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외전-후일담(5)
문무신료들이 무신정변 이전 체제로 복고(復古)를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입장에선 무신들이 집권한 이래로 숱하게 일어난 민란과 변란에 지긋지긋해져서일지도 모른다.
실제 무신정변 이전의 체제로 복고를 주장한 이들은 여럿 있었고, 경대승도 그것을 주장했다는 말도 들은 것 같다.
그러나 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경들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가?”
“예?”
그런 나의 되물음에 그들은 아직도 이해 못 했는지 얼빠진 목소리로 되려 물었고 나는 그런 그들에게 재차 확실하게 대답했다.
“양광과 이세민의 사태를 거론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소리이긴 하나 경인년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자는 것 또한 아니 될 소리일 텐데 어찌 경들은 그런 말을 하는가?”
“저, 전하?!”
“전하. 경인년 이전의 복고가 아니 되다니요?”
그제야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고 확인한 신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 인식을 부수지 않으면 안 된다.
“경들이야말로 어찌 경인년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생각들 하는가?”
“전하. 경인년 이전의 날은 태평성대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경인년의 난이 일어난 이후 나라에는 비명과 고통이 끊이지 않는 나날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찌 오늘날 경인년 이전을 바라지를 않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분명 경인년의 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죽고 국정이 농단되어 나라가 어지러워졌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간신들에 의해 조정에 제대로 된 보고조차 닿지 못해 전국에는 필요도 없는 고된 노역에 불려간 백성들이 돈이 없어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고생하였고, 그런 남편을 위해 어느 여인은 자신의 머리를 잘라 팔아 음식을 구하는 일까지 일이 있었던 것이 경인년 이전의 일이다. 이것이 단순한 백성들에게만 그치는 것일까? 환관과 문신들이라는 사이에서는 협력해야 할 나라를 지키는 무인들을 홀대하고 경시하고 놀려먹는 패악한 문화가 만연하였는데 그런 나라가 정말 태평성대이며 돌아가자고 하는 것인가?”
“…….”
그 누구보다 무신들을 혐오할 것이라 생각했던 고려 왕실의 세자인 내가 무인들을 옹호하는 발언에 그곳에 있는 신료들은 물론 무신들도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고려 왕실은 단순히 국정을 농단당한 수준이 아니다.
증조할아버지가 되는 명종과 종조부인 희종이 최충헌에게 폐위되었고 큰 증조부인 의종은 이의민에게 죽임을 당했다.
평범히 생각한다면 나는 그 누구보다 경인년의 이전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여야 하고 무신들을 배격해야 할 입장인 것이다.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대들에게 묻겠다. 무신들의 정변을 일으킨 당일 보현원으로 가기 전 그간 호위를 선 무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상을 주고자 의종 대왕께선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戲)를 열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오병수박희가 일어나는 그때 환관 기거주 한뢰는 대장군 이소응의 뺨을 때리고 모욕을 하였다고 나는 들었다. 고작 정5품 기거주가 대고려국의 대장군을 문무신료들이 보는 앞에서 조리돌림 하듯 모욕을 주고 능멸하였는데 이는 무신들이 화가 나지 않을 일인가?”
“…분명 환관 한뢰가 분수를 모르고 법도에 어긋난 행동을 저지른 것은 맞사옵니다. 하오나 어디까지나 한뢰라는 환관 개인의 실수였으며, 설사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무신들의 죄는….”
시중 하나가 뒤늦게 말했지만, 그것에 대한 말은 이미 예견했다.
“그것은 구차한 변명에 나를 진노하게 만드는 곡해로다! 나는 경인년의 난을 일으킨 무부들의 죄가 없다고 한 적이 없고 가볍다 한 적도 없는데 어찌 그대는 지금 내가 무신들의 죄가 가볍다고 논한 것처럼 말하는가?”
“…소, 송구하옵니다.”
내 호통에 잠시 조용해진 틈을 타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이소응이 환관에게 맞고 치욕을 당하고 있었을 때 난신적자 정중부가 한뢰를 호통치기 전에 한뢰의 방약무인하고 안하무인한 짓거리에 경을 치거나 벌을 논한 문신이 있었는가? 당시 경을 쳤던 충신을 아는 자가 있다면, 지금 여기서 들려주었으면 하는구나. 나는 들은 바가 없으니 말이다. 내가 들은 것은 거기 있는 문신들도 한뢰를 경을 치기는커녕 도리어 함께 대장군 이소응을 비웃었다는 것뿐이다.”
“…….”
“일개 졸병도 아닌 황실과 나라를 지키고 있는 일국의 대장군이 그런 치욕을 당하고 있는데 말리기는커녕 함께 비웃는 사례가 역대 왕조를 통틀어 있었던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아조에서 일어났다.
나는 이 일이 과연 보현원 사태 때만 한정되어 있었는지도 회의감이 든다. 역적 정중부가 소싯적 김부식, 김돈중 부자들에게 당한 모욕도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떤 신료가 무신의 수염을 불태우고 그 잘못을 상처 입힌 이에게 떠넘긴단 말인가.
이 일이 참으로 아조에서 일어난 일이 맞는가? 무신들은 분명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고 그 죄에서 벗어나면은 아니 되겠으나 그 원인을 만든 것에는 문신들의 죄도 있음을 잊지 말고 거기서 면피하려 들어선 아니 된다. 이러한 당연한 조치에서 눈을 돌리고 경인년 이전으로 복고를 한다는 말은 그대들은 다시 무신들을 차별하고 경시하고, 천시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도다. 그리된다면 언제 다시 변란이 일어날지 알 것이며, 혹 변란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간이 흘러 후대에서는 이 변란의 근본 문제와 발단을 찾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무신들의 잘못으로 전해져 나라의 무를 천시하고 무신들을 괄시하는 풍조가 일어날지 모른다. 이는 나의 걱정인 동시에 예언이니 흘려 듣지 말도록 하라!”
“…….”
“그래. 경들은 아직도 경인년 이전의 완전한 복고가 맞다고 주장하고 싶은가?”
“전하… 그것이….”
“태자 전하 천세! 황상 폐하 만세!! 대고려국 만만세!”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잃은 문신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상장군 최근(崔瑾)을 시작으로 그 자리에 있는 무신들이 만세삼창을 올리기 시작했다.
늦어도 너무 늦었지만, 무신들도 내가 자신들을 구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심도에 있는 문무신료들을 모두 모아놓고 거사의 주역인 내가 내 입으로 경인년의 난 이전의 문제점과 무신들의 처우를 확실히 말하였는데 어떻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신들 중 몇몇은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들의 안색이 점점 밝아지는 동안 그 반대편에 문신들의 낯은 점점 어두워지거나 경직되어 가는 것은 물론이었다.
‘…이거 무신들의 눈치를 다시 봐야 하는 건가?’
‘무부들의 폐단은 경인년 이후 지금까지 제대로 드러났는데 그들을 중용하겠다니? 글 하나도 모르는 그들을 어떻게 중용한단 말인가?’
‘태자 전하께선 역시 어리시다! 어리시니 그저 눈앞에 보이는 무만을 우선하시는 것이야.’
‘무를 숭상하고 문을 천시한다면 이 고려국에는 난세만이 계속될 것이다. 도대체 서연을 담당하였다는 남조 출신 놈들은 태자 전하께 뭘 가르쳤단 말이냐!?’
‘설마 우봉 가문과 정말로 손을 잡고 계신 것인가? 그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하시는 것인가?’
겨우 무부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문신들과 경인년 이전 체제 복고를 각오하고 멸시를 각오했다가 지지를 받아 기뻐하는 무신들.
그러나 내 말은 아직 안 끝났다.
“그러나 무만을 중시한다면 그 참상과 폐단도 이미 경인년 이전에 드러난바! 당연히 문 또한 중시해야 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와 문 어느 하나를 천시하고 어느 하나만 중시하자는 것이 아닌 문무양도(文武兩道)를 모색하고 그러한 고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니 경들은 이에 따르도록 하라.”
* * *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와 문 어느 하나를 천시하고 어느 하나만 중시하자는 것이 아닌 문무양도(文武兩道)를 모색하고 그러한 고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니 경들은 이에 따르도록 하라.
앞으로 문무양도를 추구하는 아조는 경인년 이전의 폐단과 이후의 폐단을 철저히 조사하여 새로운 개혁을 함이 옳을 것이다.
작금의 세태에 경인년 이전과 계사년(계사지주) 이전 정도로 부활하는 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겠는가.”
하나, 하고 왕식은 한 번 더 말을 끊었다. 그러고서 가만히 경청하던 문신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문치(文治)는 이성적이고 이상적이나 대부분이 문약해짐을 피할 수가 없고 갑작스러운 변란과 외침에 속수무책이다. 그 예시가 바로 서토의 송이 그러하다. 서토는 금나라에게 영토의 절반을 잃고 난 후에도 지금까지도 복구를 하지 못했으니 이것이 문약하고 무를 중시하지 않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武)란 무엇인가?
무술(武術), 무도(武道), 무예(武藝) 등 좁게는 개인의 단련을, 크게는 전법(戰法), 전술(戰術), 병법(兵法), 무략(武略) 등 전쟁에 관련된 모든 것도 포함되는 것이 아닌가?
삼한의 옛 역사를 보면 고구려의 온달 장군은 물론이요. 신라는 화랑을 양성하며 무를 경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작금에 와서는 예종 대왕의 무학재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무에 대한 교육도 시험을 받지 않고 있는 형국이로다.
아 오호통재라. 광종 대왕께서 과거제를 도입한 것은 전국에 있는 문에 뛰어난 아국의 인재들을 양성, 발굴하기 위해서인데 어찌 무에서는 무과(武科)를 시행하지 않고 있단 말인가.
무에는 개인의 용력만이 아니라 병서들에 대한 지식도 있을 진데 어찌 오늘날 우리 고려는 그것을 아는 이를 발굴하지 않는단 말인가?
만일 문신들같이 합당한 시험을 거쳐서 들어온다면 어찌 그 능력을 의심하고 경시할 수 있단 말인가?”
무과를 시입하자는 말에 신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는데 왕식은 그들이 반문하기도 전에 이어 말했다.
“그렇다면 문(文)이란 또 무엇인가? ‘문(文)’의 뜻은 글자이기도 하다. 그렇다. 글자에서 글이 생기고, 시가 생기고, 기록을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아조에서 사용되고 있는 글자는 정말로 아조의 글자인가?
틀리다. 문신들이 지금 사용하고, 과거에도 시행되고 있는 글들은 모두 서토의 글자이다. 이 서토의 글은 양이 많고 외우기가 힘들어 백성들은 물론 조정에 출사하는 무신들조차 대다수가 글을 모른다.
글을 모르기에 자기 이름 석 자를 겨우 외우고 읽고 쓰니 서찰이나 지시가 내려와도 읽지를 못해 시종을 대동하여야 읽을 수 있는 형국이니 어찌 중요 업무를 맡길 수가 있겠는가.
국법을 적어도 읽지를 못하고 외워야 하며, 서찰로 재판을 맡겨도 읽지를 못하니 그 차이에 단순 문과 무를 구별하지 않고, 군부에도 문신들이 겸하였던 경우도 숱하였으며 대부분이었다. 글을 모르고 지휘를 맡기지 못하고 병서를 알지 못하니 문신들이 무인들을 보려고 하지 않는가!”
쉽게 말해 문맹이라는 말과 문맹이 되어 생기는 차별이라는 말에 무신들 곳곳에서 숨 삼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딱히 그런 이유만으로 있던 것은 아니라곤 생각하고 있었으나 문맹이기에 비웃음 당하거나 차별당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기에 태자가 직접 말하니 새삼 억하심정이 치솟아 올랐다.
“예로부터 나라를 만들기도 어렵지만, 그 나라를 존속시키는 것은 그보다 더욱 어렵다고 하였다. 저 거란과 여진들도 나라를 세우고 나니 문신들을 등용한 것이 무엇 때문이고 구고려와 신라도 무만이 아니라 문을 중시한 것도 이 까닭이로다. 서토의 송이 문약하여 영토를 잃었으나 그토록 문을 중시하고 지금도 문을 중시하는 것에 아무런 생각도 없이 하였겠는가? 그것은 나라가 존속을 하려면 문 또한 필수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왕식의 말이 계속될수록 문신과 무신 너나 할 것 없이 귀를 기울였다.
이쯤 되면 눈앞의 왕태자가 단순히 문무양도라는 말에 어느 한쪽을 지지하려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참지정사. 경에게 묻나니 전쟁이 터지면 전선으로 가서 싸우는 무신들이 글을 읽을 줄 알아 병서를 읽고 병법에 대해 안다면 그것은 나라에 이로운 것인가? 해로운 것인가?”
갑작스럽게 왕식에게 택해져 묻게 된 이규보는 깜짝 놀라면서도 대답했다.
“물론 이로운 것입니다. 문신들이 병서를 알고 지휘를 맡고는 있으나 무신들은 전장에서 직접 싸우는 이들입니다. 그들이 병서와 병법을 알게 된다면 어찌 나라의 해가 되겠습니까? 하오나 글이란….”
“그렇다. 글은 어렵다. 아니 서토의 글은 어렵다. 본디 글이란 그 나라의 얼과 정신이 담긴 것이다. 그런 것을 어찌 타국인 고려사람들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겠는가?
경들은 보아라. 저 금과 거란(요), 서하 조차 자신의 글을 만들었는데 그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아조가 어찌 고유의 글을 못 가지겠는가? 그렇지 않다. 천하가 여러 천하가 있음이니 글자 또한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여, 과인은 해동에는 해동의 글자가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왕식은 여기까지 말하고서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고서 주변들을 둘러보았다. 주변에서는 설마 설마 하면서도 일단 들어보자는 자세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그들의 모습을 보고는 오랫동안 결심했던 것을 말하였다.
“나라의 말이 서토와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며 배우기도 어렵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글자를 만드니 이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한동안 침묵이 내려앉았다. 왕식의 말이 너무 충격적이라 다들 얼이 빠졌던 것이다.
“…??!!”
“전하? 지금 ‘글자를 만드셨다’고 하셨사옵니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만드셨다구요?”
글자를 만들겠다고 한다면 그 취지와 의지만은 인정할 수 있으나 실제 어려움과 현실을 알려주면 될 뿐이다.
글자란 게 어디 쉽게 만들어진단 말인가?
세자가 예를 든 거란과 금, 서하들도 자기의 문자를 만들었으나 한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묻혔다.
그런 만큼 해동의 글자를 만들라는 것은 ‘정말 만들려는 의의만으로 문무양도를 추구하는 것을 인정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만들었다? 그것도 약관도 채 되지 않은 어린 세자가?
당연히 놀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우려가 되지 않는다면 또 거짓말이다. 태봉의 궁예가 스스로 경전을 여럿 만들었으나 정작 고승 석총은 그 경전들을 보고 ‘하나같이 요사스러운 말로 교훈거리가 될 수 없다.’ 고 혹평하였고 지금 와서는 궁예의 경전은 남아 있지도 않는 형국이다.
눈앞의 세자가 치기와 이상에 눈이 팔려 글자를 만들기는 하였으나 과연 기대를 할 수 있겠는가?
결과가 나쁘다면 시행하지 않는 것만도 못하다. 신료들은, 특히 문신들은 세자의 글자창제가 왕안석의 신법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인가 우려가 되었다.
그러나 왕식은 그런 그들의 우려를 예상이라도 한 듯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이 글자가 어떠한지는 이미 여러 사람들을 통해 결과를 보았고 짧으면 5일 길어도 한 달 내에 글을 익혀 글을 적고 읽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에 시행하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다면 시험자들을 데려왔으니 묻도록 하라. 대소신료들 또한 당장 이 책에 적힌 것을 보고 확인해보도록 하라!”
#작가의 말
“나라의 말이 서토와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며 배우기도 어렵다.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글자를 만드니 이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면 ‘그거’ 맞습니다.
작가가 생각하기에 다른 기술이나 도구들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조선 시대 세종 대왕 이전 배경이면 무조건 ‘철면피 까고 특허 도둑질’해서라도 써야 한다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