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와, 죽는 줄 알았네.”
눈앞에서 전신이 사라진다는 경험은 어디서도 쉽게 체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리 나라도 침착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이제 곧 찾아올 새벽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던 밤하늘.
거리의 소란에 이르게 눈을 떠 창밖으로 고개를 내민 시민들.
과오를 짊어졌다 무게에 짓눌려 죽어나간 광신도들.
그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내 눈앞에 펼쳐진 건 또 다른 혼란스러운 풍경.
시체더미들이 마치 벽을 이룬 것처럼 늘어져 있으며, 그 뒤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는 신도들.
창문이 없는 건지 아니면 지하인지 모르겠으나 촛대에서 피어오른 작은 불빛을 제외하고는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제단.
그리고.
내 바로 옆에서 창에 꿰뚫린 채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다이니 브랜드.
“너, 뭐……야?”
괴로운 와중에도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다이니가 물어 왔다.
오히려 내가 묻고 싶은 상황이었으나 그녀의 복부에 꽂혀 있는 창에 눈이 간다.
“아르가스?”
300년 전, 마몬의 전차를 끄는 것이 베히모스였다면 마몬의 손에 쥐어진 창은 아르가스였다.
마몬의 덩치에 걸맞게 거대한 크기를 지녀 받아치는 것조차 버거울뿐더러 독특한 성질 때문에 상대하기 껄끄러운 물건.
“이게…… 왜 여기에?”
분명 내가 마지막 전투에서 반 토막을 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
확실히 지금 보니 내가 알던 아르가스보다는 훨씬 짧았다. 뒷부분이 잘려나가서 천으로 감겨 있었다.
꾸드득!
내게 반응하듯 아르가스가 뚜둑 소리를 내며 움직이려 한다.
“아아아악!”
그 탓에 다이니의 날선 비명이 더욱 길게 울렸고, 나는 뭐라도 하려 했으나.
푸우욱!
“꺄아아아아악!”
아르가스가 뽑혀 나오며 공중에서 잠시 갈등하더니 내 반대쪽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일단 입고 있는 겉옷으로 다이니를 지혈한다.
이렇게 해줘도 다이니의 창백한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너, 너, 마법…… 배운 거…… 치유.”
“씨! 그런 어려운 걸 배웠겠냐고!”
“……그냥, 물어… 봤어.”
치유 마법 같은 어려운 마법을 내가 배웠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이니 또한 기대도 안 했다며 헛웃음과 함께 입가에서 피를 토해낸다.
“야…….”
기운 없는 다이니의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자긍심.
“그래도…… 구걸은 안 했어.”
“…….”
“나답게.”
후우.
짙은 숨을 내뱉으며 다이니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아무래도 피가 점점 흘러 몽롱한 시야에 어지러움을 느낀 듯싶었다.
“발악, 정도는 했어.”
“눈 감지 마, 멍청아!”
“슬퍼?”
꼬맹이 주제에, 죽음의 문턱 앞에서 씨익 웃으며 다이니.
덜덜 떨리는 손이 내 뺨을 감싸온다.
“우리, 그 정도 사이는 아니잖아.”
“하.”
저번에 내가 병원에서 했던 말로 위로해 오는 그녀.
어이가 없었지만 참으로 그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려, 줄 수 없으면.”
“…….”
“복, 수.”
더 이상 말하기 힘든지 다이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통에 신음을 흘린다.
하지만 충분히 이해했다.
“그래.”
결국 나는 마법사나 사제가 아닌 기사다.
뒤에서 보조하고, 사람을 치료하는 존재가 아니라.
방패로 적을 막아내고, 검으로 적을 쓰러트리는 기사.
조심스럽게 다이니를 바닥에 눕힌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는 아르가스를 쥐고 나를 향해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여인이 있었다.
목에 걸린 마몬의 로자리오.
뿐만 아니라 찐득한 공기가 짙게 눌린 제단 주변에 널린 마몬과 관련된 형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상황인지 대강 머리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경계하며 물어오는 여인.
“아르가스가 주도권을 내어주려고 했습니다. 혹, 제 예상이 맞다면…….”
“네가 이자벨라냐?”
“……!”
여인의 눈이 동그랗게 뜨이며 정답임을 알려온다.
신성 기사단조차 꼬리를 잡지 못해서 해매고 있다던 존재.
렉터는 숨어 있는 그녀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였으나, 막상 그녀 쪽에서 이렇게 나를 불러들였다.
천재일우의 기회.
“내가 뭐 같아?”
내 질문에 이자벨라는 차분하니 심호흡하며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젓는다.
“생각해 보면 마몬님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을 리 없지.”
당황스러운 상황에 사고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며 이마를 손으로 한번 꾹꾹 누른 이자벨라.
마몬을 소환하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한 이자벨라는 혀를 차며 몸을 틀었다.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무릎을 꿇고 기도 중이던 신도 중 하나의 앞에 선 이자벨라.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든 신도는 다름 아닌 다이니의 조모, 델나였다.
“선지자님?”
“실패에는 늘 피 흘림이 따릅니다.”
푸욱!
아르가스가 정확하게 델나의 심장 부근을 꿰뚫는다.
델나는 제대로 된 유언도 남길 수 없었다.
아르가스는 마치 포식하듯 델나의 심장을 먹어치웠고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로 델나는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숨을 내쉰 이자벨라는 선언했다.
“죽여. 빠르게 벗어난다.”
처억!
이자벨라의 한마디에 동시에 일어나는 광신도들.
숫자는 적었지만 렉터의 휘하에 있던 건달패 같은 신도들과는 전혀 달랐다.
신성 기사단의 추격을 피해 도망치고 있다고 했으니, 정예 중에서도 정예만 남은 거겠지.
마몬의 검은 기운에 휩싸여 붉은 안광을 빛내고 있는 놈들.
마인화가 익숙해 보이는 녀석들이다.
마수화를 시켜주는 레비아탄과는 다르게 개인 기량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켜 주는 마인화.
하지만 참 우습게도.
300년 전, 내 앞에서 마인화를 해왔던 광신도는 모두 죽었고.
그건 지금 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손을 내밀자….
“어어억!”
“무, 슨!”
광신도들이 하나둘 쓰러진다.
축복처럼 그들의 전신을 감싸며, 마몬을 향한 믿음의 증거라 부를 수 있는 기운들.
그 기운들이 나의 손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하수로에서 샤카렌과 싸울 때도 동일했다.
마몬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은 나를 대적하지 못한다.
신성력을 가진 사제가 신에게 대항하지 못하는 것처럼.
“……!”
갑작스러운 상황에 이자벨라의 발걸음이 돌아온다.
그녀는 이빨을 으득 물면서도 아르가스를 뻗었다.
나에게 흡수되던 마몬의 기운들 중 일부가 아르가스와 이자벨라에게로 돌아간다.
이자벨라의 방해로 모든 기운을 흡수하진 못했다.
때문인지 광신도들 중에서도 몇몇은 일어나서 몸을 추스른다.
그 사이에서 입술을 으득 물며 나를 노려보는 이자벨라.
“너, 도대체 뭐야.”
억울한 목소리로 물어 오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발악이 담겨 있었다.
“네가 뭔데! 네가 뭔데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냔 말이다! 그분의 뜻을 따르는 우리의 믿음을 흔드느냔 말이다!”
외부에서 핍박을 당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당장에 신성 기사단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
하지만 이렇게 본인들의 신앙을 정면에서 흔들어 온 존재는 없었기 때문인지 이자벨라는 꽤나 흥분한 듯했다.
“웃기네.”
나도 모르게 조소가 흘러 나왔다.
사실, 마몬이 가진 힘에 대한 무게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너희는 본 적도 없잖아.”
역설적으로 그것을 상대해 왔던 나이지 않은가.
“그 괴물이 얼마나 추악했는지.”
무엇 하나 제대로 겪어본 적도 없으면서.
“대악마를 섬기면서 대륙을 광기로 집어삼킨 자들이 얼마나 역겨웠는지.”
쌓여있는 시체더미와 인신공양?
300년 전, 진정으로 마몬을 섬기던 미친놈들과 비교했을 때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믿음과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하던 그들이 만들어낸 광경을 너희가 딱 한번이라도 봤으면.”
뜨거운 숨이 토해진다.
탄식과 증오로 얼룩진 감정이 내 앞에 있는 어리석은 신도들을 질타한다.
“이따위 짓거리를 감히 내 앞에서 하진 못했을 텐데.”
“너…….”
침을 꿀꺽 삼키며 이자벨라는 아르가스를 쥔 손에 더욱 힘을 준다.
마치 자신의 신앙이 틀리지 않았음을 호소하듯.
“뭐냐고.”
이렇게까지 상상력이 없어서야 쓰겠나.
손끝에서 푸른빛의 마나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미약한 촛불만이 힘쓰던 제단의 어둠을 밝히는 순수한 빛.
그것은 유려한 필기체처럼 재빠르면서도 섬세하게 마법진의 형태로 만들어진다.
마법진 안에서 쥐어진 묵직한 무게감.
나는 검을 뽑듯이 크게 손을 휘둘러 그것을 제단 위에 우뚝 세운다.
콰앙!
푸른 바람에 흩날리는 거대한 하얀 깃발.
사자의 형상을 띄운, 역대 최고의 기사단이라는 상징이자.
인류가 마몬을 몰아내고 승리했음을 알리는 명확한 증거.
대사자깃발이 정확하게 제단의 중앙에 꽂혀 들어가며 빛을 뿜어낸다.
역소환 이후 재소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소환되어 있는 소환수들을 다시 내 곁으로 불러오는 건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
테르토나 샤이먼에게 배운, 소환사가 싸우는 방식.
펄럭이는 깃발에서 흘러내리는 마나가 점차 사람의 형상을 이루기 시작한다.
방금까지 레비아탄교를 토벌했던 은빛의 기사들이 다시금 이곳에 등장한다.
“은빛, 사자…….”
혀가 마비된 듯 말을 띄엄띄엄 내뱉은 이자벨라.
방금까지 핏줄을 세우며 자신의 믿음을 토해내던 그녀의 눈가가 흔들린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눈동자가 닿은 곳은 나였다.
“은발, 은빛사자, 기사…….”
하나씩 키워드를 입에 올릴 때마다 이자벨라의 목소리가 떨려온다.
그리고 그 모든 사고를 엮어 해답에 도달했을 때.
“라인, 레이먼드?”
그때가 바로 이들의 최후였다.
“진실을 아는 것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법이지.”
검을 치켜 올린다.
나의 기사들은 그것만을 기다렸다는 듯 다시금 광신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레비아탄교를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이미 서로가 찐득하리만치 질긴 악연으로 묶여있는 마몬교.
은빛의 기사들은 더욱 열성적으로 검을 휘두르며 밀고 나간다.
일말의 자비와 용서도 없는 사자의 이빨이 인간성을 버린 광신도들을 하나씩 물어뜯어 갔고.
나 역시 이자벨라를 향해 달려갔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아아!”
이자벨라의 의문은 사실 나 역시 꽤나 여러 번 스스로에게 했던 물음이었다.
어떻게 나는 여기 있는 걸까.
300년 전.
라인 레이먼드로서 대악마 마몬과 동귀어진 했던 내가 어떻게 이안 아이넬이라는 소년의 몸으로 환생할 수 있었던 걸까.
이곳에 선 이후에야 나름의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너희가 마몬을 부활시키려던 거랑 비슷한 흐름이지 않을까.”
언제가 다시 찾아올 대악마를 막아내기 위해서.
또 한 번 대륙을 휩쓸 학살의 피바람에 어떻게든 대응하기 위해서.
인류 최고의 대마법사가 무슨 수를 부린 거겠지.
대악마의 신자들이 어떻게든 대륙에 자신들의 신을 불러내어 지옥으로 만들려는 것처럼.
인류 역시 유일하게 대악마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던 나를 소환해 낸 게 아닐까 싶었다.
“악착같이 기어 나와 봐.”
검을 쥔 손에 더없이 힘이 들어간다.
스스로를 향한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가 확립된다.
“언제까지고 너희를 막아주마.”
나는 인류의 기사.
그 거대한 발을 대륙에 내딛기 위해서는 우선 나의 시체를 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