니와 함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굳이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바로 병원으로 향했는데, 때마침 다이니가 병원 로비에서 밖으로 나오는 중이었다.
“아.”
무슨 연극에서나 나올 법한 상황. 다이니는 나를 보더니 멈칫하곤 몸이 굳는다.
주변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오롯이 나만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그녀의 갈색 눈망울에 방울이 지더니 그대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이아아아안!”
텁.
그리고 나는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잡았다.
“우리 그 정도까지 친하진 않았잖아.”
“…….”
아무래도 그동안 상당히 고단했기 때문에 나를 만났다는 것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 같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서로 끌어안을 정도로 친하진 않았다.
“크흠.”
다이니도 그걸 눈치챘는지 괜히 어색하니 헛기침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내 손에서 벗어난다.
방울져 있던 눈물은 어느새 사라졌다.
“저기, 너를 찾아가라고 어떤 궁수님께서 말하셨거든?”
혹시 아냐고 떠보듯 묻는 다이니에게 나는 어렵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알고 있어. 이미 나한테 무슨 상황인지 다 알려줬어.”
“지, 진짜로? 그분이 잘 돌아오셨어?!”
호들갑을 떨면서 가뜩이나 큰 눈이 더 커진 다이니.
한나가 자신과 조모를 위해 희생한 줄 알았겠지.
“그래, 그러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이야기도 전부 다 들었고.”
“휴우.”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는 다이니.
꽤나 걱정하고 있었는지 표정이 편해진 게 눈에 보였다.
“사실 경비대 쪽에서 그런 사람은 못 봤다고 해서 끌려가거나 한 건 아닌가 걱정했거든.”
“그래, 할머니는 좀 괜찮으시고?”
“응, 지금은 주무시고 계셔.”
“음.”
그렇다면 지금 당장 굳이 병원에 있을 필요는 없다는 말이 되니까.
“그럼 밥이나 좀 먹으러 가자.”
수레를 타고, 다이니를 만나러 오느라 제대로 된 식사도 못했다.
휙 몸을 돌리며 나서자 다이니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금세 내 뒤를 따른다.
“어떤 거 먹을 거야? 나도 아직 저녁 안 먹었는데.”
“흠,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내가 슬쩍 다이니를 보며 묻자, 어색하니 웃어 보인다. 눈가에는 살짝 그늘이 져있었다.
“그, 간단한 걸로 먹는 거 어떨까?”
“간단한 거?”
“있잖아. 싸고 양 많은 거.”
답지 않은 반응.
다이니가 그다지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은근 편식도 하는 편이다.
악몽을 꿨다고 아침을 대충 먹고 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니까.
하지만 지금 그녀는 좀 달랐다.
슬쩍 몸을 훑어보니 몸이 전체적으로 야위었으며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모습.
‘아.’
저택이 습격당했고, 할머니는 입원하셨으니 지출이 꽤 상당했을 것이다.
생도 신분인 다이니였기에 돈도 벌지 못하고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듯했다.
“쯧.”
그런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광신도들은 어딜 가나 피해만 주는구나 싶었기에.
나는 저 끝에 아직까지 불이 환하게 켜진 조금 비싼 레스토랑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기로 가자.”
“어? 저, 저기?”
당황한 다이니에게 나는 이죽이듯 웃어줬다.
“내가 살게.”
마법 지팡이를 팔고 남은 돈이 첫 개시를 할 시간이었다.
* * *
다이니와의 식사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다이니랑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레스토랑 자체가 상당히 맛이 좋았다.
다음에 단원들에게 한번 먹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톰이나 도로시를 떠올리니 바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두 놈을 이런 비싼 곳에서 먹이려면 지출이 상당하겠지.
뭐, 다이니 때문에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었다고 해도.
그녀가 먹는 모습을 보는 건 꽤나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스테이크를 양 볼이 부풀어 오르게 가득 넣고는 먹으면서 감동에 눈물을 훌쩍이던 모습은.
이 어린 아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너, 너무 맛있었어. 오랜만에 진짜 맛있게 먹은 것 같아.”
“그래, 그렇게 보이더라.”
빵빵하게 부푼 배를 어루만지며 만족스럽게 웃는 다이니.
어느새 주변 가게들이 하나둘 불을 끄고 문을 닫는 시간이 되어간다.
도시를 비추는 마력등 밑을 지나며 잠깐의 침묵이 감돌았다.
다이니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는데, 조금 긴장이 풀렸는지 이번 여름방학이 얼마나 다사다난했는지 떠올리는 듯 보였다.
“왜인지 이번 여름 동안은 내가 나의 삶을 살아온 게 아닌 것 같아.”
“그건 무슨 뜻이냐.”
너무 뜬금없는 말에 되묻자 다이니는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하더니 푸념하듯 말을 내뱉는다.
“작년 여름에는 단순히 저택에서 공부하고, 운동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지냈거든.”
“…….”
“그런데 고작 1년 지난 지금은 그리워하던 부모님이 악마를 숭배했다는 증거가 있는지 찾고 있고, 이상한 괴한들이 습격해서 저택도 잃고,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하셨으니까.”
그래서 현실감이 잘 없는 것 같다고 덧붙이는 다이니.
나름대로 덤덤하니 말하고 있으나 살짝 떨려오는 목소리에서 그녀가 얼마나 심적으로 몰려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버겁긴 하다.”
자신이 약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던 걸까.
다이니는 헤헤 하고 힘없는 웃음을 덧붙인다.
잠시 무거워진 분위기.
다이니는 괜히 웃으면서 주제를 돌린다.
“이안은 궁수 분이랑 어떤 사이야?”
당연히 물어올 줄 알았다. 오히려 조금 늦은 감도 있는 질문에 나는 심드렁하니 답했다.
“옛날부터 그냥 알던 누나야. 부모님한테 빚이 있어서 종종 나를 도와줘.”
한나한테 누나라고 하려니 입이 안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귀족도 아닌 내가 종을 가지고 있다는 건 이상하니까.
내가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걸 알아챈 다이니도 한나에 대한 걸 굳이 더 캐묻진 않는다.
다만, 나중에 다시 만나게 해달라는 정도의 부탁만 했을 뿐.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겠지.’
거기서 끝인가 싶었지만 다이니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그분이 너를 찾아가라고 한 거야?”
“…….”
“그때는 그냥 생각할 겨를도 없이 움직였는데, 막상 이렇게 되니까 이상한 것 같아서.”
“…….”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타이밍이 딱 좋게 나타나신 거지?”
혹시 뭔가 잘못 말했나 싶어 내 눈치를 보는 그녀.
뭐, 당연한 의문이었고, 이것 역시 상정해 둔 질문이었다.
“음, 내가 그쪽 사람들을 좀 찾고 있거든. 그냥 그렇게만 알아둬.”
“……어쩐지, 상어 수인 때도 이상하게 침착하더니.”
묘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멀뚱히 바라보는 다이니.
내가 굳이 묻지 말라고 이야기했기에 결국에는 입을 꾹 다문 채로 병원으로 왔다.
병실 앞.
다이니의 할머니는 아직도 주무시고 계셨기에 굳이 깨우지 않기 위해 병실 밖에서 인사를 건넨다.
“나는 기숙사로 돌아갔다 내일 다시 올게.”
“아, 알았어.”
내가 했던 말들 때문에 생각에 잠겼던 다이니는 어벙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오늘, 고마웠어.”
가기 전, 문틈 사이로 빼꼼 고개만 내밀고는 한마디 툭 던진 다이니가 부끄럽다는 듯 그대로 병실 문을 닫았다.
별걸 다 부끄러워하는구나 싶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대로 어두운 복도 끝으로 슬쩍 고개를 돌렸다.
손끝에 마법진이 펼쳐진다.
“영약을 먹은 뒤로 감각이 예민해져서 그런가. 괜히 이상한 것들이 보이네.”
은은한 푸른빛과 툭 튀어나온 황금빛 보석이 달린 지팡이.
그러자 검은 그림자 사이에서 성격이 드세 보이며, 털이 수북한 남성이 하나 걸어 나왔다.
하얀 셔츠. 갈색 조끼와 붉은 넥타이.
하지만 그것들조차 다 숨길 수 없는 솟아오른 근육.
그리고 가슴팍에 보이는 역십자 로자리오.
“소환마법을 참 독창적이게도 쓰는 구나.”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면서도 입꼬리를 슬며시 들어 올린다.
“네가 다리 없는 궁수의 주인이구나?”
한나가 역소환되는 걸 봤으니 사람을 소환할 수 있다는 걸 들켰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나를 신기하게 보던 남자는 이죽이며 주먹을 꽉 쥐었고.
퉁!
가벼운 도약음과 함께 시작된 전투.
“재능 있어. 사고를 지닌 사람을 소환하는 건 도대체 어떤 기괴한 방식으로 성공시킨 건지 모르겠지만 아주 대단해.”
바람 소리처럼 흩날리듯 사라지는 그의 목소리.
복도를 치고 달려온 그는 어느새 내 앞에서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다.
“근데 소환사가 얼굴을 내보이면 안 되지.”
그 말을 들으니, 이들이 다이니를 미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한나를 소환해 낸 수수께끼의 마법사가 누구인가 알아내고 싶었겠지.
콰앙!
그의 주먹이 사선으로 내민 지팡이에 맞닿는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의 기대와는 달랐다.
지팡이 전체를 두른 흉흉한 검은 마나에 털보 남자는 흠칫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번에 내가 하나 배운 건데.”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비웃음.
설치한 덫에 먹잇감이 정확히 걸린 걸 본 사냥꾼이 된 기분.
“지팡이를 들고 있으면 아주 기를 쓰고 접근하려고 하더라.”
그게, 자기 머리를 짐승의 입으로 넣는 꼴인 것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