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64
164화
28장 상인외교(商人外交)(2)
“그, 그렇사옵니다. 폐하. 하오나 이것은 이미 예상 범주가 아니었사옵니까?”
“그렇사옵니다. 저 욕심 많은 이적들이 어찌 문화를 알고, 예를 알고, 인과 의를 알겠사옵니까. 분명 불태울 것이라 모두가 예상한 바였습니다.”
“천군의 군량을 처음 계획보다 배로 들고 간 것도 이 때문이 아니옵니까? 비록 개봉, 낙양을 비롯한 회수 이북 중요 도성들이 폐허가 되긴 하였으나 아직 터와 벽이 남아 있으며, 그곳이 연고가 깊은 땅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사옵니다.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고 그곳에서 천조의 중흥을 선언하시옵소서! 그렇다면 옛 백성들도 호응할 것이옵니다.”
그래도 처음만 하여도 그들은 주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뒤.
고려로 갔던 상인 이연보의 보고가 올라가자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요동에서 몽골과 전력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으리라 생각한 고려가 전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수복론자들도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하였고, 주화론자들은 우려한 일이 벌어졌다고 굳은 얼굴로 침묵할 뿐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분명 일전에 고려 사신은 지금 고려는 고려 세자가 친정을 할 정도로 전쟁으로 한창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설마 거짓이었단 말이더냐?”
“전쟁을 한 것은 사실이오나 상인이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전쟁이 끝이 난 상태라 하옵니다.”
“…어찌하여? 어떻게 이렇게 빨리 끝이 났단 말이냐!”
황제의 외침에 정청지는 땀을 닦으며 솔직하게 전하였다.
“벽란도의 고려 상인들과 강도(강화도)의 고려인들의 말에 의하면 고려 세자 식이 군을 이끌고 요동을 친 것은 사실이오나, 천산에서 요주(遼主)를 사로잡아 전쟁이 빨리 끝이 났다고 하옵니다.”
“요주(遼主)가 잡혀? 아니, 아니다. 그러고 보니 요동에는 금의 반군. 거란적이 자리를 잡았다곤 들었다. 그러나 그들은 몽고의 속국이 아닌가? 그들을 쳤다는 것은 고려가 몽고를 쳤다는 것인데 몽고가 고려를 놔두었단 말이더냐?”
요동이 고려의 손에 떨어졌다면 몽골은 고려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령 아직 고려가 완전히 (요동을) 정복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그것이 몽고가 개입은 하긴 하였으나 고려는 압록강 이남을 점령하는 선에서 멈추고, 철군을 하였다고 합니다.”
“…뭐, 뭐라… 그, 그렇다면 지금 요동에는….”
“그렇사옵니다. 고려군은 없사옵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황제의 말을 사숭지는 마무리했고, 그 말을 끝으로 황제의 얼굴에선 진심으로 충격받은 것이 드러났다.
“폐하! 폐하께서는 고려가 힘껏 싸우고 있을 때 본조도 협력하여 고토를 회복하겠다고 하셨사오나, 이래서는 도저히 불가능하옵니다. 지금도 지키는 것만으로도 급급하오며, 몽고의 군대가 요동을 통해 남하라도 할 시 과연 하북의 백성들이 본조를 응할지는 장담할 수가 없사옵니다.”
일찍이 주화론을 주장한 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지금이라도 회군을 청하였고 잇따른 변화에 개전 초기 기세등등한 주전론자들도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재상 정청지만은 이전 이상으로 회군에 반대했다.
“폐하. 비록 고려가 전쟁을 그만두었다곤 하나, 진정 전쟁을 그만둘 이유는 없사옵니다. 이미 화살은 활시위를 떠났사온데 여기서 회군이라니 가당치도 않사옵니다. 지금 몽고가 고려에게 땅을 할양한 것은 고려가 강한 것보다는 우선 본조를 치기 위해서임이 분명하옵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고려에 사자를 보내 본조와 고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임을 알리고 협공을 하도록 설득하시옵소서. 다행히 상인 이연보의 말에 의하면 고려 세자 식은 본조와 협력하는 것을 반긴다고 하였사옵니다.”
“…….”
“…폐하! 천조가 멸하면 그다음은 고려국이옵니다. 이 협공은 결코 고려에 애원하는 것이 아닌 양국의 평화를 위한 혜안과 자비에서 내린 선택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정청지는 황제가 말이 없는 것을 고려에 도움을 청하는 것에 불만을 가져서라고 생각하며 고쳐 말했다.
“…그래. 그렇다. 정 재상의 말이 맞도다. 우군이 이대로 개봉을, 하북을 수복하고, 고려가 요동을 수복하기 위해선 양국의 협력이 필수로다. 이는 천하가 평탄하게 하기 위한 천자로서의 선택이로다.”
“폐하! 정 재상은 지금 모든 것을 밝히지 않고 있사옵니다!”
북진과 개봉 사수에 계속하며, 고려의 참전을 끌어들이는 책략을 추진하려 할 때 사숭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정청지를 소(訴)하며 끼어들었고, 사숭지의 말에 정청지는 당황하며 반문했다.
“무, 무슨 소리요!”
“폐하. 정 재상은 지금 고려 세자 식의 의견을 알리고는 있되 전부 알리지는 않고 있사옵니다. 이것이 폐하를 기만하고 있는 행위가 아니고 무엇이겠사옵니까?”
“폐, 폐하. 아니옵니다. 소신이 어찌 천자를 기만하겠사옵니까. 이는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정 승상은 잠시 가만히 있으라. 전부 알리지 않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폐하. 고려 세자 식이 천조와 재수교의 뜻을 내비친 것은 맞으나 본조가 지금 하고 있는 전쟁에 대해 우려와 함께 조언을 하였나이다. 그러나 정 승상은 지금 그 이야기는 쏙 빼놓고 있으니 어찌 기만이 아니라 할수 있겠사옵니까?”
“아니옵니다. 폐하. 분명 세자 식이 감히 주제도 모르고 본조에 대해 논하긴 하였으나 어찌 천조가 동이 왕자의 말에 따를 수 있겠사옵니까? 하여 고할 가치가 없다 여겼을 뿐이옵니다.”
“아무리 조언에 따를 이유는 없다 해도 고려는 엄연히 천조가 우방국으로 삼으려는 곳이 아니오? 거기다 승상께서도 방금 전 고려 세자가 재수교의 뜻도 내비쳤으나 국교를 맺자고 하였는데 그 세자의 조언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이오?”
“…….”
“…….”
한참을 논쟁하던 정청지는 사숭지를 노려보았다.
이연보의 보고를 전하면 자신의 입지가 불리해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 솔직하게 이야기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사숭지. 상단에 자기 사람을 보내 고려 사정을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은 했으나 설마 고려 세자의 조언까지 알고 있었다니….’
‘흥. 고려 세자가 현 전쟁에 대해선 부정적인 뜻을 밝힌 것만 뺀 것을 모를 것이라 생각했소?’
“고려 세자의 조언이 무엇인지 말하라. 아니, 고려로 갔던 상객을 불러오라. 짐이 친히 들어야겠다!”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폐하. 본조가 어찌하여 상객을 보냈겠나이까? 이를 유념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나라의 중한 일이로다. 어찌 숨기려 드느냐!”
“폐하. 신이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옵니다. 이번 고려에 관인이 아닌 상인이 간 것은 천조의 조정이 과거 번국이었던 고려에 청하는 모습으로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데,
폐하께서 지금 고려에 갔던 상인을 부른다면 그 상인이 사신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되옵니다. 소신 모든 것을 고할 것이니 부디 고정하여주시옵소서.”
이에 대해서는 정청지, 사숭지는 물론 신료 모두가 반대를 하자 송 황제는 결국 사숭지와 정청지의 입으로 사정을 들었다.
“그렇다면 어서 말해보라! 모든 것은 다 듣고 나서 결정토록 하겠다.”
* * *
고려.
“과인이 보건대, 작금의 몽고는 그 기세가 욱일승천(旭日昇天), 파죽지세(破竹之勢)에 이르러 제대로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 그저 곽거병처럼 군사를 일으켜 깊숙이 들어가 친다는 각오로 임전한다면 큰 피해를 모면치 못할 것이다.”
“만약 태자 전하께서 회수 이북의 군을 통솔한다면 어찌하겠사옵니까?”
왕식은 그 물음에 이리 대답했다.
“상책은 곧바로 퇴로를 확보하고 기습을 염두 하면서 회군을 하는 것이다. 이렇다면 출병한다고 사용된 비용이 적지는 않으나 병력을 보존하였으니 차후 전쟁에 대해 대비할 수 있다.”
“그것이 상책이라 함은 다른 계책도 있사옵니까?”
“중책은 회수 이북의 성들을 모조리 파괴하거나, 백성들만이라도 데려오는 것인데 회수 이북의 백성들이 없다면 몽고에선 세수(稅收)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니 그만큼 병력에 차질이 오기 때문이다. 하책은 폐허가 되거나 파손이 된 개봉과 낙양성만 지키고 앉아 있는 것인데, 만약 이 하책을 쓴다면 필히 오래가지 못하고 붕괴될 것이다.”
이연보는 하책이 어째서 하책인지 물었고, 왕식은 친절히 하책이 하책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어째서입니까? 개봉과 낙양은 본조에 연고가 깊은 땅이옵니다. 그런 곳을 지키는 것이 옛 백성들을 규합하기 이롭지 않사옵니까?”
“위험부담이 큰 데다가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로다. 몽고는 분명 개봉이나 여러 도시들을 폐허로 만들어 놓아 성벽을 의지하여 지키는 것도 쉽지 못할 것인 데다가, 식량은 외부에서 공급해야 한다.
그러나 회수 이남에서 개봉과 낙양까지의 거리가 크니 보급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두 번째는 이미 금의 지배를 오래 받은 이들이 얼마나 호응할지 모르기 때문이 이유다.
설령 호응한다고 하더라도 보급이 끊어지고 각지에서 일어나는 의병들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밀려 성으로 몰려든다면 성내 병사들에게 그 몰려드는 의병들을 어떻게 보게 될지 걱정이 드는 바이다.”
“…결국 회군을 하면 끝이옵니까?”
“이미 출병한 이상 회군을 한다 하더라도 저들은 자신이 공격받은 것을 잊지 않을 것이다. 필히 차후 있을 반격을 대비해야 할 것이다.”
“…대비입니까?”
* * *
“고려 세자 식은 지금 당장 군을 회군시키고, 이후 있을 내란을 대비하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장강으로 통하는 영양성을 빼앗긴다면 본조의 존망이 위태로울지 모르니 그곳은 특히 대비를 철저히 하여야 한다고 조언하였습니다.”
“폐하. 언제부터 천조의 군권이 번국 세자에게 거머쥐어져 있나이까? 천조에는 천조의 판단으로 움직여야 하옵니다. 부디 외국의 조언에만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국내의 인재를 등용하고 바른 진언에 귀를 기울여 주시옵소서.”
정청지는 그리 말했지만 송 황제 조윤은 사숭지의 알려준 고려 세자의 조언과 경고가 더 귀에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본조가 몽고를 친 이상 저 이적들도 본조를 치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황도로 통하는 주요 관문인 영양성의 방어를 공고히 하라. 이는 고려 왕자 식의 말이 맞도다.”
“하오면 회군은….”
“폐하. 회군은 아니 되옵니다! 지금 천군은 회수를 넘어 드디어 옛 수도를 탈환하였나이다. 이것에 만백성들이 기뻐하고 있사온데, 그것을 두고 오다니요. 그리되면 이북의 백성들은 본조와 황상을 어찌 보겠나이까. 천부당만부당하옵니다!”
사숭지가 회군을 청하자 정청지는 끼어들어 필사적으로 회군만은 반대하였다. 하지만, 황제의 마음은 보고를 받기 전과 달라져 있었다.
“정 승상이 생각하기에 본조가 저 긴 보급로를 무사히 지킬 수 있다고 보는가? 짐이 보기엔 불가하다고 본다. 호부에서도 추가 보급을 염두에는 두되 개봉과 낙양 등 옛 도읍에 들어가면 현지에서도 어느정도 자급은 할 수 있으리라 여긴 것이다! 하나 작금의 사태를 보라!
고려 왕자의 말대로 보급로가 차단된다면 아국의 병사들 수십만이 적지에 고립될 것인데 승상은 그것을 용인하자는 말인가?”
황제의 마음이 변심하고 있음을 눈치챘기에 정청지는 놀란 목소리로 더욱 주전을 주장하였고, 그런 정청지의 주장에 사숭지 또한 전력으로 반박하였다.
“폐하! 이북으로 가는 보급부대에 만전의 호위를 붙이는 수가 있는데 어찌 비관적으로만 보시옵니까?”
“폐하! 정 승상은 지금 보급의 어려움을 지적하였는데 그것을 제대로 된 대책 없이 그저 원론적인 말로 고집하여 천군을 위기로 몰아내고 있사옵니다.”
“폐하. 지금 ‘숭지’는 아조가 수십 년 만에 얻은 기회를 차고, 옛 백성들을 버리라고 청하고 있사옵니다.”
“폐하. ‘청지’의 말대로 보급이 없는 군대가 적들 사이에 고립된다면 천병이 모두 전멸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폐하. 적들의 전력이 다 빠져 있는데 어떻게 저들에게 천군이 전멸하고 포위당한단 말이옵니까?”
“천군은 단 한 번도 적과 싸워보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적의 전력을 파악하옵니까!”
“패하지도 않았는데 무엇이 두려워 회군을 해야 한단 말이옵니까! 싸워보지도 않고, 빈터만을 보고 두려워 회군한다면 세상이 비웃을 것입니다!”
“조정은 개봉과 낙양 등지에 가면 옛 백성들이 호응할 것이라 여겼으나 고려 세자는 호응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았고, 실제 아직도 장계에서 이렇다 할 호응이 일어났다는 보고는 없사옵니다. 이대로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의병만을 기대어 저들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것이옵니까?”
“본조는 지금 지난 정강의 참변 이후 처음으로 옛 도읍에 입성하고, 대군이 큰 피해 없이 회수 이북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나라의 여러 백성들은 폐하의 공덕을 찬양하며, 옛 고토를 회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사옵니다.
회수 이북의 백성들도 지금은 금이 멸하고, 이적들이 날뛰어 혼이 빠져 있으나 이럴 때 천조가 태산처럼 버티어 굳건함을 선보인다면 가만히 있겠사옵니까?
반대로, 고토를 수복할 것이라 천명한 지금 아무런 조치도 없이 군을 회군한다는 것은 천자와 천조는 세상에 회수 이북의 땅과 백성들을 버릴 것을 천명한 것이나 다를 바 없게 되옵니다. 일국의 어버이이신 천자께서 어찌 자식들인 백성들을 구해주지 못할망정 버릴 수 있사옵니까.
그리된다면 회수 이북은 정말로 이적들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이남의 백성들도 조정에 대해 불안과 의심을 하기 시작할 것이니 나라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옵니다. 신은 그런 망조를 보지 못하옵니다. 차라리 신을 여기서 죽여주시옵소서!”
“폐하. 무엇이 천자이옵고, 천자란 무엇이 옵니까?! 한순간의 굴욕을 감내해서라도 제 나라의 백성들과 땅을 지키는 것이 성군(聖君)이고, 인군(仁君)이오며, 비로써 마음으로 따르는 군주라 할 수 있사옵니다. 차라리 폐하께서는 회군을 지시하시고 죄는 신에게 몰아 신의 목을 베어 주시옵소서!”
사숭지와 정청지는 어느 누구도 물러나지 않았고 주장을 고집했고, 둘의 설전이 계속되면 될수록 송 황제는 깊은 한숨을 흘리며 현 상황에 골치 아픔을 느꼈다.
#작가의 말
*작중 사숭지와 정청지의 대화 도중에 서로를 이름으로 지칭하는데, 이건 일부러 넣은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