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75
75화.
기사단원들과 광신도들의 전투는 아직 한창이었지만 금방 끝날 듯싶었다.
거리의 소란 때문에 시민들이 슬슬 깨어나 창문을 통해 우리를 보고 있으니 빨리 자리를 떠야 했다.
“물론, 그 전에.”
렉터가 떨어트린 보주를 줍는다.
대악마 레비아탄의 성물이라고 불릴 정도의 물건이니 꽤나 대단해 보이긴 했으나, 솔직히 손으로 만지고 싶지도 않았다.
분명 겉으로 봤을 때는 손조차 대고 싶지 않은데 내 본능은 계속 이것을 먹어치우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예전 호우만의 영약을 봤을 때보다도 훨씬 격렬한 욕망.
“후우.”
지금 당장 입에 처넣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충동을 억누르며 품에 챙겨 넣은 후, 저 멀리서 벌벌 떨고 있는 경비대장에게 향한다.
소변이라도 지린 건지 살짝 시큼한 냄새가 나서 눈을 찌푸리며 거리를 벌리고 손으로 코를 막는다.
코맹맹이 소리로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그는 바로 무릎을 꿇으며 땅에 머리를 박는다.
“뭐, 뭐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원래부터 저 양아치 놈을 싫어했습니다! 제, 제가 이 광신도들에 대해서 모든 걸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아, 씨! 튀잖아!”
몇 번이나 머리를 박으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녀석.
화들짝 놀라며 튀어 오르는 액체를 피해낸 나는 짜증내며 물었다.
“상황 정리되면 차분히 들을 거니까 가만히 있어. 처벌은 받겠지만 그래도 살려는 줄 테니까.”
처벌을 받는다는 말에 사색이 된 경비대장.
하지만 내 눈초리 한 번에 바로 감사하다고 다시 땅에 이마를 박는다.
“아, 튄다고!”
이거 일부러 이러나?
거리를 멀찍이 둔 채로 나는 반쯤 소리치듯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뭐 하고 있었냐.”
이 야심한 새벽에 경비대장까지 함께 있었던 걸 보면 예배라도 드리고 있던 건가 싶었는데.
경비대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좀 많이 뜻밖이었다.
“마, 마몬교에서 지금 마몬을 소환하는 의식을 치른다고 하여 그걸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켜보고 있었다고?”
“예! 예에! 맞습니다! 저희 교단… 이 아니라! 이 광신도들도 예전에 대악마를 소환한다고 했다가……!”
갑자기 레비아탄교의 과거를 설명하는 경비대장.
자신들이 만난 경위는 어떻고, 레비아탄교에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으며, 성물인 보옥에 관해서까지.
아무래도 패닉에 빠져서 자기가 알고 있는 걸 다 토해내는 것 같은데.
차분히 정보를 머리로 정리하다가 그냥 넘길 수 없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브, 브랜드 가문의 저택에서 의식을 행하려고 지금 준비 중인데 그걸……!”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 나가 녀석의 멱살을 낚아챈다.
“브랜드 가문?”
다이니의 가문이지 않은가.
“켁! 케엑! 네, 넵! 맞습니다아! 그쪽으로 지금 이자벨라랑 마몬교가 전부 모인다고 들었습니다아!”
제발 살려달라며 발버둥치는 경비대장.
‘신성기사단에서 뒤쫓고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당장에는 마몬교가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라고 판단했기에 다이니를 내버려두고 당장에 위협이 되는 레비아탄교를 정리하러 온 거였는데.
딱 그 타이밍에 맞춰서 일을 벌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움직임을 보고 행동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다이니가 그쪽이랑 연결된 것 같지는 않고.’
조모인 델나인가.
친구의 할머니이자 피해자라는 것에 선입견이 씌워져 그녀를 놓친 스스로를 한탄하면서도 몸을 틀었다.
“한나!”
내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감지한 한나가 다급히 다가온다.
“예, 단장.”
“너는 브랜드 가문에 한번 가봤으니까. 위치가 어디야? 얼마나 걸려?”
“……헤리투스라는 마을에 있습니다만, 로베르담에서는 가까워도 여기서 그곳까지는 쉬지 않고 달려도 며칠은 걸릴 겁니다.”
시간이 없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의식이 시작된 상황.
당장 베히모스를 소환해서 달린다고 해도 늦는다.
발이나 동동 구르면서 가만히 지켜만 봐야 하는 건가.
탄식이 뒤섞인 한숨이 푹 내쉬어지는 순간.
“다, 단장?”
당혹스러움에 한나의 목소리가 음을 이탈한다.
무슨 일인가 싶던 나는 한나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였고.
내 하반신은 검은 마나에 휩쓸려 사라진 상태였다.
“미친! 이거 뭐야!”
점차 검은 마나에 휩쓸려 상반신까지 사라지려는 상황.
톰과 넬슨 같은 다른 단원들도 황급히 나한테 달려온다.
“단장! 다리가 사라졌습니다!”
“저 이거, 거리 공연하는 마술사가 하는 거 봤습니다! 역시 단장! 어느새 승리의 퍼포먼스까지!”
“얼뜨기들아! 개소리 하지 말고 손잡고 당겨!”
바로 단원들한테 나를 잡으라고 손을 뻗었으나, 내 양손마저 검은 마나에 휩쓸려 사라졌고.
“나 죽어!”
곧이어 내 전신이 검은 기운에 뒤덮였다.
* * *
“…….”
이곳저곳 파손된 브랜드 저택을 바라보며 다이니는 사색에 잠겼다.
분명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낡았지만 중후하며 깔끔하던 저택이 반파된 채로 어질러져 있다.
그것이 이제는 일상이라는 단어로 돌아갈 수 없어진 다이니의 삶을 대변하는 느낌이 들었기에 그녀의 가슴은 괜히 먹먹해져만 갔다.
이자벨라와 델나는 다이니를 굳이 포박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앞뒤에서 죄여오듯 조용히 걸을 뿐이었고 그렇게 그녀와 저택의 지하로 향했다.
로베르담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딱 사흘 정도 걸렸다.
아마 이안도 지금쯤이면 목적지에 도착했겠지.
한창 전투를 벌이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저런 생각하며 다이니는 두 사람을 따라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다.”
박살 난 식탁 밑을 가리키는 델나.
그 말에 이자벨라는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
그 끝에서 쏘아진 마력탄이 식탁 잔해들을 박살 내며 자욱한 연기와 함께 그 밑에 있는 작은 통로를 드러낸다.
“……!”
이런 곳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다이니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인다.
그러면서도 할머니가 왜 새벽에 식당에서 습격을 당했는지 이제야 알아차린다.
설마 늘 밥을 먹던 식탁 밑에 이런 통로가 숨어있었을 줄이야.
등줄기가 오싹해지면서도 정말로 할머니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절망이 다시 한번 다이니를 때리고 들어왔다.
지독하게 어두워 발밑도 제대로 보이지 않아 깊이를 알 수 없는 계단.
아래로 내려가자 드디어 옅은 불빛이 반겨준다.
지하 내부는 일종의 제단이었다.
어떻게 보면 예상하고 있던 광경이었던지라 제단의 존재 자체는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것들은 소녀의 눈살을 절로 찌푸려지게 만들었다.
즐비한 시체들.
벌레와 악취가 꼬이지 못하게 마법적으로 처리를 해둬서 외형은 깔끔했지만.
그래도 창백한 피부로 눈을 뜬 채로 나열되어 있는 시체들을 보는 순간 다이니는 속이 울렁거렸다.
자신도 저렇게 되는 걸까.
문득, 그런 두려움이 솟아올라 왔으나 주먹을 꽉 쥔다.
무서워하면 결국 지는 거다.
어차피 자신은 이미 끝까지 왔고, 여기까지 와서 약해진 모습으로 무릎을 꿇고 빌 생각은 없었다.
– 어쨌든. 적어도 그때는 당당함이 있었잖아.
“그래.”
– 그렇게 쫄기만 하다가는 샬롯한테 평생 못 이긴다?
“그렇겠지.”
레비아탄교를 토벌하기 위해서 떠나기 전, 이안 아이넬이 자신에게 해준 말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스스로를 잃었다는 말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임을 인지하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다이니는 원래 자신의 당당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태도를 흐름에 휩쓸려 잃었음을 깨닫는다.
“무슨 생각 하니?”
스스로를 마몬교의 수장이라고 소개했던 여인이 스산한 미소와 함께 얼굴을 내민다.
창백한 피부는 하얀 가면을 쓴 것만 같았고, 텅 빈 공허한 눈동자는 앞의 여인에게 인간성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여인을 굳이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공포라는 말 이외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심호흡하며 다이니는 입술을 으득 문다. 어차피 죽는다면, 덜덜 떨며 스스로를 잃어버린 소녀가 아니라.
조금 불량하지만 당당한 다이니 브랜드가 되고 싶었다.
“널 어떻게 조질까 고민했어.”
“후후.”
뭐가 그렇게 흥미로운지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주변을 둘러본다.
시체 중 하나가 차고 있던 피가 눅진하게 묻은 채 굳어버린 검을 가지고 오더니 다이니에게 건넨다.
“해보자고?”
검을 휙 낚아챈 다이니는 그대로 그것을 뽑아 들었다.
자신이 사용하던 것보다 무게가 나가긴 했으나 그래도 검을 쥐었다는 것만으로 진정되었다.
“그거 아니? 나는 지명수배범이야. 신성 기사단이 특별히 내 뒤를 쫓고 있단다.”
신성 기사단?
아득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자신과 수준 차이가 있는 기사단에서 이 여인을?
“네가 있던 로베르담을 습격한 가르간테를 풀어준 게 바로 나였거든.”
그 말을 듣는 순간, 다이니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온다.
나이트 아카데미에 있던 다이니였지만 가르간테의 거대한 몸집과 위압은 자신 역시 느꼈었다.
공기를 찢고 들어오는 포효는 아직도 꿈에 종종 나올 정도였다.
“지금도 신성 기사단이 내 뒤를 쫓고 있어. 네가 시간을 조금만 벌면 여기에 찾아올 거야.”
“……!”
자신의 감정이 좌지우지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다이니였으나, 그렇다고 검을 놓을 순 없었다.
저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검을 놓을 생각은 없었다.
속속들이 계단을 내려오는 광신도들.
숫자는 레비아탄교보다 적었지만 그들의 안광은 붉게 빛나고 있었고, 몸에는 검은 기운이 둘러져 있었다.
밀려날 수는 없다.
‘어차피 죽는 건 똑같아.’
검을 쥔 다이니의 손이 재빠르게 휘둘러진다.
마지막일 수도 있는 전투.
후회를 남기지 않을 작정으로 그녀는 전력으로 검을 휘둘렀으나….
캉!
너무나 허무하게, 다이니의 검이 허공으로 날아가며 근처에 있던 시체더미에 박혀 들어갔다.
어느새 이자벨라의 손에 쥐어진 기괴한 모양의 검붉은 창.
혈관이라도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그것은 살아 숨 쉬듯 두근거리고 있었으며 이 장소의 누구보다도 불길한 기운을 쏟아내고 있었다.
“성물 아르가스. 300년 전, 마몬님께서 전장에서 직접 휘두르신 창이란다.”
“……아?”
“영광으로 알렴, 마몬님의 재물이 된다는 것에.”
콰득!
날아든 창에 살이 짓이겨지며 다이니의 몸이 붕 떠오른다.
벽면을 향해 날아가던 창은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다이니를 꿰뚫은 상태로 제단의 정중앙에 박혀 들어갔다.
“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토해지고, 눈물이 찔끔 흐른다.
창이 꿰뚫은 복부에는 피가 뚝뚝 떨어져 제단을 적신다.
살려달라는 말이 꿰뚫린 복부에서부터 치고 올라와 목을 타고 혀에 닿았지만.
“……할, 머니.”
자신의 비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광신도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의식을 준비하는 델나를 보는 순간 이를 으득 물며 구걸을 삼킨다.
“복… 수, 할 거야.”
다이니의 피를 받아, 바닥에 그려지는 검붉은 마법진.
그녀의 목에 걸린 마몬의 로자리오도 반응하기 시작한다.
무표정하던 이자벨라가 기괴하게 뒤틀린 미소를 짓는다.
“자아, 탐욕의 대악마이시여! 300년 전, 이 대륙에 진실을 전파하러 오신! 어리석은 인간들을 벌하러 오신 필요악이시여!”
“지, 랄!”
“이 자리에, 당신의 신도들이 있습니다! 또한 당신을 위해 가증스러운 은빛사자의 기원을 잇는 기사들을 먹잇감으로 준비해 뒀습니다!”
신성 기사단이 쫓아온다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것조차 이자벨라의 의도대로였다.
그들은 소환된 마몬에게 딱 좋은 먹잇감이자 복수의 대상이 될 테니까.
“이곳에 오셔서! 당신의 만찬회를! 다시 한번 대륙을 집어삼키실 당신의 탐욕을 우리에게 보여주소서!”
검은 기운이 몽글하게 피어오르며 창을 타고 올라와 다이니를 감싸고 든다.
창에 꿰뚫려서인지 아니면 어두운 안개와 같은 기운 때문인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눈물로 붉게 물든 눈으로, 다이니는 이자벨라를 또렷이 노려보며 저주했다.
“너를, 죽일 거야! 우리 부모님! 내 삶! 그 모든 걸 앗아간! 너를 죽일 거야아아아!”
그 소리를 들은 이자벨라의 입 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한다.
“고마워, 다이니 브랜드.”
그것은 어디까지 찢어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기이한 미소가 되었고, 또한 이자벨라는 진심으로 다이니에게 감사하고 있었다.
“마몬님을 위해 살아와 줘서.”
아니다.
“아니야.”
아니라고.
“그런 게 아니야!”
억지로 발버둥 쳐보지만 이미 검은 기운은 더욱 거대해지며 천장에 닿았다.
“내 삶은!”
뚝뚝 흐르는 눈물에 머리가 아플 지경.
흐려질 것만 같던 의식은 오히려 더욱 또렷해지지만 힘은 들어가지 않는다.
“그딴 악마 새끼를 소환하려고 있는 게 아니었단 말이야아아!”
거대하게 퍼졌던 검은 기운이 응축되어 다이니를 덮쳐온다.
이제는 그녀의 비명도, 모습도 아무 것도 바깥으로 닿지 않게 되었고.
곧이어.
검은 기운이 하나의 형체를 갖추기 시작한다.
“음?”
거기서부터 이자벨라는 뭔가 의아함을 느꼈다.
마몬이라고 보기에는 실체화되는 형체가 조금 작은 것도 문제였지만.
아직도 다이니의 의식이 남아있다는 것도 문제였다.
아니, 오히려 다이니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환되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소환된 마몬의 얼굴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발버둥도 멈춘 채로 입을 벌리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이자벨라가 다급하게 다가가려 했으나,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광풍이 불어옴과 동시에 검은 기운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그곳에 서 있는 건….
검은 생도복을 입은.
은발의 소년.
“와, 죽는 줄 알았네.”
방금까지 본인이 죽는다고 생각했던 이안 아이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