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87
87화.
마리아가 떠난 지 며칠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주말, 나는 지난번에 약속을 잡은 테르토나 샤이먼과 만나고 있었다.
메이지 아카데미로 내가 찾아가려 했으나, 주변의 눈초리가 부담스럽다며 테르토나가 외부 카페로 약속 장소를 잡았는데.
옛날 아카데미에서 생긴 트라우마 때문인지 안 그런 척하면서도 아카데미에 있는 걸 껄끄러워했다.
“이런 식으로 사용하면 되는 거다. 느껴지지?”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어린 아이 크기의 인형.
덕분에 음료들을 바닥에 치워놓을 수밖에 없었고 주변에서는 우리를 이상하게 보고 있다.
남자 둘이서 여자 인형 하나 가지고 얘기하고 있으면 당연히 이상하게 보겠지.
“이걸 꼭 여기서 봐야 하는 겁니까?”
입을 삐죽이며 물었으나 오히려 테르토나 쪽에서 역정을 낸다.
“어허, 집중해야지. 이 테르토나가 만들어 낸 소환마법을 처음으로 배우는 거다. 영광스럽게 생각해.”
“가르쳐 주시는 건 좋은데…… 에휴.”
하긴 말이 통하는 사람이면 이런 장소에서 마법을 가르칠 생각을 하진 않았겠지.
바닥에 내려놓은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고 테르토나의 말에 집중한다.
“자, 이걸 봐라. 소환마법진으로 단순히 불러낸다는 개념이 아니다. 일종의 통로를 열어주는 거다. 인형과 정령의 통로를.”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확실히 그가 소환마법에 관해서는 천재라는 걸 느낀다.
나와의 수준 차이가 극심하다는 것도.
소환마법에 여러 응용을 하는 걸 보면 정말로 평소 찌질한 테르토나가 맞나 싶었다.
“어려워 보이겠지만 하다 보면 의외로 이게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걸 알게 될 거다.”
“그런데 무조건 정령만 넣을 수 있는 겁니까?”
사실 정령이 크게 필요한 건 아닌지라 조금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테르토나 역시 턱을 쓰다듬으며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아무래도 정령이 가장 범용성 있게 다룰 수 있으니까. 게다가 그들은 보통 인간에게 호의적이거든.”
“……저번에 인형에 넣어진 애들은 그렇게 안 보이던데요.”
“인형에 들어갔으니까 걔들이 신경질 부려도 적잖이 넘어갈 수 있다.”
괜히 말을 정정하는 테르토나.
어쨌든 다시 내 질문에 대해서 답을 내놓는다.
“정령만 넣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실체가 없는데도 의지가 있는 건 보통 정령이 보편적이지.”
“음.”
“괜히 이상한 거 집어넣었다가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라.”
“아, 악령이 담긴 인형, 그런 느낌인가요?”
300년 전에도 종종 있던 괴담.
악령이 들어간 인형이 아무리 버려도 돌아온다던가, 소유자는 저주를 받는다 같은 식의 인형들이 있지 않은가.
이 시대에도 그런 식의 괴담이 있는 걸 보고 신기했던 적이 있다.
“크흠, 개중에는 단순 괴담이 아닌 것도 있다.”
“진짜 악령이 들어가 있는 인형이 있다고요?”
“메이제렌의 마탑 중 하나에서 벨이라는 여자인형을 금고에 보관하고 있단다. 그건 진짜 악령이 들어가 있지.”
“오.”
그런 것도 있구나 싶어서 신기하던 찰나.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인형에 사념을 넣는 방식은 처음으로 만드신 거라면서요.”
악령이 인형에 스스로 들어간 게 아니라면 누군가 이미 관련해서 마법을 만들어둔 게 아닌가?
내 질문에 테르토나가 헛기침하더니 괜히 시선을 돌린다.
잠깐만.
“설마…… 본인이 만드셨어요?”
“아니, 그때는 내가 좀 어리숙하기도 했고. 그…… 정령보다는 다른 걸 넣어보고 싶기도 했거든.”
“…….”
어이가 없다.
저주인형을 직접 만든 당사자가 눈앞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걸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네!”
그런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이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갈색 머리카락에 작은 체구, 목에는 이빨 모양 로자리오를 걸고 있는 다이니였다.
“음? 너도 외출했어?”
첫 주말 외출이 샤카렌과의 오붓한 데이트였기 때문에 외출 자체를 꺼려하던 다이니.
웬일인가 싶었는데 그녀는 답답하다며 성큼성큼 내게 다가온다.
“아니! 지금 뭐 하는 거야? 너 이렇게 있으면 안 되잖아.”
“왜?”
다이니가 내게 뭔가 한마디 하려다가 멀뚱히 지켜보고 있는 테르토나를 보더니 슬며시 다가와 귀에 속삭인다.
“그, 마리아가 구해달라고 했잖아.”
“그랬지.”
마리아에 관해서 하도 걱정하고 있길래 우리 동아리 멤버들에게는 구할 수 있다고 간단하게 말해뒀다.
아마 주말인 오늘 내가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네가 혼자 간 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돼서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아? 지금 샬롯이랑 베런도 엄청 돌아다니고 있어.”
“뭘 괜히들 그러고 있냐. 주말에 쉬어야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다이니. 나는 괜히 헛기침하며 답해준다.
“다 계획이 있어. 마리아랑도 얘기된 사안이니까 걱정하지 마.”
“우리한테도 말해주면 안 되는 거야?”
심술이 난 듯 보이는 다이니의 그 말은 조금 의외였다.
마리아를 도와주는 일에 이렇게까지 열정적일 줄은 몰랐으니까.
다른 애들은 그냥 기다리라고 하고 나 혼자 해결하고 오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의외로 정이 깊었던 모양이다.
“너희가 마리아를 그렇게 친하게 여길 줄은 몰랐네.”
“나름 같은 동아리잖아.”
뭐 다들 친하게 지내면 나에게도 좋다.
나중에 다 같이 은빛사자로 데려갔을 때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것보다야 훨씬 낫지.
“다른 애들한테 가서 말해둬. 나는 잠깐 시간 좀 보내다 갈 거니까.”
“그냥 애들도 이쪽으로 부를게.”
그리 말하며 밖으로 나간 다이니.
다시 소환마법에 관해서 설명해 달라고 테르토나를 바라봤으나, 그는 입을 꾹 다문 채로 나와 눈을 마주친다.
“무슨 문제 있으세요?”
내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아무 말도 안 할 것 같아서 툭 던지자 그는 헛기침하며 괜히 투덜거린다.
“좋은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구나.”
“예?”
“나랑 다르게.”
“…….”
도대체 학창시절에 뭔 일을 당했으면 이런 건가 싶었다.
결국 샬롯과 베런을 데려온 다이니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나와 테르토나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갔다.
중간중간 샬롯이 인형을 보고 신기해하면서 만지작거리거나 다이니가 삐죽거리면서 한마디 하는 식으로 거슬리긴 했지만.
테르토나의 짧은 강의를 통해 배운 건 분명 있었다.
“그 인형은 선물로 주마.”
“…….”
“연습하면서 쓰렴.”
마지막에 각자의 아카데미로 돌아가면서 테르토나가 나한테 어린아이 크기의 인형을 선물로 준 덕분에 인형을 들고 기숙사로 돌아가게 되었다.
“인형 부럽다.”
“잘 때 껴안고 자는 건 아니지? 진짜 소름 돋을 것 같은데.”
샬롯과 다이니가 한마디씩 거드는 쓸데없는 소리를 들으며 기숙사로 향하던 와중.
가장 앞서가던 베런이 걸음을 멈추곤 손을 들어 앞을 가리킨다.
“메릴 레이로즈다.”
“음?”
베런의 큰 덩치에 시야가 가려져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자 정말로 남자 기숙사 앞에는 며칠 전 마리아를 데려갔던 메릴 레이로즈가 당당하니 서 있었다.
그 옆에는 곤란한 표정의 헥토르 교수가 있었다.
그는 우리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좋지 못한 타이밍에 왔다는 느낌.
“은발 남생도. 거기 있구나?”
뾰족하게 찌르고 들어오는 메릴의 신경질적인 목소리.
그녀는 발걸음 하나하나에서부터 묵직한 분노가 치고 들어온다.
지는 걸 싫어하는 베런이었기에 억지로 내 앞에서 대신해서 버텨주려고 했으나, 그의 안색이 좋지 못한 걸 보고 내가 앞으로 나섰다.
“이안 아이넬?”
“예, 제가 이안 아이넬입니다.”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눈을 맞추며 답하자 메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려온다.
고작 생도가 자신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것 자체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보였다.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알고는 이렇게 당당한 것이냐?”
“당당하지 못할 짓을 한 적은 없는데요.”
찌르고 들어오는 살기는 보통 것이 아니었다.
지난번에 마리아에게 향하던 것보다도 훨씬 폭력적인.
일종의 증오마저 엿보이는 살의에 마리아가 정말 제대로 도발을 해냈구나 싶었다.
자신을 구해달라던 마리아의 제안을 나는 수락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딱 하나.
마리아가 해줘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바로 나를 레이로즈 가문으로 불러들이는 것.
아카데미에 묶여 있는 나를 정식으로 레이로즈 가문으로 초대만 해준다면 나름대로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나는 마리아에게 걸렸던 마법을 통해서 그녀의 과거를 봤으니까 그걸 통해서 교섭의 재료로 사용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일부러 기다렸다.
마리아가 성공한다면, 내가 굳이 억지로 찾아가지 않더라도 레이로즈 가문에서 나를 데려가려고 할 테니까.
‘방법은 꽤 많이 알려줬는데.’
레이로즈의 검술을 비판했다고 하거나, 혹은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검술을 마리아에게 보여줬다 등등.
레이로즈라는 가문 자체가 워낙 콧대가 높다 보니 사실 도발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메릴이 고작 생도인 나를 찾아와 이 정도 적대심을 보이고 있을 정도면 마리아의 도발이 굉장히 효과적으로 먹혀든 모양이었다.
‘나름 잘해냈네?’
충분하다.
내가 레이로즈 가문으로 가지 못했을 경우에만 마리아를 구하기가 어려워질 뿐이지.
레이로즈 가문으로 갈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하? 당당하구나?”
코웃음 치며 팔짱을 끼는 메릴.
도대체 무슨 도발을 어떤 식으로 전했으면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건가 싶었다.
이제는 좀 궁금한 수준.
“그래, 당당하시겠지. 왜? 평민의 신분으로 가문을 일으켰다고 마을에 가서 자랑이라도 할 생각이냐? 네 어미가 좋아라 하겠어.”
“선 넘지 마시죠.”
어렸을 때부터 약하던 나를 남편도 없이 열심히 키워주신 분이다.
이번 방학에는 바쁜 일이 워낙 많아서 찾아뵙지 못했지만 편지는 틈틈이 주고받는 중이었다.
내가 역으로 화를 내자 오히려 메릴이 어이가 없다면서 이를 으득 물더니 심호흡한다.
“후우, 그래. 이안 아이넬. 따라와라, 레이로즈 가문으로 너를 초대하지.”
“예, 바라던 바입니다.”
갑자기 내가 레이로즈 가문으로 가게 되는 상황을 보고 있던 일행들이 당황했으나 나는 고개를 돌려 걱정하지 말라고 신호를 주었다.
모든 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하, 어이가 없어서는.”
바로 떠나갈 짐을 챙기기 위해서 기숙사로 가려던 나를 향해 참지 못한 메릴이 한마디했다.
“꼬마야, 내가 하나 충고하는데.”
“꼬마?”
말투가 거슬려서 슬쩍 돌아보자 메릴은 나를 향해 역겹다는 티를 숨기지 않고 말했다.
“혼인도 안 한 여자애를 애엄마로 만든 건 당당할 수가 없는 거란다.”
“……네?”
나도 모르게 공손해지는 순간이었다.
* * *
위대한 마법사들의 도시.
늘 블루 클라우드가 깔려서 햇빛이 잘 들지 않는 회색의 도시.
하지만 오늘만큼은 하늘에 짙게 퍼져 있던 블루 클라우드가 마치 무언가에 베인 것처럼 직선으로 갈라져 있었고 그 틈을 타고 노을이 내리쬐고 있었다.
수많은 건물이 양단되고,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쓰러진 사람의 무더기 위에서 호리병에 담긴 술을 꼴깍꼴깍 마시는 늑대 귀의 여인.
다른 수인노예들은 그녀가 만들어준 기회를 틈타서 자신들의 목줄을 부수고 도망치고 있었으나.
감사 인사 하나 하지 않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도 여인은 별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을 구해주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인 건 아니다.
그냥 겸사겸사 했던 일이었기에, 감사를 받을 건 아니라고 그녀도 생각하고 있었다.
“푸하!”
술을 다 마신 여인은 곧바로 품에서 장죽을 꺼내 들어 불을 붙이곤 입에 문다.
아까 주워놓은 기괴한 악령이 담긴 인형.
이를 슬쩍 바라보며 장난기 섞인 부드러운 미소가 입가에 그려진다.
이런 물건 신기한 물건을 선물로 주면 잊을 수 없는 재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멀뚱히 내리쬐는 노을을 받던 그녀는 천천히 일어나 여행길을 떠날 준비를 한다.
“로베르담의 나이트 아카데미?”
자신의 행선지를 다시 한번 읊조린 여인은 어이가 없다며 헛웃음과 함께 연기를 내뿜는다.
“배울 게 뭐가 있다고 거기 있대.”
늘 예측이 힘든 자신의 친우를 떠올리며 여인은 노을빛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