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306
306화
46장 유구국(流球國)(3)
“탐라국이 어째서 증좌가 되는 것이지?”
둘의 대화에 슌바쥰키가 끼어들며 묻자 요루지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탐라에서 온 상인들이 스스로 말하길,
‘우리 탐라국(耽羅國)은 이곳(오키나와)으로부터 북쪽 바다 수백 리에 있는데 과거 삼한에서 백제와 신라가 흥성하였을 때는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 귀속되었으나 지금은 고려의 번국으로서 살고 있다. 강토는 수백 리나 되고, 지형이 여러 외국을 잇는 바다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기에 그 인구의 번성함은 물론 산물도 풍부한 나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고려와 관계에 대해 말하기를 본래 고려에서도 탐라에 관리를 보내고 내지화를 하려는 듯도 보였지만 이번에 탐라에서 역신이 나오자 고려에서는 군을 보내 소탕을 할 뿐, 도리어 관리를 돌려보내 공물만을 받는 것으로 그쳤다고 합니다.
이는 고려라는 나라는 해상의 무역만을 고집할 뿐 지배나 강한 간섭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탐라 같은 나라가 지척에 있는데 가만히 두겠습니까?”
“그것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요루지의 주장을 요약하면 고려라는 나라가 강성하고 송과 일본과 이웃하여 있으니 고려를 이용해 송과 일본의 상인들을 막을 수는 있으며, 정작 고려는 가까이 있는 탐라를 직접 지배가 아닌 토착 호족들을 통한 충성에서 끝맺는 것을 보면 직접 지배하려들 가능성이 적다는 내용이었는데 린잔은 그것은 너무 낙관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주군인 슌바준키도 린잔과 같이 요루지의 낙관적인 전망을 꺼려했다. 그런 그들의 반응에 요루지도 그럴지도 모른다고 동의를 하면서도 현 상황을 상기시켰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 이 기회를 놓친다면 현재의 구도는 확실히 무너진다는 것도 염두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은 슌바쥰키로 하여금 고려를 끌어들이는 방향도 고려하도록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외부의 상인들이 오면 올수록 현 상황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알았다. 그러나 만에 하나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고려가 탐라에 군대를 보냈다고 하였으니 그 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 파악하라. 가까이 있는 탐라에 보낸 병력을 기준으로 한다면 어느 정도 대응하거나 짐작할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뒤 요루지는 다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돌아와 설명을 늘어놓았다.
“—하여 고려가 탐라에서 일어난 문제 보낸 병력을 근거한다면 더 멀리 있는 우리 섬에 보낼 병력 또한 대략 5백 정도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두리는 지도 위에 배 모형 몇 개를 올리면서 설명했다. 가신들은 긴장과 경계를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지은 것은 ‘수가 적다’는 것이었고, 긴장과 경계를 하는 것은 고려가 칠지도 모른다는 가정과 더불어 ‘수가 많다’는 것 때문이었다.
“5백 명이라 과연 대국이라 할 만하군.”
오키나와 제도를 통일한 류큐 왕국의 인구조차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야 겨우 17만에 근접하였다.
당연히 아직 통일조차 되지 않고, 여러 성주들이 난립하던 이 시기 오키나와의 인구는 류큐 왕국 시절보다 적었고, 그 호족(아지)들 중 한 명인 슌텐씨의 인구는 류큐 왕국의 절반은커녕 10분의 1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5백 명이나 동원되어 바다 건너올 수 있다는 사실은 긴장과 경계를 가질 수 있는 충분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습니다. 만일 우리가 고려와 땅이 맞닿아 있다면 그보다 수배 아니 수십 배의 대군이 올 수 있겠으나 다행히도 우리와 저들 사이에는 바다로 가로막혀 있습니다.
더군다나 탐라와 고려상인들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탐라와 고려보다 더 멀리 있고, 환경도 달라 힘들다고 하였으니 고려에서 군대를 보낸다 하더라도 약 2배로 정도가 한계일 것이고, 오래 상주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탐라는? 탐라는 고려의 속국이라고 들었다. 고려가 명령을 내린다면 지원해야 할 것인데?”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탐라는 지금 지난 반란의 피해를 수습한다고 한창이니 많은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탐라는 병력을 지원하기보다는 물자와 식량을 우선하리라 생각되지만 말입니다.”
그 이야기에 비로서 슌바쥰키는 미소를 지었다.
중과부적이라고 고려가 어마어마한 대군을 동원한다면 슌바쥰키로서는 고려를 끌어들이는 것을 크게 경계하였을 것이나 설명을 들으니 고려가 자신들을 지배할 의지는 미약해 보였다.
5백 명을 여기까지 보낼 수 있다는 것은 놀랍기는 하지만 그 정도라면 어찌 감당할 수 있는 숫자였다.
“근방 아지들에게 동원령을 내린다면 얼추 8백 이상은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한다면 설령 고려가 예상한 병력의 배, 혹은 수배인 수천으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성을 방패 삼아 싸운다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겠지.”
봉건제와 전국시대의 동원력은 일반 평화기의 동원력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이 시기 슌텐씨의 동원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슌바쥰키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조건은 갖췄다고 안심했다.
* * *
서경.
야율수국노와의 조선문답(朝鮮問答)을 하고 잠시 쉬고 있는 중, 유구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다.
유구 문제는 급선무에 두었기 때문에 야율수국노와 잠시 떨어져 제대로 보고를 들었는데 내용은 대체적으로 반가운 것들이었다.
“과연 왜상들과 송상들이 그쪽으로 향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들은 밀상(密商)이라고 할 수 있겠군.”
밀무역을 하는 상인이라면 이쪽에서 그들을 처벌한다고 해도 일본이나 남송에서도 당당히 큰 소리를 낼 입장이 아니게 된다.
애당초 송-여-일 무역으로 맡겨준 남송이나, 해외무역이 공식적으로 금지된 일본에서 이쪽의 해상통제를 따질 입장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도 모르니 대마도주와 구주총관에게 이에 대한 서찰을 작성해야겠구나.”
오키나와에 출몰한다는 상인들은 지리적으로 볼 때 큐슈 전체가 아니라 남큐슈 다이묘나 상인들 일부가 독단적으로 벌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만 이 일을 전한다는 행위 자체가 고려에선 절차에 따라서 따졌고, 큐슈 내부에도 파장을 불러올 수는 있을 것이다.
후일 문제가 되더라도 큐슈에서 해결하지 않았다는 명분을 거머쥘 수 있다.
“그리고 유구에 성주들이 그렇게 많이 있다는 것도 좋다. 그래, 순마순희라는 자가 근방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고?”
“그렇다고 하옵니다. 그러나 다른 유구의 성주와 추장들과 달리 그자의 세력은 그의 아버지 순천(슌텐) 대에 이룩된 것이고, 그 순천 또한 유구의 출신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구의 태생이 아니라면 밖에서 유구로 흘러간 자란 말인가?”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긴 하나 명확히 어디서 왔는지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예전에 누가 오키나와 신화를 알려줄 때 일본의 어느 무장이 흘러갔다든가, 아니었던가 했던 것 같기도 한데….
“뭐가 되었든 상관없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의 태생이 아니라 유구 내에 아조가 간섭할 수 있느냐다. 순마순희던 혹은 아니라면 다른 성주라도 좋으니 아조가 건너가 움직일 수 있도록 손을 써야 할 것이다.”
“예. 안 그래도 순마순희가 입조 (入朝)의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오키나와는 일본도 중국의 땅도 아니지만, 고려의 땅도 아니다.
해동이라고 말한다면 해동의 영역에 포함이 되겠지만 탐라처럼 고려의 속국도 번국도 아닌 것이다.
해동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대를 보내거나 강제로 복속시키는 것은 주변의 이목과 위신의 문제가 있다.
물론 근대에서 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사태이고, 앞서 말했다시피 현 국제정세를 보면 우리가 이런다고 해도 강하게 나서서 막을 자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후일 책잡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는 모양새를 만들어 두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저쪽에서 먼저 만남을 바란다고 하니 좋은 말이 아닐 수 없다.
“입조라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로다. 이로써 유구는 고려의 번속이 되었으니 이제 언제든지 갈 수 있게 되었구나. 유구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가능하다면 경략하고, 불가능하다면 토벌하라. 그러나 절대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하였는데 지금 계절을 잘 타고 가면 이제 군대를 보내도 문제없다고 확신하니 이보다 좋은 말이 어디 있느냐?”
“하온데 전하. 유구에 출병을 결정하신다면 결국 병력의 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당하겠사옵니까?”
곁에서 잠자코 있던 유갑수가 그런 질문을 던져왔다.
유구에 군대를 보낼 정도로 뱃길을 익혔다고 하더라도 유구는 멀고 풍속과 토향이 다른 만큼 얼마나 많은 군대를 보낼지 걱정과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탐라의 난을 해결하였을 때 5백여 명으로 충분하였습니다. 하면 유구는 거리가 있는 만큼 넉넉히 3, 4배로 잡고 1천 5백 ~ 2천이면 적당하지 않을까 생각되옵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탐라를 경략할 때 김방경이 고작 5백 명으로 잡은 것은 당시 운이 좋았다는 것과 화약 무기 덕분이다.
그마저도 만일 양원이 야전을 고집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거나 정면승부가 아닌 게릴라를 꼽았다면 그토록 쉽게 결판나지 않았을 것이다.
“불가하다. 이것은 토벌만 하고 오는 일과 다르다. 2천이면 일을 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도다.”
“하면 어느 정도가 적당하겠사옵니까?”
“적게 잡아도 2만 명은 필요할 것이다.”
원 역사 고려 말기 중국에서 원나라가 명나라에게 쫓겨 몽골 고원으로 밀려 나갈 때 고려는 제주도를 다시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려고 하였고, 제주도에 있던 몽골인들은 그것에 저항하였는데 이것이 목호의 난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이때 고려는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최영에게 딸려 보낸 병력이 약 2만 5천여 명에 해당한다.
또한, 조선 초기 세종 시기 극심한 왜구 침임을 해결하고자 조선에서 이종무에게 대마도를 정벌하라고 보낸 사건이 조선의 대마도 정벌 사건이고, 이때 동원된 병력이 약 1만 7천 명에 해당한다.
그리고 두 원정 모두 이후 오랫동안 고려와 조선의 영향을 새겨 넣는 데 성공했다.
즉, 강력한 영향력과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그만한 지출이 필요했고, 나의 의지와 계획을 관철하기 위해서도 그만한 지출을 감당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앞선 사례였던 제주도와 대마도 정벌 문제는 그나 지근거리에 있었는데, 이번 오키나와는 매우 멀리 있다.
같은 수로 보내도 부담의 정도는 그들보다 배 이상은 될 것이다.
거기다 만일 태풍이라도 만난다면 정병들이 단번에 날아가는 최악의 사건이 벌어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남방 경략을 할 기회는 지금이 둘도 없는 기회란 것은 사실이지.’
겨울날 오는 계절풍을 타야 하기 때문에 추수 이후에 움직이기 때문에 추수 걱정은 나름 덜고 갈 수 있다는 것과 옷치긴 왕가의 전쟁으로 북방도 당분간 안전하다는 점이다.
옷치긴 왕가도, 동요국도 건들지 못하는 지금 고려에서 남방 경략에 힘을 쓰지 않는다면 무엇하겠는가.
무엇보다 최소 2만 명 이상이라고는 했지만, 아주 무리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호들갑 떨 것은 없다. 2만 명이라고는 했지만 전부 병사들이 아니다. 그중에 사민을 할 탐라인들과 그들을 관리할 관리와 시종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 지금 오키나와는 단순한 정벌이나 토벌이 아니다. 고려가 직접 해상 실크로드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 작업이다.
소탕 수준에서 그치고 형식적 사대를 받는 선에서 그친다고 하더라도 진짜 입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과거 동인도회사가 했듯 최소한 오키나와에 고려 전용 중간기착지나 보급소로 쓸 땅이나 혹은 송, 일 상인들을 불러 중개무역을 관리할 수 있는 포구는 마련해야 한다.
“이번에 보낼 탐라인 만하여도 2천 명이다. 이 정도면 마을을 만들고도 남을 것이다.”
그리고 왕자의 난 이후로 고려에는 많은 탐라인들이 있다. 고려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오키나와 비슷하고 가까이 살던 탐라인들이 말이다.
그들로 오키나와에 반촌(泮村) 같은 마을을 만들고 군사들도 보내 장보고의 ‘청해진(淸海鎭)’ 같은 기지 겸 근거지를 만드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급히 김구와 송문주를 불러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상의해야겠구나.”
이제 눈앞까지 다가왔다. 망설일 여유 따윈 없다.