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38
138화. 11장 통주 전투
통주에 도착한 설무아지는 고려 세자가 이끄는 고려군이 와서 진영을 치고 있다는 것과 이내 그곳이 고려군이 패배한 지역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반색했다.
“하하! 이곳은 구요(舊遼) 성종께서 저 고려 놈들을 혼쭐을 내준 곳이 아닌가? 고려의 세자가 이곳에 오고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분명 우리 대요가 다시 한번 명성을 떨치라는 하늘의 뜻이 틀림없도다!”
설무아지는 그렇게 알리며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게 했는데 거란인들의 사기는 다소 올랐을지언정 대다수인 여진인과, 한인 병사들은 그의 연설에 무관심하여 큰 효능을 가져오진 못하였다.
“도통사(都統使). 오늘 밤 바로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 성종께서 고려군에게 승리한 것도 신속한 습격이 비결이라 하였습니다. 우군은 보병이 많으니 기병들을 선두로 하여 적들을 헤집은 후, 뒤이어 보병들 투입하여 확실히 끝을 낸다면 그때처럼 적장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설무아지의 부관인 흑송지가 요 성종의 군대가 강조를 사로잡았던 전술을 따라 할 것을 주장했지만 설무아지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그때와 지금은 계절이 달라. 당시 고려군의 진영으로 가는 강은 전부 얼어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날이 풀려 물 위를 건너야 하는데 아군의 기병이 적들을 화살을 돌파하고 보병들이 건너올 때까지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다.”
“그 말씀은….”
“적들의 허를 찌르거나 혹은 회전으로 승부를 봐야겠지. 지금 올라온 고려군은 현재 고려에서 급히 출병시킬 수 있는 병력 전부인 것이 분명한바, 저 군대를 꺾는다면 당분간 야전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나 매한가지. 그러니 언제든지 대응할 수 있게 고려군의 야습을 경계하되 오늘은 병사들을 일찍 쉬게 하라.”
“그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설무아지는 현 병력으로 고려군과의 전투에서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기병이 적긴 해도 병력의 수는 자신들이 우월했고, 아직 어린 고려 세자는 여태껏 성벽에 의지해 몽골군을 이기거나 혹은 몽골군의 위세를 등에 업어 손쉬운 승리만을 거둔 허명만 무성한 애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여 설무아지는 이 기회에 고려 세자의 허명을 대대적으로 까발릴 것이라고 다짐했다.
* * *
새벽.
“적이다! 적이 쳐들어 왔다!”
그날 새벽 고려군의 기병이 동요군의 진영을 급습했다. 그러나 진작에 급습을 경계한 설무아지는 신속히 기병들을 보냈고 어렵지 않게 급습에 대처할 수 있었다.
동요국의 철기병들에 의해 고려군의 기병들은 급습에 실패할 뿐만 아니라 되려 밀렸고, 결국 말머리를 돌려 퇴각해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설무아지는 역시 자신의 평가가 맞았다고 더욱 확신했다.
“흥. 급습은 기본 중 기본. 그리고 기습을 경계하는 것도 기본 소양이다. 고려의 세자가 군략이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역시 어린애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퇴각! 퇴각하라!”
설무아지의 당당함과 대비되는 고려군의 퇴각 모습에 장졸들의 사기가 올랐고, 흑송지는 그 기세를 타고 추격을 하여 적을 습격하자고 제안했다.
“도통사! 아군의 기세가 충천한 상태인 데에 반해 적은 술수가 막힌 상황이니 이대로 추격을 하여 적을 일망타진 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설무아지도 이번엔 우선 아군을 둘러보며 사기를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좋다. 적은 급습에 실패하고 아군은 사기가 드높은 상황인데. 무엇이 두렵겠느냐! 분명 적들이 지나온 길목이 있을 것이니 이대로 추격을 하여 강을 건널 것이다! 오늘 밤이 끝나기 전에 고려군을 친다!”
고려군도 차마 급습이 실패하고 도리어 추격해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니, 고려군의 퇴로를 뒤따라 간다면 큰 피해 없이 건널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거란 놈들이 강을 건너온다!”
그리고 설무아지의 판단대로 고려군은 동요군의 추격에 당황하며 좀처럼 막지 못한 듯했고, 결국 동요군의 기병들과 뒤이어 온 보병들의 도하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강을 건넜다! 기병들은 우군 보병들이 건너올 때까지 적들을 막고 시간을 벌어라!”
“서둘러 진을 짜라! 흑송지 자네는 기병들을 인솔하고, 시창 너는 우군을 맡아라.”
강을 건넌 설무아지는 서둘러 군대의 전열 가다듬었는데 중앙에는 이번 전쟁의 주력인 중보병들을 가장 선두에 배치시키고 기병들은 좌우에만 배치시켰다.
기병들의 수가 적은 만큼 기동성빠른 공격에 대한 대처를 위한 배치였다.
이렇게 동요군이 전열을 가다듬는 동안 고려군도 진영에서 나와 전열을 가다듬으며 대응하였다.
설무아지가 그토록 바란 회전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군대의 전열을 가다듬은 설무아지는 승산을 확신하며 자신만만하게 고려군을 바라보았다.
동요군은 보병 1만 명을 중앙에 두고, 좌우에 기병 5백과 보병 2천을 둔 중앙에 돌파에 초점을 둔 진형이었는데 그런 동요군을 상대하는 고려군은 보병 6천(내솔부 병력 중 2백 포함)으로 이자성이 중앙을 맡았고, 총지휘관인 세자 왕식은 기병 1천 명과 휘하 병력인 내솔부 5백과 잡군 2백으로 우익의 지휘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좌익에는 자신이 총애하는 장수인 김방경을 보내 강륜과 함께 기병 8백과 보병 6백을 지휘케 했다.
즉, 중앙을 무너뜨리려는 동요군의 전술과 정반대로 중앙이 무너지기 전 양 날개로 동요군을 포위하여 무너뜨리는 진형을 짠 것이다.
* * *
와아아아!!
삼수채 부근에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야전(夜戰)의 야전(野戰)이 일어나고 있었다.
양측의 병사들은 어두운 밤임에도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일찍 자둔 동요군의 병사들은 자신들이 고려군의 급습을 격퇴하고 역으로 추격하여 도하에 성공한 것까지 이어지자, 사기가 드높았다.
그 드높은 사기로 회전이 시작되자 무섭게 달려들었으나, 그런 동요군이 이내 마주한 것은 작게 잡아도 18척(*=약 5.4m 1척 = 약 30㎝)은 넘을 것 같은)/ 장창들의 벽이었다.
“출(出)! 납(納)!”
중앙군 곳곳에 있는 장교의 명에 따라 가장 선두와 둘째 줄에 있는 고려 장창병들의 창들이 물레방아처럼 1열이 찌르면 2열이 거두고 2열이 찌르면 1열이 창을 거두는 것을 반복하였다.
아무리 중보병이라 할지라도 빽빽하게 구성되어 있는 장창의 벽은 쉽게 돌파하기는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다수의 숫자로 어찌 밀어내고는 있는 듯 보였으나 예상보다 거센 저항에 설무아지는 미간을 찡그린 채 부관에게 물었다.
“중앙을 우리가 먼저 무너뜨려야 승리한다. 저 장창이 골치 아프긴 하나 측면이 약해 보이는데 기병들을 움직여 칠 수 있겠느냐?”
“보병들을 나누어 치는 것은 몰라도 기병들은 불가합니다.”
설무아지의 질문에 부관이 단칼에 답했다.
부관의 매정한 답에 설무아지는 좌우를 확인했는데 양익에서는 중앙 이상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황은 아군의 열세가 분명했다.
“크억!”
고려 기병의 창에 가슴을 찔리고 낙마하는 아군 기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뒤이어 그 기병에게 달려들어 목을 쳐낸 아군도, 곧이어 날아온 화살에 목이 관통되어 즉사한다.
“아군이 중앙을 무너뜨릴 때까지 견뎌라!”
그 격렬함만 보아도 지금 좌우에서 처절하게 지휘를 하고 있을 흑송지와 시창의 모습이 절로 떠올랐다.
견디고 있는 것만 하여도 저들은 제 임무를 다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부관의 말이 틀린 답이 아님에 입술을 깨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기병을 나눈다는 것은 양익을 포기한다는 것이나 진배없는 결정이었다.
“도, 도통사! 적의 우익에서 고려 세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부하의 말을 듣는 순간 설무아지의 고개가 순식간에 꺾이듯 돌아갔다.
부하의 말대로 그곳에는 검은 갑옷을 입은 어린 고려 세자가 겁도 없는지 직접 모습을 드러낸 채 싸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설무아지는 우익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올랐지만, 전황을 다시 확인 하고는 고개를 돌린 채 관심을 끊었다.
“…무시해라. 세자는 중앙을 무너뜨리고 난 후 잡아도 늦지 않다. 지금 세자를 집중 공격하려고 군을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고려 세자의 노림수다. 고려 세자 따윈 무시하고 그대로 고려군의 중앙을 무너뜨리는 것에 집중하라.”
그렇다 한들 기병을 움직일 수 없는 이상 결국 보병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설무아지는 전열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 최대한 지장이 가지 않게 하고자 후군에 배치한 경보병들을 일부를 나누어 고려 중앙군들의 측면을 치는 선택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설무아지 인생 최대, 최악의 실수이기도 했다.
* * *
처음 이상함을 눈치챈 것은 뒤에 있던 병사들이 빠지면서 맨 후열이 돼버린 동요군의 한인 병사 홍씨였다.
잡담을 나누던 도중 갑자기 뒤에 있던 동료가 빠졌을 때만 하여도 언제 자기도 전열에 투입될지 몰라 바싹 긴장했던 그였지만, 이내 더 이상 추가로 전열로 끌려가는 일이 없는 것을 확인하면서 다시 다소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뒤로 새벽바람이 불었고 아까까지만 해도 바람을 막아주던 동료가 사라져 더 추워 뒤를 돌아보니 역시 어두컴컴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아암. 젠장. 원래라면 자고 있을 시간이었는데… 이게 무슨 꼴인지.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괜히 더 졸리는구만”
투덜거리며 하품이나 하던 그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맑은 밤하늘과 빛나는 별들. 상황이 아닌 것은 알아도 참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던 그는 갑자기 하늘 위로 솟아오르는 한 줄기 불빛을 발견했다.
“뭐야. 저거? 떨어진 별이 다시 승천한 것은 아닐 것이고….”
뭔가 기억날 듯한 홍씨였지만 그 직후 홍씨가 딴청 피는 것을 발견한 상관에게 혼쭐을 당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상관에게 제대로 깨진 그는 궁시렁거리며, 다시는 뒤를 안 보기로 마음먹었는데 2각 후 갑자기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결국 돌아보아야 했다.
“도대체 뭐야? 왜 이리 시끄러ㅇ…!!”
짜증을 내며 홍씨가 본 것은 다름 아닌 수백 개의 횃불이 이쪽을 향해 맹렬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 * *
설무아지는 어두컴컴한 환경 속에서도 불빛들과 들려오는 보고에 의해 어떻게든 전황을 파악했다.
‘우군의 양익이 점점 한계가 다가오고 있는 듯하나 적의 중앙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자신들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소소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느끼고 있을 때, 설무아지는 문득 후방이 어수선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냐? 지금 후방에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도통사! 도통사! 큰일입니다!”
동요군의 후방은 어수선한 수준이 아니었다.
동요군이 후열의 병력을 빼내자 마성산에 매복해 있던 유갑수의 기병과 보병들이 동요군의 얇아진 후방을 치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죽여라! 무기를 든 거란 놈들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라!”
“으억!”
“아아악!”
두두두두!
급습을 격퇴하고 역으로 허를 찔렀다고 생각했던 동요군은 후방에서 공격받을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중앙의 후군을 보냈다.
그런 동요군의 후미가 고려군의 급습을 견딜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급습을 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군의 말발굽에 동요군의 전열(戰列)은 순식간에 흐트러져 갔고 그에 따라 동요국의 병사들 사기도 단번에 곤두박질 떨어졌다.
“나, 나는 항복하오!”
“무기를 버렸소! 살려주시오!”
“나, 나는 여진인이오!”
“나는 금인이오.”
그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항복을 한 것은 여진인과 한인들이었다.
동요군의 전황이 불리함을 깨닫고 곧바로 항복한 것인데 그런 그들의 모습은 안 그래도 사기가 떨어지는 동요 중앙군의 와해에 더욱 일조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마침내 양익도 무너지자 동요군은 좌우와 후방까지 포위당해 전열은 완전히 붕괴되어 고려군의 살육에 무참히 당하기 시작했다.
“아, 안 된다! 안 돼! 어딜 도망가느냐! 모두 맞서 싸워라! 패하면 폐하의, 우리 대요국의 운명이….”
그런 혼란한 전황 속에서 설무아지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도주하는 병사들을 향해 채찍질을 하며 항전하라고 명했지만, 한명의 고집이 이미 엎지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는 없는 법이다.
“죽여라!”
“저자가 거란군의 총사다! 잡아라!”
“도통사! 퇴각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모두가 죽고 도통사의 목숨도 위험합니다!”
퍼억!
“크윽!”
“어리석은 놈! 여기서 우리가 패한다면 다음이 있을 성싶더냐? 이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폐하의 엄명을 잊었느냐!”
그러나, 광기 어린 집착과 망연자실함이 담긴 설무아지의 호통은 부관을 난처하게 만들 뿐. 오합지졸이 되어 길을 잃은 개미 떼처럼 흩어지는 병사들을 날랜 용병들로 만드는 기적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히익! 죽기 싫어!”
“안 된다. 이놈들아! 싸워라! 싸우란 말이다!! 도망치는 놈은 내가 직접 참하… ‘퍼걱!’”
“도통사!!”
부관은 미친 듯이 결전을 외치던 설무아지가 시체가 되어 낙마하는 것을 보다가, 미간에 박힌 작은 화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작은 화살은 설마?’
“태자 전하께서 활을 잡으셨다!”
머릿속에서 상관을 죽인 진범을 추리하기 무섭게 주변에서 들려오는 고려군의 함성에 부관은 자신의 예측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그리고 확신한 순간 부관은 설무아지의 신체를 거두는 것조차 포기하고 말머리를 돌려 퇴각령을 내렸다.
‘고려 세자가 작은 화살을 애용하며 전장에서 적들을 밥 먹듯이 쏘아 맞힌다는 소문이 사실이구나.’
그것은 총사인 설무아지가 죽은 이상 이대로 전투를 고집한들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고, 명성이 사실이라면 시신이라도 챙기려는 순간 자신도 죽을 것이 불 보듯 뻔하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지휘관이 죽은 상황에서 자신마저 죽게 되면 여기 남은 병사들은 더욱 위험에 처한다는 것을 부관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부관과 동요군에게는 다행으로 중앙군의 선전으로 중앙의 고려군은 많이 흐트러져 있어 완벽한 포위망이라고 하기에는 틈이 있었다.
덕분에 부관은 그 틈을 확인하자마자 즉시 통솔이 가능한 범주의 병사들을 데리고 벗어날 수 있었다.
이날 통주에서 일어난 전투에 죽거나 다친 입은 동요군의 병사들은 무려 5천에 달했는데, 포로로 잡힌 병사들은 자그마치 7천에 달하였다.
그리고 살아서 포위망을 뚫고 도망친 동요병사들은 겨우 3천 명 정도로 고려군의 대승리였다.
“태자 전하! 천세! 대고려국 만세! 황상 폐하 만만세!!”
전쟁에서 승리한 병사들은 모두가 승리에 기뻐하며, 잡은 포로들을 끌고 통주성에 입성하였고, 아군이 승전하여 보무당당히 입성하자 백성들은 새벽임에도 모두 나와 천세 만세를 부르며 기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