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17장 감찰관
송화강 이북.
“고려의 사자가 정말 그리 말했단 말이냐!”
“예. 그리 말하였습니다.”
개전 이후 각지의 보고를 듣고 본격적인 남하를 준비하던 테무케에게 고려의 사자가 찾아왔다.
이에 테무케는 어차피 시간 벌기와 변명 정도라고 생각하여 부하를 대신 보내 듣게 하고는 남하를 서둘렀는데, 정작 사자의 내용을 전해 들은 부하의 보고는 테무케의 그 사고를 뒤흔드는 내용이었다.
“…일단 끌, 아니, 데려오너라. 직접 만나봐야겠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은, 아니 믿을수 없었던 테무케는 결국 고려의 사자를 불러 대면하였다.
“지금 네가 한 말이 사실이냐?”
“예. 태자 전하께선 지금 천조(天朝)와 아조 양국에 분란을 일으키고 기만하는 동하 잔적들과 그런 자들과 손을 잡고 천조(天朝)의 뜻을 사칭한 동요국을 징벌하기 위해 군을 이끌고 요동으로 갔사옵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동하국의 옛 영토는 테무케 전하의 관할이며, 도적 첩가는 아조와 전하의 땅을 어지럽힌 바, 동하국과 작당한 동요국의 판결을 하기 위해선 테무케 전하의 감찰과 조언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시어 이리 온 것이옵니다.”
테무케는 처음 귀를 의심했다.
고려가 동요국을 치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엇보다 아직까지 고려가 첩가와 동요국 배후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런데 첩가와 동요국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듯이 말하다니, 태연자약하게 자신에게 감찰을 맡겨 달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곧이어 이것이 사실이라면 모난 돌 같은 고려 세자를 사로잡을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이대로 군을 돌려 동요국으로 간다면 세자 정도는….’
굳이 진지하게 감찰이니 조언이니 해줄 필요 없다.
그냥 군대를 보내 고려군을 토벌하고 세자를 잡고 적당히 보고를 올린다면 끝날 문제였다, 라고 생각한 테무케였지만 곧이어 나온 사자의 말에 당황해야 했다.
“예. 그리고 천조에도 사람들을 보내 알렸사오니 곧 내려올 것입니다.”
“머, 뭣이? 대칸에게 사람을 보냈다고?”
테무케는 당황해서 더듬거리며 반문하자 사자도 놀란 기색으로 반문했다.
“예? 동하의 옛 땅은 전하의 관할이나 동요국은 천조의 명을 받고 관리를 받는바, 이에 사자들을 보내 사태를 알리는 것이 당연한 처사가 아니옵니까? 더군다나 저들은 터무니없는 낭설과 오명으로 아조에 누명을 씌우고 양국의 관계를 어지럽히고 있사온데 당연히 천조에서 직접 확인하시어 시시비비를 알리는 것으로 하루라도 빨리 누명을 해결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
테무케는 멍한 표정으로 굳었다.
현재 고려는 자신들의 개입은 물론이고 몽골 조정의 개입이나 관심을 절대 받아서는 안 되는 상태였는데 대놓고 드러내 놓고 몽골 조정의 개입을 이미 요청하였다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테무케를 곤혹게 하기엔 충분 했다.
이번 전쟁은 순전히 테무케 옷치긴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 이유는 당연히 고려가 점령한 갈라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몽골 조정에선 공식적으로 갈라전은 고려의 땅으로 인정후 손대는 것을 금지시켰다. 이 문제를 최대한 피하고자 사용한 것이 고려의 태자비가 금 황녀라는 소문과 동하국 첩가였다.
첩가가 동하국을 부흥시킨 후 갈라전을 귀속시킨다면 그 동하국은 옷치긴 왕가의 개입을 받는다. 사실상 갈라전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고려가 이렇게 나온 것이다.
‘도대체 요동이 지금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냐.’
아무리 궁리하여도 명확한 답을 알 수 없었고 간혹 도출된 가정들도 안심보다는 불안만을 증폭시키는 것들 뿐이다.
그의 입장에선 갈라전이 아니라 고려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다 하더라도 조정과 문제가 일어난다면 훨씬 손해였고, 결국 테무케는 남하를 연기하고 사위인 세늘부진을 요동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세늘부진. 너는 지난 동정(東征=동하국 정벌) 때 고려 세자를 만난 적이 있으니 잘하리라 믿는다. 가서 어떤 상황인지 사태를 파악해라. 주기적으로 사람을 보내 어떤 상황인지 보고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 * *
요동성.
‘발해가 멸망한 이후 처음, 아니 고려 왕족 중엔 유일하게 군을 이끌고 요동성에 들어온 셈이로구나.’
나와 고려군은 지금 요동성에 있다. 단순히 왕족이라고 한다면 ‘요’나 ‘금’으로 사신으로 간 일행중 방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병사들을 이끌고 입성한 왕족은 내가 처음 맞을 것이다. 천산 전투에서 많은 거란인들이 죽거나 포로로 잡았다.
그중에는 동요국의 왕. 야율설도와 그의 동생 야율선가도 있었다.
야율선가는 전투 도중 낙마로 머리를 다쳤는지 봤을 때 정신을 잃은 상태라 전투가 끝난 후 제대로 대화를 하수 없었지만, 국왕 야율설도는 의식을 잃지 않은 상태라 전투가 끝난 후 사로잡혀 내게 끌려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때 그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온몸이 포승줄로 칭칭 감긴 채 나와 제장들이 있는 곳으로 끌려온 일국의 왕의 모습은 패전국과 망국의 비참함을 알게 했는데, 그와 별개로 야율설도 본인은 그러한 상황에서 의연함을 잃지 않은 채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곤 위아래를 훑더니 내게 물었다.
“그대가 인가?”
“…그렇습니다.”
내게 뭔가 말하고자 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들어, 나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승자로서 반존대 정도로 할까 했지만 야율설도의 전투에 패해 잡힌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담담한 목소리와 그 체면을 생각해 그냥 존대를 하기로 했다.
괴뢰국이긴 하나 일국의 왕의 신분이고 이쪽은 세자이니 존대를 한다 해도 문제는 없고, 이 왕을 모욕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번 전투에서 우군이 패하고 귀군이 승리한 것은 그대에게서 비롯된 것인가?”
“어찌 저 하나겠습니까? 우수한 장졸들이 힘껏 싸운 덕이지요.”
“그렇다면 다르게 묻겠네. 고려군이 강을 건너 아국을 침공한 것은 우리 중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사태였다. 혹여, 귀군에서 강을 건너자고 가장 먼저 제안한 이가 누구인가?”
“저입니다.”
내 대답에 야율설도는 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뭔가 깨달았다는 듯 하늘을 치켜 보며 탄식하기 시작했다.
“내 비록 그대의 명성을 듣기는 하였으나 허명과 낭설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나 내 오늘 그대를 보니 그것이 허명이 아닌 진짜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대는 실로 하늘이 내린 영웅이라 할 수 있으니 귀국에는 지복(至福)이고, 아국에는 큰 불행이로다. 내 모든 노력을 다해 천웅(天雄)과 겨뤄 패한 것이니 이제 무슨 여한이 있겠는가. 어서 죽여라!”
그렇게 말하는 야율설도에게서 결연함과 한탄, 그리고 개운함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추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으려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진참사검을 들었고, 놀라 나를 말리려는 제장들에게 나는 손을 들어 말리고 그에게 다가갔다. 검을 휘둘렀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일국의 왕을 이리 대하는 것이냐! 어서 의자를 대령하라.”
“고려 태자?”
당연히 그를 죽이려고 휘둘른 것이 아니다. 그의 포승줄을 잘라내고 지친 그를 직접 부축하여 내가 앉아 있던 고급 목재로 만들어진 의자에 안내해 양보해 주었다. 내가 상석을 양보하자 설도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의자에 앉았고 곧이어 새로 들고 온 의자에 나도 앉은 뒤 말했다.
“비록 전장에서 적으로서 칼을 겨누었으나 이제는 승부가 났는데 아직도 창, 칼로 대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물며 국왕 전하께서는 성에서 수성을 한 것이 아닌 성밖에 군대를 이끌고 나오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노렸는지 내가 아는데 어찌 태자로서 그런 왕을 천시하고 홀대하는 무례를 저지르겠습니까? 그러니 이리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곤 곧이어 부하들에게 야율설도를 나와 동등 혹은 이상으로 최대한 극진히 대하라고 그 자리에서 명을 내렸다.
“…….”
동생 야율선가에 대해서도 치료에 진력을 다하게 했다. 야율설도에겐 감시와 야외가 붙였을 지언정 매우 극진히 모시게 하였고, 식사를 할 때는 우리 군이 회의를 할 때 같은 경우가 아니면 반드시 나와 동석을 하게 하는 등 대접에 부족함이 없게 했다.
“아조를 침략한 무리가 요국에 왔음은 분명하나 전체인지 일부인지는 아직 알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부디 불미스러운 마음과 불안한 안색을 하지 마시고 그 조사가 끝날 때까지만 우리의 보호를 받아주십시오.”
내가 공손히 술을 따르며 그리 말하자 야율설도는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는지 결국 자조 섞인 말을 하였다.
“…경국(傾國)의 왕이라곤 하나 종사와 나라의 맥만은 보존하고자 나는 최선을 다하였네. 그런데 고려에 어린 태자의 지략과 용맹함이 어느 장수보다도 뛰어나니, 내가 이 꼴이 된 것이 어찌 우연이라고 하겠는가. 이 전쟁은 귀국의 승리일세.”
그러고는 우리에게 요동성으로 가자고 제안하였고 요동성으로 간 뒤에는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스스로 나서서 요동성에 문을 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왕이 왔는데 어찌 문을 열어 마중나오지 않는 것인가? 지금 당장 문을 열도록 하라.”
그 덕분에 요동성의 굳건한 문은 열려 우리는 피 한 방울 하나 흘리지 않은 채 들어갈 수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야율 형제들을 사로잡은 것은 나도 예상 못 한 행운이었다. 야율설도의 이러한 행동에 요동성과, 우리 모두는 최악을 피할 수 있었다.
요동성은 결과적으로 왕의 명령에 따라 문을 열게 되어 우리와 전투를 벌여 피해를 받지 않았던 데다가 무력으로 점령당하는 수모는 피할 수 있었고, 우리 쪽에서도 국왕을 설득하여 불필요한 피를 잃지 않고, 요동성 내부의 불안과 적대를 줄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야율설도의 이러한 행동은 아마도….’
“전하. 북조 노왕이 보낸 감찰관이 당도하였습니다.”
“벌써?”
옷치긴의 진영은 몽골 조정에 비해 거리가 너무 가까워 일부러 옷치긴에게 보내는 전령은 아슬아슬하게 늦게 보냈는데 이렇게 빨리 오다니 어지간히 몽골 조정의 개입을 피하고 싶은 듯하다.
* * *
“고려 태자 전하께서는 어찌 요나라에 군대를 끌고 온 것입니까!”
자신을 테무케 옷치긴의 감찰관이라고 소개한 세늘부진이 내게 따지듯 물었다.
세늘부진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싶어 얼굴을 보니 지난번 동하국 남경 정벌 때 본 장수였다.
단순한 장수라고 생각했는데 역관의 말에 의하면 산길대왕(散吉大王)이라고 한 거 보면 못해도 옷치긴 왕가의 일원 혹은 사위인 듯하다. 어라? 그런데 산길대왕이면 원 역사에서 분명….
“요는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의 속국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입니까? 허락도 없이 군을 이끌고 오다니 태자 전하께선 참으로 용감무쌍하시군요.”
세늘부진의 빈정대는 말에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우선 우리 군이 압록강을 건너 이곳에 있는 것과 (요)국왕 전하께 제한을 시킨 것은 모두 요국이 아조를 침범하고 동하의 첩가와 연관되어 있다는 이유이오. 이는 테무케 님께 보낸 사자를 통해 전해 들어 알 것이라고 보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테무케 님께서 나를 보낸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도 군을 일으킨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실 것입니까? 그리고 사자가 오는 것은 너무 늦었습니다. 요왕을 잡은 후 사자를 보내다니요. 그전에도 보내야지요!”
세늘부진의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일단 일국의 세자인 나한테 이렇게까지 윽박지르고 비꼬는 모습을 보면 나를 얼마나 얕보는 건지….
뭐 그보다는 주도권을 쥐기 위해 기선을 제압하려는 거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테무케의 사절이 내 생각보다 빨리 온 것에 놀라긴 했지만 그 쪽에서 ‘급히 보내리라는 것’ 정도는 처음부터 예상했다.
그리고 테무케의 사절이 옷치긴 왕가의 직급과 위계 등으로 찍어 눌리거나 어떻게든 은폐하려 든다면 귀찮아질 것도 아는지라 당연히 경계했다. 그런 만큼 당연히 그에 대한 대안도 모색해 놓은 상태다.
“요왕을 잡은 후라니? 그것은 오해이오. 강을 건넌 직후 한 차례 전령을 보냈는데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면 아마 동요군에게 가로막혀 그런 듯하오. 감찰관도 아시다시피 아조의 서북면과 테무케 님이 계신 곳은 동요에 가로막혀 연길에도 가기 힘든 상황이지 않았소?”
“그것을 말이라고 하십니까? 그래서 다 끝난 후 불렀다는 것입니까?”
“진정하시오. 요왕을 잡기전 테무케님께 전해지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우나 다 끝났다니 그것도 말도 안되는 억측이오. 요국이 아조를 침범한 죄가 있어 아조가 요동성 까지 군을 움직이긴 했으나 요국은 천조의 속국인데 어찌 소방(小邦=고려)에서 사적으로 조사를 하고 판결을 내릴수 있겠소? 이 때문에 사자를 보내 청한 것이 아니오?”
“…예. 그것은 잘하셨습니다.”
일국의 세자를 보고 잘했다니 참으로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세가 아닌가? 그런데 내 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놈아!
“그렇소. 첩가는 아조만이 아니라 테무케 님의 속빈로에도 문제를 일으켰으니 응당 테무케 님께 사람을 보내 함께 상의하는 것이 상식이요. 동요에 대해선 알차다이 님께 요청을 하는 것이 상식이니 당연히 그리 하였소.”
“…예? 누구에게 말이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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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고려에서는 목조(穆祖)를 의주병마사로 삼아, 고원을 지켜 원나라 군사를 방어하게 하였다.
이때 쌍성(쌍성은 곧 영흥이다) 이북 지방이 개원로에 소속되었고, 원나라 산길대왕이 와서, 쌍성에 둔을 치고 있으면서, 철령 이북 지방을 취하려고 하여 사람을 두 번이나 보내어 목조에게 원나라에게 항복하기를 권하니, 목조는 마지못하여 김보노 등 1천여 호를 거느리고 항복하였다.
– 권1 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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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대왕의 이름은 조사해도 알 수가 없어 작중 세늘부진으로 창작했습니다. 이름 출처는 언제나처럼 징기즈칸4 가상무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