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74
74화.
밀고 들어가는 은빛의 기사들.
그에 맞서는 광신도들은 겉으로 봤을 때 느껴지던 위압감과는 정반대로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하고 밀려나고 있었다.
3미터는 넘는 거인의 형상을 한 남자는 톰의 대검에 반으로 갈라졌고.
머리가 뱀으로 되어 있는 여인은 날아든 한나의 화살에 그대로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넬슨은 비교적 상대하기 쉬워 보이는 상대들을 골라서 빠르게 숫자를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었고.
도로시는 그 곁에서, 다가오는 까다로운 상대를 창으로 끌고 데려가 제압한다.
엘빈과 켈빈은 길을 뚫는 톰의 곁에서 보조하는 상황.
나는 그저 허리춤에 검을 꽂은 채로 그들의 진격에 맞춰 앞으로 걸을 뿐이었다.
내 걸음이 늦춰지거나, 혹은 내가 일부러 그들의 진격 속도에 맞춰서 조절하는 것도 아니었다.
만약 앞에 펼쳐진 광경이 전투가 아니었다면, 단순히 밤거리를 산책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자연스럽게 길이 열리고 내 시선은 오롯이 렉터라는 남자에게 닿아 있었다.
그 역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으득 이를 깨문다.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어 보였으나, 주변의 기사들이 부담스러워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는 느낌.
“저, 저건 기사들 아니오!”
그때 렉터 옆에 있던 술집에서 허겁지겁 밖으로 나온 배불뚝이의 남자.
허리춤에 꽂힌 경비대장의 검을 통해 그가 이 도시에서 어떤 직급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기사들을 함부로 건드리면 어떻게 하겠단 겁니까! 경비대를 당장 철수시키겠……!”
렉터의 손이 그대로 경비대장의 입을 덮친다.
전완근에 툭 튀어 오른 핏줄이 그의 분노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우웁! 우으으으읍!”
턱이 부러질 것만 같은 통증에 눈물 흘리며 발버둥치는 경비대장.
“닥치고 가만히 있어. 턱이 박살 나서 평생 혀 내밀고 살고 싶지 않으면.”
맹렬한 살의가 쏟아진다.
우리에게 풀어야 할 분노를 엄한 경비대장에게 풀고 있었다.
‘생각만큼 경비대장과의 관계가 돈독하진 않구나.’
이 도시를 레비아탄교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경비대장이나 시장 같은 도시의 책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완벽하게 포교된 건 아닌 듯했다.
‘이러면…….’
광신도들 중에서도 가장 공략하기 편한 게 바로 아직 제대로 믿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부류였다.
동시에 가장 정보를 뽑아 먹기 편한 쪽이기도 했고.
“돌입한다.”
한마디 툭 내뱉자 바로 톰과 도로시가 앞장선다.
각자 왼쪽과 오른쪽을 맡은 두 사람.
순간 몸이 두근거릴 정도의 마나가 빨려 나가고, 두 사람은 동시에 자세를 잡으며 무기를 휘둘렀다.
마치 거리의 청소부가 낙엽을 쓸어내듯.
기사단에서도 가장 리치가 긴 무기를 지닌 두 사람이 동시에 양쪽으로 무기를 휘두른다.
“어어어억!”
“뭐야! 밀지 마!”
“버텨 등신들아아!”
폭력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압박에 레비아탄의 신도들이 옛 신화에서 나오는, 갈라지는 바다처럼 좌우로 밀려나며 깔끔하게 길이 열린다.
그리고 그 끝에는 아직도 경비대장의 턱을 쥐고 있는 렉터가 서 있었다.
“하.”
내 의도를 읽어낸 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경비대장을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켁켁거리며 눈물범벅이 되어서는 바닥에 웅크린 모습이 애처롭다기보다는 우스웠다.
탁!
뚫린 길을 통해 먼저 달려든 건 렉터였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날아들 듯 뛰어오는 그를 보며 내 양쪽에서 호위하던 엘빈과 켈빈이 슬며시 뒤로 빠진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왼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고쳐 쥔다.
파지지직!
렉터가 길의 중반부쯤 왔을 무렵 나의 전격이 일직선으로 그를 향해 쇄도한다.
어둠을 꿰뚫으며 들어가는 푸른 전격이다.
이런 식으로 길이 일자로 뻗어 있을 때는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고 실제로 렉터도 정면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으나.
“같잖은 마법!”
오히려 그는 양손을 웅크리는 걸로 간단하게 내 전격을 막아냈다.
또한 손을 웅크리며 몸이 앞으로 쏠리자 등에서 뻗어 나오는 남색의 빨판이 달린 촉수들.
그걸 보는 것만으로 그가 무슨 마수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바로 깨달았다.
“크라켄?”
뱃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다의 마수 중 하나. 실제로 크라켄에 의한 피해가 매년 적지 않다.
레비아탄이라는 대악마의 권능이 설마 저런 마수에게까지 뻗어있을 줄은 몰랐지만.
나는 계속해서 전격을 쏘아낸다.
어쨌든 가장 효율이 좋으면서도 화려한 임펙트를 주어 적의 시야를 가릴 수 있으니까.
보통 사람이라면 당연히 진즉에 바닥에 쓰러져 경련하고 있어야 했을 일격에도 렉터는 터프하게 밀고 들어온다.
어느새 거리가 좁혀졌으나.
뒤로 뻗어둔 내 오른손에서는 마법사들에게 있어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사람 얼굴 크기의 마력탄이 응축되어 있었다.
“하!”
전격 마법도 통하지 않았는데 고작 마력탄을 쏜다는 것에 입꼬리를 비틀며 비웃는 렉터.
겉으로 봤을 때는 확실히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마력탄이 점차 검은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하는 걸 보곤 그의 안색이 굳었다.
“마몬?”
마력탄에 담긴 게 보통 기운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기에 다급하게 몸을 틀어 회피하려는 렉터였으나.
그의 의도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 듯했다.
“전격 마법을 그렇게 맞았으면 어디 하나 마비가 오는 정도는 각오했어야지.”
렉터의 입장에서는 승리하기 위한 판단이었을 거다.
마법사가 상대인 만큼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했으니 나에게 달려든 것이었겠지만.
나는 오히려 렉터가 버틸 수 있는 수준으로만 계속 마법을 쏘아대며 그를 끌어들였다.
도망치려고 해도, 이미 입은 닫혔다.
후웅!
바람을 가르며 쏘아진 마력탄이 정통으로 렉터의 가슴팍을 후려치고 들어간다.
마력탄은 닿는 순간 폭발하며 그가 달려온 길을 굴러서 돌아가게 해주었다.
술주정뱅이처럼 거리에 널브러진 렉터.
그의 몸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등에 달린 크라켄의 촉수들도 반쯤 날아간 상태.
“하아아악! 하아악!”
거칠게 몰아쉬는 그의 숨소리만이, 아직 그가 살아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걸 맞고도 살아있네.”
나름 메이지 아카데미 1학년의 서열을 정리하는 데 일조한 마력탄인데 그걸 버텨내다니.
괜히 크라켄과 동화되어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크라켄의 가장 껄끄러운 점은 기이할 정도로 뛰어난 회복력이었는데.
렉터 또한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하아, 하아, 후우.”
점차 안정되는 호흡 속에서 렉터는 천천히 일어났다.
이미 걸치고 있던 코트는 저 멀리 날아가고 찢기고 그을린 바지만이 남은 모습.
전신이 까맣게 타들어 갔었으나 일어나면서 그의 몸은 새것처럼 원래대로 돌아왔다.
렉터의 투기 어린 눈동자가 나를 노려본다.
“거짓말을 했군. 마몬의 기운…. 역시 네놈, 마몬교였구나?”
나를 그놈들과 한패로 묶는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쾌했다.
눈가가 살짝 흔들렸으나 힘겹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지팡이를 어깨에 얹는다.
“그놈들 사냥하는 사냥꾼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하하, 그 미친놈들을 사냥한다고? 마몬의 기운을 사용하면서?”
“원래 괴물을 잡으려면 괴물이 돼야 하는 거야.”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하자 렉터는 어이가 없다며 실소를 내뱉는다.
“이자벨라가 들으면 비웃지도 않겠군.”
“이자벨라?”
아무래도 마몬교에 관해서 뭔가 아는 듯한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반응해 버렸다.
반대로 렉터는 증오 어린 이름이라도 씹어내듯 그 이름을 부른다.
“모르나? 하긴 모를 만하지. 그년만큼 신출귀몰한 존재가 없으니까.”
“…….”
“네가 진짜로 마몬교를 몰아내려 한다면 나도 환영했을 거야. 차라리 우리보다 그놈들한테 먼저 찾아가지 그랬냐.”
“그것들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 뭘 하지.”
“하! 바퀴벌레 같은 새끼들이긴 해! 숨는 건 아주 끝내주게 잘한단 말이야.”
꽤나 쌓인 게 많은지 렉터는 고개를 젓는다.
“꼬맹아, 하나 충고하자면 그놈들은 죽이는 게 어려운 게 아니야. 찾는 게 어려운 거지.”
“…….”
“지금 그놈들을 누가 쫓고 있는지 아냐? 신성 기사단이다.”
알고 있다.
가르간테의 봉인을 풀어낸 것 때문에 신성 기사단에서 계속 추격하고 있다고 들었다.
“신성 기사단이 움직였는데도 아직 진짜 머리는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마몬을 소환하려 들고 있으니. 어이가 없는 놈들이지.”
자신의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렉터.
하지만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 있었다.
“마몬을 소환해?”
“미안한데 시간 다 됐어. 대화는 끝이다.”
이마를 짚고 있던 렉터의 손이 내려오자 드러나는, 그의 이마에 박힌 남색 악마의 눈동자.
세로동공으로 되어있는 그것은 꽤나 섬뜩하게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시간을 벌기 위해 마몬교를 팔아넘긴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나도 정보를 얻기 위해 좀 의도적으로 흐름에 탑승한 감도 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기이한 모습이 튀어나왔다.
“레비아탄 님의 마인화를 통해 얻은 마수는 각 개인의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
“…….”
“건달패로 살아가며 불사신 렉터라고 불리던 나에게 딱 어울리는 마수는 크라켄이었다.”
어느새 웃을 여유까지 찾았는지 큭큭거리면서 나를 향해 다시금 자세를 잡는다.
“어쩌라고 그래서.”
심드렁하니 답해주자 렉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달려들었다.
“어디 해보자. 네 마나가 고갈 나는 게 먼저인지 아니면 내가 뒤지는 게 먼저인지.”
등에 솟아올랐던 크라켄의 촉수가 다시금 거칠게 뿜어져 나온다.
나는 다시 한번 마력탄을 만들어 쏘았으나 이번엔 렉터가 다르게 반응했다.
아니, 정확히는 이마에 있는 눈동자가 재빠르게 내 마력탄의 궤도를 쫓는다.
“후우.”
날카롭게 집중한 모습은 무슨 숙련된 권사를 보는 기분이었다.
마력탄이 날아들 때마다 촉수를 하나 날려 대신 맞게 한다.
촉수는 반쯤 날아가 흐물하게 바닥에 떨어지지만 곧바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마력탄이 만들어낸 연기를 뚫고 계속해서 나를 향해 치고 들어오는 렉터.
저 눈동자가 뜨인 이후부터 기세 자체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반쯤 죽었다 살아나서 그런 걸까.
나의 마법에 대한 공략이 착실하게 이어졌다.
마력탄은 아무래도 속도 자체가 느리다 보니 촉수 하나를 희생해서 대응한다.
실제로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마력탄의 개수에는 제한이 있었기에 나름 보기 좋게 파훼당했다고 할 수 있었다.
“쓰읍.”
나도 모르게 혀를 차며 미간을 찌푸렸다.
마법전에 있어서는 나름 강력한 한 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뚫려버렸다.
“아쉽네.”
그나마 남은 마나로 손바닥에 마법진을 그려낸다.
그 모습을 본 렉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결국 그 잘난 마력탄도 끝난 거냐!”
“어, 내가 졌네.”
마법진 안에서 튀어나온 검자루.
“마법으로 이기고 싶었는데.”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달려들어 그대로 주먹을 휘두르려던 렉터를 지나친다.
방금까지 승리의 고양감으로 전신에 힘이 넘쳐흐르던 렉터의 목에 붉은 선이 그어지며….
“어?”
그는 분수처럼 피를 쏟아내며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눈만 몇 번 끔뻑거릴 뿐 제대로 말도 내뱉지 못한다.
울컥울컥 쏟아지는 핏물을 어떻게든 주워 담으려 허우적거리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 진짜 아쉽네.”
검을 휘둘러 묻은 피를 털어낸다.
마법사 이안 아이넬로서 이겨보고 싶었는데 결국 패배하지 않았는가.
“마력탄을 좀 아껴야 했나.”
아니면 처음 정타를 맞췄을 때 힘을 아끼지 말고 전부 쏟아야 했을까?
검을 휘두르면서 심리전을 펼치는 건 능숙하다 못해 익숙했지만, 마법으로 넘어가니 나에게 있는 마법의 잔량도 중요했다.
마법전은 여러 부분을 고려해야 하는 게 어려우면서도 퍽 흥미로웠다.
뻬에에에에엑!
그때, 렉터의 입 밖으로 쏟아지는 비명.
인간의 것으로는 볼 수 없는 그것이 고요한 새벽을 깨운다.
렉터의 의식이 아직 남아있는지 발버둥 치며 내 쪽으로 기어온다.
불사신이니 크라켄이니 뭐니 하던 것과는 다르게 생존을 위한 제스처.
“사, 살, 살려……!”
“그 이마에 있는 눈은 도대체 뭐야?”
이마의 눈이 육체의 주도권을 앗아가고 있었다.
그것을 중심으로 몸이 점차 남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보통 마수가 아닌 것 같은데.
“성, 물! 서어엉!”
뭔가 말하려던 렉터의 머리. 정확하게는 이마에 박혀 있는 눈동자를 향해 검을 찔러 넣는다.
캉!
하지만 눈동자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내구도. 찌르고 들어간 내 손이 아릴 정도.
당황하긴 했으나,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입에, 침이 고이고 있었다.
저것을 먹어치우라며 내 가슴에 있는 각인이 요동치듯 외치고 있었다.
당혹스럽긴 했으나 그것은 일종의 본능이었다.
점차 레비아탄의 성물에 잡아먹혀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그의 심장에 검을 꽂아 넣었다.
가슴팍에 내재되어 있던 마몬의 기운이 지금이라는 듯 검을 타고 쏟아져 나간다.
검은 그림자와 같은 그것은 순식간에 렉터의 전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고 곧이어.
키에에에엑!
렉터인지 혹은 다른 누군가인지 모를 뭔가의 비명과 함께.
텅.
눈알처럼 보이는 일종의 보주가 바닥을 굴러 내 발치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